제목: 다른 복음에 관한 세가지 진실

본문: 갈라디아서 1장 6절~9절

설교자: 이병권

 

오늘은 여러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솜씨 좋은 건축가입니다. 어느 날 큰 부자로부터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설계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설계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이제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모아서 일을 분담합니다. 건물 자재들을 구입하고 터를 닦아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몇 주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다시 현장에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엉뚱하게 지어진 집입니다. 사람들이 설계도와 다르게 이상한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소식을 듣고 다급한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처음에는 설계도대로 집을 잘 지었는데 짓는 도중에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집을 짓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생각하며 그냥 둘 수 없는 이 큰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엄중한 경고의 말을 전합니다.

그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도 생략하고 그의 편지를 다르게 시작합니다. 감사의 자리,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망입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던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각 절마다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우리 성경에는 이해하기 쉽게 같은 표현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6절에도 7절에도 8절과 9절에도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가 되는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다른 복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바울은 다른 복음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왜 다른 복음이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갈라디아 교회에게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말들을 사용하면서 다른 복음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바울의 이 경고를 통해 “다른 복음에 관한 세 가지 진실”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진실이 나에게 ‘불편한 진실’이 되는지, 아니면 나에게 ‘중요한 진실’이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다른 복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 먼저 다른 복음에 관한 첫 번째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6)

바울은 ‘내가 너희를 생각하며 감사하노라’, 감사의 인사 대신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이상하게 여긴다니까 이 의미를 좀 약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답답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큰 잘못을 꾸짖을 때 쓰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 착한 아들이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엄마는 이해할 수 없구나!’ 좀 더 현실적으로 하면,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했냐!’ 바울의 심정이 이런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이 실제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가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은 ‘다른 복음’을 따른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복음을 따른 것에 대해 바울은 그들을 부르신 이를 떠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뒤돌아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부르셨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복음을 허락하셨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떠난다는 말은 군인이 부대에서 무단으로 이탈할 때 쓰는 말입니다. 탈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군사로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에 대해서 탈영하는 것입니다. 충성의 대상을 바꾸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디아 교회는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배신하고 자신의 자리를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 관한 첫 번째 진실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다른 복음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렇게 책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갈라디아 교회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떠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복음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할 것이 거짓에 쉽게 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아직 어린 아이와 같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 위에서 든든하게 설 때까지는 보살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치 땅에 갓 심은 연약한 씨앗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줄기가 자랄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보다 더 성장한 지체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도 다른 복음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또 어떻겠습니까? 바울 당시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하려는 수많은 도전과 유혹과 거짓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잘 이해하고 말씀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나 자신 만이 아니라 아직 연약한 지체들을 복음으로 붙들어주고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다른 복음에 빠질 수 있고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마다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누군가가 실제로는 다른 복음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참석하고 있지만 여전히 복음이 필요한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복음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믿는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큰 소리를 주님을 부른다 하더라도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다면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정말 믿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시고 나뿐만 아니라 내가 도울 수 있는 분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정말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다른 복음에 관한 두 번째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7)

우리는 7절에서 다른 복음에 관한 두 번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너무도 단순하고 분명한 진실입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 그 자체가 사실은 없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한 일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다른 복음의 파괴적인 영향력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여기 나오는 ‘교란한다’는 말은 뒤흔들어서 혼란에 빠뜨린다는 말인데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은 성도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혼란에 빠뜨렸고 복음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성도들의 삶을 망가뜨렸습니다. 결국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이 한 일은 참된 복음을 변질시킨 것입니다. 가짜를 가지고 와서 진짜와 바꾸어 버렸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이 가짜에 넘어가 유일한 참된 복음을 저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짜가 아닌 진짜 복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우리가 믿는 참된 복음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문법적으로 이 말을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 해석은 그리스도를 목적어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또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이 됩니다. 복음의 내용이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그리스도를 주어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이 됩니다. 복음의 출처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그리스도가 전해주신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든 그리스도가 전해주신 복음이든, 두 가지 모두 가능한 해석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일한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서 독선적이다. 편협한 사고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한다면서 우리를 비난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싫어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기보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지만, 너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너의 생각도 맞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독단이고 독선입니다. 차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려가 성당에 가서 설법을 하고 신부가 절에 가서 설교를 하는 것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1+1=2가 답이지만 3도 답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면 옳은 걸까요? 그렇게 말해야 할까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교만한 걸까요? 그건 정답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정답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생각의 폭이 넓고, 아량이나 관용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답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분명한 하나의 답이 있다면 그 답이 아닌 다른 것은 틀린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은 답 아닌 것을 두고 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맞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이 참된 것이라면 다른 복음은 틀립니다. 다른 복음이 아니라 틀린 복음입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음은 하나뿐입니다. 아무리 그 내용을 그럴 듯하게 꾸민다 하더라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면 가짜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언급할 때 현재 시제를 사용합니다. 과거의 활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며 갈라디아 교회를 계속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됩니다. 진짜가 너무도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 짝퉁들이 계속 나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복음에 관한 진실은 분명합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복음에 관한 세 번째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8-9)

우리 가운데 혹시 최근에 다른 사람을 저주한 적이 있는 분, 계십니까? 어떤 사람이 너무 미워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주를 받아라! 하면서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했던 정말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 사실 우리도 잘 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도 바울이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단을 향해서도 이렇게 저주 하는 일은 잘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 임하기를 빌고 있습니다.

여기 ‘저주’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하면 어떤 것도 사람이 취해서는 안 되고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가 그러했습니다. 저주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인데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진멸됨’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이러한 낯선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안 좋은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화를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미워서 그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특정 사람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 해당된다면 누구든 관계없이 저주를 받을 것을 선포합니다. 이 저주 받을 상황에 대해서 놀라운 것은 그 대상에 바울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이 저주에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나서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이전에 자신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어느 날, 눈부신 빛을 내면서 흰옷 입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 역시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전에 바울로부터 전해 받은 복음, 그 복음은 완전한 것입니다. 추가로 필요한 것이 없는 온전한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그가 전했던 복음에 다른 것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대한 복음을 거짓으로 바꾸는 일은 어떤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마땅한 일입니다. 특별히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는 시기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초기였기 때문에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저주를 반복하면서 강한 경고를 전했던 것입니다.

참된 복음은 바울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뿐입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고 갈라디아 교회 입장에서는 “너희가 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복음 외에는 어떤 것도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 누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라도, 아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라 할지라도 이 복음과 다른 가르침을 전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 관한 세 번째 진실은 두려운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 관한 세 가지 진실을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복음에 대한 가르침과 도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싸움 중에 있습니다. 거짓과 잘못된 가르침들이 진리를 도전하며 타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의 공격에 대해서 굳건하게 제대로 서기 위해서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짜가 들어왔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복음을 잘 알면 잘못된 것을 분별할 수 있고 걸러낼 수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이 전해졌을 때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 다른 복음에서 나 자신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를 다른 복음에서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돌아보고 세워주고 복음으로 서로를 붙들어줘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자녀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참된 복음을 물려주기 위해서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2천년에 걸친 교회의 역사를 보면 복음을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들로 가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인정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위협이나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왜곡시키려는 공격에 맞서서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의 희생의 공로로 지금 우리에게까지 참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공격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이 복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믿는 참된 복음을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누며, 내가 믿는 복음에 대해서 합당한 삶으로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여기고 복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를 통해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교제와 봉사와 모든 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매주일 떡과 잔을 통해서 예배드릴 때 우리가 받은 복음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