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부모다 3: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본문 : 에베소서 6장 4절
설교자 : 이병권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은 좀 특별한 날, 광복절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을 생각하면서 자녀 양육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수고했던 선조들의 희생을 통해 후손들이 광복을 누리는 것처럼 자녀 양육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의 희생이 있기에 자녀가 독립할 수 있고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녀의 건강한 독립을 위해 수고할 뿐입니다. 우리가 대한독립만세는 외치지 못했지만 자녀독립만세는 외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가 주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행복할 수 있도록 부모인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수고를 다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마시고, “나는 부모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계속해서 부모의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부모다” 세 번째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자녀 양육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질문을 생각할 때, 제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지난주일 말씀에 대해서 무엇을 배웠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가 딸에게 말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모가 나한데 잘 해야 한다?!’
자녀 입장에서는 이것이 핵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잘하는 것은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가 원하는 것보다 자녀를 위한 것을 합니다. 때로는 자녀가 원하지 않는 것도 자녀의 유익을 위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잘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결정은 부모가 합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때에 따라 자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자녀의 요구를 수용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권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바른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 어린 조카가 와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난 애들을 어떻게 키웠지?! 우리 애들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아이들이 하나같이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양치하는 것입니다. 양치를 하려고 하면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양치를 하지 않으려고 울면서 발버둥을 치는데,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싫어한다고 그냥 둡니까? 아이가 우니까 아이를 존중해서 그냥 넘어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싫어해도 붙잡고 양치를 시킵니다. 부모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어떻게든 자녀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과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 양육의 뼈대를 이루는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같은 기본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모든 면에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교육하고 훈육하고 훈련하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그렇게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보다 자녀에게 유익한 것을 주기 위해 부모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2015년에 미국에서 ‘올해의 엄마’로 불리며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당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흑인 폭동 사태가 있었는데 흑인 청년이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폭동입니다. 화제가 된 인물은 폭동에 참가하려는 10대 아들을 붙잡고 등과 머리를 사정없이 때립니다. 그 모습이 그대로 방송에 나간 것입니다. 방송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그녀는 방송사의 인터뷰를 했는데 ‘하나뿐인 내 아들이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엄마가 했던 행동은 좀 과격하긴 했지만 부모로서 이해가 됩니다. 자녀가 폭동에 참가하겠다고 가는데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등짝 스매싱을 날려서라도 말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녀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등짝 스매싱을 날려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가 오기 전에 미리부터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중요한 자녀 양육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 양육에 대해서 길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서 부모에게 주어진 것은 두 개의 명령입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과 “양육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은 양육하라는 명령을 살펴보고 다음 주에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을 살펴보겠습니다.
부모가 해야 하는 것, 간단합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럼 주의 ‘교훈’과 ‘훈계’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교훈’이라는 단어는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훈계’라는 단어는 경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자녀의 마음과 삶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 쉽게 생각하면,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서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 말씀을 지키게 하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이런 경우는 이렇게 양육하고 이 나이가 되면 반드시 이것을 가르치고 특별히 이 부분에 있어서 부모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이러이러하다.’ 이렇게 자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명령도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계속 강조되었던 명령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 쉐마라고 불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반복해서 암송을 하는데 유대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신앙고백이며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에게 주어진 핵심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 6절과 7절에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 양육의 핵심이며 변하지 않는 기준입니다.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부모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가르치는 부모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다름이 나타나고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유익을 위해 가르치고 필요한 지식을 전합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믿는 부모이기에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가르칩니다. 성경의 지식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한 지혜를 가르치고 성경적인 가치관과 성경적인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 양육이 세상과 같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가르치기에 세상의 목표와 방법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우리의 자녀 양육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합니다. 말씀으로 양육합니다. 우리 자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자녀는 하나님 말씀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부모가 가르쳐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 자녀를 볼 때 어떻습니까? 사랑스럽게 보이십니까?! 아마도 자녀의 나이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인상 쓰면서 반항하는 10대 자녀를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린 자녀는 늘 사랑스러울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린 자녀가 웃을 때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천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을 쓸 때는 어떻습니까? 죄의 본성이 드러날 때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죄는 어쩔 수 없습니다.
미국의 미네소타 범죄 위원회에서 말하는 아기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모든 아기들은 전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원하는 때에 가지려고 한다. 아기가 원하는 것을 막으면 아기는 분노하며 공격적으로 변하는데 만약 그럴 힘이 있다면 살인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기들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나두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존 맥아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의 마음은 이미 죄와 이기주의로 프로그램 되어있기에 모든 아기들은 괴물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괴물은 따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자녀에 대해서 뭔가 하지 않는다면 그 가능성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면 자녀는 죄에 지배를 받으며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욕심을 따라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양육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은 자녀가 스스로 양육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부모가 주도적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잠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 자녀는 부모를 욕되게 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있는 미련한 것을 다루지 않으면 그렇게 자녀를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자녀는 죄의 본성대로 할 것이고 무서운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재앙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괴로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부모가 그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자녀를 방치했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이러합니다. ‘아니! 부모가 어떻게 했기에 애가 저 모양이야!’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부모가 특별히 뭔가를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사무엘상을 보면 비극적인 가정의 모습이 나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녀들의 죄를 알고 있었지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멸시한 자녀들뿐만 아니라 엘리의 집, 하나님은 그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셨습니다.
삼상 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다윗도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었고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통스러운 결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고가 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도전과 일깨움이 되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자녀에게 할 수 있는 두 가지 적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야 합니다.
언젠가 자녀가 부모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질문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자비로운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신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순종을 명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는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하나님께 위임 받은 권위를 사용해서 순종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이것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녀는 하나님께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따라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라는 분명히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모의 권위로 자녀의 죄를 다루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어떻게 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부모가 되지 마십시오. 자녀의 미련한 것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것은 결국 자녀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자녀는 결국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지 않도록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도 존중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도 멸시하십니다. 그러니 자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치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조롱하는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그런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부지런히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그분의 어떠하심에 놀라워하며 섬길 수 있도록 모든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인생은 자녀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겠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침내 주님 안에서 복된 인생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둘째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우리 인생에 대해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생각할 때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인생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한 예로, 교회를 다니는 천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그동안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했는데, 가장 많은 비중의 대답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까요? 이런 교육은 하나님이 없는 다른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라는 세상의 교육과 같은 것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선을 행해라, 그러면 복을 받고 네가 잘 될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모르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복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을 통해 대신 하셨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인생에 대해서 질문할 때가 올 것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도 있을 것이고 사람이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고민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자라면서 왜? 라는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자신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진리를 깨달았을 때 어떠셨습니까? 인생에 대한 생각과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인생에 대한 생각을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도 바꿉니다. 나 자신을 주님 안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셨기에 나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와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한 일이나 업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 점수를 잘 받아오고 좋은 대학에 가면 나의 가치가 올라가고 외모에 따라 가치가 변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신 일로 우리는 평가하시고 받아주십니다. 우리 존재의 가치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르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을 헛되게 낭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는 부모인 우리가 경험한 것이고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녀도 경험하고 자녀도 이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귀한 진리를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자녀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 복음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는 이유는 단순히 행동을 교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단순히 착한 아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는 이유는 자녀의 마음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십니다. 복음이 사람의 마음을 바꿉니다. 복음이 아니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 복음을 가르칩니다. 복음을 깨달아 알 때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서 만나는 여러 유혹들을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진짜 만족과 기쁨이 있기에 헛되고 거짓된 세상의 것들을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때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할 것이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 때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위해 살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부모인 우리는 자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자녀에게 그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능력이 함께 합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그 가운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칠 때 그러한 놀라운 은혜가 함께합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가 변화되었고 또한 우리의 자녀가 변화될 것입니다. 그 일을 기대하시고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부모가 되십시오. 그럴 때 자녀의 건강한 독립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