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부모다 2: 누가 해야 하는가?
본문 : 에베소서 6장 4절
설교자 : 이병권
오늘 “나는 부모다” 두 번째 시간에는 “누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자녀 양육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누가 해야 하는가?” 바로 답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질문입니다. 이 쉬운 질문을 조금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갓난아기가 계속 울고 있습니다. 누가 해결합니까? 부모가 합니다. 아이가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면 누가 수습을 합니까? 부모가 합니다. 누가 먹을 것을 주고 누가 기저귀를 갈아줍니까? 부모가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 부모가 합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 부모만 할 수 있습니까? 자녀를 먹이고 교육하고 돌보는 일, 부모만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학교나 학원, 보육 시설에서 아이를 먹이고 교육하고 돌보는 일을 대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족이나 친척이 부모를 대신해 자녀를 양육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자녀를 잘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 질문을 먼저 세 가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부모가 해야 한다는 말은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 양육을 도와주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어린이 집, 유치원 선생님,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방문지도 선생님 등등 다양한 선생님들이 우리의 자녀를 돌보며 수고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선생님은 부모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역할입니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자기 자녀처럼 돌보고 도움을 주시지만 어디까지는 도움입니다. 선생님이 부모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 누구보다 자녀를 잘 알고 자녀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생님에게 미루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일입니다. 자녀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양육은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가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책임 있는 양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원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학원에 보내면서 자녀의 입시는 물론이고 부모가 할 일을 선생님이 대신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안 들으니까 선생님에게 자녀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선생님의 말씀을 보다 객관적으로 듣게 되는 경우가 있고 선생님이 자녀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부모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말은 교회 안에 계시는 선생님도 포함되는 말입니다. 교회는 우리 자녀들을 영적으로 돌아보며 수고합니다. 교회 선생님들이 우리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위해 수고합니다. 하지만 교회도 어디까지나 돕는 역할입니다. 부모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녀 양육은 부모가 해야 합니다.
둘째로 부모가 해야 한다는 말은 부모님이 아니라 부모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부모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부모가 양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의 경우, 자녀를 양육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곁에 계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의지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오셔서 도움을 주시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부모님이 자녀 양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움입니다. 양육의 주체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님은 나의 부모이지, 내 자녀의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양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맡겨주셨습니다. 부모는 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부모가 처음부터 자녀가 독립할 때까지 일관성 있게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부모님께도 중요합니다. 부모님은 손자, 손녀 양육에 있어서 얼마든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한과 책임이 내 자녀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손자, 손녀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돕는 자로 계시기 바랍니다. 때에 따라 조언이 필요할 것이고 충고 하실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 모든 일을 하는 목적이 내 자녀가 부모로서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너 키웠을 때는 그렇게 안 했다!’ 이러지 마시고 손자, 손녀를 양육하는 자녀를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자녀가 어릴 때에는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정말 더 중요합니다. 제가 자녀를 키우면서 경험적으로 절실히 배운 것은 어린 자녀에게 엄마의 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엄마의 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만족과 안정을 얻을 수 있는 품은 엄마만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그 피해는 자녀가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받은 피해는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가 해야 한다는 말은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엄마만 아니라 아빠도 입니다. 자녀 양육에서 아빠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직접 양육하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수 있고 자녀에 대해서 그만큼 마음을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빠들이 자녀 양육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조용히 발을 빼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을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의 역할은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만약 돈을 벌어다주는 것으로 아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당장 버리시기 바랍니다. 직장 때문에 정말 시간과 여력이 없어서 자녀에게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과 생각이 없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본문의 명령이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본문에서, “또 아비들아”하고 말씀을 시작합니다. “아비들아” 하는 이 단어는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다른 성경에는 ‘부모’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말씀의 의미는 아빠에서 엄마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기본 세팅이 아빠이고 아빠만이 아니라 엄마도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본 세팅이 엄마이고 때에 따라 아빠가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기본 세팅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라는 명령은 일차적으로 아빠에게 주어졌습니다. 누가 더 책임이 크고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느냐? 아빠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자녀 양육에 있어서 아빠의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아빠는 그냥 먼발치에서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생각과 결정이 엄마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 양육에 대한 세미나를 하거나 강연이 있다고 했을 때 누가 주로 참석할 것 같습니까?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합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풍자한 말이 있습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고 잘못된 가치에서 나온 틀린 말입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아빠의 무관심은 하나님 말씀에 반하는 것입니다. 믿는 부모는 달라야 합니다. 양육하라는 명령은 부모에게 주어졌고 아빠는 이 명령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아빠도 해야 합니다.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모든 걸 맡기고 책임지게 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남편이 자녀 양육에 관심도 없다가 나중에 자녀가 자기 뜻대로 크지 않았을 때 아내를 탓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이건 정말 못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자녀 양육에서 무관심하고 아빠의 역할을 하지 않는 남편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들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 늘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가정에서 나의 역할이 시작된다!’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 나의 임무는 퇴근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퇴근 후에는 더 중요한 가정에서의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는 아빠들에게 그리고 엄마들에게도 질문합니다. 왜 직장 생활을 하십니까? 왜 경제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직업에 대한 소명 때문에, 자아실현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직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이런 이유들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피부에 와 닿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왜 여러분은 힘들게 돈을 벌고 계십니까? 가정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가정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정작 더 중요한 가정을 놓친다면, 자녀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하면서 돈을 버느라 자녀가 어떻게 크는지 모르고 자녀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직장 때문에 가정이 뒤로 밀려나는 것은, 직장 때문에 자녀를 돌보지 않는 것은 모순적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직장은 옮길 수 있고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은 그럴 수 없습니다. 가정을 위해서 직장이 필요한 것이고 가정이 있기에 직장도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정을 놓치고 있다면 직장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 하더라도 꽝입니다.
정리하면, 자녀 양육은 선생님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고 부모가 해야 합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함께’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한 팀입니다.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합니다. 자녀 양육이 쉽지 않기에 이 중요한 사명을 부부가 함께 감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면서 각자에게 맡겨진 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일을 돌아보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함께 합니다.
자녀를 상대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어릴 때에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커서는 정신적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자녀를 상대할 때에는 부부가 협력해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상황을 봐서 더 좋은 컨디션을 가진 사람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상대하는 일은 최상의 컨디션을 가진다 하더라도 쉽지 않습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상대와 쉼 없이 벌어지는 일상에서의 싸움이기에 적절하게 선수를 교체하면서 지혜롭게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부가 서로의 손을 붙잡아 줄 필요도 있습니다. 반항하는 자녀에게 돌진하지 않도록 서로를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에는 진정할 수 있도록 서로가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부의 하나 됨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부부는 한 목소리를 내고 같은 생각을 하고 동일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혼란스럽지 않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는 안 된다고 하고 아빠는 된다고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자녀 양육을 함께 합니다. 한 팀이고 같은 편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섬기고 서로를 위할 때 함께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 딸이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아내가 딸에게 사랑한다면서 여러 가지 말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나 아빠 사랑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말에 의미를 두거나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아내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아! 부모에게 이런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아이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정말 자녀를 위한다면 부부가 해야 할 일은 서로 경쟁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부사이가 중요합니다. 누구보다 부부가 서로 친밀하고 누구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할 때 자녀는 서로 사랑하는 부모를 보며 가정 안에서 만족을 누립니다.
만약 이것이 가정에서 충족되지 않는다면 자녀는 결핍된 것을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고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할 것입니다. 대체품을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자녀 양육을 말할 때 부부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강한 부부 관계에 기초해서 건강한 자녀 양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 부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없기에 참고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상으로 보고 계신 분들은 여러분 기준으로 왼쪽 위를 보시면, 참고 자료가 보이십니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참고 자료가 아닙니다. 좀 전에 제가 참고 자료를 보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디를 보셨습니까? 아마 모든 분들이 오른쪽 위를 먼저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여러분 기준으로 왼쪽 위를 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오른쪽 위를 보셨을까요? 제가 오른쪽 위를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제 말이 아니라 제가 하는 행동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싶은 내용입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부모가 해야 합니다. 부모가 본으로 해야 합니다. 입술이 아니라 본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모습,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랍니다.
그래서 잘 양육하는 부모가 되려면 먼저 잘 사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떻게 사는지 자녀가 보고 있습니다. 자녀가 압니다. 아빠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엄마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자녀가 다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말 꼭 필요하고 유익이 되는 말을 멋지게 했다 하더라도 부모가 그와 다르게 살고 단지 말뿐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말이나 말지! 오히려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나쁜 말을 했을 때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하면서 부모가 나쁜 말을 하면 어떨까요? 자녀는 부모의 말을 따라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부모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다른 일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늘 다른 일로 더 바쁘다면 어떨까요? 자녀는 부모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교회에서 하는 것과 집에서 하는 것이 다르다면 사람들 앞에서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그와 다른 모습으로 산다면 어떨까요?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녀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는 차라리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아들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돈을 버는 일이란다!’ ‘아들아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것은 내 취미 생활을 즐기는 거란다!’
자녀는 압니다. 부모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뿐인 믿음인지 아니면 삶으로 증거 되는 믿음인지 자녀는 압니다. 부모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있는지, 그것도 코로나 이후에는 선택이 되어버렸고 온라인 예배도 부모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녀는 압니다.
만약 이런 모습이라면, 부모로서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녀가 알고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합니다. 결국, 부모는 자기 믿음의 수준대로 자녀를 양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고 어디에나 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 자녀가 볼 때에도 그러하다고 생각할까요?
여러분에게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래서 정말 그것을 아끼고 귀중히 여긴다면 자녀도 그것을 보고 압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녀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주님을 귀하게 여긴다면 자녀도 주님을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배우가 아닙니다. 힘들게 배우처럼 연기하며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살다가 집에 가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가치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다르게 살아갑니다. 다른 가정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 우리 가정에는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녀가 자라면서 다르게 사는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고 그 다름의 이유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다르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믿는 부모입니다. 그러니 믿는 부모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십시오. 삶으로 보여주십시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의 삶과 바깥에서의 삶을 구분하지 말고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화된 사람답게 계속해서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들었던 한 연예인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일이라 그 내용이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그 연예인은 자신을 진짜 골초라고 하면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사회자가 지금 담배를 끊은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담배를 잠시 참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자기는 담배를 절대 끊을 수 없는데 자녀 때문에 잠시 참고 있는 중이고 자녀가 크고 나면 다시 담배를 피울 거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회자가 얼마나 참았냐고 물었더니 십년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 자녀를 위해 자신을 절제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고 즐기는 것도 자녀의 유익을 위해 멈춥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정과 자녀 양육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좀 참으시고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철없는 아이와 같은 아빠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들리는 이런 저런 엄마들의 푸념들이 있습니다. 저도 한 사람의 아빠로서 말씀드립니다. 아빠들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아비들아!” 성경이 아빠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겨들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있을 때에도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이 따라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일로 힘들더라도 가정을 섬기고 함께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자녀를 양육하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함께 본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부모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부모가 자녀 양육을 할 때 또 다른 부모가 함께 합니다. 내 자녀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이 그 모든 수고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자녀 양육이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그 모든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나보다 더 자녀를 사랑하시고 자녀를 돌보시고 자녀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삶의 주인이시며 참 부모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자녀를 본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