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Part.2 “그 사랑의 높이”
본문: 에베소서 2장 4-10절
설교자: 조정의
삼인조를 타고 난 모든 영혼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육체와 마음, 온갖 불의와 불경건한 풍조를 조직적으로 양산하는 세상, 배후에서 울부짖는 사자처럼 영혼을 삼켜 영원한 불못으로 끌고 들어가는 마귀. 삼중으로 결박된 영혼은 정해진 운명의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예외 없이 도달한다. 누가 이 비참한 인생을 도울 수 있나?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그러나 하나님이”(4절) 우리를 도우셨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예수님은 비참하고 낮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우리를 친히 찾아오셨다. 해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벗고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다. 만물의 주인이지만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사셨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시 22:6).
버러지 같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은 버러지 같은 취급을 받으셨다. 우리 죄에 쏟아질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우리 대신 모두 받으셨다. 이로써 우리 육체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갈 5:24), 세상에 속했던 우리를 건지시며(요 15:19), 마귀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되찾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구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 우리가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야 할 ‘하나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다.
1. 구원의 근원: 하나님의 긍휼(4-5절)
이번엔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 은혜의 높이를 측량해보자. 먼저 구원은 깊이나 높이, 길이, 너비 등 모든 면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그 원인, 동기, 원동력(근원)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2:4)
4절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신 일을 강조한다. 우리 구원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다. 긍휼(엘레오스)은 풍성하고 넘치고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를 말한다(히: 헤세드, 출 34:7). 하나님은 우리를 그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하나님 사랑(아가페)의 두드러진 특징은 철저히 이타적, 자기희생적이라는 것이다(시 8:4, 144:3).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고 큰지 바울은 이를 설명하는 도중에 다시 한번 감격하여 이렇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5절).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5)
2. 구원의 방법: 그리스도와 함께(5-6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신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이다. 5절과 6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는 “함께”고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나온다.
5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5-6)
바울은 특별히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로(순) 시작하는 동사 셋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방법을 강조했다.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앉히신 것은 각각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좌정(착석) 사건을 연상시키는데(높이심), 바울은 앞선 기도문에서 하나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이렇게 역사했다고 말했다(1:20-22).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빌 2:9)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실 때, 함께 우리를 높이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온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1:22-23).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된 교회는 머리 되신 주님이 지극히 높아지실 때 주님과 함께 높임을 받는다. 허물로 죽은 상태(5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높아진 만큼(하늘 보좌) 우리는 지극히 높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당신은 지극히 높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고 있는가?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늘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계 22:5). 하지만 나중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까? 언젠가 이 악한 세상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을 기대합니다(계 20:11). 하지만 지금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사망의 몸이 새로운 육체를 입고 마귀와 그 졸개들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그날을 기다립니다(계 20:10). 하지만 지금은 이 사망의 몸을 벗을 수 없으며, 마귀의 유혹과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치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는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성령님은 바울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고, 일으키심을 받고, 하늘에 앉히심을 얻은 것은 과거에 완전히 확정된 절대적인 약속이다(부정과거형). 막연히 미래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며 사는 게 아니다. 현재 확실히 우리의 것이 된 신분, 확정된 약속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로서 오늘을 살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말했다(완료형).
물론 미래에 더욱 맛보게 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높이신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맛볼 수 있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그분과 연합한 우리에게 있다(마 28:18). 그래서 우리는 육체 가운데 살지만, 성령을 따라 살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일 수 있다(골 3:5). 세상 속에 살지만,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다(요 16:33; 요일 5:4). 마귀의 유혹과 핍박을 받지만 맞서 싸워 대적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를 피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6:11; 약 4:7; 벧전 5:9).
미래의 구원은 육체와 세상과 마귀로부터 완벽한 최후 승리를 보장한다. 그것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의 구원을 누릴 수 있다. 오늘도 육체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은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성화, 선을 행하는 삶)을 무거운 짐처럼 여긴다. 패배를 경험할 때마다 죄책감과 좌절에 빠진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영적 전쟁,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 현재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 은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과 능력으로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고, 세상을 책망하며, 마귀와 맞서 싸워 마침내 승리하는 은혜의 여정이다. 그래서 언제나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능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 구원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7-10절)
은혜, 은혜,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그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2:7)
앞서 말한 것처럼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긍휼, 인자하심)이다(롬 2:4). 그리고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우리에게 주어진다(방법). 그 목적은 무엇인가? 오는 여러 세대, 앞으로 계속될 모든 시대와 영원까지 하나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과거에 나타난 구원의 은혜에 감격한다.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 사랑에 우리가 보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전적인 하나님 은혜를 드높인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나타날 구원의 은혜를 찬송한다.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의 자녀,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다스릴 것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상하게 현재의 구원을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구원의 메커니즘을(작동원리) 바꾼다. 자기 안에서 무언가 보탬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자기 행위를 의지하려 한다. 하지만 말씀을 보라.
8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완료형)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절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 은혜만을 나타낸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데, 믿음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통로다. 이것은에(8절) 해당하는 건 1-7절까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모든 과정, 모든 요소를 말하는데, 여기에 그것을 받는 통로인 믿음까지 포함된다(벧후 1:1,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 구원은 전적으로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은혜다!
구원은 또한 우리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랑하지 못한다. 주를 위해 가장 많은 행위의 열매를 맺은 바울이 뭐라고 말했나?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 10:17). 주를 위한 모든 행위, 선한 일이 주 안에서 받은 은혜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것이 우리가 현재의 구원을 이해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구원을 이루는 삶(구원에 이르는 삶), 성화(선한 일을 열심히 행함)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선한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으로 역사하시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 새 창조). 에베소서 4장부터 본격적으로 나오는 선한 일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 그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의 모습이다(4:1).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은혜로운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예비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을 따른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그분이 주시는 소원과 능력으로 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기 위해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밤에 보내 성읍을 에워싼 장면이 나온다. 그때 엘리사의 청년 사환이 겁에 질려 이렇게 말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열어 보게 하셨는데,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르고 있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구했던 기도가 이와 같다. 성령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 안에 얼마나 강력한 능력의 역사를 일으키는지 보게 해달라고 구한 것이다. 연약한 육체의 정욕과 싸울 때, 악한 세상을 거스를 때, 마귀를 대적할 때, 눈을 열어 보라.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예수님, 모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하신다.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 당신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의 동기가 되게 하라.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