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설교자: 조정의
과거를 알면 현재를 이해하게 되고, 미래를 알면 현재를 바르게 살 수 있다.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잘못 알고 있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12절). 그것은 그들의 현재 삶을 치명적으로 망가뜨렸다. 경건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무지는 과거를 바르게 아는 지식에서도 멀어지게 했는데, 미래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과거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13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면 결국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복음과 그 복음에 둔 믿음이 모두 헛것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해도 세상에서 더욱 불쌍한 현재와 여전히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미래를 맛볼 뿐이었다(17-9절).
“그러나 이제”로 시작하는 본문은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진리를 바로 세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과거를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될 미래를 바랄 수 있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아는 믿음은 그사이를 살고 있는 현재 우리 삶을 반드시 변화시킨다. 이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부활하게 될 미래도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이 된다. 에릭 사우어는 이 시대를 ‘부활절 시대’라고 부르면서, ‘구속주의 부활로 시작하여 구속받은 자의 부활로 끝난다’라고 했다. 부활과 부활 사이를 살아가는 ‘교회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답을 찾으며, 부활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붙들자.
1. 부활의 근거(20-22절)
부활의 근거를 찾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미래의 부활을 바랄 수 있게 된 과거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미래 우리 부활의 근거는 바로 과거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바울 등 수많은 증인이 똑똑히 목격한 역사적 사실이었다(4-8절).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고, 그래서 죽은 자들처럼 장사 지낸 바 되셨는데 다시 살아나셨다(4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곡물의 첫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다. 하나님은 첫 열매를 기뻐 받으셨고 백성들은 하나님이 거두게 하실 나머지 소출을 감사함으로 기대했다(레 23:10-1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첫 열매로 열납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는 은혜를 입을 것을 감사함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미친 사망이라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절).
태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창 1:1), 그분이 명백히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죄와 그 결과인 사망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죄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미친 현실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거역한 죄를 지었을 때, 그 결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라는 사망 선고를 그와 그의 후손이 대대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과거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라는 현실을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 한 사람의 부활이(예수님은 그래서 사람이 되셨다)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다. 사망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처럼, 미래의 부활도 그만큼 확실하다. 그래서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
동사의 시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현재형으로 아담 안에 난(그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경험할 현실이다.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은 미래형이다. 어떤 사람이 사망으로 끝나는 현실에서 다시 삶을 얻는 미래로 옮기게 될 것인가? 처음엔 아담 안에 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당신은 거듭났는가?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구세주를 믿는가? 그가 당신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사망과 심판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죽음은 잠자는 것이 되고 부활은 확실한 미래가 될 것이다.
2. 부활의 차례(23-26절)
그러면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될 미래의 부활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될까? “그러나”는 모든 사람이 무질서하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 차례대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소개한다(23절). “먼저는…다음에는…그 후에는”(23-4절)이 그 분명한 차례를 설명한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23절). 그리스도께서 당연히 먼저 부활하셔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활의 삶을 얻을 수 있다.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23절). 강림하실 때는 언제를 말할까?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교회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실 때를 말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휴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7).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 먼저, 그후에 살아남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어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교회에 쓴 편지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대환난 성도들이나(계 20:4) 구약의 성도들(단 12:2; 사 26:19-20), 천년왕국 기간에 죽는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게 될 것인지(요 5:29) 차례대로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시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반드시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부활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일까?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24절).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마치시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존재를 멸하실 것이다. 여기서 “통치”, “권세”,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폐하실 대상으로 악한 영들을 말한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말했다. 악의 영들 곧 마귀와 타락한 천사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원수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 전에 성도들이 악한 영을 따라 진노 받을 자들이었다고 말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예수님은 진노의 저주를 받은 그들에게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며 남김없이 모두 멸하실 것이다(마 25:41).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생명을 얻을 산소망이 되지만, 그분의 원수들에게는 두려운 심판과 멸망의 경고가 된다. 다윗은 이것을 시편 110편에서 예언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절).”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했을 때 인용했고(행 2:35),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용되었다(25절).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 전능한 통치자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 안에 거하는 성도에게는 생명을,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에게는 심판을 주실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마귀와 짐승을 시작으로(계 20:10), 모든 사람(20:12-13, 15),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망과 음부까지 불못에 던지실 것이라고 예언한다(20:14). 본문에서도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했다(26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발판으로 삼으실 때,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들은 온전한 기쁨과 만족과 승리를 함께 얻는다. 마귀도 세상도 더는 그들을 미혹할 수 없다. 심지어 사망도 그들을 위협할 수 없다.
마지막에는 결국 모든 사람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서 거듭난 자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그 발 앞에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세세토록 돌리게 될 것이고(계 7:12),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자기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그 발에 밟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계 20:10).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LG그룹의 대표적인 명카피가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역사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하나님 말씀하신 명카피는 ‘현재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써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1-12). 무엇을 선택할 건가?
3. 부활의 목적(27-28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영생을 주시고 자기 원수에게 영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4절을 보면 그 후에는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때”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께 항상 복종하는 위치에 자발적으로 계시지만, 특별히 구속의 역사 마지막 장면에서 그것이 절정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란 의미다.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신다(시 8:6, 25절). 그런데 27절을 보면 절대주권과 권능으로 모든 만물을 아들의 발 앞에 꿇게 하시는 분이 어떻게 그 굴복하는 이들 가운데 포함되겠느냐고 묻는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그리스도의 발아래 무릎 꿇지 않은 유일한 존재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리고 결국엔 예수 그리스도도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고 아버지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28절):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결국 부활의 목적이자 절정은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임재하시고 통치하심으로 그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영원한 미래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사모하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광경이다.
그러면 과거 그리스도의 부활과 미래 그분 안에서 신자의 부활 사이를 사는 교회는 믿음으로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울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산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신자의 부르심이다. 그렇지 않은가?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눅 9:23).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삶.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욱 간절히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매일 죽이는 삶을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이루어질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우리가 심히 사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 주님이 부활하신 이유는 주를 믿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4절). 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죄를 짓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인지 답하라.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인지 분명히 연결 짓고 또 그 목적을 뚜렷이 추구하라. 죄는 명백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가지고 살지 말고, 반드시 자백하고 돌이켜라.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을 것을 굳게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하며 산다(빌 1:21). 부활하신 주의 영광을 사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