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정에서 신앙을 길러내라(5): 오직 하나님만 따르도록 자녀를 인도하는 법
본문: 신명기 6장14-19절
설교자: 조정의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은 613개나 된다. 이것을 열 개로 줄일 수 있고(신 5장), 단 하나의 명령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맺은 언약은 혼인 서약처럼 상호 간에 충절을 지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남편이 간음하여 언약을 스스로 깨버리면 그동안 결혼 관계 안에서 아내를 통하여 얻은 모든 축복을 상실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고 바람피우는 백성은 그분이 약속한 축복을 잃는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을 생각하면(약 1:17), 하나님을 두고 간음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를 파헤치면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목마른 상태가 되는 것이다(렘 2:13).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누리게 될 많은 풍족한 것에 취하여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했다(10-13절). 그리고 이어서 더 직접적으로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룬다: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14절).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신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다른 신들 곧 그들을 둘러싼 백성이 따르는 신들을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면 안 된다. 하나님과 그들이 맺은 언약은 결혼 언약처럼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두고 수없이 바람을 피우는 악한 사람도 대놓고 배우자 앞에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 간음을 저지르는 것은 하나님 목전에서 대놓고 하는 뻔뻔한 죄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에 언제나 함께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15절).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겼다고 죄를 책망하기도 했다(신 17:2).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가볍게 여기신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것을 깨는 행위를 미워하시고 크게 분노하신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15절). 질투는 사랑의 맹세를 상대방이 깨는 행위에 관하여 깊은 배신감과 슬픔을 느끼며 분노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더 큰 분노가 터진다. 하나님은 얼마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가? 그 사랑을 배신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분노하시는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15절).
‘지면에서 멸절당하는 것’은 분명히 심판이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극심한 형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취소하거나 폐기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이 땅에서의 복을 거두시고 화를 내리심으로 다시금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징계하시는 것이다(히 12:10-11; 신 13:1-5; 13-18).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 모세는 대표적인 사례로 맛사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한다(16절, 출 17장):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백성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목마른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고 그에게 대들며 돌을 던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격노”하셨는데(신 9:22), 그 이유는 그들이 완악한 마음으로(시 95:8)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했기 때문이다(출 17:7).
시험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왜 배반인가?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시험”하시지 않았는가?(신 8:2).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단련시켜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 8:16).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하나님이 정말 그들을 사랑하시는지 의심하는 것이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마음이나 능력이 없는 분이라고 불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마음의 틈에 쉽게 파고드는 것이 바로 우상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줄 것같은 대상이 생기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도록 내어주게 된다.
맛사에서는 물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고기,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었다(민 11:5). 가나안의 견고한 성과 강한 백성(민 13:28), 리더십의 못마땅함(민 12:1; 16:1), 길의 불편함(민 21:4) 등 뭐든지 우상을 찾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은 우리를 죄로 유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마귀가 그렇게 오용할 뿐).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시험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하여 더 많은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며 시험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평안과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 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찾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 목전에서 간음하는 것이다.
터진 웅덩이에서 우리가 간절히 찾는, 우리 영혼의 갈증을 채우는 생수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고 억울하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도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기쁨으로 따르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복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18-19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17-19절).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날마다 우상을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는 숱한 이유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우상을 기웃거린다. 우상숭배와 싸우는 소극적 방법이 우상을 멀리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방법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우상을 덜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음행을 피하려면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모세는 언약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라고 명령했다. ‘행하라’, ‘순종하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샤매어)가 두 번 반복되어 나오는데, 이는 강조를 뜻한다. 명령, 증거, 규례는 각각을 구분하는 것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종류와 범위의 계명을 포함한다. 18절에서는 그것이 실제 삶에 적용되는 다양한 방식까지 넓게 아우른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바르고 선한 일). 신약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했다(엡 5:10). 한마디로 마음껏 최대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끝까지 믿고 의뢰하고 붙들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따르는가? 복을 받는다(18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은 일차적으로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고 장수와 번성을 크게 누리는 것이었다(19절, 2-3절). 중요한 것은 이것이 순종으로 얻는 당연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복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맹세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그들은 순종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을 은혜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복이라”(시 73:28). 하나님이 복이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렇게 친밀한 사귐을 갖는 삶이 복된 삶인 것이다. 하나님이 복이시기에.
자, 그러면 오늘 말씀의 교훈을 어떻게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는 일에 적용할 수 있을까? 자녀 양육의 목적은 단 하나다. 자녀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따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2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신 6:2).
자녀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을 한다(학업, 인기, 재물, 사랑 등).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고 싶어 하고, 또 어떤 부모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강요한다. 둘 다 문제다. 부모는 자녀가 우상을 따르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억지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녀에게 맛사에서의 경험을 알려주라.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른 우상을 따랐을 때, 삶에서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말해주라. 얼마나 헛된지 말해주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그분을 따를 때, 어떤 복을 누리고 얼마나 만족을 얻었는지 부모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자녀를 인도하고 설득하라.
어떤 성도의 교회 출석률이나 경건의 시간 참여도를 보면서, 단순히 하고 안 하고의 문제로 염려하진 않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결석하거나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경을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염려와 동시에 기도가 되는 것은 그것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의 염려나 이생의 자랑 등에 마음이 빼앗긴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성도의 자녀를 생각하면 정말 간절한 기도가 터져 나온다. 하나님께 불성실한 부모 아래서 하나님을 평생 경외하며 복 받는 자녀가 길러지기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라기는,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따를 때 누리는 복된 삶을 자녀에게 증명하여, 그 복 있는 삶을 자녀가 간절히 사모하게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