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정에서 신앙을 길러내라(2): 부모가 사랑하지 않으면 자녀가 사랑하도록 길러낼 수 없다

본문: 신명기 6장4-5절

설교자: 조정의

장로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준다. 우린 그것이 비성경적인 예식이라고 비판한다. 왜? 세례받는다고 구원을 얻는 건 아니니까. 구원받은 자가 세례에 순종하는 거다. 성경이 말하는 세례는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자가 모든 성도 앞에서 공적으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예식이다. 

그런데 개혁주의 교회들도 우리가 비판하는 것처럼 세례를 오해, 오용하지 않는다. 그들도 세례가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지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러면 왜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것인가? 그들은 그 근거를 구약시대 언약의 백성이 자녀에게 행한 할례에서 찾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대대로 복 주시기를 원하여 자녀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부모는 자녀에게 할례를 행하면서 ‘이 아기도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작정한 언약의 백성이다(언약의 당사자). 그러니 언약의 복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가르쳐야겠다’라고 결단했다. 

우린 여전히 유아세례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 예식이 담아내려 하는 중대한 가치까지 내버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대대로 복 주기를 원하시고, 이를 위하여 가정을(부모)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는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서약하는 행위다.

우리는 지난번 신명기 6장과 에베소서 6장 말씀을 통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하여 자녀에게(손자·손녀까지) 복을 주기를 기뻐하신다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했다: 

  • 명제: 하나님은 부모를 통하여 자녀에게 복을 주신다(신 6:2-3; 엡 6:2-3)
  • 조건1: 부모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부지런히 가르칠 때(신 6:1, 4-9; 엡 6:4)
  • 조건2: 자녀가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할 때(신 6:10-25; 엡 6:1-2)

사랑하는 나의 자녀가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함으로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며 형통한 삶을 살게 하려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답은 6-7절이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지만 부모에게 주어진 명령은 4절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부모가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명령은 자녀에게 가르칠 내용을 숙지하고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매우 단순하다: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자녀가 사랑하도록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부지런히 자녀를 가르쳐 성경이 요구하는 명령에 어떻게든 순종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특별히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자녀가 결국 교회와 하나님을 떠날 때, 어떤 부모는 원통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집에서 얼마나 경건의 시간과 가정 예배로 신앙을 훈련하고, 교회학교도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지도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부모가 말한 모든 것이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은혜의 방편인 것은 사실이다.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되어야 할 것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부모와 하나님 사이에 친밀하게 형성된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전달되지 않을 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부모는 알아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도록 길러낼 수 없다!

특별히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뉘지 않은 사랑의 마음이다. 4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말할 때, “우리 하나님”이라는 관계를 표현하고 “여호와”라는 언약의 이름을 강조한다. 그리고 재차 그 언약의 하나님을 “유일한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뜬금없이 밝히는 것이 아니라(존재), 그들이 사랑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관계).

이어서 5절에서는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사랑할 것을 명령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는 단수형으로 각각의 백성에게 이 명령이 직접적으로 주어졌다는 의미다(‘너희는 각각’). 마음(heart)은 모든 지각을 뜻하고, (soul)은 우리의 생명, 영혼을 가리킨다. (might)은 말 그대로 힘 또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첫째 되는 계명을 설명하실 때,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살짝 다르게 표현하셨는데,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눅 10:27). 한 마디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으로, 우리가 힘을 사용하는 모든 일로, 우리가 가진 생명을 다하여, 우리 영혼까지 모두 바쳐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녀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먼저, 보여주기식으로는 안 된다. 자녀는 부모의 표정, 말투, 행동, 습관 등 모든 것을 오랜 세월 지켜보기 때문에 다 안다. 완벽하게 본을 보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목표를 세우지 말라. 금세 실패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된다. 실패하고 넘어지면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경우 자녀 앞에서 자백하고 회개하여 다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매일의 일상 가운데 나타난다. 부모가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통하여,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주 입 밖으로 내는 말을 통하여, 말하는 방식을 통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것을 통하여,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표현하는 방식을 통하여, 반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통하여,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자비와 은혜를 베푸는 행동을 통하여, 한 마디로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생중계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평생 경외하고 사랑하라’는 부모의 말과 실제 부모가 보여주는 삶이 불협화음을 내면 자녀는 혼란스럽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라’고 하면서 부모는 말씀을 전혀 대하지 않거나 자녀가 보기에도 억지로 읽는다면 모순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가장 그 모순이 심각하게 보여질 때는 부모가 서로를(혹은 다른 가족/교회 구성원)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한다(요일 4:20). 

그러니까 만일 아빠가 엄마를 미워하고 자녀 앞에서 엄마를 비방하고 옛날 일을 용서하지 않아 쓴 뿌리를 가지고 살면서, 자녀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보이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줌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빠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자녀는 혼란스럽다. 엄마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나 성도를 대하는 모습 또한 이와 같다. 아무리 자녀를 아침에 깨워 성경을 읽게 하고 식사 전에 기도하게 하고 교회 학교에 빠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훈련해도 소용이 없다. 만일 당신이 배우자나 성도를 대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는 것은 단순히 자녀에게 교리 교육을 시키거나 성경이 요구하는 규칙을 따르도록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다. 부모의 삶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변화시키고, 부부가 (티나 주름 잡힌 부분이 많지만)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부모가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교회를,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신 것 같이 사랑하도록 도우시는 그 하나님을 계속해서 자녀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여겨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한 것처럼(고후 11:2), 부모는 자녀를 정결한 신부로 여겨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니까가 아니다. 나도 신부로서 남편인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간절히 중매하는 것이다.

보통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을 한 이들을 모태신앙 인이라 부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태 교인(회원)은 될 수 있어도, 모태 신자는 될 수 없다. 구원은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책임지고 전도해야 할 대상이 생긴 셈이다. 전도할 때마다 나는 복음이 정말 고귀하고 가치 있고 감사하다는 것에 감격하고, 그것을 내가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에 관하여 자문한다. 누군가에게(혹은 자신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래서 전심으로 복음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기도가, 성경 읽기가, 교회의 공적/사적 모임 참석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돕는 은혜의 방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자녀가 사랑하도록 길러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