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목회서신 강해

불의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로 사는 법 (딛 3:1-7)

조정의 · 2026.08.15 · 디도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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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어서서 잠깐 기도하고 말씀 계속 이어갈게요.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저는 부정한 입술에 불과하고 선지자 이사야 그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원하는 일에 자신이 얼마나 부정하고 또 부족하며 나약한 죄인인지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 그 수입에 대시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로 이사야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지금이 자리에 그 이사야의 심정으로 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전달하고자 하오니 주님께서 저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이나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양들에게, 영혼들에게 또 백성들에게 전파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습니다. 아멘. 네. 오늘은 디도서 3장입니다. 디도서 3장 1절에서 7절 말씀이고요.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이 그레데섬에 남겨진 디도에게 사도 바울이이

성도들, 그레데 섬에 살고 있는이 성도들을이 불리한 세상과 다르게 살도록 권면하고 가르치도록 부탁하는 내용이이 디도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목회서신. 어렵나요? 목회 서신이라고도 불리는 왜냐하면 목회자로서 또 다른 젊은 목회자에게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권면하는 내용들이 여기 많이 담겨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디도에게 바울이 직접 개인적으로 부탁한 내용이 여기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이 3장 1절로 넘어오면서부터는이 악한 세상 특별히 그레섬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그리고 향락과 그리고 어떤 쾌락

불법이 거짓말쟁이라고 불렸던이 그레데섬 사람들이 사람들 살 사이에 살아가면서 그 속에 살면서 어떻게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인지이 적극적으로 권면할 것을이 3장 1절에서 7절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 여기 있는 청년, 형제, 자매들 중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불리하다라고 느끼시는 분. 지금 내가 살고 있는이 세상도 너무 불리한게 많아요라고 생각하시는 분.

네. 한네 분 다섯 분 정도가 있습니다. 뭐 실제로 매일매일 눈 뜨고 회사에서 혹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들만 보면 뭐 수업 듣고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보고 스파이더맨 뭐 사람 몇 살 있는 거 같던데 어쨌든 그런 것들을 하면서 뭐 별로

그렇게 불리한 거 같지 않은데 이런 생각을 가질 때도 있지만 조금씩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러분이이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면 훨씬 더 부리함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학생일 때보다는 훨씬 더이 사람들이 악하구나라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돼요. 정직하게 살면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배웠거든요. 선생님들한테 정직하게 살면 다 득이 있다. 뭐 다

좋은게 생긴다. 뭐 이렇게 배웠고 착하게 산 사람들은 다 잘된다. 뭐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막상 어른이 돼서 직장생활 해 하다 보니까 정직하게 살면 나만 손해 보는구나라는 어떤 현실에서의 어떤 교훈을 얻게 되는 거죠. 그동안 교과서처럼 배웠던 거는 이제 사실이 아닌 거야. 내가 실제 부딪쳐서 보니까 세상 사는 법은 그게 아니라. 정직하게 아니라. 약간은 부정직하게도 해야지 그래야 내가 이득을 본다. 이런 생각들을 갖게 되는 거예요. 어,이 세상 권위 뭐 직장 상사라든지 정치 지도자라든지 뭐 교회에서도 마찬가지고 어떤 권위에 내가 순복하면 이용당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잘해봤자 별로 나에게 유익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선한 일 열심히 하면 좋지만 그렇게 해봤자 나중에는 사람들한테 그냥 너를 위해서 살아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해요.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려고 어떻게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선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런 사람을 무시합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사회에서 계속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시달리게 되고 불이익을 받게 되고 상처를 받으면서 여러분은 어느덧음 불리한 세상에서는

나도 불리하게 맞서서 싸우는게 오라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예요.이 불리한 세상을 사는 법은 의롭게 사는게 아니야. 불리하게 어느 정도 살아줘야 그래야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이득을 얻고 또 세상 사람으로서도 나는 이득을 얻을 수 있어.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예요. 부리의 부리로 맞서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는 거죠. 그런데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겁니다. 여러분 디도서를 피고 계시다면 2장 11절과 12절을 한번 보세요. 2장 11절과 12절 찾으셨으면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이 세상 정욕을 다아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이 세상에 살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을 때 우리를 양육하셔서 어디로 이끈다는 거예요?이 이 세상 사는 법을 바꿔 주신다는 겁니다. 정력대로 살지 않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경건함, 신중함, 의로움 이런 것들대로 살도록

무엇이 우리를 양육한다고 하고 있어요? 지금 은혜가 그렇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이렇게 돌보고 이끌고 가르치고 그리고 훈계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양육한다라고 말을 해요. 은혜는 여러분이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이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길로 반드시 인도한다라는 거예요. 디도는 이것을 그대 섬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됐고요. 우리도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도이 법을 굳게 지켜야 됩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우리가 받은 은혜가이 어둡고 부리한 세상 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은혜로 사는 법을 살아야 된다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 결론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는 은혜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은혜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좀 살펴보고요. 두 번째로는 은혜로 사는 이유. 왜 은혜로 살아야 되는지 그 이유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과 2절을 보시면 1절에 너

너는이라고 나오죠. 너 누굽니까? 디도서 너 누굴까요? 바울이 누구한테 너라고 했을까요? 예. 디도 맞습니다. 디도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로는 누굴까요? 지금 누구를 얘기하는 걸까요? 예. 그레섬의 성도들을 가르킵니다.

그 앞서 2장에 나와 있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시면이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면서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 예 남녀 노소 가릴 거 없이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 그리스도의 제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라라고 2장에서 얘기했었잖아요. 3장에서 바로이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하라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1절과 2절에서 명령어는 딱 하난데요. 바로 기억하게 하라입니다. 기억하게 하라. 2절 끝에 나와 있죠. 기억하게 하라.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분, 이렇게 사는게 맞아라는 어떤 채득된 법들이 생겨요. 세상은 이런 식으로 사는게 적당하고 합당하지라는 어떤 법들을 여러분들이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하나님의 법이 있다는 겁니다. 은혜의 법이 있다는 거예요. 은혜로 살아가는 법이 있다는 거예요. 그 법을 여러분 기억해서 다시 그런 방식대로 살아야 되는 거지. 내가 적당히 세상에 어울려서 아이 정도로 살까 적당히 유익도 없고 괜찮은 거 같아.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라라고 하신 은혜의 법대로 살아야만 한다.

그것을 기억나게 하라라고 지금 바울이 디도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불리한 사람처럼 변하기가 너무나 쉽다는 거죠. 물 들거나 똑같이 갚아 줘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나 쉽다는 겁니다. 쉽게 민경제 오늘 운전해서 왔죠. 안 믿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차를 갑자기 끼어들고 민경제가 깜짝 놀라서이 뭐라고 하죠? 상향등을 막 킨 거예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창문을 내리고 너 내려 이러면서 막 욕을 막 해. 그럴 때 어떻게 하고 싶어요? 민경제님

내리고 싶어요.

내리고 싶죠. 그리고 뒤에 있는 성경제가 어떻게 하지? 이러면서 같이 욕하고 싶죠? 예. 그 사람이 정말 모욕적인 말을 하면 나도 같이 모욕적인 말을 하고 싶고 만약에 민경제가 운전에 자신이 있다면 내가 확 앞질러서 뭔가 보복을 하고 싶기도 하고 그게 우리가 세상 사는 사는데 자연스럽게 쌓이는 어떤 삶의 방식인 거죠. 그런데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기억해야 할 은혜로 사는 법이 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1절과 2절에 두 가지로 구분해서 말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1절에 기록되어 있죠.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대상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법은 복종과 순종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 행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이 대상이 모든 사람으로 확장됐어요. 권세자들, 통치자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의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 이게 그리스도인이 은혜로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첫 번째 대상은 권세자들과 통치자들이에요. 여러분 위에 있는 국가 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부터 시작해서 여러분의 직장에 있는 상사들까지도 포함이 되고

학교에 있다면 선배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 될 수도 있지요. 집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형 누나도 포함될까요? 민경제

네

포함될까요? 형, 누나 그랬으면 좋겠죠. [웃음] 자. 그리고 교회에서는 교회 인도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이 권세자로 세우신 사람들에게 마땅히 우리가 은혜로 사는 법을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종하고 순종해야 된다라고 지금 가르 가르키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리한 지도자는 어떨까요? 정치 지도자인데 굉장히이 독재적이고 그리고 국민에게 해로운 어떤 정책들을 펼치는 아주 불리한 사람이야. 정과도 있고 범죄도 하고 막 이런 불리한 정치 지도자. 그러면 어떨까요? 그러면 복종하고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어떤 권화가 권한이 생길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이 당시 명령이 주어졌을 때 로마 시대 정치 지도자를 생각하면 우리는 사실 핑계할게 없습니다. 실제로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 보면 선한 주인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할 것을 사원들에게 명령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이 앞서 세워진 권세자가이 어떤 사회 구성 각각의 요소에서 세워진 그런 권세자들, 통치자들이 악하든 선하든 부리하든 의롭든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명령은 복종과 순종이다라는 겁니다. 이유는 첫째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 로마서 13장 1절에 기록되어 있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세우셨다는 거예요.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맨 마지막 시대, 종말 시대에이 사탄, 그러니까 적그리스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원대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우신 도구인 거예요. 말인 거예요. 그리고 그 밑에 우리들은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다라는 거예요. 두 번째 왜 우리가 순종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우셨다. 로마서 13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우셔서 선을 장려하고 악을 금지하는 역할을이 세상 가운데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악한 정부 기관도 무정부보단 낫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누군가가 여러분의 집을 침투해서 물건을 빼앗왔는데 우리 대통령이 아무리 악하고 우리의 어떤 경 우리 사회 경찰관들이 아무리 악해도 그런 것들 막잖아요. 그렇죠? 그게 아예 없는 세상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부 기관이 없고 경찰관도 없고 그거보다는 낫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세워서이 사회 질서를 지켜내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순종해야 된다라고 로마서 13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콧방귀] 물론음이 세상 정치자들이 또 우리 사회에 직장에 세워져 있는 권세자들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선에 항상 맞는 행동들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막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때로는이 그들 위에

있는 권세죠.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셨으니까. 그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하나님이 기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는 것을 막거나 이렇게 하는 것들에 우리가 대항해야 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난을 받기도 하는 거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뭐라고요? 복종. 그리고 순종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말을 조심하셔야 돼요.이 현직 대통령이나 전직 대통령들에게 뭐 누구씨 막 그리고 누구누구 막 이러면서 막 욕하는 표현들 있잖아요.이 정치 양측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사실 존중과 복종과 순종이다라는 생각을 하셔야 돼요. 왜냐?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우리가 경외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감복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생각해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혹시 그런 표현하는 사람 있으면 잘 권면해 주세요.이 지금 디도에게 그런 말 하는 거잖아요. 성도들을 그렇게 하라고. 그 여러분들도 서로서로에게 우리 그런 말 쓰지 말고 이렇게 존중하자라는 식으로 같이 잘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직장에서도 이따 적용해서 얘기하겠지만 상사 욕하고 하는 자리에 같이 껴서 저도 하나 알고 있어요. 이러면서 막 얘기하고 그러지 마시고 그런 자리를 피하시고 예 혹시이 기회가 있다면 나는 거기에서 빛으로서 은혜로서 사는 법을 보여 줘야 된다라는 겁니다. 또 한 가지이 통치자와 권세자들에게 우리가 보여야 될 행위는 은혜받은 자로서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성경은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어요. 로마서 12장 21절이고요. 또 베드로전서 3장 13절과 14절을 보시면 너희가 만일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불리한 세상에서 그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거예요. 더 큰 선으로 갚아 주라는 겁니다. 그리고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아무런이 칭찬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칭찬을 받을 거고 혹시 그 선 때문에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선 그게 복이다라는 이야기를 성경은 합니다.이 말씀에

초대교회가 철저하게 순종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화영을 당하고 그리고 뭐 사자밥이 되기도 하고 많은 고난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많이 받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역병이 이제 로마 사회에 돌은 거예요. 로마 지역에 쭉 돌아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라는 사람이이 자기 종교이 황제를 섬기고 로마 신을 섬기는이 사제들에게 이렇게 호통을 칩니다.이 이 불경한 그리스도인들도 자기들만 아니라. 우리도 돕는데 우리의 빈자들을

우리의 빈자들 우리의 가난한 자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수치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을 돕는다. 지금 얼마나 이게 수치스러운 일이냐라는 것을 로마 황제가 얘기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인들의 선이이

로마인들의 악을 이겼다라는 겁니다. 너무나 큰 선으로이 악을 이겨 버렸다라는 거예요. 아무리 큰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선행으로 칭찬을 받고 또 악을 이겼습니다. 불리한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갖기가 쉬워요. 나한테 잘해 주는 사람 나도 잘해 줘야지. 나한테 못 되게 우는 사람 나도 못 되게 굴 거야. 그런 생각들을 갖기가 쉽습니다. 계산적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거는이

세상에 불리한 사람들이 사는 법이에요. 은혜받은 자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자의 은혜 받은 사람의 삶은 이렇게 달라져야 된다는 거예요. 선으로 악을이기는 것.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것. 우리의 주님께서 은혜로운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3절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그까 우리는이 세상 사람들 특별히 권세자들, 통치자들을 포함해서 그러한 나에게 악을 베푸는 사람들도 나는 선으로 갚아 주겠다라는 다짐을 해야 됩니다. 그게 은혜로 사는 법이에요.

자, 두 번째 대상은 모든 대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사람들 2절에 보시면 아무도라고 시작을 하죠. 은혜받은 사람들은 최대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비방과 다툼을 그쳐야 되고요. 관용과

온유를 나타내야 돼요. 여러분, 사회생활 하시다 보면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얘기 하는 거 많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이 같이 친구들과 모여서 있다 보면은 자리를 피하기가 쉽지 않죠. 왜냐면 누구 하나 자리를 뜨면 사람들이 막 그 사람 얘기하고 있고 그 사람 욕하고 있고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될 거예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남 얘기를 너무너무 쉽게 합니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 혹은 건설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전달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요.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을 통해서 분명히이 대상에게 해가 되는데도 사람들은 그냥 그것을 실세없이 퍼트려요. 결국에는 이것이 안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 냅니다. 다툼을 만들어 낸다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요. 안 좋은 관계는 안 좋은 관계로 그냥 유지하면서 살고 자기는 그냥 좋은 관계랑 어울리면서 살면 된다. 적대적 관계가 생기는 것을 별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은혜받은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 로마서 14장 10절에 보시면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니까 그 은혜로운 하나님께 용서받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제가 정말 은혜받은 자답게 살았습니다. 당신의 용서를 받은 형제 자매를 똑같이 그렇게 사랑하면서 되습니다라고 우리가 고백하려면 당연히

비방과 다툼을 멈춰야 된다라는 거고요. 또 하나 우리는 관용과 온유를 베풀어야 됩니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셨잖아요.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명령하셨어요. 로마, 로마서 12장 18절을 보시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원치 않고 그 사람이 계속 나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화목을 화목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친절과 겸손을 보여 줘야 한다라는 겁니다.

사실이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화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모든 사람과 편하게 지내고 이렇게 평안을 누리면서 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이것을 더 쉽게 할 수 있어요. 왜냐? 야고보서에 보시면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서 관용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관용. 친절이란 뜻이거든요. 우리는 위로부터 하나님께 친절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에요. 매일매일 하나님의 그 친절하심을 우리는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리학에 대한 사람에게 우리는 친절의 손을 내밀 수가 있어요. 내가 충분한 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나에게 겸손과 온유를 배우라고 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 예수님을 우리가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겸손과 온유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목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은혜로 사는 법이에요.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통치자와 권세자들에게는 순종과 복종을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행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거고요.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영과 그리고 친절을 그리고 비방과 다툼은 멈추는 것으로서 은혜받은 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느냐? 그 이유를 좀 3절에서 7절까지 좀 살펴볼게요.

불리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삶은 분명히 이런 삶이 아닌데 그 엄청난 대세를 거슬러 가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은혜로운 삶, 은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느냐? 이유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넘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은혜가 우리를 그 방향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혜 받기 전에 우리는 그들과 같았다라는 얘기로 시작을 해요. 3절에 보시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의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는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이렇게 얘기를 해요. 믿기 전에 우리도 이랬다는 거죠. 믿기 전에 우리도 불리한 사람과 같았다. 죄인이었다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어리석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거고 그리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죄인이다라는 것을 의미해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겠죠.이 이 죄인의 지성은 죄악으로 물들고 거짓에 속고요. 그리고 그들의 삶은이 행락과

그리고 정욕에 메이게 됩니다. 앞서서 은혜받은 삶이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이 죄인의 삶은 악독과 투기가 가득한 삶. 악독은 불리한 것을 말해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말하고 투기는 싸움을 말합니다. 이러한 죄인이었다라고 얘기하고요. 그리고 가증스러운 그다음에 미워하는 삶을 우리도 은혜 받기 전에는 살았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믿기 전에 이렇게 살았죠? 예, 다 그럴 겁니다. 물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구원받았거든요. 그래서 5학년 때까지 내가 그렇게 살았나? 나 착하게 사는 거 같은데 뭐 이런 생각도 있지만 오히려 구원받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돌아보면 그러한 연약한 면들이 지금도 발견되잖아요. 그러면 이게 죄성이지. 맞아. 나도 이런게 분명히 있지라는 것을 갈수록 더 많이 깨닫게

돼요. 우리가 그랬다는 거죠. 우리 안에 그런게 있습니다. 그런 흔적도 남아 있고 너무 그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어서 때로는 거기에 따라서 살아갈 때도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달라졌냐는 거죠. 왜 우리가 은혜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냐라는 겁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4절에 보시면 우리 구주 하나님이 자비와 사랑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음 나타날 때에라고 하니까 나중에 나타날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동사의 원형은 부정 과거형으로서 나타났을 때에로 번역하는게 더 맞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이루어진 사실을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구주 하나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베풀었을 때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자기 백성인 우리들을 사랑하셨던 때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언제예요? 우리가 주일마다 지금 듣고 있는 말씀이죠. 어디에서 이루어진 거예요? 십자가에서 확증된 겁니다. 십자가에서 확증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그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요.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좀 넓게 표현하면이 창세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요.

더 길게 우리가 뒤로 쭉 넘어가 보면 영원까지 계속 흐르는 사랑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눈에 보이도록 우리에게 나타나고 확증된 사건은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5절에 보시면 그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전에는 우리가 불의한 세상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를 5절 끝에 보시면 새롭게 하셨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새롭게 하셨다. 그 앞서 보시면 중생의 씻음이라는 표현도 있죠. 중생은 무슨 뜻일까요? 거듭 중 날생. 그러면 중생 풀면 민서 볼까요? 거듭 중 날생. 거듭 남았어요.

그렇게 대답 안 했지만 예, 맞았어요. [웃음] 거듭남이죠. 다시 태어났다는 걸 말해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을 때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됐다는 겁니다. 불리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은혜 받는 삶을 살게 되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것이 오직 은혜로 되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된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태어나서 교회를 떠난 적도 없고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했고 주일학교 때부터 학생부

청년부까지 진짜 열심히 다 했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를 지금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여기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넘치는 은혜를 말하죠. 긍휼이라는 것은 그것을 의미합니다. 넘치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렇게 새롭게 됨을 얻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새 언약의 약속이 여기에 지금 녹아 있어요. 중생의 씻음. 성령께서 새롭게 하심. 여러분 새 언약 아시죠? 너의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내 영을 너희 안에 넣어서 내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내가 삼아 주겠다라는 그 새 언약의 약속이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이 되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진짜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6, 7절에 보시면 그래서 우리가 새 삶을 살 수 있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해요. 우리 그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6, 7절에서 두 개의 부정 과거 수동태가 사용되었습니다. 자꾸 문법 얘기해서 죄송한데 부정 과거라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요. 수홍태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했다는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뭐냐면 얻다와 되다요. 얻다 되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거죠. 그리고 단번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상속자가 우리는 됐어요. 단번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어떻게요? 그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노력과 순종과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서 된 것이 아니라.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얻었고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이 불타워버릴 세상에서 우리는 영적인 소망을 가진 하나님 나라 상속자로서 은혜받은 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이 불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게 아니에요.이 이 말씀에 보시면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어 주신 그 풍성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겁니다. 성령님은 우리랑 매일매일 동행하시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요. 또 보게 하시고 담게 하십니다.이 세상에서 우리가 막 나가서 불의한 사람처럼 살아가더라도 정말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성령이 근심하시니까 내 안에서 성령님이 근심하시면서 너 정말 계속 이렇게 살 거야.라고 물어보시는 거죠. 그러니까이 은혜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계속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지. 예수님이 이런 사랑을 나에게 베풀어 주셨지.

오직 은혜로 나에게 이러한 소망이 약속되었지. 그럼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이 이 말씀을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라는 거예요.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라고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가 살아가데 있어서 능력을 제공하세요. 근심하실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새롭게 된 정체성으로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동력을 제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 보면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죽은 자로서 성령으로 인해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나게 됐거든요. 그랬다면 이제 매일매일 행하는 것도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홀로 어떻게든 믿는 자로서 은혜 받았으니까 그 은혜를 갚아 보려고 어떻게든 살아가는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우리를 새로운 정제성에 맞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결론적으로 세상 사람과 우리와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다면 전혀 차이가 없다면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갑어치 없게이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불의를 대하는 태도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이 영생을 상속받은 상속자다라는 것을 사실은이 세상 가운데 전혀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 엄청난 은혜를 받아놓고서도 하나님 앞에서 배응망덕하게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삶은 분명히 달라야 됩니다. 자, 세 가지 적용만 말씀드리고 마칠게요. 첫 번째 하나님이 여러분 위에 세우신 권세 권세에 여러분이 어떻게 순종하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이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직장의 상사들 그리고

교회의 인도자들 그리고 가정의 부모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좀 생각해 보세요. 건설적인 비판은 필요합니다. 건설적인 비판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 듣는 얘기도 덕이 되는 것을 말하거든요. 그렇게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존중의 태도를 내가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내가 비방과 모함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3장 7절에 보시면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라고 성 하나님께서 분명히 명령하셨어요. 또 하나 여러분의 위에 세워진 사람들을 위해서 얼만큼 기도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3절을 보시면 이런 명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 바로 여러분이이 위에 세워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감사하는 거, 도고하는 거, 간구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은혜로 사는 법이에요. 여러분 꼭이 위에 세워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거 쉽잖아요. 뭐 재난지 연금 준대 안 준대 뭐 기초 연금은 이만큼이래 아니래 뭐 이런 걸로 서로 막 잘했느니 못했느니 이런 말들 막 하는 건 너무 쉬운데 정말 손 모아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선한 정치를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꼭 은혜받은 자답게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에 여러분 위에 세워진 사람들이 잘못하는 거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에게 책임실 거거든요. 그러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책임을 물으실게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은혜받은 자의

삶처럼 살았는지는 우리에게는 물으실 거라는 거죠. 그니까 우리가 할 말을 다 하자라는 거예요. 두 번째 모든 사람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라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아마 모든 사람과 적절하게 화목을 잘 이루면서 살아가실 텐데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두 명 있을 수 있어요. 그 사람하고 내가 좀 거리를 두고 있지. 그 사람이 전화오면 살짝 안 받고 있지. 뭐 이런 사람들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런 사람들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할까를 좀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내가 비방을 멈출 수 있을까? 다툼을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생각만 해도 막 싫은 사람 얼굴에 얼 머릿속에 얼굴이 떠오르기만 해도 막 이렇게 하고 꿈에 나오면은 막 어떻게 해야 되지? 막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가 관용을 베풀고 온유로 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원수에게 오히려 친절을 베풀고 여러분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안 갚품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동원해서 온유함으로 갚아 주려고 하는 마음, 오히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선으로 갚아 주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과 18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너무너무 단순해요. 여러분이 선을 베푸는 겁니다. 여러분이 악을 악으로 갚아 주지 않는 겁니다. 부리가 있더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하나님 제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이렇게 했다라는 말을 제가 들었어요. 너무나 억울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알아 주세요. 저는 그 사람에게는 선으로 갚아질 수 있게 주세요. 여러분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이 반드시 드러나게 하실 거고

갚아 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선을 행하는 자로 살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아까 마지막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불리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성령의 힘이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성령의 능력. 그러니까 그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셔야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면 저는 여러분에게 좀 하루 일괄를 알려 드리면 냉피로 시작을 합니다. 냉커피 좀 그런가? 아이스 커피 예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젊고 싶어요. 예. 아로 시작을 하는데 그거를 마시고 시작하는

것과 마시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너무 달라요. 예. 아아를 딱 마시는 순간이 피가 돌고 이제 뭔가 체력이 막 올라오면서 그래 뭔가 산뜻하다. 이제 뭐 하루를 힘 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안 먹고 시작하면은 왜 이렇게 처지? 왜 이렇게 지치지?이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근데 아는 그냥

어떻게 보죠? 각성제잖아요. 그렇죠? 어떤 면에서 각성시키고 실제로 내 체력이 그만큼 없는데 있는 것처럼 믿게 하는 효과로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우리에게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없는데 있는 것처럼 속이는 말고 진짜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이라고 바울이 말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엄청난 능력이잖아요. 그 능력이 여러분에게 각각 주어졌다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근데 그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다.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렇죠? 내가이 불리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고서 명령하신 거예요. 우리가 할 수도 없는 명령을 주고서 그냥 해 봐. 그냥 해 봐. 이렇게 하시는게 아니라고요. 성령이라는 엄청난 능력, 그렇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다

주시고 그 성령을이 힘입어서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을 하신 겁니다. 에베소서. 3장 14절과 16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여러분 아침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또 옆에 있는 청년들을 위해서 또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세요. 그 사람들의 속사람이 정말로 강건하게 하셔서이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아갈 때에 그 강건함을 나타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의 유일한 차이는 속사람이에요. 겉사람은 다 똑같이

낡아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사람은 고린도서 4장 16절에 있는 것처럼 날로 새로워집니다. 어떻게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비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거든요. 마치이

태양과 달에게 빌면서 성령님 성령님처럼 나를 충만하게 해 주세요라고 성령님께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그냥 충만하게 된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성령께 구하면서 동시에 그 말씀하시는 성령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그 성령 하나님이 말씀을 기록하시고 또 조명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잖아요. 그렇게 성령으로 여러분 충만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이

이 불리한 세상에 온갖 떠는 거짓이 여러분 삶을 빚게 내버려 두지 마시고 오직 성령의 말씀, 성령의 거인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빚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이 불리한 세상에서 여러분 예수님처럼 의롭게 살려고 한다면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거칠고

힘들고 그리고 이용당하고 그리고 손가락질 당하고 무시 당하고 그리고 불이익을 당하고 이런 것들은 여러분 각오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이미 말씀하셨어요.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워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삶이에요. 결국에는 그런 삶이 웃는 삶입니다. 그런 삶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상받는 삶인 겁니다. 그런 삶이 바로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여러분 다른 사람들 앞에서이 불리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유익을 얻는 삶, 조금이라도 인정받는 삶을 추구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종국에는 그게 최종 결과물이잖아요. 그게 영원한 평가잖아요. 하나님이 너의 삶 참 아름다웠다라고 말씀하시면 끝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위해서이 세상을 은혜로 사는 법에 따라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어진이 말씀을 통해서이 불리한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격려해 주시고 또 권면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참 어둡고 거짓이 가득하며 그리고 불리에 따라서 살아갈 때 뭔가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을 모른 채 살아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거짓을 속삭이지만 하나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을 담게 하여 주시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 안에서 간구하고 또 근심하시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 여기에 있는 모든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이 속한 학교에서 또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정말로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또 하나님의이 풍성한 긍휼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 강건해지는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가지고 세상과 맞서 싸우고 주말에는 이렇게 함께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우리를 이렇게 힘 있게 하나님 자녀답게 살게 하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서 찬양하고 높여 드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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