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목회서신 강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딛 2:11-15)

조정의 · 2026.07.18 · 디도서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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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1절에서 15절까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해요. 음. 제가 목회 서신을 고른 이유 중에 하나는 이제 바울이 자기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세대이 형제에게 일꾼들에게 어 어떻게 앞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갈 것인지를 부탁한 내용이라서 청년들에게 잘 맞겠다라는 생각으로 어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음 오늘은이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이 말씀이 시작하는데 은혜가 주어예요. 결국

은혜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다루고 있습니다. 어 여러분 은혜와 진리가 각각 무엇을 한다라고 우리가 정의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은혜는 무엇을 한다? 진리는 무엇을 한다라고 우리가 말할 때음 먼저 진리는 우리를 가르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올바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어 길의 방향을 알려 주는 거라면 진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은혜 혹은 사랑은 무슨 일을 하느냐? 그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어, 방향을 가르키는 것이 진리라면 은혜는 사실 그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이끄는 역할을 한다라는 거예요. 음. 바울이

디도서 2장에서 디도에게 명령한 것은 진리를 가르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라. 남녀 노소.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 가릴 것 없이이 진리로 반드시 가르쳐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2장을 보시면 1절과 끝절을 한번 보세요. 15절이 끝절인데 1절은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

아 아니죠. 1절은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말하라. 명령합니다. 말하라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바른 교훈 곧 진리를 가르치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각각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서 맞게 이렇게 가르쳐야 된다라는 것을 이야기한 거고요. 마지막 9절인 15절도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없신 여김을 받지 말라. 마찬가지로 가르치라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2장 2장 전체 내용은 우리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요. 뭐냐면 하나님의 진리로 성도들을 가르치라. 이렇게 이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 특별히 15절이 결론 부분을 가만히 보시면 가르치다라는이 단순한 표현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말하라, 권면하라 책망하라.이 이 세 가지 현재형 명령어가 사용됐어요. 계속해서 이렇게 s라라고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말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라고이 설명을 하는 거죠. 권면하다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어떤 느낌이 들어요? 권하는 거 같죠? 예.

설득하는 거 같고 권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이 진리가 참이다라는 것을 더 설득하고 권면해서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이 권면하라이고요. 나아가서 책망하라는 건 뭐 같아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지 설명했고 이것대로 살아야 된다라고 설득도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책망해야 되는 겁니다. 꾸짖어서 돌이켜 가지고이 진리대로 살도록 만드는 것까지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이 각각의 성도의 반응에 따라서

누구도 예외 없이이 진리를 따르도록 너는 끊임없이 가르쳐야 된다라고 2장을 마무리하고 있는 거예요. 어 따라오는 2장 15절 뒷부분을 보시면 누구에게서든지 없신 여김을 받지 말라. 예. 모든 권위를 통해서 이렇게 하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설득하고 훈계하고 꾸짖어도 어떤 사람은 반항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그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때 어쩔 수 없지 뭐. 어 내가 아무리 뭐 말을 물가로 끌고 가도 안 마시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모든 권위를 사용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의 권위로 그 말씀을 전하는 건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실은 없신 여임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 30살에는 결혼해야 됩니다. 이런 조언을 한다면 안 들어도 돼요. 왜 왜죠? 성경이 안 나와 있잖아. 그렇죠? 30살에 결혼해야 된다는 말이 어디? 어, 몇 살이죠?

>> 30 >> 31. 예. 어, 제가 그 기준으로 됐다면 틀렸겠죠. 근데 어쨌든 어 제가 성경에 없는 내용을 뭔가이 목회자라는 권위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한다면 사실 그거는 제가 권위를 부릴 일도 아니고 여러분도 들어야 될 일도 아닌 거예요. 없신 여기셔도 됩니다. 그거는 뭐 무시하고 멸시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근데 어쨌든 어쨌든 그거는 사실 가볍게 온유하게 아네 잘 들을게요. 이러면서 넘어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친다면 권면한다면

꾸짖으셔서 그들 그대로 해야 된다라고 여러분에게 말한다면 반드시 들어야 된다는 거죠. 그것을 없신 여길 순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을 없신 여길 거는 여긴 여길 때는 어 어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그 말을 없신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없신 여긴 거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앞서 제가 처음에 은혜와 진리를 설명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신자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힘은 어디서 오느냐?이 이 권위 있게 가르치는 진리의 내용에서 오는게 아니라이 진리를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다는 거예요. 은혜에서 온다는 겁니다. 어,이 말을 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진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려면 진리는 반드시 선포돼야 돼요. 진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옳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는 것보다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거예요. 때로는 우리 생각과 다른 무언가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 뜻에 굴복하겠다라고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옳르니까이 단순한 그 이유가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까 거기에서 온다는 거죠.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사실 사랑과 은혜에서 온다라는 것을 오늘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음. 우리는 단순히 오라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어, 사랑.이 계명을 지키는 순종의 동기가 뭐라는 거예요? 사랑. 사랑하니까 순종하는 겁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사랑이 부족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어, 오늘이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이끄는지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지를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이 디도를 통해서 내내 진리를 가르치라라고 사도 바울이 얘기했었는데이 마지막이네 구절 11절부터 10 14절까지이 바울은 그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이끄는지 그 힘에 대해서 말을 해요. 그게 바로 은혜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본문을 제가 먼저 읽고 문장 구조를 좀 설명드린 다음에이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버리게 하고 살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지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본문을 제가 읽어 볼게요. 2장 15절에서 아, 11절에서 15절입니다. 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없신 여김을 받지

말라. 음.이 문장 구조를 좀 살펴볼게요. 어 11절에 보시면 무엇이 주어입니까? 제가 처음부터 밝혔지만 무엇이 주어예요? 은혜입니다. 은혜를 수식하는 것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은혜고 그 은혜를 또이 하나님을 수식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인데 그분의 은혜가 나타나서 무슨 일을 하시느냐? 12절을 보시면 우리를 양육하신다라고 돼 있어요. 우리를 기르신다. 우리를 훈련하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는 거예요. 길러내는 거고 훈련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 훈련느냐? 세 가지로 나와 있어요. 첫 번째로는 버리게 하신다. 두 번째로는 살게 하신다. 세 번째로는 기다리게 하신다. 음. 여기 12절을 보시면 무엇을 버리게 하신대요? 경건하지 않은 것과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하신다. 이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로는 어떻게 살게 하신대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이 세상에 살게 하신다라고 돼 있습니다. 세 번째로 무엇을 기다리게 하십니까?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으키는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세 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양육하는 건데 우리를 훈련하는 건데 하나는 버리게 하시는 것 하나는 살게 하시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기다리게 하시는 것 요것이 이제이 긴 문장의 구조예요.음 음. 그런데 여러분,이 각각의 항목 버리라, 살라 기다리라는 것은이

성경의 명령어로도 주어졌습니다. 어, 예를 들어서 버리라는 것은 데살로니가서 5장 22절에 보시면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에게 버릴 것을 명령하셨어요. 어, 그리고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 보시면이 경건함을 따르라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악한 것을 피하라는 거죠. 의와 경공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살라라고 명령이 되어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기다리라는 명령도 있습니다. 유다서 1장 21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를 기다리라라고 명령이 되어 있습니다. 어 제가 말씀드린 거자 하는 것은이 세 가지 항목 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기도 하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더 힘써서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는 측면이 아니라는 거죠.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이렇게 살게 한다라는 측면을 지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이렇게 순종해야 돼요. 악을 버려야 됩니다. 선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기다려야 돼요. 우리가 그렇게 순종해야 되는게 맞아요. 그런데 바울이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든다라는 거예요.

은혜가 우리를 그렇게 이끈다라는 것을 지금 주목하고 있는 겁니다. 먼저이 하나님의 은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라는 표현은 첫째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 일까요? 아니면 둘째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모두 여기 기록된

말씀의 은혜를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라는 말일까요? 헷갈리나요? 1번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 2번 구원받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말씀이 해당된다. 어떻게 해석하는게 맞을까요? >> 네. >> 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을 다 받지 않는다는 거 너무 알고 있거든요. 그렇죠?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라는이 말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신다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택해서 구원하시면서 오늘 기록된이 말씀의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 주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나이나 성별이나 지위나 신분이나 혈통이나 민족이나 배경이나 어떤 상황이나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어떤 특해를 주시거나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택하셨다면 그는 반드시 오늘 기록된이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풍성한이 은혜를 얻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베푸시는이 구원의 은혜가 단지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고요. 단지 내세에서는

누리겠지만 현세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그러한 구원의 은혜를 약속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시고 또 부활하고 승천하여서 우리에게이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하게 나타내 주셨는데요. 그 은혜는 우리가 입는 그 순간부터

영원토록 우리 안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진다라고 지금 분명하게 말을 합니다. 믿는 자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나눔 문제 1번에 보시면 어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1에서 100%까지 몇 % 정도 누리고 있는 거 같나요? 뭐 이런 질문이 있어요. 어 여러분이 실제로 10%를 누리든

90%를 누리고 있다고 느끼든 10%를 누리고 있다고 느끼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분이라면 하나님이 정말 10%만 주고 20%만 주고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라면 그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 은혜를 입은 그날부터 영원토록 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변함 없이 풍성하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고 계신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드릴이 버리는 것, 살게 하는 것, 기다리게 하는 것,이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 안에 풍성하게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부족함 없이 은혜를 지금 여러분에게 부어 주고 계신다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늘 본문 1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이 은혜는 우리를 날마다 양육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길러내고 있고요.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제 세 가지로 나눠서 말해 볼게요. 첫 번째로는이 은혜가 우리를 버리게 한다라는 겁니다. 버리게 한다. 뭘 버려요? 12절 말씀에 경건하지 않은 것과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게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이 경건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거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리고이 세상 정욕에 해당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미워하시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이라든지 목적을

벗어나서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은 정욕이 되고 맙니다. 어 예를 들어서 이래요. 앞에 있는 경건하지 않은 것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죄와 같습니다. 어 이것은 어떻게 포장해도 죄예요. 그렇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죄입니다. 어, 그러니까 경건하지 않은 것이고 이것을 우리는 벗어 버려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이 세상 정욕은 지금 너무 결혼하고 싶은 거죠. 어, 청년으로서 결혼하고 싶은 거 문제가 되나요, 형제? 문제가 될까요? 안 되죠.고 하니까. [웃음] 예. 죄송합니다. 새로운 사람 제가 자꾸 공격하는데. 예. 어, 그러나

아직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때란 말이죠. 그런데 내가 그것을 하나님의 시기와 방법을이 벗어나서 너 더 간절히 원하게 될 때 그것은 결국 정욕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탐욕의 대상이 되고 만다라는 거예요. 그것을 곧 정욕이라고 성경은 표현을 하는데 이렇게 두 가지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수준대로 어기

이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어 가지고 원하려고 할 때 이런 것들 이런 경력들을이 은혜라는 것이 우리 안에서 버리게 한다라고 지금 말하고 있는 거예요. 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강하게 이끌어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지금 몇 번째 예를 들는지 모르겠는데. 어, 결혼하게 될 아내가 있잖아요. 사랑합니까? 아,

네. 한 1초 있다가 대답을 하긴 했는데 [웃음] >> 좋습니다. 예. 예. 부끄러워서. 네.이 이 사람이 정말 정말 질색하는 일이 있는 거예요. 만약에 근데 그 자체로 그게 뭐 딱히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 건데 뭐 도덕적으로 화해온게 아닌데 개인의 취향과 성향상 싫어하는 거죠. 그러면 옆에서 그거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죠. 왜죠? 그 뭐 도덕적으로 잘못된게 아닌데 왜 안 하죠? >> 예. 내가 사랑한 사람이 싫어하니까.

예. 그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죠? 그니까 내가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나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 내가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것은 당연히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그러한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가 구원받는 순간에만 몸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그 역사를 이룬다라는 거예요. [콧방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무언가가 가득 찰 때 우리 입술을 통해서 또 손발을 통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행하려고 할 때 아니면 반복적으로 어떤 죄를 짓는 거죠. 그럴 때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 그리고 성령님께서 가만히 그것을 두고 보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계속 우리 안에 어려움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계속해서 마음의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서 내가 어떻게 일할 수 있지라는 그런 마음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렇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현재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나 허락하지 않으신 일 때문에 나는 너무너무 불평이 많이 나오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없고 어 그래서 정말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정말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 거죠. 그렇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이 은혜로 역사하셔서 내가 다 알지 못하고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어. 나는 하나님을 욕하지 않을 거야. 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져온다라는 겁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게 아니에요. 우리 안에 구원의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주어지는 마음들인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 보시면 사게오가 있죠. 사게오가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사게오를 딱 보시면서 뭐라고 했어요? 오늘은

내가 너희 집에 유하여야겠다. 머물러야겠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사게오는 자기 스스로도 죄인이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이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머물겠다. 나와 사김을 가지시겠다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너무너무 기뻤던 거죠. 그래서 말씀해 보시면 누가복음 19장인데이 내려와서 기뻐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초대했고 같이 식사하면서 친교의 시간을 보내다가이 기쁨을 이기지 못한 사깨오가 벌떡 일어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보시면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사계의 마음속에 왜 내가 누군가를 속여 빼앗었으면 내배로 갚겠습니다라는이 당시에 통용했던 수준의 이상이 되는 어떤 이런 일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사게우랑 얘기하면서 너 누구 물건 가져간 적 있지? 뭐 이렇게 계속 얘기하셨을까요? 아니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믿으면서이 사람 마음속에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은 내가 멀리하겠다라는 생각이든 겁니다. 이게 구원의 은혜인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다음 절에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요. 오늘 구원이이 집에 이르렀다. 사교의 마음속에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목을 가다듬음] 된 겁니다. 음.이 이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 마음속에도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욥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욥이 정말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가족도 죽고 재산도 뺏기고 건강도 잃고 그러니까 아내가 하나님 욕하고 죽어라라고 했을 때 욥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당신은 참 어리석은 여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얘기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를 합니다.

어이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 극심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자기가 우리가 느낄 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과 같은 거죠. 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막 죽고 그랬으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하신 거잖아요. 어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는 것,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그니까 구원은 우리 가운데 그러한 역사를 일으킨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만일 지금 현재 여러분이 끊어내지 못하는 무슨 죄가 있다라고 한다면 아 난 이걸 계속해서 멀리하고 싶은데 계속해서 내 삶에 붙어 있고 얽매어 있고 그래서이 불경건한 죄가 계속해서 내 삶에 가득하네라고 느껴지는게 있고 혹은

여러분 삶에 하나님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 취업 됐으면 좋겠다. 결혼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있잖아요. 어 아니면은 내 삶에서 이건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속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그래서 원망이 막 흘러나오려고 하고 있다면

그럴 때 여러분 아마 그런 느낌 가지실 거예요. 아 내가 더 순종해야 되는데 감사해야 되는데 어 내가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 되는데 내 의지가 부족하구나 내 노력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거든요.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순종과 의지의 부족이기 전에 사실은 내가 그만큼 은혜로 충만하지

않다라는 증거라는 거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만큼 지금 충만하지 않다라는 겁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만큼 충만하게 넘친다면 그 은혜가 무슨 역사를 한다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그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버리게 한다라고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버리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사실은 여러분 안에 지금 은혜가 지금 부족하다라는 것을 의미하다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할 때가 있을까요? 없죠. 그니까 하나님의 은혜 자체가 부족할 데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매일매일 찔끔찔끔 주시는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14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우리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넘치도록 풍성해요. 근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얼만큼 누리고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얼만큼 그것을 헤아리고 있느냐 알고 있느냐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그 부정한 것들, 불경 불경한 것들, 불신하는 것들, 의심하거나 염려하거나 이런 죄가 자꾸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있다면 나에게 지금 은혜가 부족하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풍성한데 내가 그 은혜를 그만큼 풍성히 누리고 있지 못하구나라고 자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은혜는 여러분 안에서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는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은혜는 우리로 살게 합니다. 12절 하반절을 보시면 어떻게 살게 한대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이 세상에 살고라고 얘기합니다. 어 여기 신중함, 의로움, 경건함을 각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가 지난번 늙은 남자, 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 할 때 여기 해당되는 모든 항목들이 다 있었어요. 그 성도들, 그러니까 구원받은 성도라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뭐 모든

사람들이 무관하게 다이 성품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뜻대로 절제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되고 의롭고 경건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살 수 있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이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라는 겁니다.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음 하나님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어, 앞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은혜받은 자는 은혜를 자기에게 베푼 사람이 미워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반대로 은혜를 베푼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듭니다. 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 누이 막 나한테 강요하지 않아도

내가 자발적으로 그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죠. 음. 그러니까 구원받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이 넘치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고요. 이것은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으키는 역사라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구원받은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역사인 겁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아버지를 담고 싶어 하는 그러한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요. 어 여기서 되게 흥미로운 표현은이 세상의 살고입니다.이 이 세상에 살고 어 왜냐하면 여기 말하고 있는이 세상이라는 것은 아이온이라는 헬라어인데요. 장소보다는 시대를 뜻해요. 장소보다 시대. 그러니까이 세상을 살고가 우리 지금 뭐 용인시 남사면 여기에서 살고 뭐 이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이 세대를 살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재림 전까지이 세대. 어이 세대는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그릴까요? 긍정적으로 그릴까요? 부정적으로 그려냅니다.이 세대는 언제나 악한 세대라고 불리고 있고요. 심판으로 끝이 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고 절대로 본받지 말라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죠. 어, 그리고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세상 풍조를 따랐다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 풍조에서 풍조가 아이온 곧 세대라는 뜻이에요.

어, 그래서 [콧방귀]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신중앙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이 표현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것은이 세상 자체는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을 역행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예.이 이 세상 풍조 혹은 물결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이 거대한 세상에이 거친 물결은 정확하게 우리

안에서 은혜가 일으키는 어떤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다.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이 구원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이 세상을 역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예요. 거슬러 오르게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쉬워요? 어려워요? 쉽다고 생각하시는 분,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 네. 쉽다고

생각하시는 분은이 세상의 풍조를이 파도타듯이 잘 타고 지금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람들은 쉽습니다. 어, 사상 사람들이 다 옳다고 말하는 대로 가고 있고 내 육신의 정력도 원하는 대로 가고 있고 어려운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죠? 근데 아, 너무 어려워. 그리스도인의 삶을 너무 고대라고 말한 사람들은이

세상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까 쉬울 수가 없는게 당연한 거죠. 그니까 당연한 겁니다. 여러분 어렵다라고 느끼는게 정말로 당연한 삶이에요. 그러니까 왜 그리스도의 삶이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고요. 오히려 어떤 질문을 하셔야 되냐면 도대체 어디서 내 안에 어디에서이 거친이 거대한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올리려고 하는이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셔야 되는데 그 힘의 출처가 오늘 볼 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바로 은혜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 내 안에 그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강력하게이 세상 풍조를 거꾸로 거슬러

오를 수 있도록 작동되고 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힘입니다.이 강력한 구원의 은혜의 능력은 우리의 정력보다 크고요. 세상의 물결보다 크고요. 또 마귀의 권세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거슬러서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음

정말로 더 그리스도인으로서 힘 있게 살고 싶다면 아 내가 조금 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어. 큐티를 빼먹지 않고 해야겠어. 뭐 말씀을 잘 귀기 기울여서 드려야겠어. 순종하면서 더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어. 다 좋은 시도인데 그전에 먼저 반드시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 내 안에 그 구원의 은혜의 능력을 알게해 주시고 또 일으켜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셔야 됩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에 보면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 내 안에 있는 정욕보다이 세상의 물결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옳다고 말하는 그런 것들보다 혹은 마귀의 유혹과 미혹보다 훨씬 더 큰

은혜의 능력을 내 안에 일으켜 주시고 그것을 내가 알게 해 주세요라고 여러분 간절히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먼저 선행돼야 될 일이다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되는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은혜가 우리로 기다리게 한다라는 겁니다. 무엇을 기다리게 하느냐? 13절 보시면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 조금 긴 문장인데요.이 문장은 굉장히 흥미롭고

또 놀라운 동격의 연속입니다. 동격이라는 것은 어, 예를 들어서 제가 조정의는 김선미의 남편이다라고 하면 똑같은 말이잖아요. 조정의와 김선미의 남편이라는 것은 동일한 대상을 가르키잖아요.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동일한 대상을 가르치는 동격이 두 번 사용됐습니다. 먼저음

복스러운 소망과라고 했을 때 소망이 있고 그 뒤에 나오는 것을 두 가지를 기다린다라고 우리가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건 동격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복스러운 소망이 곧 무엇이냐?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예.

우리에게 가장 복된 소망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시는 그것이다라고 동격이 한번 사용이 됐고요. 두 번째 정말로 아름다운 동격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라고 지금 부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어 신약 성경에서

이렇게 강력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는 본문이 드니다. 지금 여기 보시면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되어 있지 않죠. 뭐라고 돼 있습니까?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동격으로 지금 말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런데이 표현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왜 굳이 바울은이 디도를 통해서이 그레데성이 그레데섬 사람들에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곧 그리스도시다. 너희가 믿는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이토록 강조했을까라는 좀 질문이 들었어요. 어 그런데 어 굉장히 일리가 있는 어떤 상황들이 있습니다. 상황적 배경이 있습니다. 뭐냐면 그레 섬 사람들이 여러분 그 섬에 어떤 신이 탄생한 섬이라고 말씀드렸죠? 어떤 신이 죽은 곳이고 탄생한 곳이다라고 말씀드렸죠. 제우스

제우스 신. 그러니까 우상숭배가 정말로 대단했던 섬이 바로이 그레 섬이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잡다한 신들을 많이 섬기다 보니까이 삶도 정력적으로 살았다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어 그러니까이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구원 나를 구원하시고 그래서 구주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움이 안 됐을 거예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이 그레데섬 사람들이

우상을 계속해서 여러 잡신들을 계속 섬기는 것처럼 이들도 자연스럽게 다른 신들을 기웃거릴 수 있는 유혹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은 그 모든 신들이 다 갑자고 너희를 구원하셔서 너희가 매주 예배드리는 그 대상 그 예수님이 한 분이신 그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여기서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음 음. 구원받은 우리도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아요? 어. 여러분, 여러분의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고 다른 분이다라고 믿어 본 적 있습니까? 없죠. 그런데 살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간절히 원하고 마치 우상처럼 따랐던 적은 있죠.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구세주와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사이를 이렇게 연결지어서 생각하지 못할 때가 굉장히 많아요. 구원해 주신 예수님은 감사하지만 어 내가 믿고 추종하는 신은 하나님이 아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기웃거리기가 굉장히 쉽다라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어요.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오늘날 택할 신을 섬겨라. 아 택하라. 어, 나는 그리고 우리 집은 여호와만 섬길 것이다라고 했을 때 백성들도 우리도 그럴 겁니다. 막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여러 번 그렇게 물어본 다음에 마지막에 뭐라고 했냐? 그러면 너네 손에지고 있는 그 우상들을 버려라고

얘기합니다. 우상들이 있었다는 거죠. 하나님 섬기는 거 괜찮은데 우상들도 같이 섬기겠다라는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었던 거예요. 음. 우리도 그래서 그럴 수가 있다는 거죠.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거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14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일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이 사실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엄청난 값을 치르셨다는 거 압니다. 자기의 목숨값을내어 주셨으니까. 그리고 그 목적이 여기 14절에 있는 것처럼 첫째 불법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 둘째 선한 일을 열심히 하게

하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앞서서 구원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으키는 일이이 두 가지잖아요. 불법에서 우리를 멀 멀어지게 하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게 하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이 예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는 것보다는

다른 것에이 조절을 받을 때가 굉장히 많다라는 거예요. 육신과 세상과 마귀의 통치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리 삶을 조종하는 그 자리에 올려 놓려는 유혹과 날마다 실름하고 있다라는 거죠. 왜 그럴까?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좀 해 봤어요. 어, 제가 2007년에 7월의 아내와 결혼을 전제로 교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 7월 11일 날 맞을 거예요. 10일 날 교재하기 시작해서 다음 년도 2008년 7월 12일 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1년을 딱 교재를 한 거죠. 어, 처음에 교재를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합시다라고 제가 말하고 2개월 교재하다가 제가 미국에 유학을 하러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 9개월 동안 떨어져서 지냈어요. 어, 그런데 어떤 분이

저한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혹시 눈에 들어온 적이 없나요? 그 9개월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혹시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온 적이 없나요? 이렇게 이제 질문할 수 있는 거예요. 어, 한 번도 그런 질문 받아본 적이 없지만 제 아내한테도 물어본다면 모르겠어요. 한 번도 저도 안 물어봤는데 [웃음] 어쨌든 어, 그렇게 물어보면 보는 이유는 알겠죠. 왜냐면은 그렇게 9개월 동안 안 보고 떨어져 지냈는데 여러분 롱디라고 하나, 요즘? 아, 이거 요즘 얘기도 아닌데 어쨌든 긴 뭐 거리에서이 교재하다 보면 헤어지기가 쉽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어, 저희가 9개월을 떨어져 지내면서 교재할 때 만약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고 뭐 어떻게 계획하는 것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떨어져 지낸다라고 했다면 잘 이루어질 확률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죠? 예.

이게 이렇게 잘 이루어질 확률이 점점 떨어졌을 거다라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9개월 동안 저희들은 더 사랑하고 더 애뜻해하고 더 간절히 보고 싶어하고 더 서로를이 매일매일 채팅 같은 거 하면서 간절히 찾고 했다는 거죠. 왜 그랬을까요? 1번 너무 매력적이라서 1번은

예 너무 매력적이라서도 답인데 >> 진짜 답은 뭐냐면 곧 만나서 결혼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예 나는 저 사람과 언제까지 교재할지 모르겠고이 교재가 어떻게 될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그냥 한번 해 보자라고 나간게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결혼할 거고 돌아오면은 결혼해서 시작할 거다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이 다른데 근데 눈돌릴 수가 없었다는 거죠. 다른데 유혹을 받고 그러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제가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구원의 은혜가 일으키는 마지막이이 역사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만든다라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일으키는 역사가 그래요. 세상과 마귀의 미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그 보고 싶은 예수님을 기다리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이 사랑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쉽게 바꾸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 곧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것을 우리는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 마음속에이 구원의 은혜가 그 일을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지금 현재 여러분의 눈이이 땅에만 고정되어 있다면 당장 눈앞에

해야 할할 일들에만 여러분이 매어 있다면이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한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가고 있다면 보물을이 땅에 쌓아두기 바쁘고 하나님 나라와 그곳에 계신이 구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사라지고 있다라고 느낀다면 여러분에게 지금 시급한 것은 다른게 아니라요. 바로이 은혜로 다시 채워지는 겁니다.이 이 은혜의 능력이 여러분 안에서 다시 발휘되는 겁니다. 아, 내가 정신 차려야지. 예수님 기다려야지. 근데 약간 이런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보고 싶지 않은데 보고 싶어 해야지. 막 이런 거. 예수님을 기다리는게 옳은 거니까

순종해야지.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 당연히 예수님 다시 오시는 거 사모합니까? 그러면 아, 사모하는게 당연한 정답이잖아요. 아니요. 이러면은 너 그리스도인 맞아. 이럴 거 아니야. 그렇죠? 근데 보고 싶고 사랑스럽고 기다려지고 이런 거를 명령한다고 그렇게 순종이 되냐는 거죠. 이거는 우리 안에 그 은혜가 역사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라는 겁니다.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그렇게 일으키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베드로서 1장 13절은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우리말 성경은이 온전히 바랄지어다라는이 명령을 끝까지 바라보십시오로 변역을 했어요. 끝까지 바라보십시오. 어, 계속해서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계속해서 하나님의 다시 오심,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내가 바라보고 있을 거니까 그 마음을 내 안에서 불러일으켜 주세요라고 계속해서 기도하셔야 되는 겁니다. 자, 결론적으로 은혜라는 것은 세 가지 역사를 우리 안에서 일으킵니다.

버리게 하고요. 그리고 살게 하고요. 그리고 기다리게 합니다. 어,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버리게 만드는 힘. 은혜가 가져다 주고요.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이 세상을 역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힘.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힘입니다. 그리고이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게 하는 힘도 바로이 구원의 은혜가 일으키는 힘입니다.

자, 그런데이 은혜가 날마다 새롭다라고 성경은 얘기해요. 날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주어진다라고 얘기합니다. 애가 3장 22에서 23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롭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신다라는 거예요. 무한한 은혜, 무궁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겁니다. 고린도서 4장 16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날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그렇죠? 다윗과 솔로몬 때 반짝 전성기를 누렸다가 내리막기를 걷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다시 돌아와서 포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성전도 재건하고 성벽도 재건했지만 말라의 시대에는 또 영적인 암흑기로 또 빠져 들어갑니다. 어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배신하는 행위를 했었죠. 그니까 이스라엘 나라이 구약의 언약의 백성들 전체를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시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지금 은혜를 베푸시고 있는 중인가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뭐 다윗 시대, 솔로몬 시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뭔가가 주어진 거 맞아라는 겉으로 볼 땐 그 그런 모습이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천년왕국 때 놀랍게 회복될 그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요. 끝까지 풍성하게 그들에게 임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제가 다 들여다볼 순 없으니까 여러분이 지금 어떤 일을 겪고 계시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지 제가 다 알지는 못해요.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구비구비마다 어려움마다

굴곡마다 그런 데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겁니다.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했다면 그 은혜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을 이끌 거예요. 그 은혜가 여러분을 훈련시키고 양육시킬 겁니다. 그래서 모든 더러움을 버리게

만드실 거고요. 하나님 앞에서 흠없고 정결하게 깨끗한 신부로 세우심을 입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간절히 그 신랑이신 예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사모하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 더 순종해야 되는데 내가 노력이 안 돼 가지고 이런 부분을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은혜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 저 옆에 성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그렇게 여러분 날마다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약속하셨기 때문에이 은혜 주시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하실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신약 성경의 인산말에는 항상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인사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오거든요. 여러분 서로 우리 서로 인사할 때 그렇게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한번 인사해 볼까요?

>> 예. 너 너는 은혜가 좀 필요하겠다. 약간 >> 어 특별히 교회에서 자한 여러분들 중에서는이 율법주의에 빠지기가 굉장히 쉽거든요. 뭔가 순종이 잘 안 될 때 죄에 자꾸 빠질 때 내 의지 박약이야. 나는 순종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어쩜 나는 구원받지 않았을 수도 있어. 이런 쪽으로 가기가 굉장히 쉬운데 순종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순종을 일으키는 힘인 은혜가 더 중요합니다.

은혜 여러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절히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진리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들인지 깨닫게 해 주셨을뿐만 아니라 어 우리를이 진리대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또 새로우며 또 영원한지를 보게

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마녀보다 크신 그 손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시고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까지 그것을 온전히 이루실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매일 필요한 은혜를 하나님 새롭게 부어 주시고 여기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 그 은혜를 아낌없이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 풍성한 은혜를 우리가 충분히 누리고 충분히 알고 감격하면서 그 은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더러움을 버리게 하여 주시고 또 하나님 닮은 거룩함을 입게 하여 주시고 또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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