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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디도서 2장 6절에서 10절 말씀이고요. 지난주 어 지난번 디도서 말씀에이어서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말하라 두 번째 시간입니다. 어 오늘로서 이제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말하라가 맞춰지게 되는데 어 여러분 지금 디도서를 피고 계시다면 2장 1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을 이렇게 간략하게 붙어 보셔도 어 벌써 이제 첫 번째부터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2절부터 5절까지는 이제 늙은 남자,
늙은 여자 그리고 늙은 여자를 통하여 젊은 여자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을 이미 어 다루었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음 음 하나님께서이 사도 바울을 감동시키셔서 디도를이 글레대서섬에 남기셨고 또 디도에게이 편지를 쓰게 하셔서음 디도가 있는
그레데섬에 있는 성도들이 온갖 거짓에 이제 미혹되고 있었을 때에 바른 교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이 성도들을 지켜내라라고 하면서 이렇게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 가만히 보시면 어떻게 바른 교훈을 말하라는 방식에 대해서 말하는게 아니라 바른 교훈을 성실하게 계속해서
선포하면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전하라라고 그 방 방법이 아니라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 그래서이어서 오늘은 6절에서 8절까지 젊은 남자 그리고 9절에서 10절까지는 종들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해요. 6절 시작을 보시면 너는 뭐라고 돼 있죠? 이와 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어, 조금 더 강조된 부분은 있습니다. 1절에서는 말하라는 좀 일반적인 표현이 쓰였다면 6절에서는 권면하라라는 조금 더 강력한이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마도 어 예측해 보자면 젊은 사람들이 말을 더 잘 안 듣잖아요. 그죠? 고집이 있습니다. 물론 늙은 남자도 고집이 있지만 어 젊은 혈기가 있고 자기 생각이 강하고 어 주관도 뚜렷하기 때문에 어 그래서 더 강력한 표현을 쓰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바울은이어서 똑같은
권면을 하고 있고요. 이제는이 대상을 바꿔서 젊은 남자로 옮겨갔습니다. 어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 두 가지를 좀 깨달았으면 좋겠는데 첫 번째 여러분도 젊은 남자에 해당이 됩니다. 어 성인부터 40세 이전까지 45세 이전까지가 해당이 되기 때문에 저도 잘하면 억지로 끼어마치면 젊은 남자에 해당이 돼요. 그래서 >> 우 >> 우라고 지금 하셨는데 곧 젊은 남자를 벗어나실뿐 우라고 자
어 젊은 남자가 어떻게 되기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되기를 성령님께서 지금 밝히 말씀해 주신 겁니다. 그니까 여러분들이 이것을 나에게 적용해야겠다라는 그러한 마음으로이 말씀을 접하시면 좋겠고요. 두 번째로는 종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특별히 직장 생활하고 있는 청년들 뭐 직장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늘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여러분 삶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 본문을 찾으셨으면 먼저 읽어 볼까요? 6절에서 10절까지인데 찾으셨으면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내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네. 감사합니다. 어, 먼저 보시면 이제 젊은 남자를 보시면 여기 신중하게 하라라고 말을 합니다.이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신중한 사람이 되게 만들라라고 지금 명령을 한 거예요. 어, 여기 신중이라는이 단어가 모든 연령층, 모든 성별에게 쓰였다는 것을 우리가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거듭난 성도라면이 신중함은 당연히 가져야 할
일반적인 특징이다. 가장 뚜렷한 주요한 특징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어 신중함은 2절에 보시면이 늙은 남자에게서도 발견이 돼요. 늙은 남자로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라고 돼 있죠. 그리고 4절에는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헬라어로 똑같은 말이 교훈하되라는 말이 사실은 신중하다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5절도 보시면이 젊은 여성에 대해서 뭐라고 돼 있죠? 신중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중하게 여성들을 가르쳐라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모든 연령, 모든 성별에게이 신중함이 요구됐다라는 겁니다.이 신중함이라는 단어의 뜻은 절제라고도 말할 수 있고요. 셀프 컨트롤 혹은 분별력
있는 우리의말 성경이라는 성경 번역본을 보시면 분별력 있는 자가 되게 하라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분별력 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어, 그냥 신중하다라고 하면 여러분 뭔가를 결정할 때 굉장히 심사 숙고하고 또 많이 생각해 본 다음에 진지하게 결정하고 뭐 이런 걸 생각하게 되는데 분별력 있다는 것과도 어느 정도 연관은 있어요. 그렇죠? 무언가를 잘 결정해서 어,
선택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이 특징에 대해서 7절에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범사에. 어, 성경학자들은이 범사회가 위에 붙어야 되냐 아니면 밑에 붙어야 되냐로 많이 논쟁을 합니다. 밑에 붙는다면 디도에게 한 명령이에요. 너는 범사에 본을 보여라라는 명령이고요. 위에 붙는다면 젊은 남자가 분별력 있게 하는데 모든 일에
있어서 분별력 있게 가르쳐라라는 말이 됩니다. 어, 문법적으로는 위에 붙는게 맞아요. 그래서 젊은 남자들은 어떤 삶의 한 영역에서만 신중할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이 신신중한 특징을 나타내야 된다. 그렇게 가르쳐야 된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어 찰스 수인돌이란 목사님은 젊은 세대의 특징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어요. 어 발끈하지 마시고 잘 들어 보세요. >> 성급하고 경솔하며 행시를 상가지 않고
충동적이며 쉽게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어떠세요? 아멘. >> 아멘. 아멘. 어. 어. 나는 정말 신중한다는 아주 차분한데라고 하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어요. 일반적으로는 내 성격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어떤 특정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라는게 있을 겁니다. 뭐 먹는게 될 수도 있고 자는게 될 수도 있고 시간 관리가 될 수도 있고 뭘 볼 때 절제에서 딱 보는게 아니라 그냥 계속 앉아서 보게 된다든지 뭐 여러 가지 영역에서이 젊은 세대가 어 지금 묘사했던 이런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그래서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런음 충동적인 것들 어 규모 없이
우리가 막 하게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규모 있게 분별력 있게 잡아간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숙한다는 건 그런 거죠. 그니까 지금 여러분 나이에 여기 규빈이지만 맨날 새벽 3시자. 어, 지금 그럴 수 있어요. 지금 나이에 그래도 된다는게 아니라 지금 나이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45살 막 이렇게 됐는데 3시에
계속자 이럴 수 있냐는 거죠. 안 된다는 겁니다. 뭐 체력적으로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충동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니까 자기를 더 절제하고 분별력 있게 점점 더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어 그래서 지금이
젊은 세대에 대해서 신중하게 가르쳐라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다라고 수인들 목사님이 풀어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생생하게 묘사했는데 잘 들어 보세요. 디도야 젊은 남자들에게 삶의 브레이크 밟는 법을 가르쳐 주라. 혀의 재가를 물리고 성질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쳐 주라. 야망을 억제하고 탐욕을 버리는 법을 알려주라. 성적인 욕구와 충동을
제어하는 법, 호르몬이 아니라 바른 사고를 따르는 법을 알려주라. 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청지기가 되는 법을 가르치라. 그들에게 이타적인 리더십에 따르는 보상과 자기 중심적으로 추구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라. 요렇게 이야기한
셈이다라고 묘사를 한 거예요. 어,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를 했죠. 한마디로 이렇다는 겁니다. 분별력 있게 신중하게 만들어라. 바른 교훈으로 그렇게 훈련시켜라는 의미가 이렇게 삶의 곳곳에 반영돼야 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잘 절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분별력 없게 그냥 흐트어 놓고 살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여러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 하나님 말씀으로 절제돼야 되고 신중해져야 되는 부분이다라는 거예요. 디도가 젊은 남자를 그렇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젊은 남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올바른 것을 분별하여서 자기를 절제하는데 조금씩 더 능숙해져야 했다라는 겁니다.
어 그런데 어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도 젊은 남자에 포함이 된다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우라고 했지만 어쨌든이 저 같은 남자 뭐 나이든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성도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있는 여성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성도가 신중해지고 절제하고 분별히 되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내
주변에 이렇게 절제하고 그리고 신중한 사람만 다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이 세상을 둘러보면 그냥 자기가 쾌락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충동적으로 살고 이런 친구들이 너무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TV를 틀면 그렇게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또 잘 먹고 잘 사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까 왜 굳이 나만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이런 삶을 살아야 되느냐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 그러니까이 세대를 보면이 세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고 내 안을 들여다봐도 나도 사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옛사람이 살아 있다는 거죠. 어 그래서 사실은이 디모데 디도가 말하는 디도가 가르쳐야 됐던 이런 신중한 삶이 어렵다라고 우리가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 바울은 어떻게 생각했냐면 디도가 단지 이것을 가르치는 것는 부족하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디도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잘못된 본이 있는 것처럼 올바른 본을 그들 가운데서 분명하게 보여 줘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로마서 12장 2절에 보시면 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요. 바울이 너희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에 대한 이야기예요. 신중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먼저 전제가 되죠?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 옆에 주의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 뿐인데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데 어떻게 본받지 않을 수 있느냐? 내 앞에 확실한 본을 세우면 되는 거예요. 내 앞에 그렇게 살아가는 확실한 본이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 본이 되라라고 지금 디도에게 말을 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시면 6절은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라라는 그 명령 하나만 나와 있는데 7절에 나와 있는 것 그리고 8절까지 이어지는이 명령은 다 디도에 대한 명령입니다. 7절도 보시면 너 자신이 누구예요?
>> 디도죠. 선한 일에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이 하게 하라라는 표현 때문에 마치 젊은 남자들이 바른 말을 하도록 네가 애써라라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이 바른 말을 하라예요. 하게 하라가 아니라 하라입니다. 그러니까 7절과 8절에 있는 모든 명령이 사실은 디도에게 주어진 명령이고이 왜 이렇게 많은 명령이 디도에게 전해졌느냐? 디도가 뭘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 예, 본을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말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실은 저를 좀 돌아보게 됐어요.
왜냐면이 자리에서 많은 말씀들을 전하지만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만 과연 내가 본을 보이고 있는가? 삶으로 본을 보여서 내가 말로 설명하는 거 이것대로 여러분 살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 저렇게 살려고 하는 거구나. 저런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거구나라고 보여 주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어요. 어 그래서 물어보진 않겠습니다. 너무 부끄러울까 봐 물어보진 않겠지만 어쨌든 디도에게는 그런 본을 보이라고 분명하게 사도 바울이 명령을 했다는 거예요. 어 가만히이 명령들을 분석해서 보시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바른 가르침을 보여야 된다라고 했고요. 두 번째로는 바른 삶을 보여야 된다라고 했고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바른 동기를 보여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바른 가르침에 대한 명령은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라는이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어 그리고 바른 삶은 선한 일을 보여라라고 하는 그 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바른 동기는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을 요구한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 지금 디도와 반대
측면에서 있는 사람이요.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무슨 동기로 가르쳤느냐? 어떻게든이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이라도 해서이 사람들을 어 이용하려고 그래서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는 그 동기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이 내가 전하는 가르침으로이 사람들이 잘되느냐 아무 관심이 없어요. 이걸 통해서 내가 이들을 통해 이들에게 얼마를 얻어낼 수 있느냐 거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디도는 그런 불순한 동기를 가지면 안 됐다는 거예요. 여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라고 하는이 표현이이 말씀을 전하는 교훈하는 그 동기에 부패함이
조금도 없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불순한 동기가 조금도 섞이지 않아야 된다라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디도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만 가르치는 일에 헌신해야 됐다라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이 가르칠 때 항상 단정해야 됐다라는 거예요. 단정해야 됐다. 어. 올바른이 단정한 옷을 입어야 됐다라는 말은 아니고요.이 단정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진지함입니다. 어 물론 말씀을 전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굉장히 진지하게 전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유쾌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어 전하는 어떤 사람의 특징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이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정말로 살고
죽는 모든 것이 걸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냐? 어,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만큼 중대하고 이것이 정말로 하나도 오류가 없고 권위가 있는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느냐. 그 말씀에 대한 자세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이 단정함입니다. 어, 제가 마스터스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이 지하실에 이제 도서관이 있었는데 도서관 계단을 내려갈 때 항상이 눈앞에 큰 간판이
하나 있었어. 그 액자가 하나 있었어요. 어, 별거 써 있는게 없었고 딱 이도서 말씀이 있었는데 거기에 인테그리티라는 단어가 하나 딱 써 있었습니다. 그 인테그리티가 바로 여기 진정함, 단정함이거든요. 뭐냐면 무결함이라는 뜻이 가지고 있습니다. 무결함.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 단어 사전만 보고서 아,이 학생들이 무결하라는 건가? 무결할 수가 있나 막 이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결함이 없다는 것을 내가 신뢰하는 거예요. 그 말은 단순히 하나님 말씀엔 오류가 없어. 나 그거 믿어의 수준이 아닌 거예요. 말씀에 무엇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겁니다. 말씀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고 결점이 없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담겨 있는 정말 말씀이잖아요. 그러니까 인테그리티라는 그 진정성이 담겨 있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설교에 대해서 공부할 때도 어 저는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막 웅병가가 아니잖아요, 여러분. 막 감정적으로 호소해서 여러분한테 막 여러분 제발 이걸 지켜 주세요. 막 이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근데 이제 보통은 그렇게 하는 설교자가 되게 감동을 많이 줘요. 그래서
저한테 개인적으로도 많이 고민이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마음을 어떤 울릴 수 있는 그런 호서력 있는 어떤 말씀 목소리나 어떤어 어떻게 아니면은 어떤 뭐라 그죠? 스피치 방식 그런 걸 배울 수 있을까? 연습할 수 있을까? 막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설교학 교수님 중에 한 분이 저한테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 타고 나는 거다.
그래서 아 그럼 안 되겠네요. 그랬더니 그러나 그 타고난 것은 있지만 정말로 성도들에게 그 말씀의 의미가 잘 전달되게 하고 싶다면 네가 진짜 그 말씀을 진지하게 믿으면 된다라고 얘기하셨어. 그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네가 진짜로 인정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느껴진다면
아무리 소리를 크게 지르고 막 감정적으로 막 큰느끼고 이런게 아니더라도 내가 진짜이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라는 것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충분히 그것이 전달이 된다는 거예요. 어 그래서 에드워드라는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은이 설교문을 손으로 이렇게 읽어
가면서 설교를 했는데 성도들이 지옥에 대한 설교를 하면이 땅이 무너져서 지옥에 들어갈까 봐 옆에 있는 난간을 막 붙잡고 있었대요. 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여러분 여러분은 지옥에 갈 수 있 이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만큼이 사람이 말씀에 진지했다는 거죠.이 이 말씀에 정말로 진지하게 빠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디도에게 가져야 됐던 동기가 이거였어요. 바른 동기가이
바른 교훈을 전하는데 순수한 동기를 가졌어야 됐고 하나님의 영광과이 성도들을 위한 유익 그리고이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는 있어서 정말로 진지한 마음이 있어야 됐다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이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갖추고 나서 이제 가르침 그리고 삶으로 본을 보여야 됐었는데 먼저이 가르침에 있어서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됐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어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됐다라는 것은 가르치는 기술과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요.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얘기예요. 디도가 전하는이 말씀의 내용에 아무런 오류가 없고 건전해야 된다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말씀드릴 때에이 건강하다라는 표현과 같다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건전하다는 게. 그러니까 음식물에 아무런 해가 되는 요소가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음 그런 음식을 우리가 베풀어야 되는 것처럼이 디도가 전하는 모든 말씀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어야 됐다라는 거예요. 그만큼 디도는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성도들에게
선포하는 그러한 수고를 했어야 됐습니다.뿐만 뿐만 아니라 선한 일로 본을 보이려면 자기가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살아내야 했어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서 그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됐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이 디도를 통해서 그에 대해 각성의 장로를 세우라고 했을 때 그 장로의 자격 중에 하나가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지켜야 할지니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디도도 마찬가지겠죠.이 이 모든 성도들에게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오류 없이 전달하려면 자기도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됐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면에서 골고로 성도들이이 특별히 젊은 남자가이 디도를 통해서 영향을 받아야 됐었어요. 본을 받아야 됐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그런데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잘 공급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교사들은 가르치는데
탁월해요. 예. 정말로 뛰어나게 가르칩니다. 성경에 있는 의미를 그대로 말해요. 그런데 삶으로는 그것을 살아내지 못해요. 본이 안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은 삶으로 살아내는 것도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고 또 가르치는 것도 괜찮지만이 전하는데 있어서 잘못된 동기로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리더십에 있으면서 잘못된 욕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전부 다 사실이다라는 믿음을 갖지 못한 채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젊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사실은이 디도와 같은 인도자를 통해서이 세 가지 면에서 골고루 영향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대하는 동기에 있어서 또 말씀을 아는데 있어서 또 말씀을 살아내 있어서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어 바울이 이렇게 젊은 남자를 본으로 이끌라라고 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뭐냐면 8절에 보시면이는 목적이 이거다라는 거예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서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어 우리가 정말로이 디도가 보여주는
그 본에 따라서 젊은 남자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아무도 욕하지 않을 것이냐 아무도 비방하지 않을 것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건하게 살고자 한다면 박해를 받을 것이다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을 하고 있어요. 디브모데우서 3장 12절에서 바울이 말을 했었습니다. 어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비방을 받지 않을 거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악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혹은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쓸데없는 비방을 받지 않게 될 거다라는 거예요. 사도 베드로는 비슷한 맥락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3절과 14절 16절을 보시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예. 선을 행하면 해할 사람이 별로 없을 거다라는 거예요. 그러나 고난을 받을 수는 있대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선한 양심을 가지라.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여러분들이 여러분에게 그런 아름다운 본을 보여 주는 그러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러한 본이 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젊은 남자로서 성숙해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무리
여러분들을 여러분의 대적자들이 비방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비방하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은 책망받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게 책망하실 겁니다. 어, 그들의 판단이 잘못됐다라는 것이 분명히 만천하나에 드러나게 될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간 여러분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최종적이고 연구적인 판단을 하나님께 받게 될 겁니다. 어 그래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그러한 올바른 본을 잘 보고 배워야 된다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그 본을 끼쳐야 한다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래요. 오늘 어 나눈 문제 첫 번째 질문에도 나오는데 어 두 번째 질문인가요? 내가 누군가에게 지금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여러분이 주일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의 교사라면, 중고등부 교사라면 여러분들을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고요. 여러분 가족 구성원 중에서 여러분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어, 여러분들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어, 그러니까 내가 과연이 바울이 디도에게 명령한 것처럼 그러한 세 가지 면에서 바른 동기와 그리고 바른 지식과 그리고 바른 삶이라는 그 부분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어,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는가? 특별히 믿지 않는이 세상 가운데 내가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그러한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는가? 그래서 내가 혹시 비방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 비방을 받는 거지. 어, 내가 정말 바르게 살지 않는다라는 책망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고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기 계신 젊은 남자들에게 특별히이 본문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더이 명령이 강조된 측면이 있습니다. 뭐냐? 어, 남자는
결국 가장이 돼요. 남편이 되고요. 또 아버지가 됩니다. 어,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분명히이 본을 끼칠 수 있어야 되고요. 또 자녀들에게 분명히이 본을 끼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젊은 남자들, 여러분,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는게 아니고 여러분을 통해서 만나게 될 여러분의 미래의 아내와 또 미래의 자녀들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라는 거죠. 여러분의 한 가정이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야 될지 지금 말씀해 주신 거잖아요. 이렇게 하라고. 여기 계신 젊은 남자들 결혼하면 규모 있게 살게요. 어 10시에 딱 자고 그럴게요. 안 돼요. 결혼해도 여러분이 하던 대로 하게 돼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여러
가지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신중한 남자로 자하자. 분별력 있는 그러한 인도자로 자하자라는 마음을 먹고 여러분 옆에 좋은 본들을 두고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자, 다음에이어서 9절에서 10절까지 나오는 종들에 대해서 살펴볼게요. 여기 나오는 종들은 헬라어로 듀로스라는 단어로 이제 지칭되는 사람들입니다. 노예라고 해석이 돼요. 노예. 어, 현대 관점에서는이
노예라는 사람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어, 노예 있어도 되지 뭐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그런 계층이에요. 어떻게 인간이 똑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릴 수 있느냐라는 생각이 강한 거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받은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노예로 부릴 수 있느냐라는 생각이 지금 있는 겁니다. 어, 그런데 그러한 생각, 그러한 인식이 오늘날 와서 조금 더 분명해졌지 옛날부터 이랬던 건 아니잖아요. 그죠?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로마 시대에는 그랬어요. 수백만 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뭐 전쟁 포로가 된 노예들 스스로이 재정적인 위기 때문에
자기 몸을 판 그런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들. 정말로 많은 노예들이이 로마 시대의 경제 기반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많은 노동자 계급이 우리나라의 어떤 경제력을 지금 만들어내는 것처럼이 로마 시대에는 그렇게 수많은 노예들이 경제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런데 바울의 관심은이 노예제도 자체를 해체하자라는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디도에게 너는 가서 노예를 해방시키고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종들은 해방돼야 된다. 이런 말을 지금 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그 제도 아래
어떤 태도로 사는 것이이 바른 교훈에 합당한 삶이냐 거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바울은 노예 제도를 찬성한 거냐 막 이렇게 말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 지금까지이 세상의 역사에 있어서 노예제도가 각 나라에서 폐지가 됐었잖아요. 근데 그 폐지된 어떤 과정들을 보시면 모두가 다이 성경적인이 원칙에 따라서 폐지를
했고 그리고 그것을 폐지하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대부분 성경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이 성경의 가르침 자체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동등하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거든요. 여러분 복음도 보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나 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라고 분명히 가르치잖아요. 그러니까 성경적인 가르침 자체는 노예 제도를 찬성하거나 지지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주 관심은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개인으로서 합당하게 살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언제나 사회의 올바른 개혁은 개인이 개혁된 삶을 살아갈 때
시작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혁돼야지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거지 어떤 한 사람이 그냥 바꿔 보려고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뀌는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개인에게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개인들에게, 종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했어요. 자, 9절을 보시면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순종, 두 번째로 순전, 그리고 세 번째로는 성실이에요.
순종. 그것은 주인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라라고 했던 거고요. 순전은 거슬러 말하지 말게 하고 훔치지 말게 하라라는 부분이고요. 성실은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라라는 부분입니다.이 모든 것이 디도가이 그레데섬에 있는 성도들 중에서 종들인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됐던 모습이에요.
노예라면 이렇게 살도록 디도가 바른 진리로 가르쳐야 된다라는 겁니다. 이거 이렇게이 순종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도와줘야 됐다라는 거예요. 어 당시에 많은 종들이 오늘날 회사의 근로 계약처럼 똑같이 주인하고 계약을 맺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됐어요. 물론 불법적인 건 하지 않았고 그리고 부도덕한 것을 시키진 않았겠지만 거의 대부분 뭐 힘든 것들, 어려운 것들을 이제 주인 주인이 종에게 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일을 한다면 대신 주인이 종에게 해 주는 것들이 있었어요. 뭐냐면 먹을 꺼 주는 거, 입을 꺼 주는 거. 그리고 잠잘고 제공하는 거. 어, 그리고 좋은 종인
경우에는 임금도 줍니다. 어, 뭐라고? 월급을 주는 거죠. 예. 월급을 주는 거고 여러분. 그래서 데나리온이 >> 네. 하루 품삭이잖아요. 그니까 그런 일당 그리고 뭐 월급 그런 개념이 분명히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노예는 주인에게 일한 것만큼
수익을 얻기도 했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종인 경우 정말 좋은 주인을 만난 경우는 어 그러한 받은 임금들을 나중에 주인에게 냄으로써이 노예에서 해방되는 그런 자유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지금의 근로 계약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렇죠? 그죠? 예. 어, 지금 왜 웃죠?
내가 노예인가 약간 이런 생각이 되나요? 예. 어 그 약간의 강제성이 더 강했다라는 점 빼놓고 그리고 악한 주인의 경우는 뭐 종을 때리거나 심지어 뭐 죽이거나 할 수 있었다라는 거 뭐 그러한 주인들이 있었다라는 점만 빼놓고는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6, 70년대이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맞기도
하고 예 얼차려를 당하기도 하고 그랬대요. 그런 걸 생각해 볼 때는 정말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겁니다. 노동 환경이나 이런 것도 지금 많이 좋아져서 그렇지만음 이때 로마 시대와 지금의이 어떤 우리의 근로 계약하는 그 상황이 많이 유사한 점이 많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을 요구했느냐? 모든 일에 있어서 주인에게 순종하라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범사에 있어서 주인에게 순종하라. 음. 그냥 순종할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음. 여러분이 회사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상사들이 있을 거예요. 아니면이 바로 위에 있는 상사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를 그냥 두고 봐도 회사를 기쁘게 하고 싶나요? 네. 어때요? 그런가요? 예형제 어때요? 상사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 아, 네. 정말 기쁜 목소리로 대답을 해줬습니다. 어 찬양전이 어떻습니까? 원장님 뭘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 있나요? >> 그다지. >> 그다지. 예. 좋습니다.이 솔직한 대답이 나왔네요. 어 사실 어려워요. 그렇죠. 상사 뭐 그리고 회사 전체를 생각할 때도 어떻하면이 회사에서 내가 더 많이 얻어 먹을까 이걸 생각하지 이들을 어떻게 내가 더 기쁘게 해 줄까라는 생각을 잘 안 합니다. 계약을 생각해 보면 나는이 회사의
이익을 정말로 끝까지 추구해야 되는 사람이고 그러면 회사가 나에게 이런 것들을 약속한게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자꾸 더 뭔가를 더 많이 얻고 싶고 그리고 덜 주고 싶고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하다 못해 그런 얘기 나오죠. 9시 출근이면 9시 출근을 해야 되냐? 아니면 9시 전에 10분 전에 출근을 해서 회사에서 일할 준비가 딱 되어 있어야 되느냐? 어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 >> 준비네 >> 아니다. 나는 10분 더 일한 거에 대해서 돈을 받는지 아니면 9시에 가야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그게 결국에는 무슨 차이냐면은 내가이 회사를 위해서 그만큼 더이 회사의 유익을 추구할 것이냐? 또 내 위에 있는 상사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그 차이거든요. 예.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갖고 지금 일하라라고 노예들에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종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겁니다. 어, 나는 주인이 전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하라는 거야?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 보시면음 관용하는 주인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래요. 그러면서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라라고 얘기했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주인을 대하라는게 아니라이 두려움의 대상은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솔직히 기쁘지 않지만 나의 육신의 주인에게 충성하라는 겁니다. 순종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하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여러분들의 상사를 섬기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섬기고 있다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입니다. 물론 불법적인거나 부도적인 것을 요구한다면 하지 않을 수 있겠죠. 아, 이거는 제가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반항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기쁨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음. 음, 제가 예전에 한번 예를 들었던 거 같은데 그 회사를 다닐 때 어, 저희는 이제 거래처에 어, 우리 제품을 써 주시면
이만큼의 프로모션을 드립니다라는 거래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 그중에서는 합법적인게 있었지만 어떤 거는 합법적인 것을 약간 우회에서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어요. 어, 그래서 웬만하면 제가 안 했지만 어떤 분들은 그 거래처 당사자가 원했기 때문에 저한테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런 거 해 줄 수 있냐라고 물어보시는 거죠. 어 그래서 아 사실
살짝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아 자기도 좀 그렇다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지? 솔직하게네 의견을 얘기해 달라고. 그럼 제가 그렇게 사실은 이게 합법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거 그렇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알겠다. 그럼 난 안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회사에 와서 안 한다는데요.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럼 이제 회사에서 많이 놀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저분이 하겠대요라고 하면서 회사에서 그 돈을 자기가 갔거든요. 근데 저는 안 한 안 한답니다라고 해서 다시 그 돈을 돌려 주니까 회사가 좀 놀란 거죠.
그러면서 이제 가까운 친구들은 구석으로 저 불러다가 아 바보 멍척이 이러면서 네가 가지면 되지 막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죠. 아 시키는 것들이 불 부도덕하다 부당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분명히 말하지만 그렇지만 정직하기는 해야 되는 겁니다. 그게 뒤 뒤에 이어지는 부분인데 바로 상전에게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반응들이에요. 제가 순전이라고 표현된 부분. 그니까 도덕적으로 무결한 것이 순전이거든요. 내가 상사를 대할 때이
순전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두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것들이 있지만 아마 뚜렷하게 보였던이 현상이이 두 가지였던 거 같아요. 노예들이 했던 것 중에 첫 번째로는 궁실렁거리는 거죠. 거슬러서 말하는 겁니다. 주인 앞에서 그랬든 아니면 주인 뒤에서 그랬든 계속해서 궁실되고
주인을 거슬러서 계속 말하는 것들이었어요.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반항적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주인을 그렇게 대하고 주인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이 주인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에 대해서는 소중히 여길 리가 없겠죠. 그러니까이 주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훔치는 겁니다. 예. 어차피 내가이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데이 정도는 못 가져가겠어라고 하면서 이거 가져가도 모를 거야라고 하면서 물건을 훔치는 일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는 거죠. 약 2,년 전에 쓰여진이 서신서가 오늘날
회사원들에게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죠? 여러분 상사 뒤에서 욕해 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회사 부정적으로 얘기해한 적 있으신가요? 내일 나오래. 막 내일 다시 쉬는데 오늘 나오라는 거야? 막 이러면서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어. 회사 방침이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어. 다른 회사 복지가 이러는데 우리는 왜 복지가이 모양인지 모르겠어.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죠. 그니까 그런 말들이이 주인을
거슬러서 하는 말, 대항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는 쉽게 그렇게 합니다. 그게 사실은 순종하지 않는 반응이에요.이 주인에 대해서 우리가 품지 말아야 되는 순전하지 않은 반응입니다. 그리고 물건 여러분 훔친 적 없나요? 사실 훔치다라고 하면 조금 약간
너무하다 싶죠. 근데 이제 뭐 남는 가위, 뭐 남는 풀 뭐 이런 거 가져올 수 있는 거죠. 어, 자재가 좀 남네. 좀 가져갈 수 있는 거고.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조금 약간 미안해서 못 가져오긴 하는데 시간을 우리가 훔칠 순 있습니다. 분명히 회사와 거래 한 6시까지의 근무 시간이 있는데 마지막 한 30분은 갈
준비를 하는 거죠. 집에 갈 준비를. 이거는 노동 시간에 포함돼 이러면서 이제 막 30분 동안 갈준비만 하는 겁니다. 어, 그런 식으로 우리가이 회사의 시간을이 갉아 먹을 수가 있는 거예요. 요즘에는 저도 인터넷을이 말씀 주면서 찾아보니까 점심 시간을 보장하라 뭐 이런게 있더라고요. 점심 시간이 12시부터 한면 그 시간은 정확하게 우리한테 줘야지 왜 일을 시키냐 막 이런 거에 불만을 가진 사원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그래서 뭐 어떤 사람들은 식사하고 빨리 막 헬스장도 가고 뭐 이러면서 한 시간을 통으로 자기를 위해서 쓰고 싶어서 막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그만큼 그 한
시간이 내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면 나머지 근무 시간은 회사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예. 그 외에 나머지이 약속된 그 근무 시간은 내가 나를 위해서 카톡 한 번이라도 이렇게 클릭하지 않고 사적으로 나는 온종일 회사를 위해서 이것을 쓰겠다라는 어떤 그런 각오가 사실은 있어야 되는 거라는 거죠. 어, 그럴 거 아니에요. 점심 시간에 뭐 이거 서류 한번 뭐 사인만 한번 해 주면 안 돼. 지금 내 시간을 이걸로 뺏을 거예요. 막 이렇게 했으면서 회사 시간은 그렇게 내가 자유롭게 쓴다라는 것은 사실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러한 면이 2,년 전에 쓰여진이 서신서에서도 사도 바울을 통해서이 노동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부분이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대신 이러한 불성실한 모습, 부도덕한 모습이 아니라 대신 보여져야 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참된 신실성을 보여 줘야 된다라고 돼 있어요. 신실성. 충성이죠. 한마디로 하면 충성. 어, 여기이 참된 신실성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중에 달란트를 맡긴 종들을 다 불러다가 뭐라고 칭찬하시죠? 잘한 사람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그다음에 충성된
종아. 참된 신실성이 바로 딱 그겁니다. 참된 잘했다라는 뜻이고요. 신실성 충성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사에서 우리의 상사들 아니면 우리의 회사를 위해서 참된 신실성을 보이는 것은 곧 나중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로 그 부분이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게다가 여기 바울은 모든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적당히 착실하고 적당히 충실하게 하는게 아닌 거예요. 최고로 착실하게 하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가장 착실한 어떤 사원이 누굽니까? 선생님이 누굽니까? 뭐 사병이 누굽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누구나 다
서찬양입니다. 어 여기 갑자기 이름 김 화평입니다. 죄송합니다. 젊은 남자 아닌 걸로 할게요. 화평입니다. 예. 지혜찬입니다. 바로 얘기가 나와야 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적당히 착실한 사람이 아니니까. 회사 안에서 우리는 모든
참된 실신성을 보여야 되는 신실성 바음 안 되죠. 참된 신실성을 보여 줘야 되는 그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최고의 충성스러움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여야 된다라는 겁니다.이 당시에 악하고 까다로운 주인을 가진 종들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예. 그러한 주인 밑에서 일하는 노예가 종이이 명령을 들었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피기할 수 없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가 순종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왜 그랬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 10절 하반절에 이렇게 나옵니다.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어 5절하고 굉장히 유사한 표현이에요. 5절에서도 모든 명령 뒤에 이렇게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건 부정적인 표현이었죠. 비방받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다. 근데 10절 마지막에서는 긍정적으로 표현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게 될 거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범사에라는이 표현에 주목하기를 바래요.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그리고 가정, 직장, 사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도 있고요. 비방받게 할 수도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빛나게 할 수 있는지 지금 디도를 통해서 이렇게 가르치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바른 교훈대로 살면 여러분은 그 바른 교훈을 세상 가운데 빚내시는 거고요. 바른 교훈대로 살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그 바른 교훈을 비방받게 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어 제가 챗 GPT에 이렇게 물어봤어요. 30세부터 70세까지 주 5일 근무고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고 한다면 총 몇 시간을 일하는 거니라고 물어봤더니 83,200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30세에서 70세까지 40년 동안 주 5일 하루 8시간 하면 83,200시간이고 24시간을 하루도 1한시간도 쉬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83,200시간을 일한다고 쳤을 때 약 9.5년의 년의 시간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30대에서 70세까지
약 40년의 인생 중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면 그중에 1인 10년이 일하는 시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 그러면 내가 직장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들이 단지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할 수가 없겠죠. 약 1
되는 인생이 그냥 돈 버는 거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니까 그럴 수는 없다라는 겁니다. 어 그 시간에 그럼 난 뭘 하느냐? 여러분이 일하는 그 10년의 시간 동안 뭘 하느냐?이 이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빚내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이래서 일한만큼
소득을 얻는 것도 전도서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지만 여러분은 사실은 더 고귀한 일을 그곳에서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빛내고 있는 중인 겁니다. 여러분이
특정 시간 계속해서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 사람들에게이 우리 구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여러분의 삶으로 보여 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귀회라는 겁니다. 어 여러분이이 하나님 미쁘신 말씀에 따라서 상사나 회사가 지시하는 것을 순전하게 따를 때 하나님 말씀이 빛이 납니다. 여러분이 뒤에서이 회사나 상사에 대한 요구를 할 때 거기에 섞이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말을 해서 왕따가 되거나 그럴 수 있겠죠. 아니면 그 말을 그냥 섞지 않음으로써 뭔가 불편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가운데 빛나게 하는 겁니다. 어 회사 물건을 또 회사의
시간을 함부로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것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눈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두려워함으로써 성실하게 일할 때에 아무도 못 보는 것처럼 또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는 거예요.이 이 여러분의 육신의 상전은 모른 척할 수도 있고요. 그것을 반영해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저 하늘에 계신 상은 여러분들의 모든 것들을 다 세고 계신다라는 겁니다.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서든지 그리스도를 섬기는 거고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1절에서 10절까지 쭉 이야기한 모든 권면의 핵심은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말하라였습니다.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권면하라였어요. 무슨 말이냐? 지금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 남자로서 나 이렇게 살아야겠어. 더 이런 부분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야겠어. 더 이상 이렇게 방치되면서 충동적으로 살면 안 되겠어. 어떤 각오를 했을 수도 있고요. 어, 내가 직장인으로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어. 내가 앞으로 주님을 빚내기 위해서 회사에 나가면 난 이렇게 살아야겠다. 정말 가장 충성된 일꾼이 돼야겠다. 뭐 이런 각오를 했을 수도 있어요. 어 그런데 이러한 각오들이 오늘에 전해진이 하나님의 진리로서 교훈으로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건데 이렇게 한 번
주어진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예요.이 바른 교훈이 계속해서 여러분들에게 제공돼야만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에 대해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 사도 바울이 가르쳤고 디도가 가르쳤고 많은 교사들이 있었지만 결국에 왜이 사람들이 요동쳤습니까? 주변에 거짓 교사들이 있었으니까. 수많은 잘못된 진리들이이 거짓 교리들이 있었으니까 흔들린 거잖아요. 어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또 디도에게 각성의 장로를 세우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리를 바른 교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그 원천을 지금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 여러분들도 이렇게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다면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건강하게 공급되어야 돼요. 어, 나는 말씀을 일주일에 한 5분 정도 대하면서 오늘들은 말씀으로 나는 그렇게 살아 봐야지 하면 한 며칠 반짝하다가 금방 그렇게 못 삽니다. 공급되고 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살 수 있는 동력이 공급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내가 듣고 있고 보고 있는 모든 드라마나 영화나 예능이나 뭐 어떤 뭐라고 하죠? 지금 쇼츠 같은 영상에서는 다 이거랑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이 말씀대로 살 수가 있겠냐는 거죠. 그니까 바른 교훈에 합당하게 살려면 바른 교훈을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주입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온갖 거짓이 가득한이 세상 가운데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신다.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세상 가운데 빚내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렇다면 끊임없이이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여러분 삶에 공급하셔야 됩니다. 어
수요일, 주일 듣는 말씀도 그렇고요. 묵상하는 그 말씀도 그렇고요. 어, 성경 읽기도 그렇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든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여러분 삶에 공급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 가르치라고 권면한 것처럼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너희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너희 스스로에게 가르쳐라. 너희 스스로에게 공급하라라는 권면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어 그러면 우리 이렇게 다 같이 살기를 원하고요. 이렇게 살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칠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이 말씀을 통해서 그레대섬 그 온갖 신하가 가득한 그 섬에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전파되고 그곳에 있는 성도들이이 말씀대로 어 온전히 지켜지기를 바랬던 주님의 그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하나님, 오늘이 시간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이 귀한 교훈을 주셔서 우리가이 온갖 거짓이
난무한 세상 가운데 살아갈 때에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또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분별하여 살 수 있도록이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성숙시켜 주시기를 원하고 특별히 직장 가운데 있는 청년들에게 하나님 원하시는 그 아름다운 삶을 충성스러운 삶을 하나님 말씀이 빛나는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더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우리에게이 귀한 말씀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이들은 말씀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어 청년들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