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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디모데전서 6장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입니다. 341페이지 정도에 있어요. 어, 제가 여러분들과 디모데 전서를 시작으로 디도서까지 쭉 이렇게 이제 공부해 나가려고 하는데 어, 벌써 6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씀을들을 때 자꾸 뒤에서 영어가 들리고 그러죠? 근데 어 우리가 서로 배려하면서 잘 어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예전에 초창기 초대교회 때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저는 사실 동시 통역이 있을 때 처음 설교하는 거 같아서 어 지난번에 최
목사님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도 막 늦혀지지 않으려고 막 더 서두르고 막 이렇게 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쨌든 우리 함께 잘해 보도록 합시다. 어, 오늘 제목은 경건을 해치는 두 가지 문제입니다. 경건을 해치는 두 가지 문제. 어 그중에 첫 번째 시간으로 첫 번째 문제를 다룰 겁니다. 본문은 디모데전서 6장 3절에서 10절인데요. 어 디모데전서 6장 3절에서 5절까지 오늘 다룰 겁니다. 첫 번째 문제를 다룰 거고 6절에서 10절까지 두 번째 문제를 다음 주에이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 첫 번째 문제는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의 문제고요.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그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영향력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이 세상적인 것들에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는 것. 어, 그 두 번째 문제를 차례차례 좀 다루려고 합니다. 어, 먼저 경건이 무슨 의미인지를 좀 설명해 드릴게요. 경건. 5절에 보면 경건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6장 5절 보시면 어
디모데전서 6장 5절입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이제 경건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습니다.이 경건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 저기 두 분 있으신 거 같은데. 예. 경건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 분?
네. 맞습니다. 크게 얘기하셔도 돼요. 맞았으니까. 뭐죠? 아, 네. 가들리니스라고 합니다. 가들리니스. 네.이 뭐죠, 여러분? 갓이 뭐예요? 아, 하나님입니다. 갓이라는 하나님이라는 명사에 두 개의 전미사가 붙어요. 여러분, 영어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다면 어떤 명사에 ly가 붙으면
뭐가 됩니까? 예, 부사가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스러운, 하나님 같은 뭐 이런 단어가 되겠죠. 그런데 뒤에 또 점미사 하나가 더 붙어요. ns 뭡니까? 예. 명사형으로 바꿔 주는 그 전미사예요.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
그거 자체가 명사 같네요. 어쨌든 그런 식으로 이제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 같음, 하나님 닮음이란 대략적인 의미를 우리가이 가들리니스라는 단어에서 도출할 수 있어요. 경건이 그런 의미다라고 하는 겁니다. 조금 풀어서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아는 지식대로 모든 삶에
신실하게 적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 어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으면 그것이 우리 삶에 여러 구석구석에서 다 드러날 거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줄 겁니다. 그것이 곧 경건이다라는 거예요. 그래서이 경건에 있어서 바른
교훈이 필수적입니다. 바른 교훈이 매우 필수적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믿음 자체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겨납니다.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 스스럽게 살 수 있는데 어떻게 그 믿음이 생기느냐? 그리스도의 말씀,이
올바른 교훈을 들음으로서 생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강해지는 것, 약해지지 않고 더 강해지는 것도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우리가 아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대로 살아낼 수 있을 겁니다. 경건하게 살 수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경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원 원동력은 바른 교훈이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음.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남겨진 제자들과 또 그들을 통하여 구원받을 우리들을 위해서 뭐라고 기도하셨냐면 요한복음 17장 17절에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어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 우리가 경건해지는 것에 꼭 필수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버지의 진리라는 거죠.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진리가 우리를 경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경건을 해치는 두
가지 문제 중에 오늘 다룰 첫 번째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가 그 진리를 따르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그 진리를 버리고 진리가 아닌 것들을 따르게 되는 겁니다. 거짓을 따르는 거죠. 그게 가장 중대한 그리고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사실은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두었었어요. 내가 너를 거기에 남겨 둔 것은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그리고 거짓 교 거짓 가르침에 이제 휘둘린 사람들 미혹된 사람들을 바로 잡아서 올바른 진리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 바울이이 에베소의 디모데를 남겨 둔 겁니다. 그리고 어 디모데도 계속 여기에
연구적으로 에베소에 머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장로들 감독들을 이런 기준으로 뽑아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잘 가르치는 사람들 그러니까 교훈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 스스로가 본을 보이라고 했어요. 그냥 가르칠뿐만 아니라 경건한 삶으로 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도 구원하고 너를 통해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
사도 바울은이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디모데를 에베소에 보낸 그 목적에 있어서도 진리의 말씀이이 성도들의 경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겁니다. 어, 지금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왔어요. 6장 3절에서 10절까지 거의 마지막 부분에 왔습니다.이 이 마지막에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은 강조하면서 우리를
경건에 이르게 하는 영적인 자원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과할 때에 얼마나 끔찍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여기 교훈을 하며라고 돼 있으니까 뭔가 행한다라는 것으로 들리지만 가르치며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말을 합니다. 자, 여러분, 어,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어요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어, 나는 경건에 관한 교훈이 성경의 가르침 혹은 복음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어요라고 생각하신 분 있어요? 아무도 없죠. 우리는 모두 다 어느 정도 잘 따르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잘 따르고는 있지라고 생각을 해요. 때로 실수하고 때로 넘어질 때가 있고 때로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들을 쫓을 때도 있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돌아오고 있어. 이런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막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는 거죠. 어, TV에 나오는 사이비 교주들 뭐 이런 잘못된 강사들
뭐 이런 사람들이 떠오르는 겁니다. 여기 지금 본문이 말하는이 거짓 교훈,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 하면 나라고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 보시면 3절에 뭐라고 시작했죠? 누구든지라고 시작을 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도이 누구든지에 포함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에 제한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어, 거짓 교사가 일차적으로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맞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누구든지
이런 삶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면 사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어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를 오늘이 시간 점검해 볼 수 있도록이 몇 가지 특징들을 좀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내가 지금 바른 교훈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거짓 교훈을 따르고 있는가? 이것을 여러분들이 분간할 수 있도록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총 여섯 아 일곱 가지 정도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일곱 가지 특징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 근거는 4절에서 5절까지에 나와 있어요. 제가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여러분 같이 4절과 5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자, 4절에 그는이 가르치는 사람이 앞에 있는 누구든지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서 바른 교훈을 쫓지 않는 사람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지금 4절과 5절에 일곱 가지 특징을 지금 말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그런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특징 진리에서 멀어진 사람의 특징은 근본적으로 교만합니다.
교만해요. 그는 교만하다라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 시편 119편 85절을 보시면 시편 기자가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만큼 교만한 건 없습니다. 어, 제가 여기에서 어, 죄송하지만 화평이
어, 화평 형제 이것 좀 해 줄래요라고 했는데 싫은데요. 이러면 어때요, 여러분? 어. 어, 목마르데 물 좀 떠다 줄래요라고 했는데 아, 싫은데요. 막 이렇게 한단 말이에요. 그럼 어때요? 화평이의 태도가 어떤 거 같습니까, 여러분? 못 됐죠? 예. 예. 평상치랑
비슷하게 그거 아니고 네. 못됐다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리고 어 물론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다면 화평이가 당연히 그렇게 예의 있게 들어줄 것이다라고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는 것 모습을 볼 때 여러분들이 화평이가 참 교만하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겁니다. 어 부탁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또 얼마나 사랑을 베풀고 뭐 어떻게 말씀을 전해 주고 요런 것들을 여러분이 생각하면서 저 사람에게는 당연히 요렇게는 해야 돼라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근데 화평이가 그렇게 안 한 겁니다. 어 그러한 권위를 무시하고 그들 그 사람의 친절을 무시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니까
교만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그렇게 간과하거나 없신 여기거나 하나님 말씀을 못들은 채 하거나 들었는데도 듣지 않으려고 하거나 이런 모습들은 사실 엄청난 교만입니다. 여러분들이 중세 시대나 옛날에 아주 고대 시대에 왕의 어을 어긴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조선 시대에 말이 말을 타고 이제 신하들이 막 여러분 집 앞에 와서 어이요라고 얘기를 한 거죠. 그러면서 이제 칼을 찬 어떤 군사들이 와서 이렇게이 임금의 어명을
쭉 펼치고서 어을 받으시오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자, 여기이 설교문에 없는 거라 지금 두어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이 저는 안 받을래요. 이렇게 한다고 한번 생각했어요. 중조선 시대라든지 고대 시대에 아, 저는 그냥 안 듣고 싶은데요. 도로 돌려 보내세요.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칼찬 군사가 어떻게 할까요? 목을 베겠죠. 예.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순간 그런 일이 펼쳐질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다.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긴다. 이거 자체가 엄청난 교만이다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는 일은 항상 하나님보다 높아진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계속해서 밀어내고 순종하고 있지 않을 때에 여러분 안에서 분명하게 발견되는 것은 교만인 거예요. 교만. 여러분 그 교만이 하와 아담으로 하여금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가를 따먹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라고 했지만 그들은 우린 이걸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리라라고 교만하게 행동을 한 거였어요. 우리가 그런 교만을 가질 수 있다라는 겁니다. 어, 종종 제가 목회자로서 혹은 청년의 교사로서 어, 너 이렇게 하는게 좋지 않겠어라고이 말씀을 근거로 여러분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데 혹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 이게 하나님 말씀이구나 설교 시간에 들으면서 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다라고 여러분이 깨달을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아,
알긴 하는데 저게 하나님 말씀인 거 알긴 하는데 동의할 수 없어. 난 동의가 잘 안 돼. 혹은 아유, 따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을 먹는다면 이것이 엄청난 교만이다라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나는 하나님보다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나는 하나님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길인지 더 잘 알고 있다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교만이 여러분 안에 조금이라도 발견된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경고하고
있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 바른 교훈을 떠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분별을 하셔야 됩니다. 교만은 명백한 죄입니다. 자, 두 번째 특징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진리의 말씀 위에 교만을 떠는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어, 잠언 말씀에 보면이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미련한 자라는 표현을 써요. 어리석은 자. 어, 거의 동이어처럼 쓰입니다. 교만한 자와 미련한 자와 어리석은 자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이 됩니다.
어,이 어린아이들 중에 부모님이 너 이거 위험하니까 조심해. 너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옆에서 막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아 나도라 그러면서 자기가 더 잘 아는 것처럼 막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뭐가 위험한지 뭐가 위험한 위험하지 않은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다만 고집을 피운 것뿐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 여러분, 지혜의 근본이 뭐라고 합니까? 잠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혹은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교만하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럼 뭘까요? 그 지혜의 근본부터 없는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죠. 지혜의 근본, 뿌리가 잘린 사람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 뿌리 위에 살짝 이파리가 나고 뭔가 아는 것처럼 아는 채하고 뭔가 똑똑한 것처럼 그런 똑똑한 채하고 이런 거 가능해요. 그런데 뿌리가 잘린 사람이기 때문에 지혜의 깊은 근본까지 연결되지가 않는
거예요. 그냥 겉으로 아는 척하고 똑똑한 척 하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1장 22절에서 23절까지 모든 교만한 죄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어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어 여러분 100원짜리 동전과 어 10만 원짜리 어 10만 원짜리 집회가 없죠. 5만 원짜리 집회를 바꾸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이죠. 그렇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100원짜리 동전과 5만 원짜리 집회를 바꾸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내용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무한한 가치를 우리가
하나님 만드신 피조물과 바꾸는 그러한 어리석은 일을 한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교만한 사람은 사실상 하나님의 영광을 그것보다 훨씬 못한 것들로 바꾸는 그런 미련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 최근에 우리가 전도서를 성경 읽기로 읽었어요. 그렇죠? 거기에 보시면 어 헛되다 헛되다라고 계속 말하다가도 또 선하고 우리 삶의 몫이다라고 얘기하고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도 얘기하고 막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헛된데 어떤 것은 왜 의미가 있어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재물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아내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리고 우리가 이래서 버는 것으로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몫시대요.
그런데 하나님을 무시하면 그 모든 것들이 다 그냥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이 솔로몬이 뭐라고 말을 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할지어다. 순종할지어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본분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부리는 사람은 사실상 헛되고 헛된 인생을 고집하는 겁니다. 정말로 지혜롭지 못한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겉으로는 똑똑해 보이고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사실은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어, 여러분, 이것에 대해서 내 얘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언제든 여러분 삶에 교만이 침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말씀 하나가 여러분에게서 계속해서 무시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영역에 있어서는 여러분 정말로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보다 높아진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역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무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차츰차츰 여러분들을 무너뜨리게 될 겁니다. 자, 세 번째 특징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한다라는 거예요. 여기 보시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죠. 잘 모르는 사람이 더 쉽게 덤빈다라는 이야기예요. 어, 교만하고 진리의 말씀에서 무지한 사람은 그래서 쉽게 덤벼과 언쟁을 좋아해요. 어, 그런데 여러분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이 어, 하나님 말씀을 너무너무 사모하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변론이나 언쟁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변론과 언쟁은 아니고 궁금해하고 질문을 가지고 더 알고 싶어하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어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히 그 말씀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질문하고 의문을 갖고 하는 목적이 더 알고 싶어서 그런 거거든요. 더 알고 싶고 더 순종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무지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하나님 말씀을 무너뜨리려고 하나님 말씀에 반박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살고 싶어서 그래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겁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따르기 위해서 변론과 언쟁을 하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이 좋아하다라는이 단어가 병적인 집착을 의미하는 이래적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훈에 빠진 사람들을 가만히 보시면 얼마나이 진리에 대해서 집착하면서 무너뜨리려고 하는지 볼 수가 있어요. 어, 요즘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뭐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올바른 것들을 무너뜨리려고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공격들을 많이 합니다. 어, 정말 병적으로 집착할
정도로 그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라고도 생각을 합니다. 어, 정말로 그들이 얼마나 살아 있는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지 잘 모르는 겁니다. 음. 그런 사람들은 사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어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아요. 그냥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다른 교훈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어 그래서 그 다른 교훈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려고 하니까 거기에 장애물이 되는 바른 교훈을 어떻게든 깨서 없애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든 싸 싸워서 그들을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성경은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고요. 미워하는 대상이 됩니다. 의무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도 있고 그리고 말씀을들을 수도 있지만 항상 의심과 불불신이 어 계속해서 그들이 듣는 것들과 싸우게 만든다라는 거예요. 어 여러분들이 오늘 지금도이 말씀을 듣고 계실 텐데 어 들으면서 저건 아니지
않나? 저건 아니지 않나? 뭐 저렇게 꼭 꼭 저렇게 믿어야 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가 있어요. 그렇죠?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도 어 서로 사랑하라고 사랑할 수 없을 없을 때도 있지 않나? 뭐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어 그것이 어떻게 내가 더
사랑할 수 있을까?이 이 말씀은 나를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주는 걸까라고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게 하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말씀을들을 때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변론하고 싶고 논쟁하고 싶고 여러분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고 내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지금
바른 교훈을 쫓지 않고 있다라는 증거입니다. 어 예전에 제가 미국에서 몇 번 예시로들은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한참 불법 다운을 좋아해 가지고 막 이것저것 다운받아서 막 보고 막 그랬다가 어 그때는 누구도 이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 뭐 상품 하나만 사도 예를 들어서 책을 사도 상품권으로 그 웹파드 포인트가
날라왔어요. 10만 점. 그러면은 그걸로 다운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합법이야. 막 이런 생각을 했던 겁니다. 포인트를 주니까. 어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그게 도둑질이더라고요. 그 디지털 저장물을 제가 쉽게 그렇게 훔치는
일이었더라고요. 나중에 그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이후로 그걸 하지 않았어요. 어 그리고 나서 제가 알고 있는 지인에게 설명해 줬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게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거더라. 그렇게 하면 뭐 안 되 안 되더라. 그러니까 그 사람이 저한테 하는 말이 누가 다 그렇게 살아? 아 말도 안 돼. 막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말씀 어떻게 그렇게 적용해? 되도록 하지 말라는 의미지. 뭐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네. 너무 하고 싶으니까. 그렇죠. 그 유익을 놓지 못하니까. 이거를 놓으면 나는 다운받을 수 없고 영화를 다운받을 수 없고 다 돈을 내고 사야 되고 그 실제로 그런 말도 했어요. 그럼 나 다 돈 주고 봐라는 얘기야. 뭐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게 당연한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해줬는데 어쨌든 그 저의 제가 물어보는 거는 왜 그의 마음속에 그런 반항심이 생기냐라는 거죠. 이게 말씀의 의미다라고 분명히 밝혀줬는데도 왜 반항심이 생기냐라는 겁니다. 올바른 진리를 쫓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예요. 다른 교훈을 따르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 중에 그러한 부분들이 있다면 그러한 부분들이 있다면 여러분 진지하게 내가
어디에서 있는지 말씀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서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셔야 됩니다. 어, 예전에 이런 어, 성적인 어떤 영상들에 많이 노출돼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도 어, 제가 이것은 정말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되는 문제다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어, 그분들 중에 한 분이 하나님 우리에게 욕구를 주셨는데 어떡해? 너 뭐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럼 평생 결혼할 때까지 그러면 그걸 다 이겨내야 막 이런 식으로 이제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 그러한 마음들이 우리 실질적인 어떤 어 치열한 전쟁이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니까이 말씀을 무시해도 된다. 적당히 지켜도 된다라는 마음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라는 것을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네 번째 특징입니다.네 번째 특징. 어, 지금까지 앞에서 다룬 세 가지 특징은 모두 다 말씀에 관한 태도를 다루고 있어요. 첫 번째는 교만함, 진리에 대해서 교만한 마음을 품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무지함, 진리에 대해서 무지한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대항.이 이 진리에 대해서 싸우고 변론하고 싶어 하는이 대항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다음에 이로서라고 말씀이 시작하거든요. 어 그러니까 진리에 대해서 이런 태도를 너희가 갖고 있다면 이로써 이런 결과물들이 나온다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로서가 어떻게 번역되었냐면 그러다가
결국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너희가 계속 그런 태도를 갖는다면 결국에는 이런 불경건함의 열매를 맺는다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게 여러분 머릿속에만 있고 생각 속에만 있고 태도로만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여러분 삶에서 이런 불경건한 열매를 맺게 된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음 몇 가지 열매들이 이제 나오는데 첫 번째로는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물견건한 열매들이에요. 이런 열매들이 여러분의 삶의 실제로 맺치게 되는 겁니다. 음.
진리의 적대적인 사람이 맺는 모든 열매가이네 가지다라고 말씀드리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분명히이네 가지는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육체에 속한 열매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과 20절을 보시면 시기와 분쟁이 육체의 일이다라고 말을 했어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라고 하면서 시기하는 것과 분쟁하는 것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이어서 나오는 비방과 악한 생각 또한 어 골로새서 3장 8절과 에베소서 4장 31절을 보시면 너희가 이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라고 하면서 그 옛사람의 특징으로 꽂고 있는 것들이 이겁니다.
비방하는 것과 악한 생각. 특별히 악한 생각은 우리말 성경에서 사악한 의심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단순히 나쁜 생각이 아니라 의심하는 것들입니다. 악의적으로 무언가를 믿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르킵니다. 음.
사도들이 사도 바울이 여기서 특별히이네 가지를 선별했는데이 불교관의 열매들이 대부분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시기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저 사람은 왜 나보다 이런게 있지? 저 사람은 왜 저렇지라고 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요.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미움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분쟁은
하나되을 편을 갈라서 찢어 놓습니다. 분쟁이 그렇게 무서운 제고요. 그다음에 비방은 다른 사람의 평판을 떨어뜨립니다. 어 다른 사람의 평판을 사실 사실 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악한 의심은 서로 가지고 있었던 신뢰를 갉아먹게 합니다. 어, 내가 저 사람의 했던 말에 대해서 뭔가 의심을 갖고 계속해서 의문을 품으면서 불신하게 되는 거죠. 어,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했지? 나를 싫어하나?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제 불신하는 관계가 되는 겁니다. 음.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성도들이 있어요.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방하고 다니는 사람 있고요. 시기심이 가득찬 성도들 있고요. 그리고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 사람 주변에 있으면 계속 편이 나눠지는이 사람 편이 되거나 저 사람 편이 되거나 아니면이 사람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 평판을 걔가 그랬대. 뭐 이런 식으로 이제 얘기하고 다니는 거죠. 그리고 계속해서 저 사람이 이렇게 말한 거 보면 저런 거야. 이런 식으로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떠오른 사람 있나요?
없어요. 주미가 없다 그러는데. 예. 좋습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어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종종 어떤 말 하는지 아세요? 이런 일들을 실제로 성도간에 일으키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 나는 하나님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얘기를 나는 그냥 단지 성도간에 상처받아서 성도간에 어떤 일이 생겨서
이렇게 하는 것뿐이지 하나님과 나의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이야기를 자주 해요. 근데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무 무엇의 결과라고 했죠? 예. 불경건함이라 그랬잖아요. 그렇죠? 지식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잘못된 태도를 가져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불경건함의 열매를 맺는다면 사실은 그들의 뿌리에 주님의 진리에게서 멀어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라는 거예요. 자, 두 번째 불경건함의 열매는 마음이 부패하여지는 겁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는 것. 어 부패하여지다라는이 단어는 여러 성경 여러 부분에서 다르게 번역이 됐는데 고린도서 4장 16절에서는 우리의 겉사람이 날로
뭐라고 했죠? 부패하다라고 했습니다. 후패하다라고 과거의 성경에는 되어 있었는데 오늘날 성경에는 낡아지다라고 번영이 돼 있어요. 그리고 계시록 8장 9절에서는 어 바다에 떠 있는 여러 가지 배가이 대환란 때 모두 파괴된다라는 표현을 할 때이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11장 18절에서도 땅이 썩는다라는 표현을 쓸 때이 부패하다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두 다 어떤 의미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손상되어 가는 것을 가르킬 때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어, 계속해서 점점 더 손상되어 가는 과정을 가르키고 있어요. 어, 그래서 이것이 진리를
떠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경관함의 열매인 겁니다. 진리가 떠나 버렸기 때문에 점점 그 마음이 부패해지는 겁니다. 썩어지는 겁니다. 점점 더 어, 파괴가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날로 썩어 갈까요? 날로 부패되어 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고린도서 4장 16절에 그리스도인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 그렇지 않아요?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은 그래요. 부패한게 맞아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날로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시기 때문에 돼요. 날마다 새롭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 가운데
빠졌을 때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편 51편 10절인데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죄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더럽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세요. 우리의 영혼을 정한 영혼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에요.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날마다 경건해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 물이 이렇게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시내가에 심겨진 나무는 깨끗한 물의 공급을 늘 받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파리가 많이 무성하고 그리고 열매가 풍성합니다. 형통하다라고 시편 1편에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우물처럼
동그란 그런 어 옆못에 심겨진 나무는 물이 새로운 신선한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썩은 물이 공급이 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점점 더 썩어져 갑니다. 이파리도 말라가고요. 그리고 열매도 더 이상 맺치지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내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요. 그래서 항상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신선하게 날마다 공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새로워진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구든지 그 말씀에서 멀어진다면 그리고 다른 교훈을 계속해서 마음에 섭취한다면 집어넣다면
그렇다면 요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마음이 부패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부패하고 그 결과인 나쁜 열매를 잔뜩 맺게 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6번과 7번만 다루면 됩니다. 6번
마음이 부패해진 것 그 이후에 또 발견되는게 있어요. 어,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4번, 5번, 6번 얘기했는데 어, 여러분을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서 시기심이라든지 분쟁하는 마음이라든지 불신하는 마음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생기고 있다면 혹은 마음이 점점 내가 좀 썩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라는 마음이 생기고 있다면 아, 내가 진리에서 멀어지고 있구나라는 어떤 신호로 여러분 받아들이시면 되는데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여러분에게 발견되더라도 혹시 여러분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어요. 어, 나는 그래도 그리스도인이지. 예전에 구원받은게 확실하니까. 침례도 받았고. 어, 그러니까 여전히 나는 진리 가운데 있긴 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내가 잠깐 벗어난 적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 내가 잠깐 방황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리 가운데 있다라고는 말할 수 있지. 뭐 이렇게 이제 여러분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최소한의 확신을 가지고 안심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섯 번째 열매를 보시면 불경건함의 정말로 심각한 손상이 결국에는 진리를
잃어버리는 데까지 간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잃어버리는 데까지 갑니다. 어, 디모데는 디모데서 1장 19절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린 사람들이 많다라고 하면서 그들은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파선이라는 단어는 배가 산산자공 산산 조각 났다라는 의미예요. 어, 그래서 배가 산산 조각 난 상태에서 여러분이 그 배에 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바다에 빠져서 그런 낡은 그 배조각을 붙잡고 구조되든지 아니면 구조되지
못해서 바닷속으로 쑥 들어가서 죽겠죠.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래서이 본문에서 말하는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영령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할 수는 없어요. 둘 중에 무엇인지를 확신할 수는 없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러분 진리를 잃어버리는 아주 심각한
손상까지 우리가 갈 수 있다라는 겁니다. 여기 잃어버리다라고 번역된이 단어의 원래 뜻은 속여 빼앗았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이 진리를 잃어버린 것이 실수로 그냥 놓쳐 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를 강탈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뺏어 갔다라는 거예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 때문에 그 영향력 때문에 여러분들은 결국에 붙잡고 있었던 올바른 진리를 놓치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어 사도 바울은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흔들리고 있던 성도들에게 히 아 사도 바울이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예요.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하게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그까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가졌던 그 바른 진리를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죽기까지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면 바로이 올바른 진리를 끝까지 빼앗기지 않는 싸움입니다. 여러분 줄다리게 해 본 적 있으세요? 어, 줄다리기 하면 가운데 이렇게 리본 같은 걸로 매어 놓고서 양쪽이 힘겨루기를 합니다. 우리 편에 뚱하지만 뚱뚱하고 힘센 사람들이 많으면 안심이 되죠. 아, 우리가 이기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점점 더 그 리본이 뭐 어떤 매듭이 저쪽 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걸 보면은 아, 우리가 졌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그런데 마지막 호각이 불기 전까지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당기는 일들을 계속해서 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켜내야 되는 거죠. 우리 안쪽에 이것이 거하게 하하도록 계속해서 힘써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투쟁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고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말아야 돼요. 진리 전쟁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데 진리를 계속해서 대하면 대할수록 여러분들은 그 밧줄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더 강해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진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여러분들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갑니다. 놓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견고하게 붙잡고
싶으면 더욱더 진리를 여러분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겁니다. 자, 마지막 일곱 번째입니다. 일곱 번째는음 불경건을 조장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어요. 어 바른 말이 아니라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경건에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이다라고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어 앞서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의 자격 조건에 보면은 디모데전서 3장 8절에 더러운 일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돈 때문에 목회하는 사람은 뽑지 말라라고 얘기를 한 겁니다. 어 그런데 지금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경건을 가지고 장사한다는 겁니다. 경건을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한다라는 거예요.이 경건에 속한 무언가를 가지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겁니다. 요즘 오늘날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로 돈을 벌고 있는지 몰라요. 치유 집회 하면서 돈을 끌어 모으죠. 뭐 방언 집회, 은사 집회 이런 거 하면서 계속해서 돈을 끌어 모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비즈니스예요.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행동입니다. 그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에 속아서 진리를 버리고 인생이 많은지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냥 이걸로 돈을 벌려고 하는 거예요. 어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 실제로
이것으로 돈 버리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어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열매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걸 보게 됩니다. 어 경건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보게 돼요. 경건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실제로 그들의 삶에는 경건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참 경건을
가르치는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참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 성경을 읽고 있어요. 그렇죠? 정말로 참된 것들을 배우고 있고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과 다르게 경건이 진짜 여러분들의 참된 열매가 되어야 한다라는 거예요. 디모데후서 3장 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특징 중 하나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와 있기는 해요. 예배에 참석도 합니다. 성경을 읽기도 하고요. 그리고 말씀 시간에 듣는 것 같이 보입니다. 노트도 필기하고 뭐 여러 가지를 하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여러분 삶에는 아무런 경건의 열매가 맺치지 않을 수 있다라는 거예요. 거룩하지 않고 그리고 겸손하지 않고
그리고 사람들과 화목을 이루지 않고 그리고 항상 분노하고 음란과 그리고 여러 가지 잘못된 정욕에 빠져 있다면 그러면 여러분들 실제로이 경건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경건을 가장한 사람이다라는 면에서는이 거짓 교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불경관한 특징들이 여러분 삶에 보인다면 여러분들은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빨리 돌이켜야 됩니다.
자, 마지막으로 그럼 에베소 교회들이 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왜 이런 불경건함으로 빠져 들어가게 됐을까? 왜 다른 교훈에 미혹됐을까? 왜 사도가 직접 가르친 바른 교훈에 이렇게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흔들렸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매우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게 6절에서 10절까지 우리가 다음 주에 다룰 내용이에요. 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지 못했다라는 거예요.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많이 즐기고 싶은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이죠. 그러한 본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은 그 본능보다 더 커진 겁니다.
경건하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 그 마음보다이 세상에서 더 많이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겁니다. 말씀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얻고 누리고 즐기고 싶은 것들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버리고 그들을 만족시킬 다른 교훈들을 쫓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나눈 문제에서도 나오지만 여러분들이 이런 불경함에 에베소 교회 성도들처럼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가까이
가셔야 합니다.이 말씀만이 나에게 나의 영혼을 영원히 만족시키는 하나님을 흠없이 보여주는 가장 영광스럽게 보여주는 유일한 진리의 도구다라는 것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세속적인 우상 하나님 만드신 피조물들이 하나님보다 더 탐스럽게 보일지라도 더 내 나에게
그런 욕망을 자극시키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아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분이다라는 것을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알고 계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견물생이라는 말이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견물생.
무슨 말이죠? 요즘에 사자성어 잘 안 배우죠? 견물생. 무슨 말이냐면 어떠한 실물을 보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라는 거예요. 에어팟 갖고 싶어. 막 그 유튜브 들어가 보니까 에어팟 광고가 나오네. 계속 보니까 어 요번에 새로운 칩이 들어갔대. 새로운 기능이 된대. 이렇게 막 봐요. 그러니까 더 갖고 싶어요. 그렇죠? 그리고 보니까 옆에 화평이 갖고 있네. 어떠죠? 더 갖고 싶어. 그렇죠? 내 눈앞에 계속 두면 둘수록 그걸 더 갖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생기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른 교훈이 아니라 바른 교훈을 따르게 하는 아주 쉬운 비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눈앞에 무엇을 두면 돼요? 바른 교훈을 두면 됩니다. 여러분 눈앞에 계속해서 올바른 것들을 두면 됩니다. 여러분 눈앞에 영적인 실물을
보게 하는 그러한 것들이 여러분 정말 그것을 가지고 싶을 정도로 정말로 간절히 원할 정도로 계속 눈앞에 두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헛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을 따르게 될 겁니다. 요즘 시편 119편 말씀을 우리가 배우고 있는데 몇 구절 제가 읽어 드릴게요. 이런 태도로 여러분들이 말씀을 눈앞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시편 119편 30절을 보시면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앞에 두라는 거예요. 119편 147에서 9절을 보시면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었으며 주의 말씀을 바라싸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조조리려고 내가 새벽역에 눈을 떴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여러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 말씀 어디지? 이렇게 찾으시는 분이 되기를 바래요. 보통 어떻게 합니까? 눈을 뜨면 핸드폰 어디지? 핸드폰 떠서 보고 싶은 거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가죠. 그러지 마시고 말씀을 눈앞에 두는 것으로 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을 뜰 때 말씀을 눈앞에 두시고요.
눈을 감을 때 아이 표현 이상해. 눈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말씀을 눈앞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의 말씀 바른말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여러분의 경건한 삶의 원동력이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여러분 살 수가 없고요. 아무도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어 그러면 기도하고 오늘 말씀을 마칠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참 하나님께서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는데도 어 경건한 백성으로 자라지 못하고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다른 교훈에 우리 귀가 가렵고 또 우리 귀가 그쪽으로 향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또 새롭게 정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리 눈앞에 말씀을 계속 주시고 또 그 말씀의 맛을 제대로 보게 하셔서 우리가 정말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히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게 하여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불신하거나 그리고 대항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에 정말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주의 백성들 주의 청년들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