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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디모데전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딱 두 구절 나눌 건데요. 디모데전서 6장 1절과 2절 이렇게 두 구절을 통해서 어 몇몇 청년들은 아 부담감이 확 느껴질 수 있는 제목입니다. 직장 상사를 리스펙하는 방법. 예. 직장 상사를
리스펙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 한 사람이 평생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몇 시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한번 어, 추측해 보시겠어요? 한 사람이 평생. 평생이라고 하면 이제 어 제약이 없으니까 25세에서 60세로 통계를
낸 거예요. 25세에서 60세로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일할 때이 정도 시간을 일한다라고 계산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몇 정? 몇 시간 정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3만시간. 아, 조금 업. 4만. 4만. 조금 더 업. 6만. 5만. 5만. 예.
5만하군요. 네, 5만 아닙니다. 6만도 아닙니다. 8만 시간이라고 얘기를 해요. 8만 시간. 그래서 이거를 연으로 그러니까 한 해로 계산을 해 보면 최소 27년 이상 정도 된다고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일만 한다고 했을 때도 27년간 일을 한다. 그것 65세로 계산 아, 60세로 계산한 거니까 어 만약에 70세까지 일한다고 하면은 훨씬 더 많이 일을 할 겁니다. 적어도 30년 정도 일을 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 일하는 시간이 그냥 사는데 필요한 돈을 버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여러분이 믿는다면 약 30년의 인생이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렇죠? 어, 미안하지만 60세에 우리가 죽는다라고 가정해 보시면 어,
인생의 절반을 우리가 허의한다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인생의 절반을 단지 돈 버는데만 쓰는 시간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 구원받고 나서 성인이 돼서 구원을 받았다라고 생각한다면 구원받고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사실은 돈 벗는데 쓰고 아무것도 가치가 없는 일에 우리가 허의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음. 특별히이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가서 어 성도들이 모든 하는 일에 있어서 진리에 따라서 하도록 가르쳐라라고 했는데 여러분의 직장 생활이 진리를 따라서 사는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단지 돈 버는 것밖에는 관련이 없다면 사실이 직장
생활을 통해서이 인생에 한 절반되는 그 시간 동안 여러분들이 진리에 따라 사는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어 우리는이 노동에 대해서 그렇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라는 거예요. 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노동이 죄가 있기도 전에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신성한 소명이다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 죄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창조하시고 각각 그 사람이 일하게 하셨어요.이 만물을 다스려라고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자손을 낳고 계속해서 번성하라. 그러니까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분명히 그 안에 포함이 됐던 겁니다. 타락은 그 일을 노동을
수고롭게 만들 거지 노동 자체가 없었는데 타락해서 있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맞죠 여러분? 네. 땀을 흘려야이이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이 노동의 수고로움이었고 또 자녀를 낳는데 고통을 더하신 것이이 죄에 대한 대가였지. 어, 잉태하고 그러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자체가 죄의 결과는 아니었다는 거죠. 그리고 땀 땀흘리고 일하는 것 자체가 죄의 결과는 아니었다라는 겁니다. 사람은 노동이라는 아주 신성한 소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어, 그것이 왜 신성하냐?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담아내는 일을이 땅으로이 땅에서함으로써 하나님 모습을 반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노동은 기본적으로 신성한 소명이다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부패한 사람은 그 신성한 소명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그 신성한 소명을 이행할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이 이 노동의 순기능을 이행할 능력을 상실한 거죠. 예.이 타락한 인간은 그렇게 상실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가운데 계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구원받으신 분들일 거예요. 구원받은 우리는 그
노동의 순 기능을 회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하실 때에이 노동의 순 기능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라는 거죠. 단지 나의 능력과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지혜로 우리는
이제이 노동의 순 기능을 회복시키고 다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어 종교 개혁 이전에는이 노동이 노동이라는 소명에 대해서 성직자에게만 해당된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노동은 성직자들만 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이 가져온 변화 성경적인 회복은 무엇이냐?이 이 소명이라는 것 보카치오라고이 라틴어로 말을 하는데 보카치오는 모든 성도에게 해당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 일체가 죄가 아닌 이상 나는 마약거래를 하고 있어요. 뭐 이런 거 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신성한 소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어 디모데전서 6장 1절에서 2절은 어 이러한 신성한 소명을 우리가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특별히 일하는 것보다는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따라서이 복음에 따라서 일할 때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합니다. 특별히 상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과 상전의 관계에서 어떻게 상전을 대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1절은 일반적인 명령과 그 이유를 얘기하고 있고요. 2절은 상전히 믿는 경우 어
특별한 경우죠. 특별한 경우의 명령과 그 이유를 각각 다루고 있습니다. 어, 지금이 본문에서 가정하고 있는 종과 주인의 관계는 오늘날 여러분 직장에서 만나는 상사와 여러분의 관계로 이렇게 정확하게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여러분 주인이 여러분들을 여러분의 상사가 여러분들을 마음껏 그렇게 다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 그래서 다 조금 같지는 않아요. 그러나 많은 경우에 비슷한 점들이 참 많습니다. 음. 과거의 주인이 종에게 할 수 있었던 어떤 권위가 있었잖아요. 권위를 가지고 무언가 지시에서 일을 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직장에 있는 사장님이라든지 혹은 내 바로 위에 있는 상사를 통해서 어떤 일을 지시받죠. 그리고 그 권위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것을 이행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여러분 직장 생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 그니까 회사에도 제도라는게 있습니다. 사람이 세운 제도지만 분명히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순종해야 한다라고 분명히 말을 합니다. 왕 총독뿐만 아니라 상전들에게도 순종해야 된다라고 베드로가 말을 했습니다. 음. 일터에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상전에게 특별히 진리에 따라서 대할 때에이 하나님의 진리가 여러분으로 인해서 비방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 받게 하도록 상사를 대하는 방식이 있다라는 거죠. 여러분이 어떻게 상사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가 명예롭게 되기도
하고요. 부끄럽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그 영광이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거죠. 그니까 여러분이 직장 상사를 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여러분 매일 출근하시는게 아니고요.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출근하고 있다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물론 현장에 나가 보시면 아 이런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야 돼라는 생각이 많이 드실 거예요. 저도 2년 동안 제약 경업을 해 봤지만 어 한 꽤 높은 직급이었는데 어 과장이었나 뭐 하여튼
하여튼 많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아침마다 출근하면 항상 너 교회 다니지 그러면서 와 보라 그러면서 이제 교회 관련된 비디 비디 뉴스 이런 거를 보여 주는 거 저한테 그래 가지고 이거 보라 그러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 다 이래 이러면서 저한테 계속 비방하는 일을 매일매일 해서 저는이 교회 안 다니는데요. 뭐 이렇게 했는데도이 이분이 이제 교회에 큰 상처가 있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어쨌든 제가 목사님 아들이기도 하고 뭐 교회도 다닌다고 하고 교회 다녀서 술도 안 마신다고 하고 그러니까 찍힌 거죠. 그래서 계속 불러다가 그렇게 이제 하나님 이름을 가지고 비방을 많이 했었는데음 이렇게 노골적으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 근데 여러분들 회사에서 아마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으실
텐데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드높이는 방식이 있다라는 겁니다. 오늘 분명히 그것을 배우고 다음 주에 꼭 실천해 보기를 바래요. 첫 번째로 1절입니다. 어, 제가 먼저 1절 본문을 읽겠습니다. 무릇 멍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복음은 자유인이나 종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다라고 분명히 말을 합니다. 동등하다고 얘기를 해요. 어, 그런데 어, 복음이 우리가 그렇게 동등하게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동등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이 세상에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질서를 다 무너뜨려도 된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복음은 하나님이 권세를 세우셨으니 그 권세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굴복하라라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분명히 그 권세에 순종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다 동등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수능해야 되는 것은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마땅히 취해야 할
취해야 될 태도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반드시 어 정치 권세라든지 아니면 여러분 직장에 있는 권세자들들이라든지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권세에 수능할 필요가 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또 존중하는 마음을 품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1절에 있는 것처럼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라고 지금 이야기하는데 앞에 과부도 존대하라고 돼 있었고요. 그리고 잘 다스리는 장로도 공경하라고 했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공경의 대상이 나와요.
바로이 종 자기 상전들을 말합니다. 자기 상전들.이 이 명령의 대상은 지금 멍예 아래 있는 종들이라고 하는데 마치이 낙귀나 소가 멍에를 매고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던 것처럼이 당시의 종들은 주인이 시키는 그런 명령 아래에 굴복해야만
했던 거죠. 어 넓게 보면 여러분들도 직장 생활할 때에 그렇게 얽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어 나 오늘은 12시에 출근해야지 이렇게 할 수 있나요? 안 되죠. 얽매어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어 나는 오늘 그냥 회사 가서 일 하지 말고 게임해야지 이렇게 할 수 있나요? 안 되죠. 어 직장 상사가 오늘까지 이거 해 놓으세요라고 했는데 싫어요. 이렇게 할 수 있나요? 안 되죠. 직장에서 여러분 얽매어 있는 거예요. 그렇죠? 어, 과거에이 여기 본문에
나와 있는 종들은 삶 자체가 얽매어 있었을 겁니다. 몇 시에 일어날지,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든 것들이 다 주인에게 얽매어 있을 거예요. 어떤 주인들은 종이 누구랑 결혼해도 되는지 이런 것들도 다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들은 직장에서 그 정도의 통제를 받고 있지 않아요. 그렇죠? 그런데 여전히 여러분이 계약할 때 어 노동
계약을 할 때에 계약한 사항 안에서는 여러분이 억제되어 있다라는 거죠. 매어져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멍예 있는 종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한번 얘기해 볼까요? 나는 종이다. 나는 직장의 노예다. 너무 너무 우울하게 얘기하는데. 자, 그러나 그 직장의 노예이기 이전에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노예죠. 그렇죠?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해야 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 상전들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기 상전들을 공경하는 것. 어, 인간은 본성적으로 권위를 싫어해요. 권위를 싫어합니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싫어합니다.
여기 남성들 있지만 저를 포함해서 남자들은 1절만 하는 걸 좋아합니다. 어, 이것 좀 잘 치워 줘. 이건 끝이에요. 이게 왜 안 치워졌는데 왜 안 좋았는지 내가 설명해 줄게. 이러면 벌써 귀를 다 닫고 있어요. 그렇죠? 안 듣고 싶어. 그냥 단순하게 짧게 뭔가 원하는 걸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막 길게 설명하는 걸 남자들은 안 좋아합니다. 어, 권위에 이렇게 굴복하는 걸 안 좋아한다는 거예요. 교회에 왜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지 아세요? 권위에 반항적이라서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권위에 별로 굴복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군대 같은데 넣어야지 이제 어쩔 수 없이 하지. 어, 보통은 이렇게 다른 사람 말 듣는 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데 인간이 그래요.
인간이 본성상 누군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 직장에서 그래서 상사가 아무리 나에게 친절하게 그리고 그 사람이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권위가 있어서 나한테 얘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게 그렇게 기쁘게 들리지 않아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사실은 그것을 수능하고 존중하고 하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우리가 인간의 본성상 그런데 더 문제는 직장의 상사들이
그것을 아주 젠틀하게 나이스하게 나한테 얘기하는게 아니라 어 악한 모습으로 할 때가 많다는 거죠. 어 그렇게 권위를 휘두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이 말씀에 있는 것처럼 마땅히 그들을 공경할 자로 대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어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권위는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직장 상사가 선한 사람이든 혹은 악한 사람이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조건조건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는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는 자발적으로 우리가 순종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오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인간 상사들, 우리 위에
세워진 인간 상전들을 마땅히 공경하라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그분들께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1절 말씀에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라고 말을 했어요. 어, 순종의 대상이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라고 하지 않았고요. 자기 상전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순종의 영역은
굉장히 광범이에요. 범사회라고 얘기를 합니다. 예. 범사해라고 얘기를 해요. 1세기 로마 시대 주인과 종의 관계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범사라는 것이 확실했을 겁니다. 주인이 너 이거 해 저거 해라고 하면은 저는 이거 원래 하던 종이 아닌데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게 아니었어요. 진짜로 삶 자체가 주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하라는 거 무조건 다 해야 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터에서는 범사가 조금 제한됩니다. 그렇죠? 어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너 내 차 닦 이러면 닦꿔야 되나요? 군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보통 직장에서는 그렇게 안 하죠. 예.
나에게 주어진 업무 외에는 안 시키는게 정상입니다. 그러니까이 범사가 조금 제한되긴 해요. 이때이 당시보다는. 그러나 여전히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 무엇이냐? 여기 말하고 있는 마땅한 공경을 보여 줘야 된다라는 겁니다. 마땅한 공경.이 이 마땅한 공경이라는이 단어가 겉모습만 그럴듯한
공경이 아니고요. 속에서 오어나오는 진심어린 존중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직장 상사가 눈앞에 있을 때에 그냥 그 눈앞에서만 살살 아유네 안녕하세요 뭐 이렇게 친절하게 막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처럼 그렇게 눈속임하면 안 된다는 거죠. 여기 말씀이 요구하는 것은 여러분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그 마음으로이 사람을 존중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상사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다 순종할 책임은 여러분에게 없어요.이 직장 생활의 어떤 거래된 개혁이 계약 관계에 따라서 여러분 그것들이 좀 제한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요구할 때에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뭐 술을 마셔라는 부분도 있었고 또 이제 거래처에 가서 뭔가
이렇게 불법적인 일들을 하라라는 것을 회사가 시키기도 했었는데 제가 좀 담대하게 거절을 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해야 될 때도 분명히 있다라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은 우리가 조금 제한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존중하는 마음 자체는 제한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진심돼야 되고 그리고 항상
그렇게 성실하게 그들 앞에서 일을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지금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 예차영지 어때요? 직장 사장님 생각할 때 진심어린 존중이 이렇게 흘러나오나요? 네라고 지금 아주게 존중할 거리가 100이 있다면 그중에
1밖에 안 보일 수도 있거든요.이 사람은 정말 존중할 거리가 그래도 회사를 여기까지 이렇게 이끌어온게 어디냐라고 생각되는게 아 그래도 인정할 만하다 이렇게 생각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이제 그 부분을 우리가 진심으로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예. 그 사람의 비인격적인 모습 그리고 불법적으로 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 존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 존중할 수 있는 거리가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이 공경의 태도가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야 된다라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주는 사람 그리고 정말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상사들 이렇게 존중하는 거 어렵지 않아요. 그렇죠? 근데 문제는 막 거칠고 막 횡포를
부리고 그리고 인격적으로도 정말 볼 때에 너무너무 싫고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존중을 보여야 한다는게 굉장히 어렵다라는 거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맡겨진 업무를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여기 어 골로새서 3장 2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그러니까 우리가 직장 상사를
존중한다면 그리고 직장에 있는 사장 뭐이 오너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일한다라는 것은 존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한다는 거거든요.이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하듯이 충성스럽게 일한다라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 여기 제일 중요한 말씀이 나와요. 1절 마지막에 나오는데이는 이후에 이렇게 나옵니다.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 제가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 하루에 20 군데 병원을 꼭 들려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누구도 그렇게 안 했었습니다.
예. 누구도 그렇게 안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냥 고지곧 그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들렸던 거예요. 그래서 그 우리 그 우리 부서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일을 저한테 시킨 분도 나중에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뭐 이렇게 저한테 얘기도 하시고 했었는데 그냥
시킨 이게 시킨 거니까 꾸준히 이렇게 해야지라고 그냥 쭉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날 정말 하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또 얻게도 하셨고 그러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처럼 하루에 20군데씩 가야 돼라고 이렇게 칭찬을 받게 하셨었어요. 그래서 아 이게 평소에는 참 어리석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참 바보 같다. 너는 왜 그렇게 하냐? 뭐 계속해서 그냥 쉬다가 몇 군데만 가면 되지. 막 이런 식으로 얘기도 했었고 심지어 저한테 일을 시킨 분도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어 결국에는 성실하게 하나님 생각하고 일을 하니까 거기서 하나님 이름이 높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 네. 저희 핸드폰이 저한테 얘기를 하네요. 그리고 어 술도 먹지 않겠다라고 계속 거절했을 때는 뭐 교회 다닌다고 안 마시냐 뭐 엄청난 핍박들이 있었고 뭐 엎드려 뻗쳐라 막 이런 것들도 막 했었는데 결국에는 결국에는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 그래 구원받고 정말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 그렇게 해야 돼라는 이야기들을 하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처음에는 뭐라 그랬냐면 야 나도 성가대야 근데 마셔 막 이러고 막 그랬었거든요. 근데 이제 나중에는 그렇게 하나님 이름이 높아시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 그리고 여러분들이 정말로 불합리하고 비인격적인 상사를 존중한다는 것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안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훈이 여러분 안에서 높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표준 세 번역으로는 1절 하반절이 이렇게 번역이 됐어요. 그렇게 하여야 하나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에 욕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 아마 여러분들의 직장 동료들 믿지 않는 동료들은 상사 욕도 많이 할 거예요. 그리고 뭔가 불람리한 일을 시키면 그 앞에서는 아니지만 상사가 사라지면 쟤 또 저런다 막 이런 식으로 막 이제 얘기하고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들을 할 겁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해 봤으니까 그런 경험들이 있어요. 장사가 있으면 막 다 막 엄청 이렇게 위 존경하는 것처럼 표현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화장실에 가면은 막 이새끼 안 좋은 얘기하고 막 이렇게 그런 얘기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어 그런 식으로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혹은 성실하지 않게 일한다면 결국에는 그것이 하나님께 욕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고 있다라고 그들 앞에서 고백을 했었는데 결국에는 너희가 따르는 하나님의 교훈도 결국에 이런 삶을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식으로 우리가 욕을 듣게 된다라는 겁니다. 어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직장 가운데서 분명히 핍박을 받을 수도 있고요. 욕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어 성실하게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에 있는이 동료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한 비난을 내가 오래 참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아름답다라고 하셨거든요. 애매히 받는 고난. 우리가 찾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하셨고요. 분명히 상으로 보상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참아내는 것이 하나님을 영어롭게 하는 길인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직장 상사를 공경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서 받는 고난이 있다면 합당하지 않는 자세로 일해서 받는 그런 어려움들이 있다면 불성실하게 업무를 이행함으로써 받는 비방과 핍박이 있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이 더럽히는 일이 될 거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고 있다라는 여러분의 고백이 결국에 하나님께 욕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더 우리의 위에 있는 권세들을 존중하고 또 성실하게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어, 지금 오늘 직장인 초대 집회라고 해서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상사가 같이 왔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제 분만 시간이 됐는데 여러분과 같이 분반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이 친구 교회 다닌다는 거 듣고 나이 교회 따라왔어요라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이 이 친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거예요.이
친구가 다니는 교회 나는 안 다니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렇죠? 여러분들 옆에 있는이 청년들에게도 너무 부끄럽지 않겠어요? 예. 너무너무 부끄러울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된다라는 거죠. 어 그런데 여러분 제가 복음 상담을 많이 해 보지만 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있는 그리스도인 때문에 나는 하나님 믿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를 해요. 내가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이 성실하지 않고 그리고 막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교회 안 다니고 싶어. 이런 식으로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무엇이 예수님 믿기에 정말로 어려운가요? 계속 복음을 전하면서 왜 이렇게 잘 못 받아들이세요? 뭐가 이렇게 믿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세요라고 하니까 저를 괴롭히는 직장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보다 이게 크다라는 거죠. 그니까 여러분들이 일하는 그 시간 동안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요. 아니면 거부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일을 매일매일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겁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오늘이 말씀에 따라서 상사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면 여러분들은
진리의 말씀, 바른 교훈을 직장에서도 선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 거다라는 거죠. 어, 혹시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2년 정도 하고 이제 그만두면서 아, 내가이 일을 그만두면 다시는이 직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데 같이 일했던이 동료들에게 한 번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한두 명 정도를 따로 불러다가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어, 그 중에 한 명은 지금도 계속 연락 중에 있는데 어, 그래도 내가 믿는 사람인데 내가 그리고 정말로 복음을 믿고 있는 사람들인데 사람인데 여기 있는 사람이 나를 2년 동안 받는데도 한 번도 나를 통해서 복음을 듣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싶어서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제가 그때 품었던 거죠. 어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마음들을 갖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매일 여러분들은 직장에서 입술을 열어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말하고는 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을 통해서 분명히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가 드러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전시라는 말 알죠? 상품을 전시한다. 선전이라는 말로 알 겁니다. 상품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 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전시하고 있고요. 그리스도를 선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직장에서 아,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삶을 통해서 매일매일 나타내고 있는 거고요. 저 사람은 정말로 그리스도의 교훈을 이렇게 따르고 있는 거구나. 저 사람이 따르고 있는 교훈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고 그 교훈은 그리스도라는 분이 주셨구나라는 것을 여러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인내하시고 그리고 온유하게 사람들을 대하시고 친절하게 대하시고 특별히 여러분 위에 있는 직장 상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을 넘어뜨리려고 총리였던 다니엘, 그러니까 자기 나라 백성도 아닌 포로로 잡혀왔는데 감히 우리나라의 총리가 된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든이 다니엘을 끌어내리려고이 대신들이 일어섭니다. 그래서 어
다니엘을 책잡기 위해서 조사하는 거죠.이 다니엘이 잘못하고 있는게 무엇인가? 그런데 종교 외에는 아무것도 책잡을게 없었다고 써 있어요. 예.이 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이 종교적인 이유 말고는 다니엘이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할 만한게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 직장인이 딱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매일매일이 아마 전쟁 같을 거예요. 어 그런데 그렇게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내서 정말 다니엘이 결국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 왕분을 포함해서 그 모든 대신들에게 드러내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렇게 직장 가운데이 진리를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게 아니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오늘도 그냥 엑셀 몇 개 했고 PPT 몇 개 만들었네. 이게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 정말로 신성한 소명을 매일매일 감당하고 있는 거다.
어 직장인 말고 대학생들은 어보는 상사가 없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의 뭐 교수님도 될 수 있고요. 여러분이 알바한다면 알바 사장님이 될 수도 있고 여러분들도 매일매일 신성한 소명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은 직장 생활 하기 전까지 공부가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소명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자, 이제 상사가 믿는 경우예요. 믿는 사람인 경우입니다. 어, 여러분이 취업을 했는데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유평교의 성도다. 그러면 1번 아유, 대충해도 되겠지 뭐. 형제님인데 좀 봐 주시겠지. 이게 여러분의 태도고요. 두 번 첫 번째로 갈 수 있는 태도. 어, 직장 상사가 유병규 성도님이면 당연히 대충 대충에도 한 형제니까 봐 주시겠지. 어, 조금 내일 늦게 출근할게요. 해도. 아, 그래. 형제 이렇게 하겠지? 이런 생각이 이제 드는 거죠. 두 번째로는 아, 형제이면 더 잘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 근데 1번으로 가는 마음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조금 나태해지고 게으르게 그러니까 덜 잘해도 되겠다라고 마음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라고 예상이 되시는 거 없어요.
어,이 몇 분 계시네요. 맞습니다. 어, 그럴 거 같아요. 그죠? 형제니까. 우리 교회 형제니까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이 이제 드는 거죠. 그런데 여기 2절 말씀에 보시면 더 잘하라고 되어 있어요. 2절 보시면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음. 불문 같은게 있는데요.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을 고용하라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킬 거 시킬 수 있거든요. 편하게 시킬 수 있거든. 어, 자네 이것 좀 해이라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믿는 형제를 고용하면은 이제 그렇게 말을 못 하겠는 거죠.이 이렇게 상사 입장에서도 그렇게 시키기가 조금 부족한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그런 마음도 있어요. 어. 정당하게 상사가 지시를
내리는 건데도 형제니까 약간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죠. 근데 또 형제 입장에서는 내가 형제인데 어떻게 저렇게 지지할 수 있어? 이런 마음을 품을 수가 있는 거예요. 정당하게 계약을 하고 내가 일한 것대로 보수를 받는데도 나는 그렇게 지시를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게 죄성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성들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주인이라면 더 잘해야 된다라고 특별한 명령을 여기 주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주인과 종의 관계가 둘 다 믿는 경우가 나와요. 바로 빌레몬과 오네시모였습니다. 어 빌레몬은 주인이었고요. 오네시모는 종이었죠.
그런데 바울은이 오네시모를 어 빌레몬을 배반하고 도망간 종이었잖아요. 그런데 다시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를 용서하고 받아주되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라. 그니까 종처럼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라고 생각하고 대하라라고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러면 반대로 오네시모의 경우는 어떨까요? 오네시모가 다시 주인인 빌레몬으로 돌아가면서 난 이제 종이 아니야. 난 이제 형제야.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됐었나요? 아니죠.
어 바울은이 빌레몬에게 너는 여전히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자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너는 여전히 육신으로 봤을 때도 상관이고 주 안에서도 너는 여전히 상관이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오네시모의 경우에서도 나는 형제니까 이제 종처럼 대하지 마가 아니라 나는 믿는 주인을 둔 사람으로서 더 잘해야겠다라는 마음을
품어야 했다라는 겁니다. 음. 믿는 상조는 종을 자신을 섬기는 성도라고 생각을 해서 주 안에서 더 잘 대해 줘야 됐고요. 반대로 어 믿는 종도 믿음 안에 있는 주인 자기 그 주인에게 성도라고 생각해서 더 잘 돼야 했다라는 거죠. 더 잘 섬겨야
됐다라는 겁니다.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면은 안 됐다라는 겁니다.이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에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그러니까 믿음 안에 있다고 해서 덜 잘해도 된다라는 성경 구절은 없어요. 오히려 더 잘해야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욱 잘해야 된다. 음. 여러분이 뒤에 교회
주차장에서 잔디밭에서 어 울타리가 넘어져서 제 차도 긁켰는데 어 이렇게 누군가 누군가가 한게 아니라 그냥 뭐가 넘어져서 그긴 건 어쩔 수 없는데 예를 들어서 예찬 형제가 미안합니다. 앞에 있어서 예를 들는데 제 차를 박은 거죠. 제 차를 박은 겁니다. 그러면 예찬 형제는 어떤 마음을 품어야 될까요?
감사함으로 어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아이 뭐 형제끼리 뭐 이런 걸 또 뭐 보험 처리하시 그냥 넘어가시죠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될까요? 아 그러니까 사고를 당한 제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볼게요. 제가 목을 잡고 나온다. 만약에 그냥 툭 통 톡 이렇게 살짝 접촉이 일어나는 것
뿐인데 제가 뒷목을 잡고 나오면서 예제 나 응급차 좀 불러 줘. 이렇게 하면서 미안한데 내가 조금 몸이 너무 안 좋은 거 같다 그러면서 한 열흘 일일간 입어하겠다. 뭐 이런 식으로 이제 얘기하는 거죠. 이거 갑질인 거죠. 그렇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죠? 근데 이제 반대로 예찬 형제가 접촉 사고에 정말 가벼운 접촉 사고를 일으켰는데 나오면서 마음으로라도 아
이거 뭐 형제끼리 이런 거 갖고 뭘 이제 이런 걸 물어 줘야 되나? 그냥 넘어가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라고 하면은 이것도 안 좋은 거잖아요. 그렇죠?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잘해야 된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마찬가지로이 믿음 안에 있는 상전이라면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 음.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 어떻게 보면 회사 같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학생의 교사가 매번 회의를 해 가지고 같이 일을 하고요. 주일학교 교사들도 또 청년의 임원들도 같이 모여서 마치 회사처럼 일을 해 나갑니다. 그런데
서로 약속한 것들 잘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어, 서로 내가 안 맡으려고 하는 그런 모습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게이 주 안에서 같은 형제 자매끼리 더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교회 안에서 무보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이
믿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들이니까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여러분 품으셔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럼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2절 이보시면 이유를이는 이유로 이렇게 나옵니다.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어, 내가 성실하게 존중하면서 일하는 대상, 유익을 끼치는 대상이 믿는 형제 자매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더 잘해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받는 자, 어, 나를 통해서 사랑을 받아야 하는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겁니다. 어, 성경은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거듭난 사람들에 대해서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는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니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했을 때 이것이 꼭 포함이 됩니다. 마음에 거짓이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본성적으로 거듭났다면 분명히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잘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요한일서 3장 10절에서는 이렇게 경고했어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니까 형제 사랑이 여러분이 거듭났다라는 증거라는 거죠. 그런데 내가 직장 안에 믿는 상전이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안 한다. 그 구원받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더 잘해야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니까 사랑해야 되는 대상이니까 더 잘해야 된다. 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그러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계명 뭐죠?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자유롭지만 서로 사랑하라라는이 의무에서는 아무도 자유롭지가 않아요. 어, 이렇게도 말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보면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니까 여러분들은 서로서로에게 종인 거예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 종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 육신의 종, 그러니까 상전이 있고 나는 그 안에 종으로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 안으로 안에서 한 형제 자매다라고 한할 때에 우리는 더욱더 그래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모습을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보여 줘야 될 책임이 있다라는 겁니다. 믿는 상전을 더 존중하고 더 성실하게 섬겨야 하는 이유는 그가 뜨겁게 사랑해야 될 대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여러분, 저도 일터에서 일을 해 보지만 이기적으로 일하는게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뭐 연휴 언제 쉴 거냐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뭐이 일 누가 할래? 이러면 다 조용하고 뭐 카톡으로이 일 하실 분 있나요? 처럼 아무도 말 안 하고 이런게 이제 직장 문화잖아요. 저도 경험을 해 봤는데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앞장서서 누가 희생을 해야 되는 거고 근데 아무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교사분들 아마 아실 거예요. 누 누구도 담이면 안 하고 싶어 하고 누구도 뭐 그런 것들을 담당해서 뭐
더 수고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어 뭐 그런 얘기 많이 들어봤어요. 어 이거 하면 5만 원 더 봤는데 내가 이거 왜 하겠냐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니까 그런 일들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일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특별히 직장에서 우리가 믿는 상전을 대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기준은 형제 사랑의 기준으로 높여야 된다는 거죠. 형제 자매 사랑의 기준으로 높여서 섬겨야 된다라는 겁니다. 로마서 12장 10절에 보시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회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먼저 사랑해야 됩니다. 더 사랑해야 되고요. 더 존경해야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상전이 믿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게 하시라라는 겁니다. 어, 좀
억울한 분들도 있어요. 그럼 상전은 상전은 뭐 아무것도 명령이 없나요? 성경이 상전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나요? 아닙니다. 골로새서 4장 1절에 보시면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항상 공평하게 항상 공의롭게 종들을 대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큰 상전이신 하나님께서음 육신의 상전들이 어떻게 종들을 대하는지 감찰하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공정하게 바르게 대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아마 상전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당할 때가 종종 있을 겁니다. 그리고 불리한 일을 당할 때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상사로서 여러분에게 가지고 있는 권위를 어 이거는 좀 불합리하다라고 느껴지도록 그렇게 부릴 때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면 오늘 주어진이 명령에 여러분들이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거리가 생기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상전은 하나님께서 감찰하실 겁니다. 상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거예요. 여러분들은이 상전을 섬기는 자로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맡겨진 일들에 충성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오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여러분들은 존중하는 마음과 성실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하듯하라라고 골로새서 3장 23절에 말을 해요. 여러분 직장 상사 꼴보기 싫지만 여러분 사실은 그 사람을 섬길 때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일을 하셔야 됩니다. 어
요셉은 바로를 섬기는 총리였죠. 어, 발언은 그렇게까지 좋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어떻게 성실하게 거기에서 섬길 수 있었느냐? 엄청 열심히 하거든요. 나중에 보면은이 왕국의 재산을 다 뺏어서 바로 앞으로 다 가져오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래서 정말 무섭게 일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왕이 볼 때는 이런 총리가 없어요.이 이렇게 성실하고 좋은 총리가 없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일을 했느냐라고 생각했을 때 요셉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왕을 섬긴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직장상사를 섬길 때에 마음을
다하여서 죽게 하듯이 성실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속임하지 마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들 보고 계시니까 성실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마지막으로 여기 2절 마지막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이 나와 있어요.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이 이 본문을 마무리하는 두 개의 명령이고요. 가르치다하고 권하다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가르치다는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거라면 권하다라는 것은 그 정보를 삶에 직접 적용하도록 계속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키는 거죠. 어,
가르침은이 3절에 나와 있는데 다른 교훈이 아니라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고 말할 수 있고요. 권하는 것은이 3절에 나와 있는 따르다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어, 그러니까 가르치는 것은 내용과 관련되 있는 거고요. 권하는 것은 그 내용을 순종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 그리고 둘 다 현재형 명령어인데요.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속해서 순종하도록 설득하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이 말씀이 2절 끝에 붙어 있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3절을 시작하는 본문이다라고도 얘기를 해요. 어, 이것이 2절에 붙어 있을게 아니라 3절에 붙어 있어야 된다라는 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음,
실제로 이것들이 해당하는 것은 디모데 전서에 나와 있는 모든이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1절, 2절도 하나님의 교훈이 맞으니까 저는 2절에 붙어 있어도 큰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 그리고 이것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매일매일 일상 가운데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이 가르침이 언제나 필요하다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오늘이 말씀을 들으면서는 여러분, 아, 그래 월요일 날 출근하면 참고 다시 해 봐야지. 내가 그 상사를 좀 존중해 봐야지. 이런 마음을 어쩌면 품으실 거예요? 오늘 나가면서 까먹지 않으시고이 말씀을 간직했다가 월요일 날 적용해야겠다라는 결단을 지금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되면 달라져요. 화요일 되면 다시 원상복기. 오늘 아침에 저도 말씀 시간 교회 생활 같이 나누면서 어떤 형제이 그러더라고요.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서 기도하신데요. 하나님 오늘도 어
하나님의 그 자녀처럼 일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30분 후에 업무가 시작되면서 다 살아신대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또 기도하십니다. 또 기도하시라고. 점심 시간에도 기도하시고 저녁 시간에도 기도하시고 생각이 계속 바꿔지면 사라지면 다시 기도하시고 그니까이 반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일이 채바퀴 도는 것처럼 시작된다라는 얘기가 하거든요. 일이 채바퀴 도는 것처럼 한다. 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이 주말이 되고 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계속 채박이 놀듯이 일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멈추고 오늘이 배운 교훈들을 여러분 머릿속에 집어넣고 가르치고 그리고 실제로 이행하도록 따르도록 권하는 노력들을 여러분 매 순간 하셔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하셔야만 어 늘 나쁜 쪽으로 변해 가는 나의 그 본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그러한 나의 삶을 붙잡아 줄 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우리는 가만히 놔두면 불평, 불만, 원망, 비방을 쏟아내기가 쉬운
일꾼들이고요.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게으르게 일하면서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릴 수 있는 노동자들이 되기가 참 쉽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복음이 무익하다라고 사람들에게 27년 동안 보여주는 그러한 나쁜 증인이 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늘
다시 가르치고 다시 권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다시 가르치고 다시 권해서 정말 직장 가운데 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러한 일꾼이 되게 해 달라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 우리 직장에 있는 저 그리스도인 때문에 나는 복음을 받아들이기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또 반대로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있는 그리스도인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여요. 직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되고요. 그렇게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일꾼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장에 있는 동료들이 여러분의 삶을 보고 여러분이 직장 상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업무를 성실하게 누가 보지 않더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궁금하다. 정말 당신이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의 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라고 그렇게 고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교훈이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의 직장 가운데서 드높여지기를 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절반 가까이 되는 그 수많은 시간 동안 여러분들의이 직장에서 보내는 모든 어떤 일들이 정말 가치없게 흘러가지 않기를 어 정말로 복음에 합당한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정말 많은 시간 동안 직장에서 하나님 맡겨 주신 신성한 소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그 일들을 할 때에 수많은 세상 사람과 똑같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고 싶은
그러한 욕구도 굉장히 많고 시험과 유혹도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 위에 있는 직장 상사들은 우리가 그렇게음 불성실하게 그리고 잘못된 태도로 일하게 만들도록 어 그렇게 만드는 역할을 자주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눈앞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듯이 순전하게 일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항상 일하면서 내가 그리스도를 내가 일하는 모습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고 그리고 전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욕하거나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그러한 역사를 주님께서 일으켜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이후의 시간 나누는 시간을 주님께 또 의탁을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