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4) (히 11:13-22)

최종혁 · 2026.08.01 · 히브리서 11: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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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히브리서 11장 보시겠습니다. 신약성 히브리서 11장 오늘 본문 말씀은 어 13절에서 22절이고요. 믿음의 대를 따르라라는 제목 어 설교의네 번째 시간입니다. 어브라함을 통해서이 참된 믿음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혹은 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별히 시련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좀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이 이제 8절부터 시작이 돼서 22절까지 이어지는데요.

어. 네. 지난 시간에 들었던 것은 이미 다 잊으셨을 거기 때문에 한번 예. 8절부터 22절을 전체 말씀 한번 읽어보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어, 히브리서 11장 8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았음이라. 어 믿음으로 살아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인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이는 약속하신 일을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양 찾는 자임을 나타이라. 그들이 나은바 본양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양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내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이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웃건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받은 것이니라.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어 지난번에 8절에서 10절에서는요. 아브라함이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믿음을 나타냈었는지를 어 함께 살펴봤었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었죠. 하나님께서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더 쉬운 선택이 있었어요. 그렇죠? 어, 충분히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선택이 있었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르신 하나님을 믿고 그 부르심에 응답을 했습니다. 순종을 했습니다.

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이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그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라는 말씀도 드렸었어요. 어, 그 상황에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런 것 저런 것들을 아브라함에게 조금 더 알게 하셨으면은 아브라함의 선택이이 순종이라는 것이 더 쉬웠을까요? 어려웠을까요?

쉬웠을 수도 있고 어려웠을 수도 있겠죠. 그렇죠? 차라리 모르니까 더 나을 수도 있고 어 알면은 뭐 내가 더 할 수 있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 어떤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이이 순종이라는 것을 항상 더 쉽게 만들거나 항상 더 어렵게 만들거나 그러지는 않는 거예요.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중요했었던 것은 다 그것을 내가 알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에게 명령하셨다라는 그 사실이었고요. 그것이이 순종에 충분한 이유가 됐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그것이 순종의 충분한 이유가 됐습니다. 어, 그것이 아브라함이 처음에 보여줬던 그런 믿음의 모습이었고요. 어, 그다음부터 그다음에 이제 11절부터 16절인데요.이 말씀을 이제 중간까지만 살펴봤었는데 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줬었던 모습입니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랬을 때 그 믿음이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죠. 그렇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 죽은 자와 같았던 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렇죠? 12절에서 그렇게 표현을 했죠.이 죽은 자 같았던 한 사람이 많은 후손에 조상이 됐습니다. 어, 특별히 여기서 아브라함은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11절에서 그렇게 말을 하는데요. 어, 불가능이 상식인 상황인 거죠. 그렇죠? 우리의 머리로서는 불가능하다라는 답이 나와 있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삶 가운데 드러났고요. 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다라는 것을 알게 하신

거죠. 어, 이제 거기서 이제 오늘 본문 13절로 오는데요. 이제 잠깐 히브리서 저자가 여기서 멈추고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믿음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줘요. 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1절에서 11장 1절에서 봤었던 것처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그러니까이 눈앞에 없는 것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이제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 3절에서는 그것이 이제 과거에 지나가서 볼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그렇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어 믿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어서 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드러나고요. 특별히 성경은 제가 말씀드린 두 번째 경우.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것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사는 것에 대해서 말할 때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런 믿음이었어요. 아브라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그러니까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그 모든 것들이 미래의 것으로 있었을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끝까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삶을 살았습니다. 어. 여기서 특별히 히브리서 저자가 주목하는 건 뭐냐면요. 어, 하나님께서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그것들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특별히 그 세 가지 있잖아요. 땅과 자손과 복에 대한 그 약속들. 그러한 것들이 아브라함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생애 동안에 다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라는 그 점이에요. 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것은 훨씬 뒤에 일인 거죠. 그렇죠?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을 때는 사실은 몇 명 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라고 하신 그 약속의 땅에서 아브라함은 여전히 이방인이고 나그네로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그를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역시 부분적으로만 성취되고 있는

것을 아브라함이 봤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이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삶 가운데서 온전하게 성취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라는 거죠. 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이제 여기 13절에서 16절에서 요렇게 지금 설명을 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볼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이 사람들은 어, 아브라함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 그러니까 사라와 이삭과 야곱일 거예요.이 이 사람들은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양 찾는 자임을 나타내라. 그들이 나온바 본양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양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어 이들이 이들이 믿음을 따라서 살았고요. 믿음을 따라서 산 것뿐만 아니라 믿음을 따라서 죽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이 생애 중에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했으니까 결국은

그 믿음으로 소망하고 있던 것을 현실로서 눈으로 보지 못한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되었을 때 아 이렇게 된 거 보니까 하나님은 없어라고 결론을 내리거나 아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아라고 결론을 내리거나 혹은 하나님은 그 약속은 해 놓고서 그것을 지킬 만한 능력은 없어. 그렇게 결론을 내리거나 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믿음을 따라서 죽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똑같은 믿음을 살아 있었을 때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죽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이 약속의 성취라는 것이 그들의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본 것이 아니었어요. 이들은 멀리서 그것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성취된 것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여기 13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은 환영했다라고 말을 해요. 그렇죠? 그렇게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모습이 그들이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는 셈이었다라는 거예요.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이 땅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그렇게 보여줬다라는 겁니다. 어 이들이 본양을 찾는 자들이긴 한데 그 본양이이 땅 어딘가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었다라는 겁니다. 어 이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들은 실제로이 땅에서 본양을 떠나서 나그네로서 살았어요. 그죠?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근데 그것이 보여줬었던 더 큰 실체가 그들에게 있었다라는 거죠.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이 땅의 것을 바라고서 믿음을 갖고서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모든 것들이

그들 생애 가운데서 다 이루어질 것을 바라면서이 땅에서 무언가를 자기들이 얻고서 누리고 할 것을 바라했던 것이 아니라 더 큰 실체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들이 바라면서 그 하늘 본양을 찾아서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라고 말을 한 겁니다. 어 만약에 만약에 그렇지

않고요.이 사람들이 어이 땅에 어딘가를 본양으로 삼기 위해서 떠들고 있었던 거였으면은 그들의 삶 그들이 살아 있는 그 중에 그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 분명히 그들에게 문제가 됐을 거예요. 어 계속해서이 믿음을 따라서 살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은 거죠. 약속을 받지 못했어도 그들은 그 떠나은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나온바 본양을 생각했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않은 거예요. 어, 실제로 창세기 말씀을 보면요. 그런 장면들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아브라함이 이제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그 종을 보내잖아요. 그렇죠? 그 종을 보낼 때 그에게 신신 당부했었던 것이 뭐냐면은 내 아들을 그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였어요.

어 만약에 자기가 갔는데 거의 갔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어보니까 이제 그렇게 대답을 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이 아들을 거기로 데려가면 안 된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한 겁니다. 왜 그러냐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언약이이 약속의 땅에 있었기 때문인 거죠. 어 나중에

이삭은요이 분노한 애설를 피해서 도망하려던 그 야곱에게 어디로 가라라고 하냐면요. 그 하란에 있는 외삼촌에게 가서 그 딸 가운데서 네가 아내를 취해서 결혼을 해라.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해요. 근데 그러면서 어떻게 축복을 했냐면은 그 하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겠다라고 하시는이 땅을 야곱이 차지하게 될 것에 대해서 축복을 해 줘요. 네가 하란을 갈 건데 그럼 거기서 하나님께서 너한테 축복하셔 가지고 거기서 네가 잘 정착해서 잘 살고 거기서 삶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이 땅을 차지할 것을 이야기를 했다라는 겁니다. 어, 야곱이 하란에서 정착해서 살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었던 거예요. 그 야곱도 그 길을 가면서 하란으로 그 길을 가면서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죠.

그렇죠? 베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을 하면서 뭐라고 했냐면은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요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그 길을 떠났었다라는 거예요. 어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돌아갈 수 없었던게 아니라 돌아가지 않은 겁니다. 다른 이유가 없었고요.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을 하셨고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라고 약속을 하신 거니까 그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약속이 그들이 죽는 날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실은 이들이 찾는 그 본양,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그것이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증언했다라는게 지금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양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이 땅에서는 약속을 받지 못해도 다 받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던 거고요. 외국인으로 살고 나그네로 살아도 괜찮았었던 겁니다. 그렇게 살아도이 믿음을 따라서 죽을 수가 있었던 거예요. 왜냐하면은이 죽음이 바로 그 더 나은 본양으로 그들을 데려갈 것이에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이 모습이요.이 히브리서 저자가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이 참된 믿음의 모습인 거예요.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나온바 본양을 생각해서 돌아가지를 않는다라는 거죠. 더 나아가서는이 참된 믿음은이

땅에 속한 또 다른 본양을 찾지도 않는다라는 겁니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양을 사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요 지금이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적용해서 말을 하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어요. 참된 믿음은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는 겁니다. 참된 믿음은 지금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 않는 거예요. 참된 믿음은 하늘에 속한 것을 하늘에서 누리기를 소망하는 거고요. 지금은 그것을 멀리서 보면서 환영하고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겁니다. 그것이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지금이 히브리서 저자가 말해 주고 싶은 내용인 거예요. 이것을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요렇게 바꿔서 말할 수 있어요. 참된 믿음은 우리가 떠나온 그 죄악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겁니다. 참된 믿음은

지금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기만을 바라지 않는 거예요.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내가 교회 안에서는 이뤄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이 하늘에 속해 있는 그 신령한 복 복을 내가 사모하는 것이 참된 믿음인 거고요. 지금은 그래서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겁니다. 어 그런 자들에게 진정한 복이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16절을 다시 보시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말씀하셨냐면요.이 이후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세요. 그죠? 나는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 그 표현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이 하나님을 다른 신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사람들이 생각했었던 다른 신들, 그러한 신들하고 구분하는 표현이기도 해요. 근데 이것은 하나님께서이 참된

믿음에 따라서 살았었던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살았었던 이들을 존중히 여기시는 그런 표현이기도 하다라는 거예요.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려짐을 하나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겁니다. 어,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거 있을 거예요. 어떤 대단한 사람하고 내가 관계가 있는 거죠. 유명한 사람들 다 알 만한 사람. 그런 사람하고 내가 관계가 있으면 자랑스럽게 그 관계로

나를 소개를 해요. 내가 누구의 뭐예요라고 그렇게 어 이야기를 합니다. 어 반대로 어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면요. 누군가를 소개할 때 어 그 나하고의 관계를 강조해서 그 사람을 높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누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은 그런 효과가 있는 거예요. 어 사무엘상 2장 30, 30절을 보시면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고요.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어 하나님을 그럼 존중히 여긴다라는 건 뭐냐? 결국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에 따라서 사는 건 거죠. 끝까지 죽을 때까지 그 믿음에 따라서 살고 믿음에 따라서 죽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요.

그리고 우리를 존중히 여기신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어이 믿음의 삶이라는 것이요. 세상에서 인정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되기가 쉬워요. 그렇죠? 그리고 사실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내가 뭔가 믿음에 따라서 어 사는 거 같은데 근데 아무도 그것을 몰라 주는 거 같고 그래서 그것이 굉장히 서운하거나 섭섭하거나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어쩌면은 굉장히 좌절이 되고 마음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 근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신다라는 거죠. 믿음을 따라서 죽은 모든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성을 예비하시고 그들을 환영해 주실

겁니다. 어 근데 선교의 선구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헨리 모리슨이라는 사람이 있어요.이 사람에 대한 일하가 굉장히 유명한데 그래서 찾아보면은이 이야기들 조금 조금씩 다 달라요. 그 일화라는 것이 어떤 어 그러니까 예화로서 많이 쓰다 보면은 뭔가 그 포인트를 강조하려고 조금씩 부풀려지거나 좀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게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저도 확실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어 말씀드리는

것은 어 우리가 좀 생각해 볼 부분이 분명히 있어서 그래요.이 헨리 모리슨이라는 사람이 선교사였고요. 아프리카의 선교사였습니다. 한 40년 정도를 그렇게 선교 활동을 하고서 이제 뉴욕이 고향인 거죠. 뉴욕으로 그렇게 돌아갔다라고 합니다. 근데 그 배에 어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가 함께 타고 있었다라고 해요. 어 그리고서이 그 배가 뉴욕에 도착을 하니까 이제 사람들이 엄청나게 그 앞에 나와 있었던 거죠. 왜 나와 있었을까요? >> 예. 대통령이 왔으니까. 대통령이 왔으니까 엄청나게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앞에 레드펫을 깔아 놓고 그 대통령을 환영을 했다라고 합니다. 어 그 모습을 보고이 헬리 모리슨이 굉장히 마음이 낙침이 됐다라고 해요. 자기는 40년을 선교의 헌신을 하면서 어 하나님을 섬겨 왔는데 그런 자기를

환영하는 사람은 단한 사람도 없고이 미국의 대통령 사실 그때 무슨 외교적인 것도 있긴 한데이 루즈벨트가 무슨 사냥을 하러 아프리카에 갔었던 상황이었다라고 하더라고요. 환냥하고 돌아온이 사람은 이렇게 많은 환영을 받는데 나는 아무런 환영도 못 받는구나라고 하면서 굉장히 마음이 낙심이 됐었다라고 얘기를 해요. 어 그때 그 마음속에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라고 합니다. 헬리야 너는 아직 집에 도착도 도착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들렸다라고 합니다. 어 그게 사실인 거죠. 그죠? 뉴욕이 집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만약에 그것이이 헨리

모리슨에게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던 것이었다면 아마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 것이이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렸을 거예요. 그렇죠? 근데 그렇지 않았었던 겁니다.이 사람은 여전히 그의 본양을 향해서 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집이 우리의 집인 거고요. 거기가 우리의 본양인 겁니다. 그래서 그 집에 이을 때까지는 우리가 바랄 것을 바라고 우리가 기대할 것을 기대를 해야 돼요. 우리는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 것을 바래야 되는 겁니다.이 땅에서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거죠. 모두가 나를 환영해 주고 좋아해 주고 그러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거예요.

어, 중요한 것은 뭐냐면요.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있고 무엇을 찾는지가 나의 믿음의 진위를 나타낸다라는 겁니다. 물론 조금이라도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기대하면은 전부 다 거짓 믿음이야. 그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얻는데 방해되지 않는 정도로만 내가 만약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이 땅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이 신앙생활이 뭔가 방해를 하고 있으면 내가 이것을 버리는게 아니라이 신앙에 속한 거, 주님에 속한 것들을 버리고 있다. 그렇다면요. 그러면 그 믿음이 참되다라고 말을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라는 거예요.이 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사실 그러고 있었잖아요. 그죠? 예수님께 예수님 때문에 그들이 힘들어졌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버리기 시작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비슷하게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도 우리가 그런 측면에서 분명히 점검을 해 봐야 된다라는 거예요. 내 삶이 내가이 땅의 시민인지 아니면이 땅의 나그네인지를 증언을 하는 겁니다. 자, 어, 세

번째로 이제 시험받는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줬었던 믿음에 대해서 17절부터 22절에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참된 습을 모습을 보여 줬는지를 우리가 살펴봤었어요. 사실 그 모든 상황들이 시험의 상황,이 믿음이 시험 때에 옳은 상황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 근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주 의도적이고 아주 직접적으로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그 사건을 기록을 했고요.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 그 사건을 통해서 참된 믿음이 그런 극단적인 시험 가운데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 17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라고 말을 합니다.

어, 창세기 22장 잘 아시는 그 창세기 22장에 기록된 사건인데요. 어, 그 1절, 2절 말씀을 제가 읽어 드릴게요. 잘 들어 보세요. 어, 그 일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분명하게

처음에 이렇게 시작을 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래서 우리는이 뒤에 이어지는 말씀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가 그 의도와 목적을 알고서 읽게 돼요. 그렇죠? 아,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계시구나. 우리는 알고 있죠. 그렇죠? 근데 아브라함은 알았나요? 몰랐나요? 몰랐죠. 그죠? 아브라함은 지금이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지금부터 너를 시험할 건데라고 하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몰랐습니다. 그냥 명령만 들었어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는 그 명령만 어들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이 이삭이 어떤 자인지를 분명하게 어 아브라함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세요.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태어난 아들이었고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를 사랑한다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고요. 이삭 외에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이 없다라는 거. 그가 독자라는 것도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면서 그 사실을 일깨어 주세요. 그래서 그냥 이삭을 데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라고 그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어 그것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을 했느냐? 창세기 22장 3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했을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이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묻지 않았어요. 어 사실 아브라함 입장에서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시면은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고 노력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이었을 거예요. 정말로 내가 잘못들은게 아닌가 싶었을 겁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이삭하고 함께 번제를 드려라고 말씀하신게 아닌가? 아마 분명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싶었을 거예요. 어,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칭하시면서 사용하셨던 그 표현들.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 아브라함이 그를 사랑한다라는 사실. 이삭 외에는 다른 아들이 없다는 사실.이 이 모든 사실들이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 들렸을지 몰라요. 하나님께서이 언약을 파괴하겠다라고 하시는 건가? 지금이 이삭을 통해서이 언약을 성취하겠다라고 하신 건데 지금 이삭을 갖다가 번제로 드리라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인 거예요. 어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을 번제로 바치라라는이 명령 자체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라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이 모든 것들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있었을 거예요. 질문이 있었었고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떠올랐을 겁니다. 그 밤새에 그랬겠죠.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씀을들은 이후로 그 다음날 아침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그랬을 겁니다. 근데 그 모든 질문들을 아브라함은 그냥 마음에

묻어뒀고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삭을 번제로 들릴 준비를 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해서 그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칼로 그 아들 이삭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멈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창세기 22장 12절 보시면 어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내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네 아들 너의 독자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어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삶에서이 아들은 너무나 중요했죠. 그렇죠? 그리고 앞으로도 정말로 그렇게 중요할 거예요. 근데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런 아들이 하나님보다는 중요하지

않았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렇게 행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던 겁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 하나님 자체에 대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삭을 바친

겁니다. 어, 하나님께서 직전에 그를 멈춰 세우기는 하셨죠. 그렇죠? 근데 아브라함의 마음에서는요. 이미 이삭은 받쳐진 거예요. 그렇죠? 이미 받쳐진 겁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확인을 하신 거고요. 다시 한번 그 창세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은 그 언약의 말씀을 확인시켜 주세요. 어,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드러났다라고 지금 히브리서 저자가 말을 하는 겁니다. 17절 18절을 다시 보시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너의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이 창세기 12장 12절에서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너의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라고 하신 그 말씀을 기억했고요. 그것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드릴 수 있었다라고 지금 그렇게 말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 아 22장 12절입니다. 어 아브라함은 어 하나님께서 그를 막아 세우실 것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렇죠?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근데 이삭과 함께 다시 그 산에서 내려올 것이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함께 간 종들에게요. 그 산으로 떠나면서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한게 아니라요.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릴 것이고요. 이거는 아브라함 마음속에서

지금 확실했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에 따라서 이삭을 통해 자손을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그 사실을 믿고 있었던 거예요. 그 두 가지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사실 같은데 근데 그 두 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활이었다는

거죠.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당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19절을 보시면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자기는 이삭을 죽일 건데 근데 이삭이 살아 있어야 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겠구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라는 거죠. 생각한지라 비웃컨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어,

아브라함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이때까지 본 적이 있을까요? 네. 성경의 기록만 기록에요. 최소한 우리가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근데 지금이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믿음은 이거였다라는 거죠. 그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서 이삭을 번제로 바칠 거고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이루겠다라고 하신 그 약속을 이루실 거고 그것이 가능하려면이 죽은 이삭이

다시 사는 수밖에 없다라는 그것을 믿음으로 가졌다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근데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라고 믿었다라는 겁니다. 어 죽은 사람이 사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근데 아브라함이 그 전에 비슷한 경험은 한게 있어요. 죽은 자와 같았던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이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삭도 다시 살리실 수 있겠다라고 믿는 것이 호황된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결론이었던 거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어 명령의 겉으로는 순종했는데 막 속으로는 악에 받쳐 있거나 막 그랬을까요? 막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할 수 있어? 막 그런 생각으로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을까요? 어, 그러지도 않았습니다.이 번제를 드리러 가는데이 가장 중요한 번제물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삭이 아브라함 물어봤었어요.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어린 양은 어디습니까라고 그렇게 물었습니다. 어, 아브라함으로서는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질문이었겠죠. 그죠? 답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질문이었을 겁니다. 근데 거기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에 따라서 답을 했어요.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죠. 그렇게 하셔서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요. 어 그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재물을 드림으로써 예배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받으셨어요. 그렇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이 순종을 통해서 증명됐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셨고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불려지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 결국 아브라함은요.이 극단적인 시험, 이거는 정말로 극단적인 시험인 거예요. 시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만들어 놓으신 그러한 어 장치인 거죠.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우리가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예요. 근데이 극단적인 것을 통해서이 믿음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 줬었던 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는 건 두는 것이고요. 하나님을 최우선 자리에 두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이 모순처럼 생각하는 자신에게 모순처럼 들리는이 모든 것들을 내가 이해하는 건 거예요.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모순으로 드렸을 텐데이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신뢰는요. 그 모순 뒤에 숨어 있었던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게 했고요. 하나님의 능하심을 볼 수 있게 했고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게 했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서 순종했을 때

그 순종은 그런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높이는 예배가 됐다라는 거예요. 어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이 그 약속의 족보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라는 것이이 히브리서 11장 20절과 22절에서 어이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이슬 일에 대하여 야곱과 이삭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어 창세기 말씀을 보면요.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얘기도 꽤 비중 있게 달아져요. 물론 이제 이삭의 이야기는 좀 짧지만 근데이 분명히 이들의

생애 가운데서 이들의 믿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얘기들은 얘기들은 사실 훨씬 더 많이 있어요. 근데 공통적으로 지금 히브리서 저자는 무엇에 주목을 하고 있냐면은 이들의 마지막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생의 마지막에 대해서 주목을 하고 있어요. 13절에서 언급했었던 그 믿음의 특징을 지금 부각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이들의 생애 끝까 끝에

이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죠? 그거 자체가 이들에게는이 믿음의 시험이었었던 거예요. 근데 그때에 이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이 없는 것을 보니까 어 우리가이 고생하면서 하나님만 섬긴다고 하면서 사는게 아무런 의미 없는 거 같다. 나는 어차피 틀렸지만 너라도 이제부터는 어

좋은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런 식으로 이들이 자식들에게 말하지 않은 거예요. 그렇죠? 이들이 다 정 반대의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삶에 복 주시기를 구했고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때에 자기 뼈를이 약속의 땅으로 가지고 올라가 달라라고 그렇게 요셉은 부탁을 하기도 했었던 거예요. 이들이 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이러한 유원들을 했다라는 겁니다. 어, 누군가에게는요. 이들의 이런 삶이 정말로 어리석게 보일 거예요. 그렇죠? 옆에서 봤었으면 왜 그렇게 사냐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물어봤을 겁니다. 어, 그렇게 물어봤으면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당신들 왜 그렇게 삽니까라고 하면 이들이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라고 그렇게 답을 했을 겁니다. 어, 궁금해하는 사람한테는 전혀 답이 되지 않는 답이었을 겁니다. 그게 뭐, 그래서 뭐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을 거예요. 근데 이들에게는 그것이 정확한 답이었던 거죠. 다른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봤을 때 뭔가 손해 보는 삶을 살고 뭔가 어리석어 보이는 그런 삶을 살고 하는 그런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됐었던 거예요. 어 앞서서이 아브라함이 직면했었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어요. 그 모순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죠? 그 하나님을 믿으면이 순종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되는 것이었고요. 그렇지 않으면이 순종은 어리석거나 어떤 면에서는 관광 어린 그러한 결과로서 그렇게 보일 겁니다. 어 생각해 보면

정말로 예수님이야말로 그런 믿음의 끝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분이세요. 그렇죠? 아브라함이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모순 앞에 예수님은서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리 중에서 예수님은 어디에서 계셨죠? 아브라함의 자리에 계셨나요? 이삭의 자리에 계셨나요? 이삭의 자리에 계셨어요. 그죠? 죽어야 되는 아들의 입장에 예수님은 계셨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이 상함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어 예수님은 그 모순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셨는데요. 그 뜻에 기꺼이 결국은 순종을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순종을 하셨냐면은 죽기까지 그렇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순종을 하셨어요. 어, 그렇게 해서

결국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뭐를 보여 주신 거냐 하면요. 하나님은 이만한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보여 주신 거예요. 이만한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그 믿음을 통해서, 그 순종을 통해서 보여 주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합니다. 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물러서는 것은요. 결국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뭐냐면은 어, 하나님은 내가 믿는다라고 말하는이 하나님은이 정도의 순종을 받으시기에는 합당하지 않으시다라는 것에 대한 무언의 증언이 되는 거예요. 내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이 정도까지는 하나님을 순종할 수 있지만이 정도까지는 아니야라고 그렇게 우리가 말을 한다라는 겁니다. 어, 믿음은요. 여러분 잘 기억하세요. 믿음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뭐가 좋으니까, 이렇게 하면은 뭔가 나한테 좋은 것들이 생기니까. 그런 것 때문에 믿음은 움직이지 않아요. 믿음은 믿음은 순종으로서 하나님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되신다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고요. 그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그러한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그 믿음의 대열에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이 아브라함의 어 믿음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믿음을 어 돌아봅니다.음 하나님 우리 삶이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음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의 모든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 순종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더라도 하나님보다 어 그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그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우리에게 힘 주시기를 원합니다. 어들은 말씀을 주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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