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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히브리서 11장을 보겠습니다. 오늘은 어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12절이 본문이고요. 어 믿음의 대열를 따르라 세 번째 시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12절입니다. 어 자기가 오랫동안 이렇게 알아왔고 또 그래서 잘 안다라고 생각했던 사람한테 좀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을 거예요. 어 심지어 이제 자기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제 그런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어, 내가 뭐 이런 면이 있었나 이제 그렇게 좀 새롭게 좀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거죠. 어, 그럴 때 이제 제가 방금도 좀 새롭다라는 표현을 쓰긴 했어요.
새로운면 이제 그런 표현들을 쓰긴 했는데 어, 사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이제 없던 어떤 것이 그 순간에 갑자기 생겨난 거라기보다는 원래 있었는데 근데 그것들이 이렇게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가 이제 그런 상황이 됐을 때 드러났다. 이제 그렇게 보는 것이 대부분은 어, 더 정확할 겁니다. 어, 믿음에 있어서도 그래요. 우리가 만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다양한 상황들이 우리 믿음의
현재의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어 특별히 시련이라는 것이 더 그렇습니다. 어 시련이 없을 때는 이제 다들 비슷해 보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너무 특별할게 있나 약간 그런 생각들이 들어요. 그런 시련이 없을 때 어려움이 없을 때는 다 비슷하게 보입니다. 비슷하게 교회 나오는 거 같고 뭐 교회에서 각자 여기저기서 비슷하게 섬기는 거 같고 그래요. 그래서 믿음에 그렇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이 시련이라는 것을 만났을 때 선택의 차이가
드러나고요. 그리고 그것이 믿음의 차이를 드러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시련이 누군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게 아니고요. 사실은 원래 그 사람의 믿음이 그랬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라는 거예요. 어 히브리서 10장 32절부터 34절에 따르면요.
거기 말씀에 보면은이 독자들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어 이미 전에 그러 시령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을 드러냈었던 적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 그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라는 것을 그때 보여 줬었던 거죠.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이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너희가 그렇게 해야 된다라고 그렇게 권면을 하는 내용이 지금이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라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용감하게 싸워야 할 상황들이 그 앞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들이 드는 그러한 유혹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 그러면서 이제 11장에서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같은 믿음입니다. 이들이 특별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에요.이 똑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그러한 참된 믿음의 본을 보였던 선진들의 예를 히브리서 11장에서 제시를 하고 있고요. 우리가 지금 어 거기에 와 있습니다. 어, 1절부터 7절 말씀을 이제 그 전에 시간들을 통해서 좀 살펴봤었는데요. 믿음의 첫 행렬에 있었던 그 아,이 믿음의 행렬의 첫 대열에 있었던 사람 세 사람을 살펴봤었어요. 아벨, 그리고 에녹, 노아. 그렇게 살펴봤었습니다. 어,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어요. 각자의 상황은 분명히 달랐었죠. 그렇죠? 그런데 그들은 동일하게 믿음의 선택을 했습니다. 어, 그 선택의 결과도 달랐어요. 아벨은 그 믿음의 선택의 결과로 죽임을 당했고요. 그렇죠? 에녹은 그 믿음의 선택의 결과로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옮겨갔습니다. 어,
노아는 그 믿음의 선택의 결과로서 조롱을 당했죠. 근데 하나님의 공의가이 땅 가운데 실현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 하나님은요. 이들을 이들 각자를 그 믿음을 보일 수 있는 그런 환경 가운데 다른 환경 가운데 두셨던 거고요. 그들은 그들이 처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환경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에 따라서 선택을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증명한 겁니다. 입증을 한 거예요.이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라는 것을 입증했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모습들을 기뻐하셨습니다. 어, 이제 우리가 8절에 왔는데요.
어,이 8절 이후의 말씀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참된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보여 줍니다. 두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과 모세예요. 아브라함과 모세.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에 있었던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이 경험했었던 가장 놀라운 구원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죠. 바로 그 두 사람과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이 참된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드러내 준다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러면서 독자들에게도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을 권면을 합니다.
어, 특별히이 [목을 가다듬음] 사례들에서 우리가 좀 주목해서 볼 것이 뭐냐면은이 사람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이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시련이라는 거예요. 물론 앞에서 언급했었던 사람들 뭐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도 그런 시련의 상황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근데 지금부터 말하고 있는이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 둘러싼 사람들 이들이 처했었던 그 상황 속에서이 저자는 이들이 시련을 당했다. 이들의 믿음이 시련 가운데 있었다라는 사실을 더욱더 분명하게 언급을 합니다. 그러면서이 히브리서의 독자들도 사실은 그런 가운데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오늘은 8절부터 12절까지만 갑니다. 원래 22절까지 네. 가려고 했었죠. 그렇죠? 네. 가지 못하고 10절까 12절까지만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두 개의 사건 아브라함이 그 믿음을 보였었던 두 개의 어 상황을 같이 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8절에서 10절에서는요. [목을 가다듬음] 아브라함의 예 첫 번째인데요.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알지 못하는 상황. 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이었고요. 그때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8절 말씀을 먼저 보시면요. 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을 해요. 여기 이제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말을 하는데요. 창세기 12장 1절부터 3절의 내용을 지금 부르심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아브라함이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요. 창세기 11장이에요. 그때는 이름이 뭐였죠? >> 아브람이었죠. 그죠? 아브람이라는 이름으로 창세기 11장에 처음 등장을 합니다. 어 아버지 데라를 따라서 고양인 우르를 떠났고요. 그 우르를 떠나서 이렇게 올라와서 하란 지역에 그렇게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아버지 데라가 죽죠. 그죠? 죽고 나서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이 창세기 12장이에요. 어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말씀을 해 주셨고요. 복을 약속을 해 주셨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명령을 하셨어요. 창세기 12장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어,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거예요.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선택을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부르심입니다. 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아브라함은 갈 수도 있었고요. 지금 가라고 하셨으니까 아,이 말씀에 따라서 갈 수도 있었고요. 혹은 지금
그 우를 떠나서 하란에 와 있는데 지금 아버지를 따라서 왔었잖아요. 근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어떻게 할 수도 있어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죠. 그렇죠? 그 두 개의 선택이 우르가는 선택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가든지 돌아가든지 그 두 개의 선택 앞에 지금 아브라함이
있었어요. 어 우르로 돌아가는 것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안전한 선택이었을까요? 모험적인 선택이었을까요? 예 우르 돌아가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 가면은 그의 친척들이 있죠. 그렇죠? 그리고 아버지의 집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삶으로 그냥 돌아가면은 그만인 거예요. 그 삶이 어떠한 삶이 될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그런 삶인 거죠. 그전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거기 돌아가서 그냥 그전의 모습으로 살면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주변에서이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할 만한 그런 사람들도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사실은 그 선택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러한 선택지였습니다. 어 반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가는 것을 선택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모험적인 선택을 하는 거예요. 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것이 굉장히 막막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자기가 여기서 간다는 거 말고는 자기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약속은 하셨어요. 그렇죠? 근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서 다 말씀을 해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네가 복을 받게 될 건데 그전에 이런 일이 있을 거고 그다음에 이런 일이 있을 거고 근데 이런 시현이 있을 텐데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 줄 거고 그러니까 이것들 내가 다 알고 계획하고 있으니까 믿고 따라와라고 그렇게 하신 상황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어 장소에 대해서는요.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이라고만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죠? 특정에서 어떤 땅으로 가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이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이 부르심에서 확실한 것은 딱 두 개예요.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복이 하나
확실했고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뭐를 해야 된다? 그 명령에 따라서 가야 한다라는 그 두 가지만 확실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두 상황 속에서 그러니까 다시 가는 선택과 돌아가는 선택 그 두 개에서 아브라함은 결정을 해야 됐었던 겁니다. 어 성경이이 부분에 대해서 명시하진 않지만요. 이것은 분명히 믿음의 시험이에요. 어 하나님은 아브라함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었겠죠. 그렇죠.
앞나를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계획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그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아브라함에게 설명해 주실 수도 있으셨어요. 다 뭐 아브라함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런 걸 떠나서 어쨌든 그래도 최선의 설명을 더 해 주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어 만약에 그렇게 했으면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기가 조금은 더 쉬웠을 거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최소한 최소한 전혀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이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믿고서이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그런
상황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렇게 믿음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었던 겁니다.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약속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그가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다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다 알지 못해도이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부르심에 응답해서 그의 믿음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 5절에 보면은 어 요렇게 말을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례와 조카록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어 1절부터 3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4절에이 말씀이 기록이 돼 있는 겁니다. 그 중간에 어떤 말씀도 없어요. 그냥 아브라함의
결정과 행동만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시는 그 말씀을 들었고요. 그리고 따랐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에게 더 묻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하나님 저한테 조금 더 설명해 주시지 않겠어요? 그렇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명령을 주셨으니까 그것으로 아브라함에게는 충분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분명한 명령을 주셨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게 여겨서 그대로 행한 이것을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지금 여기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는 거냐 거냐 하면요. 8절에서 순종이라는 두 글자로 단순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믿음의 순종인 거예요.
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이라고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그 부르심 앞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죠? 수많은 질문들이 그 안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어,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을 거예요. 나 하나면은 그냥 하겠는데 나 하나면 그냥 가라고 하시면 가겠는데 지금 딸린 사람들이 있잖아요. 여기 보시면 자기 아내가
있고요. 조카 롯이 있고요. 그리고 그 하란에서 모은 소유도 있고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자신에게 결정 하나에 그들의 삶을 걸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었던 거예요. 그러한 데서 지금이 결정을 해야 되는 거니까 최소한의 정보는 조금 더 있어야 내가 저 사람들한테 얘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어, 우리도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이런 생각들을 할 때가 있어요. 그렇죠? 하나님의 명령이 뭔지는 분명히 알겠어요.이 상황에서 내가 뭐를 선택해야 되는지는 알겠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뭐 A를 할까요? B를 할까요? 그런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히 있는 그런 상황인 거예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 설명이 있어야 내가 다른 사람들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우리가 할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럴 때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실제로 그 설득이 필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나인 거예요. 그렇죠? 내가이 하나님의 명에 명령에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뭔가의 설명을 더 요구하고 있으니까 내가 잘 모르겠으니까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 핑계를 그렇게 대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몇 사 몇 세였어? 이때이 사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렇죠? 75세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우리는 가나안 땅 하면 바로 무슨 생각해요? 가나안 땅은 네, 약속의 땅인 거죠. 그렇죠? 이미 약속의 땅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아브라함이 이때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이라고 보여 주신 상황인가요? 아니에요. 네. 그냥 간
겁니다. 아버지가 그쪽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까 간 거예요. 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라는 것은요. 바로 그 이후에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7절에 나와요. 하나님께서이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그때 가서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아브라함이이 가나안 땅이 우르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어서 그곳으로 간 거냐? 그것도 아니에요. 그렇죠? 아브라함은 어디로 갈지를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몰라서 그냥 가던 대로 간 것뿐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가 장내의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갔는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겁니다. 저기가 내가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이야. 알고서 간게 아니라 모르고서 간 거예요. 그 땅으로 간 겁니다. 순종을 한 겁니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고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어,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사용한요 안다라는 단어가 조금은 흥미로운데요. 그러니까 요서 사용을 안다라는 것이 뭐냐면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이해한다라는 의미예요. 어, 단순히 어, 어느 그러니까 내가 가야 할 곳을 아는 거면은 그것은 그냥 지식의 문제잖아요. 그렇죠? 내가 뭔가를 이해하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뭐냐 하면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지금 자기가 어느 땅으로 가야 할지를 지식적으로 알지 알았다 알지 못했다 그 부분이 아니고요. 그 사실 자체를 그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 사실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를 않았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제가 갈
수는 있는데 어 근데 어디로 가는지는 좀 얘기를 해 주셔야 제가 뭔가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중요했던 것은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다라는 그 사실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알지 못했지만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종을 했었던 거예요. 그 상황에서 더 안전해 보이는 선택도 있었는데 더 불안해 보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험적인 사람이어서 그랬던게 아니고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어서 그랬었던
겁니다. 어, 아브라함의 선택의 기준은요. 보기에 안전하냐 불안하냐 그게 아니었어요. 그가 가야 할 곳이 그가 나온이 땅보다 더 좋은 곳이냐 나쁜 곳이냐 그것도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뭐가 기준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느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갔습니다.
어, 이것이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믿음의 본인 거예요.이 믿음의 순종은요. 믿음의 순종은 내가 다 알고 이해하고 납득되고 그럴 때 하는게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신 분이 그 말씀을 하신 분이 그 명령을 나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 순종이다라는 겁니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 거예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까 내가 다 알지 못해도 하는 겁니다. 내 눈에 다 보이지 않고 내 귀에 다 들리지 않아도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서 남에게이 선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없어도 말씀이 확실해서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 세계 땅에 거주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이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어 그 땅이 이제 약속의 땅이 된 거예요. 그렇죠? 근데 어 아브라함이 정착할 땅은 되지를 않았습니다. 어 사도행전 7장 5절을 보시면요. 그래서 스데반이 그 상황을 요렇게 표현을 했어요. 그러나 여기서 발붙칠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이 땅이 너의 후손들의 소유가 될 건데
이것이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제 유업이 되는 건데 네가 이것을 소유하는 건 아니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라는 거예요. 어 그것이이 말씀에 순종했었던 아브라함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요. 아브라함의 생에 내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이렇게 말해요.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어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니까 아브라함이 거기에 들어가서 거기서 집 짓고 사는 거 같죠. 그렇지 않다라는 겁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장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천막 짓고 텐트 짓고 살았다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의 소소유로 주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여기 거류했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약속의 땅에 거류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소유하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에게 속하지도 않은 상태로서 정말로 이방인으로서 그곳에
살았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똑같은 약속을 받은 아들 이삭 그리고 손자 야곱도 모두 다 장막에 거했습니다. 어 잠깐 산수를 해 볼게요. 자 창세기의 연대를 우리가 생각을 해 보면요. 아브라함이 몇 세 이삭을 낳죠? 100세 그렇죠? 100살. 100살이 됐을 때 이삭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60살이 됐을 때
야곱을 낳습니다. 야곱하고 애소가 같이 태어났겠죠. 어 그러면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 160세죠. 그렇죠? 160세입니다. 어 자신이 갑자기 없어지나요? [웃음] 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죽은 나이가 175세입니다. 네. 그러면은 3대가 언 얼마 동안 장막이
같이 살았나요? >> 15년 네. 좋습니다. 네.이 정도는 할 수 있네요. 자, 어, [웃음] 최소한 15년 그렇죠. 최소한 15년을 어 함께 그 장마 안에 거하는 그런 기간들이 있었다라는 거예요. 여기 말씀처럼 어 아브라함의 나이 160세부터는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서 그 장막에 거류하면서 그렇게
살았었던 겁니다. 어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이삭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셔서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다시대 되 대내어 주시고요. 그리고 야곱에게도 따로 나타나셔서 그 말씀을 다 해 주셨어요. 그 전에도 아브라함은 그들에게이 장막 가운데 거하면서이 약속의 말씀을 해 줬을 겁니다. 그렇죠? 그 15년 동안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왜 여기에서 계속 이렇게 살면서 집도 안 짓고이 장막 가운데 거하고 있는지를 이야기를 해 줬을 겁니다.
어 그때가 되어서는 그러면은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게 됐을까? 어, 그렇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여전히 아브라함은 물음표들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이 가나안 땅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는 것은 이제 알았어요. 그렇죠? 그 전에는 몰랐잖아요. 갈발을 모르고 갔었는데 지금은 이제 그것은 알았습니다. 근데 내가 그럼이 땅에 와서 왜 계속 이방인처럼 이렇게 살아야 되지? 어, 그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었을 거예요. 어, 그런데 그 물음표가 그 삶에서 가지고 있었던 그 물음표가 아브라함의 삶을 자우하지는 않았었다라는 겁니다. 그의 믿음을 흔들어 놓지는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만 됐을뿐 아니고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도 됐기 때문이에요. 10절을 보세요.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 장막은 터가 있나요, 없나요? >> 장막은 터가 없어요. 그렇죠? 텐트에는 터가 없습니다. 그렇죠? 텐트 치는데 물론 이제 뭐 그 캠핑 장에 가면은 털을 해 놓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텐트를 가지고 어딘가에 가서 야영을 한다라고 하면요. 거기에 가서 콘크리트 치고 거기에다가 텐트 치지 않아요. 그렇죠? 왜 그렇습니까? 텐트라는 것은 네, 옮겨 다니는 거잖아요. 그죠?
임시로 거기에 해 놓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터를 만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터가 있다라는 것은 그럼 무슨 의미예요? 그곳이 임시 거처가 아니라 영원한 거처가 된다라는 겁니다. 한구적인 거처가 된다라는 거죠. 어, 뒤에서 이제 저자가 분명히 말하는데요.이 아브라함이 바았던 것은요. 단순히이 땅에 속해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었던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은 내가 우르를 나와서
가나안 땅을 왔는데 이제이 가나안 땅이 나에게는 더 나은 곳이 될 거야. 이곳이 나에게 더 좋은 고향이 될 거야. 그런 것을 바라고서 가나안 땅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었다라는 겁니다. 그가 정말로 바았었던 것은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하늘에 있는 터가 있는 성원한
곳이었다라는 거예요. 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언제 여기까지 바라보게 그렇게 됐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근데 분명한 것은 그리고 우리가이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요. 아브라함은 분명히이 땅에 속한 유업 그 이상을 바라보고서 살았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아브라함이 그 가나안 땅에 거하면서 그래 내가 여기서 조금 힘들게 살면은 내 자손들은 여기서 아주 풍요롭게 잘 살 거야. 그런 생각으로 거기 있었던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그가 바았었던 진정한
그런 거처는 하늘에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이 땅에 집을 짓지 않은 겁니다. 더 나은이 땅에서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닌 거예요. 다 알지는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속해 있는 그 삶을 위해서이 땅에서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살았었던 겁니다. 터가 있는 성, 하늘에 있는 그 성을 바라보고서 산 겁니다. 어, 이것이이 히브리서의 저자가이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주목하기 원하는 그런 부분이에요.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지금 순종하는 그러한 믿음입니다. 어, 우리가 이렇게 하지 못할 때가 정말로 많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우리는요 더 알면 순종하겠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렇죠?이 이 상황에 대해서 내가 조금 더 알고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 알면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해보겠다라고 합니다. 내가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정말로 나에게 복이 있다라는 것이 분명하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한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알지 못하고
순종하는 것은 뭔가 좀 비이성적인 거 같고 그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요. 굉장히 그것을 무모한 신앙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이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지 않는 겁니다. 어 믿지 않는 자와 멍예를 함께 하지 말라라는 그 말씀을 분명하게 아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는 하나님 더 설명이 필요해요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히 내 앞에 있는데 지금 내 상황에는 하나님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셔야 됩니다. 얘기를 한다라는 거예요.이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을 쌓아노라는 그 말씀을 분명히 아는데 내 상황에서는 더 얘기해 주셔야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한다라는 겁니다. 어 결국 뭐냐면요. 내 상황은 다르고 다르다라고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내 상황은 달라서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라고 우리가 말을 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순종할 수 없다라고 우리가 말을 하는 겁니다. 어 정말로 무모하고 무지한 신앙은요.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신 그 말씀을 알면서 순종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렇게 하는 것이 복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거룩한 삶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내가 알지 못한다라고
해서 듣지 않는 것이 사실은 가장 무모하고 무지한 신앙입니다. 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사실 여러분들 믿으실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셨다라는 것을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말씀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것을 믿고 있으면 그 사실이 내 삶에도
이루어지게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거예요.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의 특징입니다. 어 [목을 가다듬음] 그런데 여기서 제가 여러분들 혹시라도 오해하실까 봐 조금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 될게 있어요. 왜냐면은 아브라함의이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을
어엉 수많은 엉뚱한 사람을 선교지로 보냈기 때문이에요. [웃음] 가라고 하시니까 가야지. 뭐 모험하는 것이 믿음이지. 약간 그러면서 갔기 때문에 그래요. 어, 오해하지 말으실게 있어요. 뭐냐면 첫째로 무조건 모험적인 선택이 순종이 아닙니다. 제가 아까 아브라함의 얘기해서 하나는 안정적인 선택이고 하나는 모험적인 선택이라고 말했고 어 그중에서 아브라함이 모험적인 선택을 했다라고 얘기를 드렸어요. 근데 그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때 언제나이 모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믿음의 선택이고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적인 거야라고 그렇게 여러분 생각하시면 안 돼요. 어,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셔서 가장이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꿈을 쫓겠다고 해 가지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는 거 믿음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심지어 그 돈
가지고 선교를 가겠다라고 해도요. 그것은 믿음의 선택이라고 볼 수가 없어요. 중요한 건 뭐냐면은 하나님의 명령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명령이 안정적인데 있으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믿음의 선택이 되는 거고요. 하나님의 명령이 모험적인데 있으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믿음의 선택이 되는 겁니다. 어 하나님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남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분명한 명령을 먼저 주셨어요. 그렇죠? 그러면 그게 먼저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는지는 그다음에 분별하고 해야 될 문제가 되는 거예요. 둘째로 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하고이 믿음의 담대한 선택을 여러분 좀 구분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어 이것을 좀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다른 얘기 같은데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 거예요. 어, 여러분,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사실 그렇게 했었어요. 어, 성전에 올라가서 여기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보호하신다고 했으니 뭐 하라 그랬습니까? 뛰어내려 봐라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죠. 그렇죠? 어,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그 하나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 순종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렇죠? 근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시험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지 믿는게 아닌 거예요. 어, 무슨 차이가 있는 거냐? 어, 약속을
한 사람이 약속을 그대로 지키는지 보려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시험이지 믿음이 아닌 거예요. 약속을 한 사람이 그 약속대로 내가 진짜 하는지 한번 볼까라고 하면서 실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은 시험이지 믿음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약속이라는 것을 통해서 마치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실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다라는 겁니다. 그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거 만약에 만약에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라는 명령을 주셨다면 그러면 거기서 뛰어내리는 것이 믿음이겠죠. 그죠? 그게 믿음인 거예요. 그렇죠? 요단강이 갈라졌을 때도 먼저 발을 거기에 들여 넣어야 됐었잖아요. 그렇죠? 믿음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근데 이것은 약속이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주신게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고 예배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증명해 주셔야 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 얼마나 신실하신지 저한테 한번 증명해 줘 보세요.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될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증명해야 되는 거고요. 그리고 그런 것,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고 그
믿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어, 다음으로 왜 제가 12절까지만 하는지 아시겠죠? 그렇죠? 자, 다음으로 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불가능한 상황 11절과 12절인데요. 어, 조금 더 이제 적극 더 극적인 상황이에요. 불가능한 상황. 11절을 보시면 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이는 약속하신 일을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어 여기서 좀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 될게 있는데 여기 보면 이제 사라 자신도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이 사라가 지금이 전체 문장의 주어로서 되어 있는데 사실은 사라가
주어인지 아니면 앞에서처럼 그리고 뒤에처럼 아브라함이 주어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어 사실 여러 가지 좀 고려해야 될 부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보면은 여러분들이 뭐 영어 성경이나 한글 성경도 여러 가지 번역번 보시면은 나눠져 있어요. 여기가 아브라함. 그러니까 그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고요. 사라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좀 그 뭐 복잡한 얘기들이 있는데 하여튼 그런 거 다 빼고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기서 주어를 아브라함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첫째는 뭐냐 하면요. 여기
보면은 어 잉태할 수 있는 힘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죠. 잉태할 잉태할 수 있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어 근데요.이 단어의 원래 의미가 사실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적합한 의미예요. 잉태하는 건데 무슨 얘기야라는 생각이 여러분 드실 수 있죠? 그렇죠? 어, 근데이 번역 자체가 사실은 주어를 사라로 뒀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을 한 겁니다. 이렇게 의역을 한 거예요. 사실은 원래이 단어는요. 임신에 있어서 여자의 역할이 아니라 남자의 역할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번역을 하면은 C를 뿌리다니까. C를 뿌리다. 어, 그렇기 때문에이 동사의 원래 의미를 고려를 하면 주어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오는 것이 맞죠. 그렇죠? 어, 그것이 첫 번째 이유고요. 두 번째 이유는 뭐냐면은 어,이 약속의 후손에 대한이 믿음 하나님께서이 약속의 후손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믿는이 믿음이 창세기 말씀을 보시면요.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에요. 네. 사라의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가지고 와서 사라의 믿음을 언급한다라는 것이 사실은요 맥락에 그렇게 맞지 않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어 어떤 맥락이냐 하면요. 처음에이 아브라함이 소개되던 그 창세기 11장에 보시면 이미 그때 그의 아내 살례는 임신하지 못함으로 자식이 없었다라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어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그 복을 약속을 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말을 아브라함 입장에서 들었을 때는 굉장히 의야한 부분이었을 거예요.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나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룬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어 그리고 나서요. 이제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하고 이제 분리가 되죠.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 자손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세요. 아브라함의 자손을 땅의
티끌 같이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때 아브라함의 자손은 몇 명이 있었죠? 없었어요. 그렇죠? 명이었습니다. 어, 여전히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이제 결정적인 사건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데 어, 아브라함은요. 어, 지금 하나님의
약속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어, 그리고 자신의 상태나 이런 것들 생각해 볼 때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뭐였냐면은 어, 자신의 종인이 다메색 사람 엘리엘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되는 거였어요. 네.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라는 것을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집에서 길린 종인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될 거다라고 그렇게 하나님께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함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면은 창세기 15장 4절 5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너의 몸에서 날짜가
너의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어러 무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너의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히 법적인 후손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었던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당연히 법적으로는 엘리사를 아브라함이 어 상속자로 세울 수 있었어요. 근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다라는 겁니다. 육적인 후손을 말씀을 하셨다라는 것을 지금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신 거예요. 자. 음. 시간이 하나님께서 처음에이 말씀을 하시고 시간은 지났나요?
거꾸로 갔나요? 당연히 지났죠. 그렇죠? 아브라함은 더 젊어졌나요? 늙었나요? 더 늙었어요. 그렇죠? 그러면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은 더 올라갔을까요? 낮아졌을까요? >> 낮아졌어요. 그렇죠? 어 그의 아내는여여 여전히 부림이었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라는 거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근데 그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창세기 15장 6절에 보면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반응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능성이 제로인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었고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이 사건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저는이 말씀에서 아까 읽었던 11절 [목을 가다듬음] 히브리서 11장 11절 말씀에서의 주어가 사라보다는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 그 이후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벽하진 않았어요. 그렇죠? 어이 아브라함은요. 그의 아내 사라의 조언에 따라서 여정을 통해서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게 그 생각이었었던 거 같아. 그니까 처음에는 우리는 아이를 못 가지니까 그냥 법적인 그 상속자를
만들자라고 하면서 엘리세를 얘기했다가 하나님께서 그다음에는 너의 몸을 통해서 난 자라야 돼라고 하니까 그러면은 사람은 안 되니까 그럼 여종을 통해서 나볼까? 약간 그런 식으로 생각이 이어졌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태어난 아들이 누굽니까? 이스마엘이죠. 그렇죠? 그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어이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상속자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분명히 또 말씀을 하세요. 창세기 17장 18절 19절에서 말하는데요.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이르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어 하나님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이스마엘이에요. 이거 이스마엘이 사람입니다. 이거 근데 하나님 뭐라 그러셨냐면은 아니라 너의 안에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네. 모든이 아브라함이 생각했었던 인간적인 설명들, 가능성들을 다 제거하시고 하나님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 두시고 이렇게 될 거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너의 아내 살아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거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사라는 점점 젊어지고 있나요? 아니에요. 그죠? 살아도 똑같이 더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표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말씀을 하세요.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100세가 됐을 때 가질 수 없었던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았고요.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어 제가 지금 여기서이 아이를 낳는데데 있어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역할 중에 누가 더 중요했냐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에요. 단지 성경이 누구의 관점에서이 사건을 다루고 있느냐를 지금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사무엘 생각해 보세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죠. 그렇죠? 예. 사무엘의 아버지의 이름은 여러분 혹시 기억하시나요? >> 네. 살짝 늦게 나오죠. 그렇죠? 한나는 바로 나오다. 예가 나는 잘 안 나오죠. 왜 그래요? 그 성경 자체가 누구의 관점에서 기록이 된 거예요? 한나의 관점에서 기록이 돼 있었던 거예요. 그 말씀은. 근데이 이삭의 이야기는
사라의 관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져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이 아브라함의 관점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됩니다.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졌던 그 믿음을 중요하게 성경이 다뤘습니다. 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그래서 아 그래서 그래서 이제요 부분에 있어서 제가 이제 살라라고 보는 것보다 여러분 성경하고 제가 지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고요. 사라라고 보는 것보다 아브라함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요 맥락에 적절하다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창세기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아브라함이 그 불가능한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여줬었던 겁니다. 어 그래서 11절을요. 요렇게 번역해서 어 이해를 하시면 좋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아브라함은 자신도 나이가 많고 살아도 단산하였으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이는 약속하신 일을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입니다.
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요 처음부터 성취가 될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제가 쭉 말씀을 드렸죠. 그렇죠? 어, 그의 아내가 임신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당시의 상황을 좀 생각을 해 보면이 아이를 낳는 거, 자녀를 낳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잖아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그 상황을 생각해 보시면요. 그 전까지이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를 우리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노력들 끝에 그들이 결국 도달한 결론은 뭐였던 거예요? 아, 우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다라는 거였던 거예요. 거기에 도달을 했었던 겁니다. 어, 그것이이 두 사람 모두에게 절망적인 것이 절망적인 사실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이 자손을 얘기할 때 엘리셀를 얘기하고 나중에
나중에 누구죠? >> 이스마엘. 이스마엘 나중에 이스마엘 얘기하고 그렇게 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찾아와서 내년에 이제 사라가 아이를 낳을 거다라고 얘기했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웃었어요. 그죠? 살아도 웃었습니다.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좋아서 웃은게 아니에요. 그렇죠? 네. 왜 웃었습니까? 어이가 없어서 실소인
거죠. 실소가 나왔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불가능한 얘기를 하시니까 그랬었던 거예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그 두 사람은이 아브라함과 사라는요. 11절 여기 히브리서 11장 11절을 보시면 뭐라고 말합니까? 이는 약속하신 일을
미쁘신 줄 알았다라고 말을 합니다. 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실 줄을 믿었다라는 거예요. 상황은 실수 실소가 나올만큼 불가능한 상황이었고요. 그 상황이 이들이 받아들이기 정말로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 근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이들이 믿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습니다. 12절을 보시면 어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어이 표현이 되게 그렇죠. 지금 여기 죽은 자 같은 한 사람이란 표현이 있어요. 누구예요?
>> 아브라함이에요. 그렇죠? 네. 어 아이를 낳는데 있어서 아브라함은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었다라는 거죠. 사실이 아브라함이라는이 이름 어 하나님이 바꿔 주신 이름이죠.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무슨 뜻이? 무슨 뜻인지 혹시 아시나요? >> 예. 많은무리의 아버지. 많은무리의 아버지. 어 그의 이름을 얘기할 때 그것이 조롱거리가 됐을 거예요. 그죠? 많은무리의 아버지이기는 커녕 한 사람의 아버지도 아니었으니까요. 아이를 낳는데 있어서 아브라함은 죽은 자와 같이 무능한 그런 상태였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이 그를 정말로 아브라함이 되게 했던 겁니다.
그를 통해서 별과 같이 많은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육신의 후손들만 그런게 아니고요. 영적인 후손들까지 아브라함은 그 믿음에 정말로 넘치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힘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어 믿음이 더욱 빛날 수 있을 때는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니까 뭐냐면은 어 잘하면 되긴 되겠다. 약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아니고요. 정말로 불가능하다. 이건 정말로 안 된다라고 생각할 그때에이 믿음이라는
것이 진짜 그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은 자가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시면
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시 하나만큼만 있어도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어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는요.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어 믿는 자가 자기가
원하는 일 다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렇죠?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게 하신다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어 심지어 하나님은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우리들을 살리실 때 뭐를 통해서 하셨습니까? 믿음을 통해서 하셨어. 믿음으로 믿는 자들을 영적으로 살셨습니다. 어 믿음은 결국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어서 그렇습니다.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시다라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끔은 우리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 두십니다. 거기서 믿음을 보이라고 하시는 거고요. 그리고 그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어 13절부터 16절 말씀을 결론으로 좀 읽어 드릴게요. 다음 설교할 때 제가 다시 말씀을 나누겠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지금요 두 사건을 이야기하고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얘기이 얘기를 여기서 해야 돼서 지금 들어간 거예요. 그죠? 아브라함 얘기 다 끝나지 않았는데 여기 해안에서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읽어 드릴게요. 13절부터 16절을 보시면 어 이렇게 코멘트를 합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양 찾는 자임을 나타내니라. 그들이 나온 바양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양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배하셨느니라. 어 우리는 지금 십자가 이유를 살고 있죠. 그죠? 그래서이 아브라함을 비롯한이 사람들 그 당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훨씬 더 많은 것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이 말씀을 읽고 있어요. 근데이 사람들은요.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정말로 정말로 부분적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 그러면서 그 약속의 땅에서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살았어요.
별과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라고 했는데 겨우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한 후손만 그가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어 만약에 만약에 아브라함이 사라가 혹은 그 다른 족장들이요 그냥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나님을 믿은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실패한
믿음인 거예요. 그렇죠? 그들은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언제든지 돌아갔었어야 됐어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지금이 말씀처럼 그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본양을 사모했기 때문이에요. 그냥이 땅에서 비등비등한이 정도 삶, 저 정도 삶, 그중에서 더 나은 삶,이 정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나 봐. 그런 것을 비교한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더 나은 곳 본양을 사모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그렇게 어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요. 그가 정말로 뭐를 바라보고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았는지를 보여줬어요.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믿음을 보였고요. 불가능한 상황에서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상황 자체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거죠. 그렇죠? 그에게 약속하신 대상이 중요했고요. 그분이 정말로 믿을 만한 분이시다라는 그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어, 하나님에 대한 정말로 단순한 믿음이죠. 그렇죠? 그 단순한 믿음이 사람이 볼 때 어려운 일들, 불가능한
일들을 아브라함이 하게 했었던 겁니다. 어, 히브리 히브리서의 독자들의 입장에서이 말씀을 생각을 해 볼까요? 어, 히브리서의 독자들은요. 정확히이 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었어요. 그렇죠? 네. 지금 이들은 그들이 떠나왔던 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죠?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왜냐면은 예수님 때문에 힘들었거든요.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그게 이들에게 더 어려움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뭐를
못 본 거예요? 더 나은 것을 못 본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봤었던 그것을 이들이 보고 있지를 못했었던 겁니다. 그것을 사모하고 있지를 않았었던 거예요. 어, 지금까지 우리가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서 봤었던 것이죠. 사실 다 그거였어요. 더 나은 것. 그들이 봐야만 했었던 그들이 사모해야 했었던 나은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나은 분이시죠.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올바르게 봐야 됐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자기 본양으로 돌아가려고 그렇게 했었던 겁니다. 어 제가 여러분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거예요. 그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시라라는 겁니다.
만약에이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고 있으면요. 그렇다면은 지금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 그리고 경고하고 있는 것에 여러분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나의 믿음이 정말로 어디에 있는지를 보시고요. 여러분이 믿음에 대열 지금 아브라함을 얘기하고 있죠.이 이 아브라함이 있었던 그곳에 여러분들도 함께 서시기를 바랍니다. 어 알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여러분들이 계실 수 있고요. 이거는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막 생각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 안에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요. 그 하나님을 믿으시고 여러분 한 걸음 더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오늘이 아브라함의 어 삶의 또 사건들을 통해서 또 저희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어 참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 대단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에게 그런 믿음을 주신 분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그런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이 땅 가운데 어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것, 더 나은 것 영원한 것에 우리들의 마음을 두고이 땅 가운데서 하루하루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이 믿음의 대열에서 우리 중 누구도 이탈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함께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터가 있는 하늘의 성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구합니다.들은 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