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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네, 반갑습니다. 어, 4월에 히브리서 말씀 많이 들었는데 좀 쉴 줄 알았는데 5월에 금방 또 있죠? 네. 히브리서 오늘 11장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어, 히브리서 11장 오늘은 어, 1절부터 3절만
어, 같이 보려고 하고요. 어,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겁니다. 어, 어, 히브리서 저자가 이제 10장 18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그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서 역설를 했었고요. 그리고 어 특별히 이제 인간의 그런 궁극적인 문제인이 죄사함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렇게 가능하다라는 사실을 이제 본론에서 어 강조를 했었습니다. 어 그리고 이제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저자는요. 어 그런 사실에 오직 믿음으로서만 반응을 해야 한다라는 것을 이제 실제적으로 도전을 하고 있어요. 어이 믿음에 대해서 이제 얘기를 하게 될 겁니다. 어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는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있어요. 우리가 어 믿음이 뭐냐라고 그렇게 물어보면은 사실은 믿음이 뭐예요? 이제 그렇게 얘기하기가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렇죠? 근데 이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의 특징 같은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보면요. 예수님은이 믿음의 믿음에 있어서 어, 겸손한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어, 마태복음 18장 3절에 보시면 어,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고 천국 천국에 들어갈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구원받으려면 믿어야 된다라는 걸 알죠. 그죠? 근데 그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신 거예요.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겸손한 믿음이 필요하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자신이이 자신의 어떠함으로 자신이 어떠하는 일로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거죠. 그렇죠?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의 특징이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어, 그리고 또 예수님은 이제 열매 맺는 특징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어,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어,이 믿음의 열매라는 것은요, 율법의 행위 혹은 뭐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 그런 것하고는 달라요. 어,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에서는 예수님 이렇게도 말씀하셨는데요. 음.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어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어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사람들이 있다라는 거죠. 근데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이 열매라는 것은요. 그렇게 무언가 겉으로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요. 어, 내면에서 시작되어서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로서 맺히는 것이 참된 열매입니다. 믿음은 진짜 믿음은 이런 열매를 맺는다라는 거예요. 어,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믿음의 특징 중에 하나가 또 뭐가 있냐하면요. 견디는 겁니다. 견디는 거. 인내하는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어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이 어 박해를 받을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면서 마태복음 10장 22절에 보시면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이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이 구원을 얻을 거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예요. 우리가 지난 주일에이네 가지 땅의 비유를 들었었잖아요. 그렇죠? 그네 가지 땅의 비유해서도 어 우리가 볼 때는 믿음처럼 보이는 그러한 모습들이 묘사된 것들이 있어요. 어 돌밭 빠르게 싹이 올라오죠. 그렇죠? 그런 것들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 가시떨기도 그렇습니다. 거기서도
어 싹이 올라오고요. 줄기가 자라납니다. 어 그렇게 하는 것들이 다 믿음의 모습처럼 보여요. 근데 이제 그러한 것들이 참된 믿음이 아니다라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셨어요. 왜 그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죠?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죠?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열매 맺는 좋은 땅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 똑같은 비유인데 누가복음에선 요렇게 표현을 하셨어요. 누가복음 8장 15절을 보시면 어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인내라는 표현이 거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견디는 거죠. 그렇죠? 중 그러한 다른 어려움들이 전혀 없는게 아니에요. 근데 그러한 것들을 견뎌내서 결국은 결실을 하는 것이 좋은 땅이라고 말씀을 하신 거고요. 그런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히브리서가 강조하고 있는 믿음, 그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지금 말씀드린 이러한 견디는 것, 인내하는 것입니다. 어, 10장 39절. 우리가 전 지난
히브리서 시간에 살펴봤었던 39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을 이렇게 정의를 했어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렇죠? 예.이 믿음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거기에까지 이르게 하는 믿음을 가진 자.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지 않고 견디는 인내하는 믿음을 가진 자.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하시는 자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11장을 우리가 살펴보게 될 텐데요. 이제 몇 주에 걸쳐서 살펴보는 거지만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하니까 몇 달에 걸쳐서 살펴보게 되겠죠. 그렇죠? 어, 근데이 11장을 보면요.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의 예를 이제 하나하나 그렇게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구원함에 이르는 그런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그런 사람들의 예인 거예요. 어, 단순히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이 아니고요. 역사의 인물들, 실제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서 살았었던 그 사람들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제 뒤로 갈수록 이제 그런 요소들이 더 이제 강조가 되는데요. 특별히 환난이나 유혹 중에서도 그들의 믿음의 인내를 보여
줬었던 그러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 그러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이들 예를 통해서 우리가이 믿음에 대해서 같이 좀 어 배워 보려고 합니다. 어 11장을요 크게 구분을 해 보면 요렇게 할 수 있어요. 1절부터 7절까지가음 기본적으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을 해 주고요. 그리고이 믿음이 왜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을 해 줍니다. 어 여기에서는 이제 대표적으로 아벨과 에녹 그리고 노아가
그런 믿음의 예로서 등장을 하고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가 8절부터 22절인데요. 여기서는 이제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해서이 족장들의 예가 제시되어 있어요. 약속을 믿고 사는 그러한 믿음의 예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23절부터 31절은요.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어 옳은 것을 선택하는 그러한 참된 믿음의 예를 보여 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이제 32절부터 40절인데요.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언급이 돼요. 짧게 짧게 언급이 되는데 그러면서이 믿음이라는 것은 온갖 환난을 당해도 결국 끝까지 견뎌낸다라는 그 사실을 강조하면서 히브리서 11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어,이 11장을요. 저는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는이 제목으로 함께 살펴볼 거예요. 오늘이 이제 전체 말씀의 서론 부분에 해당이 될 거고요. 그리고 어, 다음 이어지는 히브리서 말씀에서 이제 하나하나이 본론에서 다루고 있는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좀 말씀을 살펴보게 될 겁니다. 어, 근데 우리가 좀 여기서 제가 제목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어요.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라고 한 이유가 있어요. 뭐냐면은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다른 표현으로 어떻게 하냐 하냐 하면 믿음의 장이라고도 하고요.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제 믿음의 뭐라 그럴까요? 어, 대가들 예, 뭐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믿음의 전당 이제 그런 표현들을 사용하기도 해요. 근데 이제 그러한 것이 약간은 우리들에게 오해를 줄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이 사람들에 대해서이 말씀들이이 사람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이 사람들이 이런 대단한 믿음의 모습을 보였으니까 이들을 존경하고 이들을 칭송하라. 그러한 목적으로서 사실은 히브리서 11장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죠? 네.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고요. 이들이 우리가 실제로 따라야 할 그러한 본으로서 우리들에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이렇게 트로피처럼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고요. 실제로 치열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갔었던 사람들인 거고 우리들에게 그 길을 따라가라고 지금 히브리서 11장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대열을 따르라라는 제목으로이 말씀을 좀 살펴보게 살펴볼 겁니다. 어, 이들이 살았던 시대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달라요. 그렇죠? 그리고 이들도 사실은 각각마다 그 환경이 다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모습도 다르게 드러났어요. 우리가 어 믿음의 삶이라고 통칭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 모습들은 다르게 드러났습니다. 근데 공통적인 것은 뭐냐면은 이들이 다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라는 거예요. 그 믿음은 똑같이 가지고 있었고 그 믿음이 각각의 상황에서 어떠한 특징으로서 드러났느냐가 어 다른 거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도이 말씀들을 통해서 결국은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의 특징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좀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같이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어 오늘은 어 서론 같은 말씀이라고 말씀드렸어요. 1절부터 3절만 살펴볼 건데요.이 말씀들을 통해서 이제 우리가 계속해서 말하게 될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어 1절부터 3절인데요. 먼저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을. 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어, 방금 읽었던이 말씀은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다라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믿음은이라고 시작이 되니까 이제 믿음의 정의라고도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이제 엄밀히 보면은 믿음은 무엇이다라고
그렇게 정의를 하고 있다라기보다는요. 믿음은 이런 일을 한다. 이렇게 역사한다라고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믿음이 본질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라는 식으로 그렇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본질이라고 1절부터 3절은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1절을 다시 보시면요. 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을 합니다.요 부분이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텐데 어이 말씀의 의미는요. 사실은
뒤에 나오는 그런 실제적인 예들을 통해서 훨씬 더 구체화될 거고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가이 의미를 더 분명하게 그렇게 알게 될 거예요. 여기서는 조금 일반적으로이 말씀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바라는 것들. 바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이라고 바꿀 수도 있을 거예요. 소망하는 것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가요?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가요? >> 가지고 있지 않은 거죠. 그렇죠? 근데 가지고 싶은 건가요? 가지고 싶지 않은 건가요? >> 가지고 싶 >> 네, 맞습니다. 그렇죠. 가지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그것을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소망하는 거예요. 그것이 미래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여기 표현을 잘 보시면 믿음은 그것에
그 바라는 것들의 뭐라고요?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실상. 다르게 말하면은 실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실체. 미래에 속해 있는 건데 그것을 현재로 가지고 오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어 혹은요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그것에 대해서이 바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곧 뭐를 가지고 있다라는 거예요?요 말씀에 따르면은 >> 실체를 가지고 있다라는 거죠. 그렇죠? 그 실체는 미래에 있지만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지금 성경이 말을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무슨 예를 들면 좋을까 고민을 해 보다가 그냥 머릿속에 생각난게 이거밖에 안 돼서 제가 이런 예를 들 텐데 어, 잘 한번 들어 보세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 강아지를 정말로 키우고 싶은 아이가 있어요. 네. 강아지 집에서 강아지를 그 패스로 그렇게 키우고 싶은 아이가 있는 거죠. 그 아이에게 있어서요 강아지가 뭔가요?요 요 말씀에 나 따르면은 >> 바라는 것이죠. 그죠?요 강아지가 바라는 것이에요. 근데 그것은요 그냥 그렇게 바라고만 있으면 그것은 그냥 희망 사항이지 현실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그 대상이 뭐 강아지가 됐든 뭐 불을 뿜는 용이 됐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죠? 용을 갖고 싶은거나 강아지를 갖고 싶은거나 똑같은 얘기가 돼요. 그냥 바라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요렇게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에 부모가 강아지를 데려오겠다라고이 아이에게 약속을 한 겁니다. 그렇죠? 그러면 이제 그 아이가 바라는 것은이 부모의 약속을
통해서 지금의 현실하고 연결이 되기 시작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네. 부모의 약속이 없었을 때는 그냥이 아이 강아지는 바라는 것일 뿐이었어요. 상상 속에 있는 것이었어요. 그렇죠? 그냥 불을 뿜는 용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부모가 강아지를 데려오겠다라고 약속을 하는 순간 그것은 그 아이의 현실하고 이제 연결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언제가 돼요? 그 부모가 약속을 지킬 때. 그렇죠? 그 약속이 성취될 그때가 현실이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게요. 그 전에도 그렇게 되기 그 약속이 성취가 되기 전에도 그 약속에 대한이 아이의 믿음은 그 아이의 현실을 바꾸기 시작할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은이 아이가 정말로 부모의 약속을 믿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정말로 반드시 강아지를 데리고 올 거야라고이 아이가 믿으면 그러면이 아이는 무엇을 시작할 거냐 하면은 그 강아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을 할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아마 자기 방이 됐든 어디가 됐든 강아지를
둘 공간을 그렇게 만들어 둘 거예요. 그때부터 유튜브를 찾아보면 유튜브를 보면 뭐를 보겠어요? 강아지 키우는 법을 보겠죠. 그렇죠?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물을 얼마나 줘야 되는지, 어떤 먹이가 적당한지 그런 것들을 다 공부를 할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강아지 먹이를 사오고 하면서 기다리기 시작할 거예요. 자,이 아이가 바라는 것은 지금 그 아이 앞에 있나요, 없나요? 없어요. >> 없어요. 강아지는 아직 없습니다. 그렇죠? 근데이 아이의 현실은 달라졌나요? 달라지지 않았나요? >> 달라졌어요. 그렇죠? 뭐 때문에?
>> 약속.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이 아이의 >> 믿음인 거죠. 그렇죠? 그 믿음이 바꿔 놓은 겁니다. 그 현실을 바꿔 놓은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어요. 그죠? 여전히 강아지는 없고 내 집은 여전히 내 집이고 부모님은 여전히 어 그냥 부모님이에요. 그냥 부모님이 강아지 데려다 줄게라고 약속한 거 말고는 그런 말 한마디 한 거 말고는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근데 [목을 가다듬음] 그 약속에 대한이 아이의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이
돼서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라는 겁니다. 그것이이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이유인 거예요. 이해가 되시나요? 네. 자, 그러면은 그 뒤에 말씀들 볼게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비슷하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요.이 바라는 것은 조금 달라요. 바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현재도 있기는 있는 거예요. 존재하기는 하는 건데 보이지가 않아서 내가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것을 지금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어, 이것이 이제 우리들에게 굉장히 좀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무언가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라는 그 사실이 우리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왜 그러냐면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이 보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꼭 본다라는 것이 꼭 눈으로 보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대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까 내가들을 수 없고 내가 만질 수 없고 내가 경험할 수 없고 혹은 내가 내 머리로서 내 이성으로서 설명할 수 없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하냐 하면은 그런 것은 애초에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을 이제 유물론적인 가치관이다라고 말을 하고요. 물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유물론적인 가치관이라고 말을 하고요. 오늘날에 점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가치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하나님에 대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거예요. 왜냐하면은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죠?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그 만질 수 없으니까 내 머리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존재는 그냥 없는 거야라고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그런 끔찍한 오해를 바로 잡아준 바로 잡아 준다라는 거예요. 존재의 증거를
보고 싶어하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그 증거를 보여 준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요. 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지금 여기 1절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요 두 가지 이제 바라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생각을 해 보시면 기본적으로는 어, 바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포함된다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죠?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더 큰 개념이고 그 안에 이제 바라지 않는 것들이 들어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 그래서 요렇게요 1절의 말씀을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국은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혹은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내가 보고 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어 여기서
이제 우리가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야 될게 있는데 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요. 어 보지 못하는 영역 혹은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 내가 믿음 믿는다라고 그렇게 표현을 해요. 어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어떠한
어떠한 생각들이 있냐면은 사람들은 어이 믿음이라는 것과 이성이라는 것이 대조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이성의 영역이 여기에 있는 거죠. 내가 논리적으로 경험하고 알 수 있는 그러한 영역이 있는 거고 그것을 벗어난 어떤 믿음의 영역이 따로 있다라고 그렇게 일반적으로 많이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해서는 그 이건 논리의 영역이야 혹은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야. 이제 그렇게 구분 지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어, 뭐 별 이유 없이 어떤 일에 대해서 그냥 아, 이거 이렇게 될 거 같은데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럴 때 이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내가 그렇게 믿으니까 그냥 그렇게 될 거 같아.
이제 그런 식으로 이야기들을 하는 겁니다. 증거 논리적인 설명이 없거나 부족할 때 그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 성경에 말하는 믿음도요. 어떤 면에서냐 특징적으로는 그런 면에서는 동의를 해요. 보이지 않는 영역, 알 수 없는 영역을 받아들인다라는 그런 특징적인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어, 그러다 보니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도 어, 똑같이 그렇게 생각을 해요. 뭔가 이성에 대조되는 개념, 논리와 대조되는 개념 그런 개념으로 생각을 해요. 논리와 과학의 영역이 이쪽에 있고 이쪽에 믿음과 신앙의 영역이 있다라고 그렇게
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어, 일반적인 믿음과 성경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러한 믿음은요. 그러한 보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인다라는 면에서는 특징적으로 비슷하다라고 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냐면은 성경의 믿음은 그 대상이 분명히 실제한다라는 거죠.
실체가 반드시 존재한다라는 면에서 다릅니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이 바라는 것이 단순히 희망 사항이 아닌 거예요. 그것은 약속된 것을 소망하는 것을 성경은 바란다라고 그렇게 말을 해요. 보이지 않는 것은요. 그냥 내이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닌 겁니다. 어 그래서이 성경의 믿음이라는 것은요. 분명한 실체가 그 대상이 된다라는 면에서 분명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믿음하고는 다른 믿음이에요. 그래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은 이성과 논리에 반하는 개념이 아니고요. 오히려 그것에 기초해 있는 개념이라고 말을 해야 돼요. 오히려 믿지 않는 것이이 이성과 논리에 반하는 일이 됩니다.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실체가 있는데 단순히 그것을 내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앞에서 예로 들었던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볼게요.
어, 부모가 어,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죠. 그렇죠? 어,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혼자서 아니야, 우리 집에 강아지가 올 거야라고 그렇게 굳게 믿으면서 강아지 집을 만들고 먹이를 준비하고 있으면 어떨까요? 어, 불쌍하죠. 그렇죠? 철량하죠. [웃음] 그렇죠? 어, 내가 가서 강아지 갖다 주고 싶고 막 그런 생각 드시죠. 어, 뭐 그럴 수 있어요. 그렇죠. 네. 불쌍합니다. 철량합니다. 어, 근데 계속해서 부모가 이제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이제 부모가 얘기하는 거죠. 아니야. 우리는 절대로 강아지 못 키우고 아빠도 알레르기 있고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강아지 우리는 절대 못 키워. 계속해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계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엔 강아지가 올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집을 만들고 먹이를 사아 놓고 계속해서 그렇게 한다면 어떨까요? 그 일이 비이성적인 일이 되는 거죠. 그죠? 비이성적인 일이 되는 겁니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될지도 몰라요.이 아이가 뭔가 문제가 있어서 계속 이러고 있다라고 그렇게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비이성적인 일이 되는 거예요. 근데 [목을 가다듬음] 반대로 반대로 아까 말했던 것처럼 부모가 그런 약속을 한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분명히 이루어질 일이라면 그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은요 정상적인 일이 되죠. 그렇죠? 아주 이성적인 그런 행동이 되는 겁니다. 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어, 우리 집이 지금이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 사실이 눈에 보이는 사실은 아니에요. 그렇죠? 눈에
보이는 사실은 아닌데 그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한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네. 지혜롭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을 할 거예요. 어떤 물을 마실 때마다이 물에 독이 없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거 같아요? 테스터기 갖고 다니면서 한 번씩 찔러 보고 [웃음] 네. 그러면서 물을 마시는 사람이 있다라고 하면 여러분 어떨 거 같아요? 네. 어
>> 뭐라고요? >> 피곤하겠죠. 그렇죠? 예. 그런 사람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을 해야 될 거예요. 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이런 믿음이라는 거죠. 본래 실상이 있는 거고요. 증거가 있는 거고요. 충분히 믿을 만한 것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믿으라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너희가 믿어라고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거예요. 그것이 단순히 그냥 미래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금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믿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지 이것은 분명히 믿을 만한 이유가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믿는 겁니다. 어 1절 말씀을 보면요. 아 제가 설명할 때도 그랬지만이 바라는 것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구분을 강조하려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6절 말씀을 보면 약간 그것이 우리가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있어요. 6절을 보면은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나아가는 자는 여기 두 가지가 나오는데 반드시 그가 계신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요. 그리고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요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것 요것을 1절 말씀에 대응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이 무엇에 해당되는 거 같아요? 바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렇죠? 하나님 지금 계신데 그렇죠. 분명히 계시는데
보이지 않고 있죠. 그렇죠? 그리고 두 번째 말하는 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 이것은요.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되겠죠. 그렇죠? 그렇게 우리가 구분해서요 말씀을 [목을 가다듬음] 어 이해를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다 뭐예요? 이건 확실한 거예요? 불확 불확실한 거예요. 확실한 겁니다. 그죠? 두 개 다 확실한 거예요. 이것이 그냥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에요. 단지 이것이 미래에 속해 있어서 우리가 지금 눈앞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뿐이고요. 이것이 영적인 세계 이것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에 계셔서 우리의이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뿐인 거죠.
근데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게 뭐예요? 믿음이라는 겁니다. 믿음. 믿음이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그 실체를 그 믿음의 대상인 그 실체를 내 앞으로 가져와 주는 겁니다. 믿음은 그래서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존재하는데 근데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1절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본질인 거예요. 어 2절은요. 보면은 바로 그런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라는 사실을 말을 해요.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 이제 증거를 얻었느니라라는이 표현이 조금은 오해할 수 있는데 어 이로써 인정을 받았다 이제 그런 의미입니다. 여기 어 2절에 사용된 증거하고요. 1절에 나오는 증거하고는 다른 단어예요. 2절에 나오는 증거는 사실은 증거보다는 어 증언을 의미한다라고
보는게 맞아요. 그래서 이제 능동형으로 사용이 되면은 증언하다가 되는 거고 그게 수동형이 되면은 증언을 얻는 것 그건 뭐 증언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어 증언되다라고 그렇게 문자적으로 할 수 있는 건데 근데 이제 부드럽게 조금 더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면 뭐 뭐냐하면요 어 좋은 증언을 듣게 되는 거죠. 그렇죠? 좋은 증언을 듣는 것. 좋은 남에게 좋은 얘기를 듣는 걸 우리가 뭐라고 얘기하죠? >> 칭찬받는 거죠. 칭찬받는 것. 그렇죠?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들이 이로서이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칭찬을 얻었다 혹은 인정을 받았다. 이제 그렇게 2절에서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 이것도 전 굉장히 좀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제 이어지는 말씀들을 보면 우리가이 선진들이 누구인지를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이 선진들의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냐면요. 이들의 생각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아니라 이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요.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보지도 못한 그 홍수에 대해서 경고를 듣고 방주를 지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자기 고향을 떠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계속해서이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해
어땠는지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이 말씀들을 쭉 읽다 보면은 우리가 받는 인상은 뭐냐면은 아이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이렇게 살아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구나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구나 그러한 인상을 받게 돼요. 근데 여기
2절을 보면은이 선진들이 그들의 삶으로서가 아니라 뭐 이로서라고 얘기했죠. 이로서 그렇죠. 이로서는 뭐예요? 바로 앞에서 얘기한 믿음이죠. 그렇죠? 이들이 믿음으로서 인정을 받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들의 삶에 대한 묘사 그
가장 앞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네 글자가 있어요. 뭐예요? >>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노아는 배를 지었고요.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자기 고향을 떠났습니다. 믿음이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게 했기 때문인 거죠. 그렇죠? 그 가장 기본에 있는 것이 믿음인 거예요. 그들의 삶은 다 달랐어요. 삶으로 들어가 드러난 그 열매들은 다 달랐는데 그들의 믿음은 다 같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서 이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라고 이절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 근데요. 여기서 우리가 이제요 1, 2절에 내포되어는이 믿음의 중요한 특징에 대해서 우리가 꼭 좀 생각을 해 봐야 돼요. 뭐냐하면은 어 지금 제가 계속해서 말했던 것처럼이 믿음이라는 것이 그 믿음의 삶하고 분리되지가
않는다라는 겁니다. 그 둘은 반드시 함께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에요. 어 우리는요 결국은 결국은 우리는 눈에 보는 대로 살아가요. 여러분들 눈앞에 벽이 있으면 걸어가고 있는데 눈 앞에 벽이 나타났어요. 벽이 보여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 돌아가죠. 부셔요. [웃음] 네. 물론 이제 그래야 될 경우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눈앞에 벽이 나타나면은 어 돌아갑니다. 그렇죠? 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 안 보이는 사람이죠. 네. 안 보이는 사람. 앞에 그 벽이 안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혹은요. 혹은 그 눈앞에 벽을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렇게 어 움직인다라는 거예요. 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요. 바라는 것의 실상을 가지고 있고요. 1절 말씀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뭐냐면요.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달라졌다라는 거예요. 달라졌다. 그리고 보는 것이 달라지면 사는 것도 달라집니다. 선택하는 것이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눈앞에 벽이 나타나면은 돌아가야 되는 거죠. 그렇죠?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올 것을 알면은 집을 지어놔야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들이라는 거예요. 반대로 반대로 생각. 그 말을 반대로 생각을 해 보면은 만약에 만약에
나는 믿는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이렇게 보고 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는 것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사는 것이 그 점과 똑같다면 여전히 벽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계속해서 부딪히고 있다면 여전히 강아지 집을 안 짓고 있다면 어 그러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뭐예요?
>> 믿음이 없다라는 거죠. 그렇죠? 네. 믿음이 없다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 겁니다. 어. 어, 지금 이제 운전을 시작한 청년들이 몇 명 있어요. 그렇죠? 제가 그 친구들한테 항상 이렇게 얘기를 한다라고 가정을 해 보세요. 아, 나는 네가 운전 진짜 잘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 네. 언제 한번 꼭 태워 줘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렇죠? 계속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해요. 그러다가 제가 이제 차가 필요한 상황이 돼서 그 친구가 물어보는 거죠. 어, 선생님, 제가 태어 드릴까요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제가 옆에 이렇게 보면서 어, 어, 수민아, 너 저기 가지 않아 그러면서 제가 [웃음] 수민이한테 태워 달라고 합니다. 네.
그리고 어, 그리고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됐는데 이제이 친구가 태워준다고 하는데 굳이 저기 멀리 가는 화평형제를 제가 불러 가지고 화평형제 나 집까지 좀 태워주고 가면 안 돼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라고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어 그러면 저는이 사람한테 나는 네가 운전을 잘할 거야라고 말은 하고 있고 그렇게 믿는다라고 말은 하고 있는데 실제로 저는 그거를 믿고 있는 건가요? 믿고 있지 않은 건가요? >> 안 믿고 있는 거죠. 네. 안 믿고 있다라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 네. 제 행동을 통해서. 네. 제 행동을 통해서 제 입으로가 아니라 제 행동을 통해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거예요. 그렇죠? 어. 나는 저 사람을 믿고 있지 않다라고 해야지만 말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어,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사실은요. 결국은 우리의 그 믿음이 지금의 삶을 바꾼다라는 의미가 되는 거고요. 그리고 역으로 지금의 우리의 삶이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증언한다라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어,이 부분이 이제 우리가 앞으로 히브리서 11장을 살펴보면서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좀 점검해야 점검해 봐야 될 그런 부분들이 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앞으로 이제 히브리서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시면서이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나는 정말로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지, 내가 소망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내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 내가 정말로 믿음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반드시 점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내 생각만 점검해 보지 마시고요. 내 삶이 말하고 있는 답도 점검을 해 보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같이 보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이제 3절부터 히브리서 저자가 이제 믿음으로 시작되는이 믿음의 예들을 보여 줘요. 근데 이제 특정한 인물로 넘어가기 전에 어 우리의 일반적인 믿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 줍니다. 3절을 보시면 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을 해요. 그러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다 이런 믿음 지금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라는 얘기를 먼저 하면서 시작을 하는 겁니다. 어 물론 이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믿음도 없어요. 그렇죠? 오늘날 사람들은 나타난 것이
원인이 돼서 보이는 것이 되었다라고 그렇게 설명을 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어떠한 다른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최초에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렇죠? 그것이 우주의 빅뱅인 거고요. 그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진화론인 겁니다. 나타난 것들이 보이는 것이 됐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런데 최소한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은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라는 그 믿음은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어 정확히 말하면요. 그것은 지식이었어요. 여기 표현에 보시면은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 지식이 어디서 왔냐면은 믿음으로 왔습니다. 믿음으로. 이들이 막 연구해 보고 실험해 보고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들이 믿었기 때문에 그런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어. 그들 중에이 뭐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지만이 히브리서의 독자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렇게 만드시는 거 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죠? 아무도 그것을 보지는 못했어요. 동시에 그들 중에 누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라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무슨 말이냐면은 누구도 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라는 거예요. 근데 그 이유가 뭐냐면은 이들이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기초해서 이들은 창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음을 이들이 알고 있다라고 지금이 저자가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이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가 돼서 참된 지식을 갖게 한 겁니다. 어, 그리고 이제이 믿음이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돼서 이제 내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하고 모든 선택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얘기를 이제부터 히브리서 저자가 할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여러 사람들의 예를 어 들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말씀드렸었던 것처럼이
사람들은 우리들의 선진들이고요. 여기 12장 1절에 보면은 어 구름같이 둘러싼 허더한 증인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우러러 보기만 할 사람 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만 그렇게 얘기할 사람들이 아니고요. 우리보다 먼저이 길을 걸어간 그 사람들인 거고이 길이 옳은 길이다라는 것을 증언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리고 우리도이 믿음의 대열을 어 따라가야 됩니다.
어 말씀을 마무리하면서요.요요 부분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좀 생각을 해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 사실 우리들뿐만 아니고요. 세상 많은 사람들이이 믿음에 따라서 살아가요. 그렇죠? 다들 각자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 근데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뭐가 다른 거냐라는 생각을 우리가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 뭐가 다르면요? 오늘이 말씀 우리가
함께 살펴봤던 말씀에 따르면요. 어 그들의 믿음은 허상을 만들어내는 건데 우리의 믿음은 실상을 보여 준다라는 그 사실이 다릅니다. 어 그들의 믿음은 위증을 만들어 내는데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여 주지만 우리의 믿음은 믿음은요 엄연한 증거가 된다라는 사실이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결국은 언젠가 헛된 것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우리의 믿음은 참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라는 것이 다릅니다. 어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살아 계신 분이시고요. 그리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약속도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이 분명한 사실을
믿고서 살아간다라는 점이 다릅니다. 어 아마 어쩌면 여러분도 이런 고민을 좀 해 보실 때가 있을지 모르고요. 그리고 누군가 여러분 옆에서 이런 얘기들을 할지도 몰라요. 어, 믿는 건 좋은데 근데 근데 어, 그런 믿음을 위해서 지금 현실에서 포기하는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많은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그렇게 질문을 할 수도 있어요. 어 그런데 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요. 어 우리는 현실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래요. 우리가 현실에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단지 미래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 믿음이 없이는요. 마치 우리가 사는 것은요. 이런 모습하고 같아요. 믿음이 없이 산다라는 것은 그냥 깜깜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요. 눈앞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냥 걸어가는 겁니다. 걸어가다 보면은 눈앞에 발에 뭔가가 부딪히죠. 그렇죠? 부딪히면은 넘어집니다. 그러다가 저쪽에서 야, 여기가 길인 거 같아라고 불러요. 그럼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갑니다. 근데 여전히 깜깜해서 보이진 않아요.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은 또 똑같이 부딪히고 넘어지고 그런 일들이 반복돼요. 그런데 [목을 가다듬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요.
그런 어두운 길에서 우리들에게 비춰 주는 등불 같은 거예요. 여기에 뭐가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 주는 겁니다. 저 앞에 뭐가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겁니다. 무엇을 내가 피해야 되는지를 보여 주는 거예요. 나에게 정말로 뭐가 좋은 것인지 뭐가 나쁜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믿음인 겁니다. 뭐가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뭐가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 믿음이에요. 어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요.이 땅에서의 목숨을 잃는 것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 되는데 그런데 믿음으로 보는 사람에게는요. 그것이 영생을 얻는 그러한 길이 돼서 최선의 상황이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 보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이를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이르면 찾으리라. 어, 이것이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얘기인 거죠. 그렇죠? 가장 중요한 목숨을 잃는데 거기서 좋을게
뭐가 있을 수가 있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말씀인 거예요. 그런데 믿음으로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은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목숨이라는 것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이 목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영원한 것을 말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것을 위해서 지금이 눈앞에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가 보이는 거고요.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
믿음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하고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말에 여러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 그리고요. 또 나도 마치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서 여러분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10장 35절 말씀처럼요. 여러분의 담대함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 마지막으로 고린도 후서 말씀을 같이 좀 찾아서 읽어보고 말씀을 마무리를 할게요. 고린도후서 4장인데요. 좀 앞으로 [목을 가다듬음] 넘기시면 좋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부터 어, 5장 네, 5장 10절 말씀까지 같이 읽어 보죠. 고린도후서 4장 16절부터 5장 10절입니다. 다 찾으셨어요?
>> 네. 찾았으면 우리 같이 한 목소리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5장 1절이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 아노니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이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어, 여러분이 바울의 고백에 동의하시나요? >> 네. >> 네. 여러분, 정말로 정말로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정말로 여러분들이 바라고 계신 건가요? >> 네. >> 네. 아직 조금 더 살고 싶고 그런 마음이
어 이게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될 때 그때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내가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볼 때 지금의 삶이 정말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여기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몸으로 떠나 있든지 어 내 몸 지금이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 되지 않고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겁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지금 삶을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렇게 보면요. 내가 정말로 지금 아무것도 포기하고 있는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이 모든 삶이요. 사실은 무언가를 얻고 있는
삶입니다. 무언가를 벗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덧입고 있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궁극적으로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 모든 것을 얻는 삶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마시고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우리들에게 오늘 주신이 말씀의 감사를 드립니다.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눈을 더욱더 밝혀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이 세상에 어, 빛이 참 너무 밝아서 우리가이 소망의 빛을 어, 잃어버리지 않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 우리가 참된 것,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하루하루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또 힘을 더하여 주시고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