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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히브리서가 아직 몇 장 남아서요? 아직 오늘은 끝은 아닌데요. 네. 4월 히브리서가 마지막입니다. 4월 히브리서가 마지막이고 오늘은 10장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10장 26절에서 39절의 본문이고요. 어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자 두 번째 시간입니다. 어 지난주에 들었던 설교에서 이어지는 거라서 서론이 없습니다. 이제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예수님의 피가 이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피다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피고요. 어 죄가 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원수가 됐었던 거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진노를 하신 겁니다. 어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이제 해방을 하고 원수된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되게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피죠. 어, 말씀을 한 두
구절만 읽어 드리면요. 로마서 3장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재물로 세우셨으니 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와 화목하셨다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고요. 어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는요. 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리한 자를 대신 대신하셨으니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라고 말씀을 해요. 어 그래서 지난주에 이제 살펴봤었던 것처럼 그 예수님의 피에 합당한 반응은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거죠. 그렇죠? 그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 확신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 가운데 머물러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것 그것이 바로 합당한 반응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어요. 어, 오늘은 이제 그것에 반대되는 이제 부당한 반응, 예수의 피에 부당한 반응, 합당하지 않은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고요. 그리고 어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들에게 주는 교이 도전을 통해서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음
26절부터가 오늘 본문인데요. 전체를 어 한 번에 읽고요. 조금씩 읽어 가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 26절에서 이제 우리말 번역에는 생략이 되어 있는데 사실은 25절하고 26절 사이에 접속사가 하나가 있습니다. 뭐냐하면은 어 왜냐하면이에요. 왜냐 하면 그래서 어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 예수의 피에 부당한이 반응을 통해서 왜
앞에서 말한 것이 합당한 것인지를 이제 지금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니까 이러니까 너희가 이렇게 반응해야 된다. 이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어 예수의 피에 부당하게 반응하는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을 하고요.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해서 독자들에게 엄중하게 경고를 합니다. 어,이 말씀이요. 사실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었던 히브리서 6장 3절부터 8절에 있는 그 말씀과 함께 어, 히브리서에 기록된이 경고의 말씀 중에서 가장 엄중한 그러한 말씀이에요. 어쩌면 성경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우리에게 엄중하게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먼저 26절부터 31절인데요. 예수의 피해 부당한 반응입니다.
그 부분 말씀을 먼저 읽겠습니다. 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패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
어, 여기서 이제 저자가 말하는 논리는 분명해요.이 죄를 속하는 유일한 유일한 방법인 예수님의 피를 거절을 하면 그러면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요.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그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심판이라는 것이 절대로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씩 좀 그 논리를 따가면서 말씀을 드릴게요. 먼저 부당한 반응입니다. SF에 부당하게 반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거냐? 여기 표현해 보면요. 뭐라고 했냐면은 다시 26절 첫 부분을 보시면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이라고 했습니다. 어,요 표현 중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한 표현은 뭐냐면은 짐짓이에요. 짐짓.이 짐짓이라는 단어를 사실은이 문장에 제일 앞으로 가져와 가지고 이것을 강조를 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어, 고의로 그렇게 한다라는 거죠. 일부러 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말을 합니다. 의지적인 선택의 행동을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죄를 범한 즉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이것은요. 어느 한 순간의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 현재 분사이고요. 그래서 지속적인 것을 의미를 해요. 특징적인 것을 의미를 합니다. 어 그래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짐짓 죄를 범하는 사람은요. 요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죄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죄를 선택한 사람. 어, 그냥 선택한
사람이 아니고요. 앞부분에 보면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그렇게 했다라고 얘기를 하죠. 모르그한 선택이 아니다라고 지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다 알고 나서 이렇게 선택을 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도 알고요. 그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 사람이 되신 것도 알고요. 그리고 참된 대제사장으로서 그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여서 죄인을 구원하신 것도 알고요.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심지어 그 복음의 능력까지도 체험을 했는데 죄 사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죄 짓기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지금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맞다라고이 선택이 맞다라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사람을 말을 하는 거예요. 어 6절에서는 이제이 사람을 요렇게 표현을 했었어요. 6장 4절부터 6절에서 보면 어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그때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이 사람이이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이 사람들이 어 구원받은 사람인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인지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학자들이 논란이 있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어요. 아, 네. 아, 합품한 거죠? 네. 난 무슨 얘기하려 그런 줄 알았어. 네. 어, 그런 말씀을 어, 제가
아, 놀래 가지고 어, 그런 말씀을 드렸었어요. 그만큼 이제이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묘사가 굉장히 이제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사실은 그렇게 쉽지 않은 표현인 거죠. 어, 근데 이런 사람이 분명히 있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론 유다가 이런 사람이에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방금 전에 말씀드렸었던이 모든 것들을 정말로 정말로 가장 가까이서 다 경험한 사람인 겁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정말로 모든 것들을 경험을 했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가장 가까이서 경험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뭐를 선택을 한 겁니까?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을 선택을 했던 거죠. 그죠? 죄를 선택을 했었던 겁니다. 어, 성경에 보면요. 비슷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데마라는 사람이 있어요. 데마. 어 데마도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골로새 교회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 바울이 어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사람으로서 누구를 언급을 하냐면은 누가하고 데마를 언급을 해요. 어 빌레몬에게도 편지를 쓰면서 똑같이이 대마를 동역자로서 언급을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바울과 함께 계속해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을 했었던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이 바울의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 후서를 보면요. 거기선 데마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을 보면 데마는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얘기를 해요. 어 이게 데마가 바울을 떠난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죠? 세상을 사랑했다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 데마가 바울을 떠난 이유가 뭐 바울이 싫어서 혹은 사역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게 아니라요.이 사람이 세상인
세상을 더 사랑했다라는 거죠. 세상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데마에게 있어서 더 사랑스러웠었던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선택을 했다라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어 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같이 복음도 전했겠죠. 그렇죠? 그리고 어 그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봤을 거고요. 영혼들이 변화되는 것도 다 목격을 했을 겁니다. 심지어 그가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저는 있었을 거라고 분명히 생각을 해요. 그것 때문에 기뻐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의 선택이 뭐였냐면은 세상이었다라는 거예요. 정말로 안타까운데 대만은 세상과 함께 멸망하기를 선택을 했다라는 겁니다. 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도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었어요.
어, 모든 바리새인이 그랬던게 아니죠. 그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도 사실 바리새인이었고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입니다. 그런데이 그 바리새인들의 다수가 어 다수가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뭐냐면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가지고 이것이 귀신의
일이다라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은 마태복음 12장 31절을 보면은 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어 흔히 이제 우리가 성령 회방죄라고 말을 하거나 혹은 성령 모독죄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 죄가 바로 여기서 말씀하는 건데이 사람들을 생각을 해 보세요.이 이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시면이 사람에게이 사람들에게도 정말로 충분한 진리의 빛이 전해졌습니다. 그렇죠? 진리를 알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 그들에게 전해졌어요.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그러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분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성령님께서 하신 일들이었죠. 근데 그들이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성령님을 부인을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이 아니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야.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라고 그렇게 부정을 부인을 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지금 예수님은 그들의 죄가 사받지 못할 거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그것이 지금 여기 히브리서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피에 대한 부당한 반응인 겁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선택하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만 그 예수님을 거절하는 거예요. 어 그런데요. 여러분 이제 지금까지 드린이 말씀들을 통해서이 예수의 피에 대한 부당한 반응이라는 건 어 것을이 진리의 지식을 받고서도 짐짓 죄를 범한다라는
것 이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이해를 하셔야 돼요. 어 이거는요 의도적인 거고요. 그리고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말을 해요. 어, 그렇기 때문에 어, 비록 정말로 큰 죄, 우리가 생각했을 때 정말로 큰 죄를 범한다고 해도 혹은 똑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많이 범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런 사람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어, 예수님의 피가 씻지 못할 너무 큰 죄가 없고요. 그리고 그 피가 씻지 못할 너무 많은 죄도 없어요. 그렇죠?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한일서 1장 8절 9절은요. 오히려 죄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속이는 거다라고 말하고요. 진리가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해요. 오히려 죄를 자백하는 사람이 깨끗함을 받는 사람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닌 거죠. 그 죄가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용서받는 사람으로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어요. 뭐 여러분들 이런 것에 대해서 코씨 이렇게 뭐 토론 같은 거 해 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청년 때 좀 해 봤었거든요. 어 성령 회방죄가 뭐냐 혹시 우리도 지을 수 있는 거냐 막 그런 얘기들 해 봤었거든요. 어 구원받으신 분들 중에서 혹시 이런 말씀 읽으면서 아 혹시 나도 이런 죄 짓는 거 아니야? 성령 해방죄 같은 거 지어서 나도 어 용서받지 못하는 거 아니야? 어, 혹시 그런
염려가 있으시다면요. 그런 염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있다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내려 놓으셔도 됩니다. 어, 또 하나 이제 요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게 뭐냐면요. 어,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이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요 굉장히 사실은 어, 쉽지 않은 일이고요. 그리고 쉽게 해서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해요. 어, 너는 지금이 불류에 들어간 사람이야.
너는 이제 회개할 수 없고 너는 이제 구원받을 수 없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조심해서 봐야 될 그러한 문제예요. 어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대할 때 좀 생각해 봐야 될 건 뭐냐면요. 어 여기에 속하는 다른 사람이 누가 있냐가 아니라 나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봐야 돼요. 여기 말씀도 보시면요. 히브리서의 저자도요. 어,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은 26절 처음에
우리가라고 얘기를 했죠. 우리가. 그렇죠. 그러니까 일반적인 표현을 사용을 했어요. 그러니까 자기까지 포함을 해서 지금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이 말이요. 앞에 드렸던 그 말씀하고 어떤 면에서 좀 이렇게 상충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요 계속해서 믿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유다가 유다가 이런
죄를 범할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데마가 그럴 줄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어쩌면은 자기 자신도 몰랐을 거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요.이 데마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은 바울하고 동역하면서 어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
같은 것을 한 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그냥 아 이렇게 하면 내가 믿는 사람처럼 보일 거고 그러면서 바울 따라다니면 나한테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러면서 따라다녔었던 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그 자신조차도 그게 믿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어 끝에 가서 결국은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나는 것으로서 그가 믿음이 없었다라는 것을
그렇게 어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이런 말씀들을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았고 믿는 자라고 여러분들이 어 생각하신다라고 해도이 경고의 말씀을 들으셔야 된다라는 거예요. 어 히브리서의 독자들처럼요. 핍박으로 인해서 유혹으로 인해서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 진리의 말씀에 무관심하면서 점점점 교회에서 멀어지고 세상 일에 바쁘면서 자연스럽게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 참된 믿음은 인내하는
믿음이고요. 끝까지 지키는 믿음이다라는 것을 여러분 꼭 기억을 하시고요. 앞서서 얘기를 했었던 그 예수의 피에 합당한 반응으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이 부당한 반응의 결과에 대해서 이제 뒤에 말씀을 통해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어,이 결과가요. 정말로 정말로 두렵고 무서운 결과예요. 어, 예수님의 피는요 죄를 없이 한
피였잖아요. 그래서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하고 상관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일에 대한 최종 선언이 바로 조금 위에 있었던 10장 18절이었어요.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였습니다. 이것이 어 최종 선언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이 예수님의 피를 내가 거절한다라는 것 이것을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내가 죄악된 삶을 선택한다라는 것은요.이 죄를 속하는 유일한 제사를 거절하는 것하고 똑같은 의미가 됩니다. 어 예수님의 피가 곧 죄사함이어서 그래요. 이것이 양자 태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어, 둘 다
받아들이든지 둘 다 거절하든지가 돼야 됩니다. 그래서이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요. 26절에 끝부분에 보시면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뭐 유대인들 같으면은 여전히 난 양해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그런 생각할 수도 있어요. 물론 원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근데 그것이 죄를 없이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린다라고 해도이 예수님을 거절했으면 죄를 속하는 제사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속하는 제사가 나에게 없다면 그러면 나에게 남는 것은 뭐냐면은 그 죄에 대한 심판뿐인 거예요. 27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아, 그래도 난 예수님 믿었는데요.
나는 그래도 나름 좀 선하게 살았는데요. 그런 말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를 거절하면 남은 것은 심판뿐이다라는 겁니다.이 심판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 누군가는요. 아, 나는 뭐 심판 같은 거 별로 두렵지 않아요라고 그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어, 왜 그러냐면이 심판이 어떤지를 사실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이 이 맹렬한 불 성경이 말하는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이 고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어 사실 우리는요 지옥에 대해서 많이 얘기는 하는데 정말로 지옥이 어떤 어떤 곳인지 잘 몰라요. 그렇죠? 하나님의 그러한 끝나지 않는 심판, 진노라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다 알지를 못합니다. 어, 그런데 성경이 분명히 말해 주는게 있어요. 뭐냐면은 그곳은 끝이 없는 장소이고요.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은 절대로 나올 수 없다라는 겁니다. 어, 마태복음 25장 41절에서 말을 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합니다. 영원한 겁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 49절에서는요. 거기에서는 구덕이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 네. 불이 꺼지지 않고요. 거기서 죽음으로써 그 고통이 끝나지도 않는다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을 보면요.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을 합니다. 어 예수님의 피를 거절하는 사람들은요. 사실은 자기들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님 저런 것들보다 내가 지금 선택한이 삶이 더 낫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근데 사실은 그것이 이러한 고통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 한 가지 놀라운
것은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좀 놀라운 건 뭐냐면요. 이런 죄와 고통의 차등이 있다라는 거예요. 지옥에 간 사람은 다 똑같이 벌을 받고 똑같은 형벌을 받느냐? 어, 그렇지 않아요. 성경에서 하고 있는 말씀을 보면요. 분명히 그 안에서도 차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 누가복음 10장 12절부터 14절에 보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날의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을 하세요. 소돔이라는 곳이 더 견디기 쉽다라는 얘기입니다. 어, 차등이 있는 거죠. 13절에서요. 화친저 고라시나 화슬진저 베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루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배옷을 입고 제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네. 두로와 시돈보다
오히려이 고라심과 뱃세다가 더 엄한 형벌을 받을 것에 대해서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 누가복음 12장 47절에서 48절에선요. 또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똑같이 맞는데 맞기는 맞는데 많이 맞는 사람이 있고 적게 맞는 사람이 있다라는 거예요. 물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차등이 있습니다. 어, 히브리서의 저자도요.이 사실을요. 지금 율법과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얘기를 해요. 28절을 보시면은 모세 법을 패한 자도 두 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어,
율법의 사례들을 사실요 말씀에 해당되는 걸 열어 찾을 수 있는데 아마도 신명기 17장의 말씀을 생각하고 어,이 표현을 한 거 같아요. 신명기 17장을 보면요. 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한 사람들이 이제 두세 증인의 증언에 따라서 그들이 사형을 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요. 어, 히브리서 저자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뭐냐면요. 그 예수님의 그림자인 율법 아래에서도 그 법을 패한 자, 그렇죠? 그 죄를 선택한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러면 그 실체인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그
피로 새 언약이 세워진 지금 그 예수님을 거절하면 어떻겠느냐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29절에 보면 이렇게 얘기를 해요.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동안에요. 여러분, 그동안이 앞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계속해서 했던 얘기가 뭐예요? 예수님과 새 언약이 모세와 율법보다
더 우월하다라는 거였죠. 그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여기서 역으로 적용이 되고 있는 거예요. 모세와 옛 언약을 패한 사람에게도 그런 자비 없는 형벌이 있었다면 그러면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예수님과이 새 언약을 패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더 무거운 형벌이 있겠느냐라고 지금 되묻고 있는 겁니다. 어 앞에서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런 심판의 대상이. 근데 여기서는요.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하죠.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은 사람들이고요.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 사람들이고요. 은혜의 성령을 성령을
욕되게 한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닌 겁니다. 예수님이 아닌이 죄를 선택한 이들은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무시하고 그 예수님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죄를 짓는 언약의 피를요. 오히려 더러운 것으로 여겼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성령님을 모독하고 멸시했다라고 말을
해요. 어, 사실은요.이 표현이요. 모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다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인 것은 맞아요. 모든 믿지 않는 자는 죄를 선택한 거고요. 궁극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사람들은요.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모르고 선택한게 아니라 알면서 그렇게 했다라는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더 두려운
형벌이 임할 거다라고 지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은요. 어, 나도 알았어. 나도 알아. 나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라고 얘기를 해요. 나도 믿었었어라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그 말이 의미하는게 뭐냐면요. 그들이 더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에 대한 자백하고 다를 바가 없다라는 겁니다. 차라리 몰랐으면은 가벼운 형벌을 받을 거예요. 근데 그들은 알았기 때문에 다 들었기 때문에 심지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더 무서운 형벌을 받을 거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로 무서운 일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경고를 해요. 30절과 31절을 보세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 정말로 무서운 일이고요. 이게 단순히 위협하고 있는게 아니라 사실에 기반해서 경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세요. 사실 그래서 교회에서 은혜 얘기하고 사랑 얘기하고 그러면요. 어, 교회 오는 거 싫어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근데 그것이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세요. 근데 그 은혜를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에게 피한 사람만 받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은 사람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들에게만 특권이 주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으면서 그래도 나한테 은혜는 주세요라고 그렇게 할 수는 없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손은요 믿는
자에게는 지옥에서 그들을 건져내고 그리고 모든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그러한 구원의 손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요. 그야말로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심판의 손인 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행한 그 모든 행위들, 모든
생각들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심판 가운데서 구할 수 있는 긍휼이 없습니다. 이미 그 심판을 내가 받고 있으면요. 그 가운데서 긍휼을 내가 구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그래도 제가 한 때는 교회도 열심히 다녔잖아요. 제가 그래도 교회에서 나름대로 헌금도 했었고요. 제가 그래도 이것도 했고요. 저것도 했습니다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거예요. 오히려 앞에서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그런 것들이 더 형벌을 무겁게 만들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을 네가 알고 경험했으면서 네가 내 아들을 짓밟고 그의 피를 부정한 것을 나의 성령을 네가 욕되게 했다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실 겁니다. 그러니까요. 여러분 절대로 절대로 예수님의 피에 부당하게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피에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는 없기를 바랍니다. 어 히브리서 저자의 마음이 정확히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독자들에게 제발 제발네 제발 예수의 피 합당하게 행하자라고 그렇게 촉구를 합니다. 32절부터 39절입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뎌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낮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시리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어, 히브리서 저자는요. 기본적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라고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지금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어, 그중에 일부는 정말로 구원을 받은 사람일 거고요. 일부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 결국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들은요. 그 믿음을 지키는 것으로서 그의 믿음을 드러낼 겁니다.
그 믿음이 참되다라는 것을 드러낼 겁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특징이어서 그래요.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이 독자들에게 너희가 그렇게 하라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 믿음을 지켜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35절을 다시 보시면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라고 말을 합니다. 36절에서는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말을 해요. 39절은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말을 합니다. 어,이
독자들의 상황은요. 이제 여러분들 잘 아시겠지만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을 버리면 그러면은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었어요. 어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이 밖에서 볼 때 외부에서 볼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라고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라는 겁니다.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참아야 된다라고 하고요. 견뎌야 된다라고 합니다. 뒤로 물러가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멸망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얘기를 해요. 특별히 그래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라고
그렇게 도전을 합니다. 어 믿음을 버리지 말라라고 얘기를 해도 사실은 똑같은 의미로 우리가 들리잖아요. 그렇죠? 근데 여기서 담대함이라고 표현을 해요. 왜 그러냐 하면은 지금이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히 저 믿어요라는 그런 고백이 아니라 그것에 따라서 내가 살아가야 되는 그리고 실제 내 생활 속에서 그것에 따라서 내가 선택을 해야 되는 그런 담대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32절부터 34절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은 이미 과거에 그렇게 핍박에 굴라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었던 그런 담대함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런 담대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담대함을 가져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만약에 만약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하나님의 나라면요. 우리들한테 담대함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어요. 그렇죠? 우리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살면은 됩니다. 네. 그렇게 하면 돼요. 어떤 핍박도 없을 거고요. 어떤 유혹도 없을 겁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불안해 할 이유도 없어요. 아, 내가 이렇게 하면 누군가에게 내가 핍박을 받지 않을까? 아, 나 저렇게 하고 싶은데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으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직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질 않았어요.
아직은 우리가 나그네로서 그 본양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죄사함이 아까 전에 제가 양자 태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것이 하나의 세트인 거죠. 그렇죠? 근데 거기 하나가 더 같이 있는 겁니다. 뭐도 같이 있냐 하면은 고난이라는 것도 같이 있다라는 거예요. 지금 믿는 자에게는 그래서이
고난 중에서 믿음을 지켜갈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어, 여기서 말하는 담대함은요. 단순히 마음가짐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거 같아요. 이것은 어, 결단입니다. 결단. 그렇기 때문에 어, 이유 없는 담대함은요. 어리석은 용기예요. 그렇죠? 갖지 말아야 될 용기가 돼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이 이어지는 32절부터 말씀을 쭉 보시면요. 히브리서 저자가 믿는 자의
담대함이 가져올 이야기를 합니다. 분명하게 가져올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예수의 피에 부당한 반응이 가져올, 그 무서운 결과에 대해서 앞에서 얘기를 했었죠. 그것하고 대조되는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뭐냐면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상.
어, 32절부터 38절 말씀을 보시면요.이 상에 대해서네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가 있어요. 어, 첫째로 32절부터 34절에서는요.이 상은 더 나은 것입니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입니다. 어, 34절을 보시면 거기에서이 믿는 자가 받을 그 상에 대해서, 그 소유에 대해서 더 나은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을 하고 있어요. 어, 뭐보다 더 나은 거냐면요. 내가이 예수님을 위해서 버린 것들, >> 내가이 예수님 때문에 포기한 것들, 그런 것들보다 더 나은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전 32절로 가서 보시면 전날을 생각을 하라고 해요. 그 과거의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뎌낸 것을 생각하라라고 말해요. 이들이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습니다. 그렇죠? 그리고이 고난은요. 빛을 받은 후에 경험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 너네 옛날에 힘들었잖아. 그냥 그 얘기를 단순히 하고 있는게 아니라 너네가 믿어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았었는데 근데
그때 너희가 견뎌냈었지 않느냐? 그때 너희가 인내했었지 않느냐? 그거 생각해 봐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당시에 그 상황이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어요. 33절을 보시면 어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라고 말하죠. 어 그 당시에 그 당시에 이들은요 그 비방을 받았습니다. 말로 행해지는 비방인 거고요. 그리고 환난은 물리적으로 행해지는 환란인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과 그러한 물리적인 것으로서 이들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공적으로 수치를 당했다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이 사람들을 보면서 조롱을 하고 비웃었다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요 직접적으로 환난을 당하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멀리하거나 환 멀리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요. 그 환난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형편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됐다라고 얘기를 하죠. 그리고 34절도 보세요.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라고 말합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돌본 자가 있었다라는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이들이이 모든 것들을 감수했다라는 겁니다. 소유를 빼앗겼어요. 어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러한 소유들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라는 것이 어 불법을 저지른 것이 돼서 벌금을 내서 엄청난
벌금을 내서 소유를 빼앗기도 하고요. 때로는 재산을 몰수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자기 집을 지킬 수 없으니까 강도들이 와서 그 물건들을 노략해 가기도 했었다라고 해요. 혹은요. 그러한 것들이 하나도 없어도 단지 믿는 것 때문에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자기와 함께 일을 했었던 그 경제 공동체에서 쫓겨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그들의 소유가 빼앗겼습니다. 어 자 그들이 잃었던 걸 보세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들 그들이 포기한 것들 보세요. 평판을 잃어버렸죠. 불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렸어요. 그들의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들이 나쁜 것이어서 그랬던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이들이 여기 34절의 끝부분에 보시면 기쁘게 당했다라고 말합니다. 기쁘게 기꺼이 그렇게 했었다라고 말을 해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까? 더 나은 것을 위해서 더 좋은게 있으니까 그렇게 했다라는 겁니다. 사람들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어 이단 같은 사상에 광적으로 빠져 가지고 마치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는 그런 선택을 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이들이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은 더 나은 것을 위해서 그렇게 했었던 거니까요. 더 좋은 것을 위해서 그렇지 않은 것을 포기한 것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밭에 감추어져 있었던 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런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우리는요.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다음으로요. 이상은 영원한 겁니다. 30 4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요. 어,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일시적인 것이면은 가치가 감소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믿는 자의이 소망이라는 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이라는 것은 영원해서 가치가 변하지 않습니다. 연구한 소유라고 말씀을 합니다. 어,
연구하다라는 것은요. 그 자리에 계속 있다라는 거예요. 이것이이 세상에 속한 것하고 정확히 반대되는 속성이에요. 어,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은요. 절대로 그렇지 않죠. 그렇죠? 사용하다 보면은 사라지고 고장납니다. 그렇죠?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두면 어떻게 되죠? 썩어요. 네. 썩습니다. 더러워집니다. 그게이 세상에 속한 것들의 특징이에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근데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유업은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 어,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게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습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영원한 상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어, 다음으로요. 35절에 보시면요.
어,이 상에 대해서 큰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라고 말을 합니다. 어, 사실은요.이 상이라는 표현이 어 중립적인 표현이에요. 보흥이라는 표현입니다. 합당한 대가라는 표현이에요. 그래서 부정적으로도 사용이 될 수 있어요. 부정적으로 사용이 되면은 이게 벌이 되는 거고요. 긍정적으로 사용이 되면은 상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흥하세요. 악에는 그의 합당한 벌로서 보흥을 하시고 선에는 또 그의 합당한 상으로서 보흥을 하시는 겁니다. 공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어 특별히 그 상주심에 대해서 여기 지금 큰 상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어 예수님도 그렇게 큰 것 이것에 대해서
큰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이 땅의 소유를 포기하면 하늘의 보화가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고요.이 땅의 삶을 포기하면은 영원한 삶을 주신다라고 말씀을 하셨고요. 작은 것에 충성되면은 큰 것을 맡기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라는 것이 질적으로 좋은 것일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큰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래서 어, 성경이 이렇게 얘기를 해요. 로마서 8장 18절 보시면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의 고난이라는 것. 그렇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가 포기하고 있는 그것하고 나에게 나타날
영광, 하나님께서 주실 그 영광스러운 것은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훨씬 큰 거죠. 고린도후서 4장 17절은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에 경한 것이 이게 가볍다라는 겁니다. 왜 이게 그렇게 가볍냐 하면 나는 무거워 죽겠는데 왜 그거를 가볍다라고 말을 하냐 하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 이 영원한 것, 지극히 큰 것, 이것이 정말로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비하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고난들, 지금 내가 포기하고 있는 이런 것들 이거는 가벼운 것이다라고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누가복음 6장 22절에서 23절에 보시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어, 아마 지금
사람들한테 어, 가장 바라는게 뭐예요라고 얘기를 하면요. 가장 작은 투자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거예요라고 할 겁니다. 그렇죠? 근데 주식 제일 낮은데 뭐라 그러면 발목에서 산다 그러죠. 뭐 발목 발바닥에서 사 가지고 머리에서 네. 머리에서 팔면은 그게 [목을 가다듬음] 어 아마 꿈이다라고 얘기를 할 겁니다. 어 그게 투자인 거죠. 그렇죠? 근데 그런 면에서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시면요.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산다라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투자인 거죠. 그렇죠? 결코 손해 보지 않을뿐만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보상으로 돌아오는 그러한 투자입니다.
왜 그러냐? 왜 그러냐면요.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큰 상을 얻기 위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어,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요. 36절에서 30 8절인데요.이 상이 확실하다라고
말합니다.이 상은 확실한 겁니다. 어, 37절 먼저 보시면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어. 하나님의 뜻을 행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시겠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지금이 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 우리는 일반적으로 요새는 또 그렇지도 않은 거 같은데 어 일반적으로 상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경쟁이에요. 그렇죠? 내가 남보다 잘해야지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어 그러면은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했던이 다 좋은 것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라고 얘기한이 좋은 것들이 어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주어지는 거고 누구는 받지 못할 그런 것이 되느냐 누군가는 실패할 수도 있는 거고 혹은 어 서로 경쟁하면서 누군가는 이것을 얻고
누군가는 얻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거냐 어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이 상은요 모든 믿는 자에게 약속된 상입니다. 어이 상은 확실한 상이에요. 실패할 확률이 0입니다. 이상을 다르게 표현을 하면요. 소망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소망. 사실이 소망이라는 말이 무한가 좀 불확실한 것을 바란다. 우리가 희망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들릴 수도 있어요. 근데 성경이 말하고 있는이 믿는 자의 소망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아요. 확실한 것을 바라는게 소망입니다. 30
이어지는 37절 말씀을 보시면요. 어 잠시 잠깐 후면 오시리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을 해요. 어 지금의 삶은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이 이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시긴 한 건지 막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우리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심판자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라고
말을 합니다. 오신다. 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체하고 계신게 아니에요. 지체하고 계신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 지체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것이 확실하다라는 거예요. 어, 내가 오긴 올 건데 언제 올지 몰라라고 말을 하는게 아니고요. 나 금방 올 거야. 나 바로 올 거야라고 그렇게 얘기한다라는 거죠. 예수님께서 그렇게 얘기하고 가셨잖아요. 그렇죠? 반드시 오신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신 겁니다. 반드시 다시 오실 거고요.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소망했던 그 모든 것들이 우리들 눈앞에 현실이 돼서 펼쳐지게
될 겁니다. 이것이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이 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콧방귀] 어 이제 이어지는 11장에서요. 바로이 소망에 따라서 정말로이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살았었던 그 사람들의 예를 우리가 보게 될 겁니다. 어
우리가 담대함으로 믿음을 지킨다면요.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에게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어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포기한 모든 것들을 다 합친 그 가치 가치보다도 정말로 비교할 수 없이 좋고요. 비교할 수 없이 지속되는 것이고요. 비교할 수 없이 크고요. 그리고 비교할 수 없이 확실한 그런 상을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들이 받을 상입니다. 어 그래서요.
중요한 건 뭐냐면요.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입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 어 지금까지 히브리서는요.이 예수님과 구약에 많은 것들을 비교를 했어요. 그렇죠? 그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증명을 했는데 동시에 동시에 그것이 의미한 것이 뭐냐면요. 그 둘 다를 가질 수 없다라는 겁니다. 그 둘 다를 내가 함께 선택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었어요.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무엇을 가치 있게 보고 그리고 무엇을 내가 정말로 원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목을 가다듬음] 그 모든 것보다 뛰어나시다면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담대함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라는 거고요.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입니다.
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히브서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이렇게 도전을 합니다. 38절 39절을 보시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어, 믿음 때문에요. 믿음 때문에이 땅에서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 가장 소중한 것은 여러분들이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럴 염려는 접어 두셔도 됩니다. 어, 믿음 때문에 우리가 많은 것을 버려야 될 거예요. 근데 여러분, 그 많은 것들 때문에 믿음을 버리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 마치 믿음을 버린 자처럼 우리가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졌으면요.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수가 없습니다.이 믿음이 결국은 우리를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어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
나쁜 것을 위해서 좋은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간을 위해서 영혼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을 위해서 큰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 확실한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담대함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내하시고요. 뒤로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뭐 하나님 우리 눈이 참 너무 어둡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 너무나 좁아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또 우리의 눈을 어 열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어, 지금 나의 삶에 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처럼 어, 그것들을
우리가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음, 지금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어, 그렇게 바라보고 하루하루 그 하나님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 하나님 우리들에게 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이 예수님을 언제나 우리 마음 가운데 어 깊이 모시며 그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