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자(1) (히 10:19-25)

최종혁 · 2026.04.18 · 히브리서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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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어 25절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요.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 같은 제목으로 이제 10장 끝까지 39절까지 말씀을 어 살펴보고요. 그러면은 이제 히브리서가 잠깐 쉴 겁니다. 어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25절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자입니다. 어 앞으로 조금 넘기셔서 3장 말씀을 한번 먼저 보세요. 히브리서 3장 1절에 보시면

어 이제 3장이 히브리서 본론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 3장 1절에 보시면 어 요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을 하면서요. 예수님께 예수님에 대해서 두 가지 표현을 사용을 했어요. 뭐하고 뭐가 있죠? 사도. 네. 예. 우리 믿는 도리의 사도. 그리고 >> 대제사장. 이제 그렇게 두 가지 표현을 사용을 했습니다. 어, 예수님이 우리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은요. 예수님께서 우리가 믿는 바를 전해 주신 분이시다라는 의미예요.

어, 히브리서의 그 시작에 보시면은 1장 1절에서 어, 하나님께서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고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정확히 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말씀이시다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바로 창세기부터 예언되어 있었던 그 복음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저자가 바로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라고 이야기를 했었던 거예요. 어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한 것이 바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어, 그 부분에 대해서 4장 14절부터 어, 10장

18절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봤던 말씀까지 어, 이야기를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대제사장이시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느냐? 이제 그 부분을 설명을 했었던 거예요.이 대제사장과 제사 제도에 대해 사실은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익숙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제가 여러 차례 드렸습니다. 어

그런데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은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이시고요. 그리고 다른 성전에서 다른 제사를 드리셨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옳은 것이 있어요. 그 옳은 것하고 다른 거면 그거는 뭔가요? 틀린 거죠. 그렇죠? 예. 옳은 것하고 다른 것이면 틀린 것이에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이 옳은 것하고 예수님이 다르다면 그럼 예수님은

틀렸다는 얘긴 거죠.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나사렛 이단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던 겁니다. 어 그런데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이 모든 것이 구약에 예언된 것이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된 것이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거죠. 그렇죠? 그리고 예수님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다라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면은이 구약에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였었고요. 예수님은 실체로서 그

모든 것을 실제로 이루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은요 결국은 뭐냐면은 사람을 온전하게 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게 뭐였었냐면은 바로 죄사함이죠. 죄사함입니다.이 죄사함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들리셨습니다. 그래서이 구약의 제사에 대해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10장 18절 우리가 지난주 마지막에 봤었던 말씀 보시면 이것들을 사하였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어, 여기까지가 본론이었었던 겁니다. 히브리서의 본론이고요. 이제 저자가 결론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면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이루셨다면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에 대한 대해서 답을 하는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한 답이 이제 어, 히브리서 끝까지 이어진다라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요. 또요 주제가 반복돼서 나오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뭐냐면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어 믿음과 순종으로 더 나은 소망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더 나은 소망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더 간단하게 말하면은 끝까지 인내하라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라. 어 고난이 있을 겁니다. 더 직접적인 핍박도 있을 거고요. 유혹이 있을 거예요. 더 편한 사람 이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히브리서의 지금 독자들이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었죠. 근데 그

어떤 것도 예수님에게서 돌아설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라는 거예요. 이제부터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이런 실적이 실제적인 도전과 권면의 말을 합니다. 어 그 말은 이제 여러분들이 들으실 때 감사하고 좋고 그런 부분이 지나갔다는 얘기인 거죠. 이제부터는 부담이 되고 아 내가 이렇게 [웃음] 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부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라는 거예요. 어 그중에서도요. 이제 그 이어지는 그 이제 결론 주제 결론 중에서도요. 10장 19절부터 39절 이번 주 다음 주에 살펴볼이 말씀이 어 결론 전체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부분이에요. 어 여기에 내용을 짧게 그냥 말씀을 드리면은 먼저는 뭐를 얘기를 하냐면요. 19절부터 21절에서 지금까지 했었던 내용을 한번 정리를 합니다. 감 간략하게 정리를 하고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두 가지 반응이 있다라는 것을 22절부터 31절에서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에 대해서 두 가지 다른 반응이 있다라는 것을 22절부터 31절에서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마지막 32절에서 39절에서는 그중에서 너희가이 합당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라고 그렇게 촉구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 그래서이 말씀을 예수의 피에 합당하게 행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절반이에요. 예수의 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거고요. 그리고 그에 합당한 반응에 대해서 25절까지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 먼저 말씀이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19절부터 25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수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시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어, 먼저 19절부터 21절은요. 합당한 반응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피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합당한 반응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피. 어, 예수님의 피. 죽으심이죠. 그죠?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합당한 반응을 요구를 해요. 왜냐면 예수님께서 그냥 죽으신게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죽으신게 아니고요. 예수님은 죽기 싫었는데 억울하게 죽으셨던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이 땅에 오셨었고

그 죽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라고 말씀을 하세요. 어 예수님을 신문했었던 빌라도가 예수님한테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죠. 근데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주시지 않았으면은 네가 그렇게 할 수 권한이 없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모든 권한은 예수님께 있었고요.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라는 거예요. 어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을요. 히브리서에서는 어떻게 얘기를 한 거냐면은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로 이야기를 한 겁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바로 피흘림을 통한 죄사함입니다.

피흘림을 통한 죄사함.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죄사함을 통해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려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자, 이제 그 사실을요. 우리 측면에서 요렇게 정리를 한 거예요. 19절부터 21절을 다시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심매

형제들아라고 얘기를 하죠. 친밀함의 표현이에요. 지금 초청받은 강사처럼 얘기하고 있는게 아니고요. 그들의 목자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 두 가지를 이야기를 했어요.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가지게 만든 가지게 한 그 두 가지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뭐냐면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19절입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성소에 들어갈 담력

다르게 말하면은 확신을 얻게 되었다라고 그렇게 말을 해 줘요. 어, 이런 담력이라는 거, 이런 확신이라는 거 사실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없었던 거죠. 어,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 그 지성소에 들어갈 때 온전한 확신보다는 사실은 두려움 가운데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이제는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확신 가운데 나갈 수 있습니다. 어,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죄를 없이 하는 정결하게

하는 예수님의 피가 흘려졌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피가 아이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서 성소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확신 가운데 들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어 20절을 보시면 그것을 좀 다르게 표현을 했는데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냐면요. 새로운 길이 열렸다라고 얘기해. 새로운 길이 열렸다. 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휘장이라는 것으로 그렇게 가로막혀 있었어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 막 그것이 막혀 있어서 물론 물리적으로는 가능했죠. 그죠? 원하면 나 죽어도 저기 들어갈 거야 하면 그냥 열고서 들어가면은 들어갈 순 있었어요. 근데 그것이 실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어요.이 휘장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가 지금 어 막혀 있다라는 것을 나아갈 수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어 언제나 그랬어요. 대제사장이 휘장을 지나갈 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게 휘장이라는 것이 다르게 말 커튼이잖아요. 그렇죠? 무거운 커튼입니다. 무거운 커튼이 이렇게 드리워져 있고 거기에 제사장이 들어가려면 어떻게 했을까요?

요렇게 걷고 갔겠죠. 그죠? 요렇게 걷고서 자기 들어가면 그러면 그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즉시 다시 다치는 거죠. 그렇죠? 다시 다치는 겁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라는 것을 사실은 보여 주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은 지금 여기 표현해 보시면 어떻게 하셨냐면은 그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열어 놓으셨다라고 얘기를 해요. 길을 시작하셨다. 길을 계시하셨다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어 다른 제사장들처럼 혼자서 휘장을 걷고서 그 안에 그냥 들어가신게 아니다라는 거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렇죠? 이제는 하나님께 사람들이 나아갈 수 있게 됐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에요. 휘장이 그냥 걷어진게 아니고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다시 다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길이 열린 거고요. 여전히 열려 있다라는

겁니다. 어 그 길에 대해서 지금 뭐라고 표현을 했냐 하면요.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새로운 살길이다. 어, 저는이 번역이 약간은 원래 의미를 좀 축소하는 느낌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 뭐냐면요. 저자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뭐냐면은이 길 자체의 특징입니다. 길 자체의 특징.이 이 길의 지금 목적지, 도착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이 길이 어떤 길이냐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물론이 길은요 사람을 살게 하는 길이에요. 그래서 이제 살 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어, 근데이 표현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그거는 아니다라는 거죠. 저자는이 길 자체가 새로운

길이고이 길은 살아 있는 길이다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이 길이 살아 있는 길이다. 어 옛길하고 대조되는 의미에서의 새로운 길이기도 한 건데요. 근데 우리가 어 이거는 새거야 이거 새거야라고 말할 때 의도하는 그러한 새로운 것이이 길

자체에 있다라는 거예요. 어 단순히 옛길하고 대조되는 새로운 길이면 그러면 지금 시간이 지났잖아요. 그렇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2,년 정도가 지났는데 그러면 그 새로운 길도 지금은 우리가 무슨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옛길이 된 거죠. 그렇죠? 그 단순히 그때 그냥 새로운 길, 옛길라고 대조되는 새로운 길이 생긴 거면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길이 됩니다. 낡은 길이 되고요. 죽은 길이 됩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길은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이 길은 새로운 길이고요. 언제나 새로운 길입니다. 어, 헬라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요. 새롭다라는 뜻도 있고 최근에 혹은 신선한 그런 뜻이 있어요. 그러니까 생명력이 있는 생명의 길이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효력이 다하지 않는 거예요. 그 길로 나아가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라는 것을 지금이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겁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길이세요.이 모든 일을

예수님은 여기 말씀에 보시면은 우리를 위하여 20절에 보면은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되겠죠. 우리를 위하여 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겁니다. 확신을 가진 거예요. 중요한 건 뭐냐면요. 예수님께서이 모든 것들을 무엇을 통해서 이루셨 이루셨다라는 겁니까? >> 예. 죽으심.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셨다라는 거예요. 어, 무슨 의미냐 하면요.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셔서이 복음서에 기록된 그 모든 일들을 다 똑같이 다 하신 겁니다. 근데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어요. 그 일들을 다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지는 않고 어느 날 때가 됐을 때 나 이제 갈게라고 하면서 하늘나라로 쭉 올라가셨다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러면 그러면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다라는 겁니다. 없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그이 모든 것들을 이루셨습니다. 어 그런데 그것으로 이제 끝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그 확신과 함께 우리에게 있는 것이 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것이 또 있어요. 어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라는 것은 다 이루었다라고 그렇게 선포함으로써 완성되었지만

21절을 보시면요. 예수님은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계십니다. 그렇죠?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계시다라고 얘기를 해요.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고 나서 아, 난 이제 할 일 다 했어라고 하면서 사라진게 아니고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계시다라는 거예요. 어, 이것도 굉장히 좀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어, 율법 아래에서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시면은 제사가 없으면 사실은 제사장도 존재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죠? 애초에 제사장이라는 직분이라는 것이 제사하고 함께 주어진 것이고 그것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었단 말이에요. 예수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은 예수님은 이미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다시는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고 그렇게 분명하게 선포를 했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도 끝난 거 아니냐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여전히 대제사장이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대제사장이실 겁니다.

어 예수님의 제사는 한번 드려지고 끝났는데 그 효력은 계속해서 지속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이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 계속해서 나아가는 동안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신 겁니다. 나는 예수님은 필요 없고 예수님의 피만 있으면 돼라고 말을 할 수 없다라는 거죠.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아가기도 하는데요.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기도 한다라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으로 항상 계신다라고 2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 여기서 하나 표현도 좀 살펴보면요.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이라는 표현이 있죠. 어 예수님은 구원받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대제사장도 되시는데이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는 교회의 대제사장이시기도 하하신 거예요. 어 예수님께 있어서 사실은이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 교회에 속하지 않은 성도가 없으니까 사실 그런 거죠. 어,

그리고이 말은요. 조금 다르게 얘기를 하면요. 내가이 하나님의 집에 속해 있지 않으면 그러면 예수님이 내 대대사장이 아니시다라는 말도 됩니다. 어, 물론 이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 지역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이 지역 교회와 보편적인 교회, 우주적인 교회라고 얘기하죠. 그 사이에 연관성을 우리가 간가해서 안 됩니다. 조금 뒤에 가면요.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권면의 말씀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이 사실 나하고 딱히 그렇게 관련 없는 경우들이 사실은 생각 어, 사실 굉장히 많죠. 그렇죠? 근데 예수님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과 관계되어 있고요. 그 죽음에 합당한 반응을 요구를 합니다. 그리고이 반응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변화입니다.

어,이 실제적인 변화에 대해서 이제 좀 말씀을 드릴 텐데 그 전에 한 가지만 좀 먼저 짚고 넘어갈게요. 어, 이런 실제적인 내용들을 다룰 때요. 앞에 지금이 10장 18절까지 이야기했었던이 이론 부분을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시라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어 이런 얘기들 가끔씩 해요.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실전은 달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어 크리스천에게는 사실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에요. 우리가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교리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요 하나님께서 실제로 하신 일을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느냐를 말하는 것이 사실은 바로이 교리 부분이에요. 어 앞으로 우리가 다룰 모든 내용들도 그 바탕에 있는 건 뭐냐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일이 없으면이 뒤의 일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요. 사실은 어 이거는 굉장히 기만적인 이야기들이 됩니다. 뭔가 이렇게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들이 되니까 그래요. 어 근데 여러분들이 말씀들을

들으실 때 그리고 아이 말씀에 내가 순종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마음이들을 때요. 항상이 부분을 좀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내가 뭔가 좀 율법적으로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좀 그렇게 들리면요.요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셔서 앞으로 돌아가셔서이 말씀을 다시 읽어 보셔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이러한 것들이 요구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다시 하셔야 됩니다. 자, 이제 21절부터 25절에서이

예수의 피에 합당한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합당하지 않은 반응, 부당한 반응에 대해서 살펴볼 거예요. 어, 22절에서 25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요. 이것이 믿음, 소망, 사랑하고 좀 관련이 되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 모두 무엇을 하자라는 그런 청유형의 명령으로 되어 있다라는 것도 우리가 발견을 할 수 있어요. 어, 결국은 이제 개개인이 스스로 노력하고 순종해야 될 부분인데 그 모든 것들이 믿는 자들이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첫 번째로 22절에 보시면 믿음하고 관련된 명령인데요. 보시면 뭐냐면은

하나님께 나아가자예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을 합니다. 어 예수님께서 그 피로 이루신 것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그것에 대한 첫 번째 반응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겠죠.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복음이 전해진 겁니다. 심지어 거기에

뭔가 내가 더 해야 될 것도 없어요. 그렇죠?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어, 가끔씩 어떤 뉴스나 그런 거 보면은 어떤 희기병이나 난치병에 대한 치료약 그리고 치료법 그런게 이제 개발됐다라는 소식이 있는데 아래 쭉 내려보면은 그 비용 그 치료를 받으려면 들어가는 비용이 뭐 몇 억이다 막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어, 그런 경우에는요. 그 돈을 지불할 수 없는데 급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는 그것이 개발되었다라는 것이 오히려 더 절망을 가져오는 얘기가 되겠죠. 그렇죠? 근데 예수님의 복음은 그렇지 않다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아요. 우리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대신해 주셨고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라는 것을요.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시 한번 구약의 표현을 가져와서 묘사를 하는게 지금 여기 말씀이에요. 22절의 말씀이에요. 어, 앞서서 9장 19절부터 22절에서이 율법을 따라서 피부림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정결하게 된다. 이제 그러한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그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 우리들은 정결함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진 거고요. 그래서 짐승의 피는 할 수 없었던 일,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는 거고요. 죄를 기억하는 일이 없습니다. 죄책감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게 된 거예요. 어,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다라는 표현도요. 어, 에스겔 36장 25절에 나오는 새 언약의 표현을 가져와서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정결하게 하신 일이 사람을 정결하게 하신 일이 우리의 전 인격적으로 일어난 일이다라는 것을 지금 말을 하고 있어요. 앞에서는 마음이었고 지금 여기서는 몸이잖아요. 그렇죠? 우리의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라는 것을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이

새언약, 새 언약 안에서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이요. 그 제가 포커스이 중점이 내면의 변화에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어요. 근데 그 내면에서만 끝나는 일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어,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어떻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그렇게 물어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표현을 바꿔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 거듭남이라는 것

성령님의 일인 거고요.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씀을 하신 거예요. 어, 디도서 3장 5절에서 바울도이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요.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라고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남과 정결함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를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요. 지금 저자는 예수님께서이 새 언약 아래 이루신이 죄사함, 정결하게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 온전하게 되는 것, 지금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새 언약의 핵심은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겁니다. 단순히 겉에 보이는 것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마음으로부터의 변화예요. 마음의 변화인데 마음으로부터의 변화입니다. 속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행동을 바꾸고요. 삶을 바꾸는 것 그것을 의미를 합니다. 마음의

정결은요. 삶의 정결로 이어지는 거고요. 그것이 신자의 삶에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에요. 어, 물론 이제 그것을 얼마나 삶에서 살아내느냐는 지금 여기 히브리서 저자의 관심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믿는 자에게는 지금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난 것이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지금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었다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뭐냐면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죠. 그렇죠? 나가는데 어떻게 나가냐면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진실한 마음 그리고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어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한테 예수님께서 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라고 말씀을 하셨죠. 그것이 지금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

이미 하나님께서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그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열어 놓으신 그 길이 있어요. 믿는 자는 정결한 자들로서 이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어,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어, 나는 정결하게 됐다라고 말을 하면서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 여기 말씀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것은요. 사실은이 사람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라고밖에 말을 할 수 없어요. 어, 참된 구원받은 자가 아닌 거죠. 어, 히브리서 저자가 저자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이건 거예요. 너희가 정말로 믿는 자라면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맞지 않냐? 너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이 말씀은요. 사실은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적용이 될 수 있어요. 만약에 어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다면요. 사실은 지금까지 말씀드렸던이 예수님의 피 능력이라는 것이 여러분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입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착하게 살고 교회에서 뭘 열심히 하고 그런 것하고 상관없이 그런 겁니다. 짐승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죄를 씻을 수 없었던 것처럼 나의 노력이나 나의 열심이라는 것도 어 나의 죄를 씻을 수는 없습니다.

혹시 혹시라도 여전히 그런 상태에 계시다면요. 이미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지금 어 길을 열어 놓으셨다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길을 열 수도 없고요. 내가 열 필요도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길로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시면 되는 겁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사실은 이제 여기 히브리서 저자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라고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는 건데요. 어 그러면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 나아가자라는이 권면의 말씀이 나한테 지금 어떻게 들리고 있는지 한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제가 시편 122편 말씀을 나눴었는데 거기서 다윗이 뭐라고 얘기했냐면은여여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라는 그

사람들의 말이 참 기뻤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죠? 어,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것, 그 모든 특권을 여러분들 내가 지금 기쁨으로 누리고 있는지를 한번 어,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 그것이 예수님의 피가 구원받은 나한테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거고요.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나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만큼 내가 계속해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쁨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여러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면목이 없어서 그렇게 못 하겠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죠? 어, 죄 때문에 혹은 너무 그렇게 안 나가서 내 마음이 무뎌져 있어서 그렇게 못 하겠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 근데 그것도요. 사실은이 온전한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이에요. 어, 참된 신자 신자라면요. 이미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죄인인지를 깨달은 사람이잖아요. 그렇죠?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나를 심판하셔도 마땅한 그러한 죄인이다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맛본 사람입니다. 근데 이제 와서 내가 죄 조금 졌다고 내가 조금 그렇게 됐다고 하나님께 내가 못 나가겠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나의

어떠함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기어도 하지 못했어요. 그렇죠? 예수님의 피로서만 가능해진 일입니다. 나 나의 지금의 그 죄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피흘리셨다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고요. 예수님께서 여전히 나의 대제사장으로 계시는구나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요. 그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피에 합당한 첫 번째 반응입니다. 어 두 번째로 23절인데요. 여기서 소망하고 관련된 말씀을 볼 수 있어요. 굳게 잡으라고 말을 하는데 어 말씀을 보시면 또 약속하신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말을 해요. 어 우리가 믿는 도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우리가 믿는 내용입니다. 즉 복음을 의미를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다르게 말하면은 10장 18절까지 히브리서

저자가 계속해서 강조해서 했었던 그 내용이에요. 어 여기선요 특별히이 믿음이 가져오는 그 궁극적인 소망에 대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 우리가 믿는 바라는 것이 어 지금 보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죠? 믿기 전에는 안 보였지만 그래도 믿고 나면은 그것이 눈에 딱 보이고 이제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어 몸에 더러운 것이 묻었을 때 그것을 우리가 물로 이렇게 잘 씻으면은 그 씻기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죄라는 것은 사실은 그렇게 우리 눈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 그런데요. 그 사실이이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우리들에게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 수 있는 그러한 일로 다가올 수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피흘리심으로 죄를 사하셨고 그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고 해서 믿었는데 어 딱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거죠. 어 그러면서 이제 주변을 둘러보면은 주변에 이제 다른 유대인들이 있는 겁니다. 다른 유대인들을 보면은 제사도 열심히 지내고 있고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뭐 안식일도 지키고 그러면서 뭔가 계속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죄사함을 받았어라고 말을 하니까 이게 뭔가 좀 어가 있는 거 같다라는 그런 생각이 좀 들 수 있는 거예요. 어 그러면 내가 그래도 좀 뭔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사실은이 믿음의 도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애초에 내가 믿었던 그 믿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율법주의적인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어 믿음으로 인한 핍박이 강한 상황에서도 사실은 그것과 유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 믿음을 버리지는 않아도 믿음의 내용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타협하기 시작을 합니다. 어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너는 이슬람을 믿어도 괜찮아. 그런 생각들을 하는 거죠. 어, 지옥은 실제하지 않는 거 같아라고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결국 다 구원하실 거야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요. 어떤 죄는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예수님 믿을 수 있어라고도 이야기를 할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들 내가 듣게 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가진 믿음을 이야기할 때 손해를 볼 거 같으니까 그런 일들을 하는 거예요. 믿음의 도리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어, 히브리서 저자는요. 너희가 처음에 믿었던 그 참된 믿음에서 지금 벗어나지 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소망으로 여전히 있지만 움직이지 말고 이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가장 근본적으로는요. 그렇게 말씀하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미쁘시다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분이 믿을 만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겁니다. 어, 중요한 것은 지금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요. 방금 전에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 유혹과 핍박이라는 것이 내 삶이 어느 순간에만 있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것이 없어지고 그런게 아니어서 그래요. 그러한 유혹과 핍박이 내 삶 가운데 항상 있다면이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나에게 있어서 계속해서 있어야 되는 겁니다. 어 그래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믿음은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현재형이다. 이것은 과거형으로 내가 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을 드려요. 나는 믿었어라고 말을 하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과거에 믿었으니까 괜찮은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과거의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요. 지금의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겁니다. 어,이 말을 여러분 오해해서 듣지 마세요. 지금 말씀드리는 거는요.

과거의 믿음하고 지금의 믿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의 믿음하고 지금의 믿음이 같아요. 그렇죠? 과거에 내가 믿었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은요. 과거의 믿음을 이야기를 합니다. 저 더 정확하게 말하면은 과거의 믿음처럼 보였었던 그 무언가를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지금 내가이 믿음에서 떠나 있고 신앙에서 떠나 있고 교회에서 떠나 있는 그것을 괜찮다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예전에 그렇게 했었으니까 나는 괜찮은 거야라고 얘기를 해요.

그런 것들이 불가능하다라는 겁니다. 내가 지금 믿음이 없으면 과거의 믿음도 진실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해야 돼요. 어, 실제로 우리가 이런 일들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어, 예수님의 비유에서 보면요. 흘기 얕은 돌밭에 떨어진 그 씨하고 같은 경우예요. 어, 흙이 얕으면 싹이

빨리 납니다. 그죠? 빨리 나서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보다 어, 저 사람 정말로 믿었나 봐. 그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믿음을 떠납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지 않고 떠내려 간 겁니다. 핍박 때문에, 유혹 때문에 그 믿음 없음이 혹은 어쩌면 핍박과 유혹 덕분에 그 믿음 없음이

그렇게 드러난 겁니다. 어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요. 계속해서 그 믿음을 붙잡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그렇게 하자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은 우리가 소망했었던 그 믿는 바가 내 눈 앞에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겁니다. 어, 끝으로 24절과 25절에

보면요. 이제 사랑에 대해서 권면의 말을 합니다. 서로 돌아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어 앞에 두 권면에 비해서요. 지금 방금 읽었던이 권면은요. 공동체적인 성격이 더 강하죠. 그렇죠?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해야 될 일에 대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일단 명령 자체가 서로로 시작을 하잖아요. 그렇죠? 서로 돌아보아라고 시작을 합니다. 격려하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물론 이제 자기가 자기 이렇게 격려하는 거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근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격려는 그런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거예요. 그리고 모이는 것. 이것도 여럿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교회의 모임 그리고 교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이렇게 하라라는 겁니다. 서로 너네가 돌아봐야 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되고 계속해서 모이기에 힘써야 된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 여기 특별히 24절에서 격려하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게 굉장히 강력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단어예요.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하게 다투서 갈라섰잖아요. 그렇죠? 그 힘이 다투어라고 말할 때 사용된 단어가 지금 여기서 격려하며 하고 같은 단어입니다. 뭐냐면요. 상대방을 자극하는 거예요.이 사람을 휘져 놓는 겁니다. 지금의이 상태를 뒤집어 놓는 것을 의미를 합니다. 제가 말한 이런 표현들도 그냥 들으면이 표현 자체가 강하니까 굉장히 좀 부정적으로 들리잖아요. 그죠? 너 나 자극하지 마. 나 뒤집지 마. 이제 그렇게 우리는 반응이 나오잖아요. 근데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로가 더

사랑할 수 있게 더 선을 행할 수 있게 좋은 자극을 줘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두지 말라라는 거예요. 저 사람이 있는 그대로 그냥 두지 말고 그 사람을 뒤집어 놓으라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물론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뒤집으면 안 되겠죠. 그렇죠? 좋은 모습을 뒤집으면 나쁜 모습이 되니까 그걸 뒤집으면 안 되는 거. 그건 해야 하지 말아야 될 일인데 좋지 않은 모습이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냥 두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을 뒤집어 주라라는 겁니다. 어, 바뀌어야 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분명히 눈에 보이고 있는데 아, 난 저 사람을 존중해라고 하면서 조용히 입닫고 있지

말라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좋은 것을 끌어내라라는 거예요. 그 사람의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것이 서로 돌아보라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예요. 그렇게 돌아보면서 그렇게 격려를 하라라는 겁니다. 어, 그것을 위해서 모여야 돼요. 그렇죠? 모여야 됩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모이기에 힘쓸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서로 권해서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예수님이 가까이 오신다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만날 것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어, 요즘에는 이제 전화나 문자나 하여튼 뭐 그런 메신저 같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모이는 것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신은 해요. 그렇죠? 어, 근데 우리가 확실히 안게 있어요. 우리가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확실히 안게 뭐냐면은 문자나 전화나 그러한 것들이

보조할 순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만나는 것을 보조하는 수단은 되는데 대체하는 수단은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은 만나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만나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되는 거예요. 어 그런데 여러분 요런 것 좀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가 서로를 아는 것이 어 우리한테 약이 되기도 하는데 가끔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맞나요? 네. 차라리 몰랐으면은 더 나왔겠다라는 생각이 좀 들 때도 있어요. 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요. 우리가 서로 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를 알아야 한다라는 겁니다.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사실은 좀 실망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요. 어, 그런 것들을 무기삼아서 뭐 상대방을 공격을

할 때도 있고요. 어, 그런 것들 때문에 멀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일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라는 겁니다. 오히려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아 그래서 내가 더 사랑을 해야겠구나라는 그런 이유로 삼아야 되고 아 내가 저것을 위해서 기도해야겠구나라는 그런 이유로 삼아야 됩니다. 서로 그렇게 하는게이 그리스도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우리의

책임인 거예요. 우리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고 자매라고 부르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그런 실제로 그런 관계이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내가 형제로서 자매로서의 그런 책임을 다 하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어 가인이 하나님께 짜증을 했죠.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까. 그렇게 짜증을 했었죠. 그렇죠? 근데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실망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지키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어 여기 24절과 25절의 명령이 어 오늘날 성도들에게 아마 조금 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 거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니까 성 성경의 명령들이요. 이것이 그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그 시대에 따라서 혹은 성별에 따라서 어떤 것들은 조금은 그래도 더 우리들에게 쉽게 다가오고 어떤 것들은 조금 더 어려운 것들이 있는데 24절 25절은요. 오늘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조금 더 어려운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 거예요. 어 과거에는요. 이런 똑같은 명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했냐면요. 아 그렇게 해야 되는 거 아는데 좀 어렵네요라고 그렇게 반응을 했어요.

근데 지금은 어떠한 반응이 나오냐면은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어, 그렇게 하지 않는게 더 편하거든요. 네. 그렇게 내가 굳이 해야 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겁니다.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냥 만나면은 나쁜 감정 없이 그냥 인사하고 그렇게 지내면은 어, 좋다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어, 왜 그러냐면요. 오늘날 사회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과 정 반대 방향으로 계속해서 왔기 때문에 그래요. 어, 개인주의라고 하죠. 그죠? 그 영향이 지금이 교회 안에도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어, 관여라는

것을 다 간섭으로 여겨요, 우리가. 그리고 굉장히 무언가를 하면은 불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배려하는 것을 넘어서서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관여하는 일들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상대가 뭐를 하든지 나는 신경을 꺼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요. 잘못된 것이 보여도 예전에는 어 뭐 학생들이

어디서 담배 피고 있으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야 하면서 이렇게 불러 가지고 그렇게 했었어요. 그게 통용되던 사회였어요. 근데 지금은 그렇게 못 합니다. 그렇죠? 예. 그렇게 할 때 굉장한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어 개인주의의 영향인 거죠. >> 잘못된 것이 보여도 굳이 이게 내가 나설 일이야. 그냥 저 사람 부모가 그냥 얘기하면 되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맙니다. 어, 사랑으로 누가 말을 해 줘요. 그러면은 나는 그렇게 듣지를 않습니다. 그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요. 나에 대해서 나쁜 말 하네. 저 사람 나쁜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갑니다. 어, 결국 그 모든 것에서 내가 우선이어서 그런 겁니다.

개인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그건 거예요. 내가 우선인 겁니다. 내가 우선인 것이 뭐의 특징이에요? >> 죄의 특징이잖아요. 그렇죠? 어, 죄의 특징입니다. 내가 우선, 내가 무엇보다 우선, 나를 무엇보다 우선해 두는게 죄의 특징입니다. 근데이 개인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그 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거다라는 거예요. 어, 조금 더 나가서요. 한계 없는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이렇게 할 자유도 없냐, 내가 이렇게 할 권리도 없냐.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어,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어, 내가 그냥 좋아서 이렇게 하는 건데 그것 때문에 저 사람이 힘들어하면 그 사람 문제지.

내가 이렇게 하는게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 근데 여러분 그 생각을 하셔야 돼요.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요. 우리들에게 권리가 있는데 사랑이 그것을 제안한다라는 겁니다. 내가 사랑의 관계로서이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다면요. 나의 자유, 나의 권리라는 것도 그 안에서 제약을 받는다라는 거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근데 그 생각을 하지 않죠. 네. 세상의 영향입니다. 어, 세상이 그렇게 흘러온 거 어쩔 수 없고요. 또 앞으로 더 그렇게 흘러갈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2,년 전이 아니라 지금 이만대쯤 태어나서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인 부분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는 그런 공동체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내 삶에 관여하지 않으셨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지 예수님께서 나의 자유 의지를 꺾고 내가 좋아하는이 죄를 좋아하는 나의 그 자유 의지를 꺾고 나를 구원하러이 땅에 오지 않으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에 관여하셨고요. 내 삶에 간섭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려고 그렇게 하신 거예요. 우리가 똑같이 서로에 대해서 그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서로의 삶에 여러분 관심을 가지시고요. 사랑으로 관여를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그런 공동체다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할 때도 아, 저 사람

나한테 맨날 나쁜 소리만 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 사랑으로 해 주는 얘기구나. 그렇게 들으셔야 되는 거고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보일 때 사랑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 먼저는요. 가장 중요한 건 뭐냐면은 어 다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내 삶을 열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훨씬 편해요. 그렇죠? 서로가 내가 먼저 들어가려고 하면 힘들잖아요. 그렇죠? 근데 먼저 열어 주면은 우리가 이러한 공동체를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어, 이것이 예수님의 피에 합당한 또 다른 반응입니다. 어.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음. 예수님의 피해 합당한 반응이라는 것은요. 어, 처음에 믿는 것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렇죠? 예. 그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받는 믿음이라는 것이 그 순간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어 참된 믿음은 사랑의 열매를 맺고요. 그리고 소망 가운데 계속해서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어 그래서이 예수님의 피 합당한 반응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합당한 반응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시고요. 소망으로 그곳에 머물러 계시고요. 그리고 사랑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 혼자 하면은 더 쉬운 것들이 있죠. 그죠? 어떤 것들은 우리가 혼자 하면 훨씬 더 쉬운게 있는데 신앙생활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해야 됩니다. 어, 예수님의 피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고 소망으로 그곳에 머물고 그리고 사랑으로 그렇게 하는 자들과 함께 하기를 요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할 때이 예수님의 피가이 피의 의미가 더

우리들 가운데 선명하게 선포될 것이다라는 것을 기억하시고요.이 말씀에 합당하게 반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 기도하고 마칠게요. 어, 하나님 또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음, 하나님 우리가 어,이 말씀에 어, 순종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또 순종할 때 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그 모든 것들을 어, 항상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어, 단순히 우리가 어,이 땅에서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의 피에 합당한 삶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또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아멘.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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