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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늘은 히브리서 10장어 1절부터 18절이 본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8절이고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의 온전한 제사네 번째 시간입니다. 어, 설교자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게 하나 있는데요. 뭐냐면은 설교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알고 계셨나요? 모르셨나요? 네. 설교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 설교는 일반적으로 이제 하나의 주제가 있고 그리고 설교자가 이제 여러 방법들을 통해서 그 주제를 이제 강조를 하는 거예요. 어 주제를 강조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뭐냐면은 어 반복하는 겁니다. 반복하는 거.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건데 물론 이제 그대로 반복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지루해지니까 이제 조금씩 이제 다른 방식으로 그런 것들을
반복을 해요. 어 그래서 이제 의도적으로 그렇게 반복을 하기도 하고요. 혹은 이제 그 말을 하고 싶으니까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이제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이 듣는 사람이 정말로 그것을 어 듣게 하는 거죠. 그런 일들을 설교자들이 하는 거예요. 어, 히브리서 말씀을 이제 지금까지 쭉 들어왔던 것들을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은 어, 비슷한 내용이 조금 이렇게 반복된다라는 것을 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어, 똑같은 이유입니다. 히브리서가 하나의 설교이기 때문이고요.이 저자가 히브리서의 저자가 좋은 설교자로서이 중요한 주제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그렇게 반복을 하고 강조를 하는 겁니다. 어, 설교사,
설교자로서 히브리서 저자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최종적으로. 그러니까이 적용에 가서 마지막으로 하고 하고 하고 싶은 얘기는 뭐냐면은 어, 절대로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너희가 절대로 예수님을 다른 것과
바꿔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어, 그래서이 핍박과 유혹 가운데 있는이 독자들에게 뭐 긍정적으로는 격렬을 하기도 하고요. 조금 부정적으로는 경고를 하기도 하죠. 우리가 그런 말씀들을 지금까지 계속 살펴봤었습니다. 어 그러면서 왜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이제 논증을 하는 거예요. 특별히 그 핵심에 있 있었던 것이 예수님의 위대하심이었죠. 예수님이 구약에 어떤 것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뛰어나신 분이신지 위대하신 분이신지 그런 부분을 계속해서 논증을 했었습니다. 어 여러 가지로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것들을 다
모아보면은 사실은 요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떠나간다라는 것은 곧 무엇에서 떠나가는 거예요? 구원에서 떠나가는 것이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음. 그 구원에 있어서 가장 또 중요한게 뭐냐하면요. 죄사함이에요. 죄사함.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죄사함입니다. 애초에이 구원이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뭐가 막고 있어서 그래요? >> 죄. 그렇죠? 죄라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거죠.
그래서 구원이 되려면, 구원이 이루어지려면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돼야 되는 겁니다. 어,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고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죄를 사하는 그런 제사를 드리셨다라는 그것을이 히브리서의 많은 분량을 사용하면서 설명을 한 겁니다. 어,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이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에 대해서도 사실은 여러 번 언급을 했습니다. 사실은 오늘이 부분이 주된 주제이고 오늘 본문에서이 부분을 다 풀어 놓는 건데 이미이 앞에서도 여러 차례이 이야기들을 했었어요. 왜냐하면은이 얘기가 하고
싶은 얘기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몇 구절 읽어 드려 볼게요. 예수님의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뭔지 한번 들으면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들여 이루셨음이라. 어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는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의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장 26절은요.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의 재물로 들여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장 28절은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린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어, 예수님께서 드리신이 제사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얘기하고 있는게 뭔지 생각이 되시나요? 뭔 거 같아요? >> 단번. >> 단번에 그렇죠. 횟수입니다. 횟수.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를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 제사를 드리셨다라는 거예요.이 한 번이라는 횟수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뭐냐면은 한 번만 해도 된다는 거죠. 그죠? 그 한 번으로 충분하다라는 거고요. 그것이 완전하다라는 거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이 단 한 번만 들여졌다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드리신 그 제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8절에서도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마지막으로이 부분을 반복해서 강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히브 히브리서이 본론의 논지가 끝이 나요. 어, 그렇기 때문에 어,이 마지,이 10장 1절부터 18절 말씀은요. 단순히 어떠한 마무리라기보다는 히브리서의 핵심이고요. 그리고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렇게이 말씀을 정리할 수 있어요.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그리고 평생 마음속에 남았으면 좋겠는 말 뭐냐 하면은요.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사함을 이루셨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입니다. 어 18절에 보시면 이렇게 얘기하죠. 그것들을 사하셨은즉 뭐라고요?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죄사함을 이루셨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는 것을 마지막 결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 바로 앞에 단락에서요.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봤던 그 단락에서 저자는요. 왜 예수님의 희생이 필요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 뭐였었냐면은 피흘림이 없으면 뭐가 없기 때문에 >> 사함이 없기 때문에 그죠? 을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희생이 필요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요.이 예수님의 희생의 특징을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 앞에서도 계속해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떤 식으로이 논리를 전개를 했냐면은 어 옛 언약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했고요. 그리고 그것과 대조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 한계를 무한하게 뛰어 넘으셨는지를 보여 줬었습니다. 여기서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리고 그 대조의 핵심은 방금 전에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제사의 횟수에 있어요. 제사의 횟수. 옛 언약의 제사는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드려졌고
새 언약의 제사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는 단 한 번 드려졌습니다. 어 1절부터 18절 말씀을 전체를 한번 읽으면서 말씀을 좀 시작을 하겠습니다. 어이 말씀 가운데서 어떻게 방금 말씀드렸던 그 부분이 드러나는지 한번 잘 보세요. 율법은 장차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들이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요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이 첫째 것을 패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어, 말씀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요. 율법 아래에서 드려진이 제사의 한계적인 특징을 볼게요. 1절에서 4절인데요. 늘 드리는 같은 제사의 한계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어, 율법은 장차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을 해요. 어, 여기서 이제 중요한 명제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 율법은 어떻다고요? 제일 끝에 보시면 율법은 온전하게 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율법은 온전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7장에서 이미 좀 살펴봤었던 내용입니다. 7장 11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했어요. 어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찰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라고 그렇게 물어봤었어요. 예수님께서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는데 그 필요성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율법에 따라서 세어진 그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 사람이 죄인이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 그 레위의 반찰을 따르지 않은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레위가 아닌 멜기세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세우셨다라는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던 거다라고 지금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요. 19절에 보시면 또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 히브리서 7장 19절에 보시면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느니라. 어,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한다라고 그렇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이 온전하게 된다. 온전하게 한다라는 말의 의미도 무엇인지가 지금 여기 10 어, 7장 19절에 드러나요. 뭐냐면은 온전하게 된다라는 것이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그 온전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라는 거예요. 어, 그리고 그 관계 회복에 대해서 우리가 9장 1절부터 14절에서 살펴봤었습니다. 어, 성막에 대해서, 성소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죠.이 성막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계가 있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어요. 누구도 자유롭게 하나님께서 그 임재를 두셨던 그
지성소 그곳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죠? 평민은 성소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고요. 그들을 대표해서 그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들조차도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딱 한 사람 들어가죠.대 대제사장. 그렇죠? 근데 그 대제사장도 아, 오늘 한번 들어가 볼까? 아, 오늘 하나님 만나고 싶은데가 볼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렇죠?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그렇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소라는 것이
한편으로 보여졌었던 것은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백성이 분리되어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라는 것을 그 성소가 보여줬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어. 율법에 따라서 만든 성소 그리고
율법에 따라서 세워진 그 제사장 그리고 율법에 따라서 드여지는 그 제사가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라는 것을 지금까지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여기 10장 1절을 보시면 다시 한번 그 이유를 명확하게 얘기를 해요. 왜 율법은 온전하게 할 수 없는지 말합니다. 뭐냐면은 율법은 장차올 좋은 일에
뭐라고요? 그림자일 뿐이고 참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해마다 계속해서 제사를 드린다라고 해도 소용이 없는 거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제사들은요 늘 똑같은 제사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냐면 여기 지금 그림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죠. 그림자. 여러분, 그림자를 열심히 열심히 모아 보세요. 제 그림자, 제 손에이 그림자를 열심히 열심히 모으면 이것이 제 손이 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죠?이 그림자로 손하고 똑같이 생겼다라고 해서 이것들을 열심히 모아서이 그림자로 제가 이것을 여러 번 만지면 한 번쯤은 만질 수 있나요? 그렇게 되지 않아요. 왜요?
전혀 그림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많은 시도를 한다라고 해도 불가능하다라는 겁니다. 어, 그 증거로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얘기하는게 뭐냐면요. 구약의 제사가 그치지 않고 계속 들려졌다라는 거예요. 2절을 보시면 어,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렇지 아니하면이라는 걸 풀었으면요. 요거죠. 만약에 율법에 따라 드리는 제사가 사람을 온전하게 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실제적인 효과가 있었다면인 거죠. 있었다면 실제로 그렇게 됐었다면 그러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실제로 정결하게 됐을 거고 다시 죄를 깨닫게 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지금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여기 이제 죄를 깨닫는다라는 말이 나와요. 죄를 깨닫는다.이 죄를 깨닫는 일이 없다라는 것은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를 합니다. 어, 요한일서 1장을 보면은
지금이 새 언약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도 죄책감이라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그렇죠? 오히려이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죄책감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 있어요. 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이 모든 죄에서 사을 받았다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확신을 가질 수가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가 죄를 여전히 짓고 있고 그것이 나에 대해서 아 내가 죄를 지었어라고 계속해서 나를 책망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이 죄사함을 받았다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어요? 우리는 >> 예수님 때문에 그렇죠. 예수님의 피가 나를 깨끗해 한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어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되는 것은 맞는데 죄책감에
억눌리지는 않는 겁니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 거예요. 내가 죄를 범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요. 그것이 죄에 대해 민감한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제함이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는 겁니다. 로마서 8장 1 2절에서도 말하죠.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지함이 없나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해방하였습니다. 어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는다라고 해도요. 지금 여러분들이 구원받으신 분들이 다시 죄를 짓는다라고 해도요. 우리는이 죄를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다시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 저이 죄의 문제 해결해야 돼요라고 그렇게 하지 않는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냐면요.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회 회복의
은혜를 구하는 겁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이 새 언약의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이고요. 자유함이에요. 근데 율법 아래에서 제사를 드렸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라는 겁니다. 그런 해방과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요. 언제나 죄책감이 따라왔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죄책감이 계속해서 있으니까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제사를 드리고 또 드리고 하는 일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어 그러면서 알게 되는 것은 뭐냐면요. 결국은이 제사라는 것이 내가 계속해서 드리는이 제사라는 것이 나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어 해마다
대속재일이 되면요. 제사를 온 그 국가적으로 드렸죠. 그 국가적으로 드리는 그 대속재일에 드리는 그 제사가요. 사실은 그런 무력감을 느끼게 했을 거예요. 뭐냐면 여기 3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죠.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이 제사를 통해서 아 이제 제사를 드렸으니까 죄사함을 받았다라는 그런 자유함을 누려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오히려 죄를 기억하게 한다라는 겁니다. 뭐냐면요. 해마다 대속죄일에
대속죄일이 있어서 그때이 민족적으로 크게 제사를 드린다라는 것이 뭐를 의미하는 거 뭐를 의미했었기 때문에 그러냐면요. 너도 모르는 죄가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 전까지 내가 계속해서 열심히 제사를 드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인지하지 못했었던 또 다른 죄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덮기 위해서이 대속죄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대속죄일의 죄가 들여진다라는 것은 내가 한 해 동안 아무리 열심히이 죄에 대해서
제사를 드리고 드리고 해도 여전히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죄가 있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줬다라는 겁니다. 죄를 기억나게 했다라는 거예요. 어, 결국은요.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이는 뭐라고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네. 그렇게 열심히 드리는 제사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는게 아니라 죄에 대해서 더 생각만 하게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이 짐승의 피에는 그 사함의 능력이 없었다라는
말입니다. 약간의 사함의 능력은 있어 가지고 이게 완벽하진 않은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어 가지고 최대한 많이 자주 제사를 드리면 괜찮은 것도 아니었었다라는 거예요. 어 떨어지는 물방울 물방울이 계속해서 한 자리에 떨어지면은 많은 시간이 지나면이 바위가 어떻게 되죠? >> 예 파이죠. 그렇죠? 그리고 아주 많이 시간이 지나면 뚫릴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하차는 물방을인데도 조금 조금씩 그렇게 하면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면은 그 정도의 효과는 있는 거죠. 근데 짐승의 재산은 어떻다라는 거예요? 전혀 우리 죄에 대해서 그
조금의 역할도 할 수 없었다라는 겁니다. 전적으로 무력했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 그래서 그 많은 제사 그 많은 제사장 그리고 그 흘려진 많은 피들이 의미했었던 것은요. 그만큼 죄가 사함을 받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것으로도 사함받을 수 없는 죄가 우리들에게 근본적으로 있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했었다라는 겁니다. 어, 그것이 그것이 율법 아래에서 드려진이 제사의 한계입니다. 한계. 어,이 한계라는 것이요. 제가 지나가고 나서 할까요?
네. 어,이 율법 안에 드려진 제사의 한계라는 것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생긴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가 됐었던 겁니다.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렇게 의도하셨다라는 거예요. 어,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도대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냐라는 거죠.
죄를 사하지도 못하는 제사를 왜 그렇게 드리라라고 그렇게 하셨느냐라는 겁니다. 어, 1절로 다시 가서 보시면요. 율법 아래 드려진 제사는 장차올 좋은 일. 예수님께서 드리실 그 제사의 그림자로서 주어졌습니다. 어 구약의 성도들은요. 구약의 성도들은 그 제사를 드리면서 아 내가이 제사를 드여서 내가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제사를 드려도 나는 죄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되고요. 그게 죄의 깨달음이고 죄를 기억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제사가
궁극적으로 가르키고 있는 그 참 형상이신 메시아를 그들이 생각을 해야 됐었다라는 겁니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에 의도된 기능이에요. 어, 물론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 점진적으로 드러나서 그 당시에이 구약의 백성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아는 것만큼 다 알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렇죠? 예,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 분명히 이들이 알 수 있는 건 있었어요. 뭐냐면은 그들도이 제사 자체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뭐라 그랬냐면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고 얘기를 하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순양의 기름보다 낫다라고 말을 했어요. 다윗도요. 시편 51편
보시면음 16절 17절에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이
제사를 드리는 거 자체가이 제사 자체가 무언가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이 구약의 성도들도 알고 있었다라는 거예요. 어 궁극적으로 그리고이 죄 용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130편 4절에 보시면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죄사이라는 것이요. 어 제사를 지내면 제사를 드리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거예요. 내가 큰 죄를 지었을 때 가서 짐승의 제사를 드리면은 내 마음은 어 뭐 회개를 하든 뭘 하든 아무 상관없이 그냥 제사만 드렸으니까 죄사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될 수 없었다라는 겁니다. 그들이 그들이 드렸던이 짐승의 제사는요 하나님의 죄사함에 대한
하나님의 죄사함에 대한 그들의 믿음의 표현이었어요. 아 하나님께서 죄를 사아 주실 것이다라는 것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고요.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 믿음을 보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가올 실체에신 그 예수님의 피초에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다라는 겁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율법 아래 늘 반복해서 들여지는 똑같은 제사의 한계였습니다. 어 자 이제 5절부터 어 5절부터 10절 말씀을 보시면요. 여기서는 이제 그러므로라고 시작을 해서요. 이제 이런 그림자의 참 형상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어 짐승의 피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똑같이 해마다 드리는 그 제사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죄사함을 위해서는 다른 제사, 다른 재물이
필요합니다. 어 5절부터 7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봄을 예배하셨도다. 어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어, 여기서 지금 어, 다윗의 시편을 인용을 하고 있어요. 다윗의 시편 40편 6절부터 8절 말씀을 지금 인용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요. 그 말씀을 보시면요. 다윗이 어, 정말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싶은 그러한 마음을 지금 표현하고 있는 그러한 말씀이에요. 그리고이 히브리서의 저자가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께 지금이 말씀을 적용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사실이 인용에 관해서 해야 될 말이
정말로 많은데 어 싹다 빼고요.이 본문 자체만 좀 말씀 집중해서 말씀을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어 5절 말씀을 보시면요. 이것이 어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무슨 말이냐면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 성육신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말씀이 지금이 말씀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사함을 위해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요. 오직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을 원하세요.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 예수님께서이 땅에 온전한 제사장으로 오셨죠. 그렇죠? 제사장으로 온전하게 오셔서 레 사람들이 드리던 그 제사를 예수님이 똑같이 한 번 더 드리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거예요. 재물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이 번제와 속죄 이제 짐승의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것은 그림자였고 참 형상은 그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들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라고 7절에서 말합니다. 그죠?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류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예수님께서이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하나님께 순종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 땅에 오셨다라는 거죠.이 땅에 태어나 보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너 죽어야 돼. 그렇게 한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이 땅에 오셨습니다. 순종의 죽음만을
위해서이 땅에 오셨던 오셨던 것도 아니고요. 순종의 삶을 살고 그리고 죽기 위해서이 땅에 오셨습니다.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셔서 예수님은 온전한 재물이 되셨고요. 그리고 온전한 재물로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제사를 드리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이 구약의 그림자의 참 형상이 나타나게 된 겁니다. 어, 히브리서 저자가 이제 그거를 요렇게 정리해서 다시 한번 얘기를 해요. 8절 9절을 보시면 어 이에 말씀하시기를 아, 위에 말씀하시기를 그러니까 위에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지금 다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패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요 요 순서에 지금 잘 주목해서 보라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먼저 하나님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모든 제사를 원하지도 않으시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라고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라고 말씀을 하셨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그 제사는 패하신 거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이 땅에 오셨습니다. 첫째 것은 패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신 겁니다. 더 이상이 짐승의 제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사가 모든 의미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요. 예수님은 그 뜻대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시면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짐승의 죽음이 아니고요. 성육신하신 그 아들의 죽음이었던 거고요.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자기 몸을 재물로 들이신 겁니다. 어 해마다 그렇게 하셨을까요? 올해 한 번 죽고 내년에 한 번 또 죽고 아니죠. 그렇죠.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사는요. 율법에 따라서 드여진 그 그림자 제사하고는 분명하게
달랐습니다. 그 둘을 구분하는 단어가 지금 여기 10절에 나오죠. 단번에. 단번에이 제사는요. 전에도 없었고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역사상 단 한 번 드여진 제사입니다. 어, 이것이 단 한 번만 드려진 이유를 우리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한 번의 제사로 죄인이
거룩함을 얻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10절 끝에 말하죠. 들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효과가 있었다라는 겁니다. 효과가 있었고 그것이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라는 겁니다. 완전한 효과가 있었다라는 거예요. 뭐 여러분들 그런 경험들 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물로 닦아도 잘 안 닦고 그걸 그래서 막 비비고 막 문지르고 그래도 계속해서 그 얼룩이 남아 있는데 인터넷 찾아보니까 어 그거는 이런 무슨 용액 같은데 담그면 돼요라고 해서 거기에 한번 담갔다가 빼니까 싹 사라지는 것하고 똑같은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죄라는 것이요.
짐승의 피로는 아무리 많이 하고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절대로 닦을 수가 없는 그러한 죄였던 겁니다. 어떤 효과도 없었어요. 근데 예수님의 피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그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지워냈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어 10절 뒷부분에 보시면요.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얘기를 하죠.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어, 사실 말씀을 쭉 읽다 보면은이 우리라는 표현이 여기서 약간은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요. 왜냐면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 객관적으로 어떤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계속해서 객관적으로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가 갑자기 여기서 1인칭으로 지금 1인칭 복수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주관적인 표현으로 바뀐 거죠. 그렇죠? 어, 근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 같아도 여기서 우리라고 했을 것 같아요. 왜냐면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역에 내가 포함되어 있구나라는 것을 여기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내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도이 예수님을 믿으면요. 똑같이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봄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내가 거룩함을 얻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자들이 된 겁니다. 그리고이 거룩함이라는 것은요. 지금부터 영혼까지 확정된 그러한 상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우리의 순종이나 우리의 불순종에 의해서 이것이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순종하면은 조금 더 거룩해지고 내가 불순종하면은 그 거룩함이 정도가 좀 떨어지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이 거룩함이라는 것이 애초에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순종하고 관계가 없었잖아요. 그렇죠?
누구의 순종하고 관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순종. 예.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이 거룩함이 우리의 것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순종의 제사는 단번에 끝났습니다. 완성되었습니다. 취소되지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얻은 우리의 거룩함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이것은 절대로 취소될 수가 없습니다.
줄어들 수도 없고요. 더 늘어날 수도 없는 그러한 거룩함을 우리들에게 주셨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 이제 11절부터 18절은요. 이렇게 거룩함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 가질 수 있는 그런 확신에 대해서 선포를 하는 말씀이에요. 개인적으로 정말로 좋아하는 예 성경 말씀인데 어
뭐냐하면요. 이제는 그래서 다시는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로 정말로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는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도 없고요. 사평 형제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도 더 이상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들리신 그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됐기 때문에. 어 11절을
보시면요. 여기서 또 한 마지막으로이 제사의 횟수에 대해서 대조를 하죠.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얻게 하지 못하거니와. 어 여기 표현을 보세요. 제사장이 매일 뭐 한대요?서 >> 있대요. 그렇죠? 매일 서서 섬긴다라고 합니다. 항상 같은 제사를 드린다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면은 그들이 하는 일이 효과가 없기 때문에
네. 죄를 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이 제사장들이 매일 서서 같은 제사를 드리는 그 모습을 보면요.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이 효과가 없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는 거예요. 옷이 깨끗해지면 빨래를 멈춰야 돼요, 계속 해야 돼요? >> 멈춰야죠. 그죠? 옷이 깨끗해졌으면 더 이상 빨면은 안 됩니다. 그렇죠? 더 이상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 멈추지 않고 있다라는 얘기는 여전히 그 옷이 더럽다라는 얘기인 겁니다. 어,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2절 13절에 보시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자, 예수님은 제사를
드리셨고요. 그렇죠? 드리셨고요. 그리고 지금은 뭐 하고 계세요? >> 아니 12절 끝에 보면은 먼저 >> 앉으셨어요. 네. 제사장들 율법의 레이사장들은 계속 서서 서서 섬겨야 됐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그것이 섬기는 일이 과거형이 됐고요. 이제는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13절도 보시면 굉장히 흥미로워요.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뭐 하신다고요? 기다리세요. 원수를 내 발등상으로 만들려면 나는
뭐를 해야 됩니까? 원래 싸워야죠. 싸워서 굴복을 시켜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근데 지금 뭐를 하신대요? 기다리신대요. 기다리신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예요? 이미 그 싸움이 끝났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끝나는 겁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그 일에 효과가 나타날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어, 제사가 한 번에 끝났습니다. 그 한 번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앉아 계시는 겁니다. 더 이상 예수님께서 드리실 제사가 없습니다. 어, 예수님께서 지금이 땅에 살아 계시지 아, 그 살아 계시지 않다. 좀 이상하죠. 그지?이 땅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으시죠. 그렇죠? 네. 그것에 대해서 좀 안타까움이 드실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여러분 이렇게 생각을 해 보시면은 좋을 거 같아요. 예수님께서 지금이 땅에 남아 계시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예수님께서이 땅에서 하실
일을 끝내셨기 때문에 그렇죠? 끝내셨기 때문에 더 이상이 땅에 계실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사실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됐습니다. 어, 그리고요.이 히브리서 저자가 또 마지막으로이 새 언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5절부터 17절 보시면 어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어이 말씀은요어 예레미야 31장 33절 34절 말씀인데요. 앞에 히브리서 8장 10절부터 12절에서도이 말씀을 인용을 했었고요. 어 그때 설명을 드렸었기 때문에 오늘 또 뭐 추가로 더 하진
않겠습니다. 어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자기 피로 지금이 새 언약을 이루신 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에 기초해서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지금 이렇게 말씀을 이제 하시는 거예요. 그들의 죄와 불법을 나는 다시 기억하지 않을 거다. 너희들의 죄와 불법을 나는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확신 가운데 18절처럼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어, 한 번에 들여진 그 예수님의 피가 최종적이었던 거고요.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거고요. 효과적이었던 겁니다. 그 피로 세운이 새 언약 안에서 이제는 다시는이 죄를
위해서 제사 드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드릴 제사가 남아 있지 않아요. 내가 드릴 제사도 없습니다. 그렇죠? 죄가 사해졌습니다. 몇 번 만에 사해졌을까요? >> 한번. >> 한 번에. 그렇죠. 단번에 사해졌습니다. 얼마 동안 사해졌을까요? >> 영원히. 영원히 그렇죠. 어느 정도로 사해졌나요? >> 다 완벽하게. 네. 그리고 무엇으로 그렇게 됐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 모든 죄와 불법을 사하셨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고요.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 모두가 다 똑같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 만약에요. 아직까지이 가운데 계신 분들 중에서이 확신이 없으시다면요. 지금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 희생으로 단번에 이루신이 죄사함을요.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요. 그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라고 하는게 아니라 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구나.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시는구나. 그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지 않겠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어 구원받으신 분들에게는요.이 말씀을 좀 드리고 싶어요. 어 정말로 확신 가운데 여러분 거하시고요.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어 여전히 구약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처럼 여러분 죄책 죄책감 가운데 그렇게 살아가지 마시고요.이 이 죄세함의 죄사함의 기쁨을 여러분 누리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 그런 생각 들 때 있죠. 난 정말 구제불능의 죄인이야. 네. 그런 생각 여러분 드실 때 있을 겁니다. 그게 여러분 재책감에 사로잡히는 거예요. 어,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실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 그럴 때 여러분이 말씀을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 기억을 해 보세요. 내가 뭘 어떻게 잘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게 아니에요. 그렇죠? 네.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게 아닙니다. 나의 순종이라는 것도요. 사실은이 황소나 염소의 피하고 다를게 없어요. 나의 순종으로 죄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뭐냐면은 예수님의 순종이고요. 그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그 예수님의 단번에 들으신 그 희생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사함을 받고 깨끗함을 입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이 그 말씀이에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무리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계속해서 그렇게 한다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내가 지금 가진이 죄를 가지고 자백을 하면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하시겠구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시겠구나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와 회복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행한 어떠한 의로움이 아니고요. 내가 행한 순종이 아니고요. 예수님의 피 때문에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 예수님의 피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언제나 내 죄를 짓고요. 하나님은 언제나 내 죄를 사하십니다. 여러분 그 확신 가운데 자유하심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어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오늘 말씀을 통해서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또 기억하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고 어 우리에게 완전한 죄사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 다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제사드릴 것이 없다라는이 말씀은 어 정말로 오래된 그 죄와의
전쟁이 끝났다라는 종전 선언임을 기억을 합니다. 어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어 우리 삶의 죄와 싸우지만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어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이 놀라운 은혜의 선물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 우리가이 자유함으로 더욱더 순종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고 그 순종의 삶이 지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삶의 제사가 되기를 구합니다. 어들은 말씀을 주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