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우릴 위한 대제사장의 온전한 제사(3) (히 9:15-28)

최종혁 · 2026.04.04 · 히브리서 9: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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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히브리서 말씀을 나누고 있고요. 오늘은 9장 어, 15절에서 28절이 본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서 28절을 펴 주시고요. 어,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에 온전한 제사 세 번째 시간입니다. 어, 계속 제가 히브리서를 할 때마다 앞에 내용을 조금씩 계속 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이제 그게 저한테도 도움이 되고 아마 여러분들한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어, 이제 예수님이

어, 대제사장이시다. 특별히 이제 다른 대제사장이시다. 더 나은 대제사장이시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히브리서 4장 끝에서부터 사실은 7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봤었습니다. 어, 그리고 이제 8장부터의 말씀을 통해서는요.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들리신 제사 그 온전한 제사에 대한 말씀을 지금 나누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1, 2, 3까지 지금 와 있는 겁니다. 어,이 제이 제사에 대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어,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서 계속 얘기를 한다 그랬어요. 언약 언약이라는 주제 그리고 성소라는 주제 그리고 희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반복도 하고 다양하게 이렇게 저렇게 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 그러면서이 예수님의 제사를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 8장에서는 언약의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라는 것을 강조를 했었고요. 그리고 지난 시간에 9장 1절부터 14절이었죠. 거기까지 말씀에서는 이제 성소의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더 크고 온전한 성소에 들어가셨다라는 그 사실을 우리가 함께 살펴봤었습니다. 음. 옛 언약의 한계가 있었죠. 옛

언약의 한계가 있었고 그리고 옛 성소의 한계가 있었는데 그 모든 한계를 예수님은 뛰어넘으셨다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그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따라서 그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계신 그곳까지 나아갈 수 있게 예수님께서 하신 겁니다. 어, 이제부터 오늘하고 이제 다음 주에 살펴볼 9장 15절부터 10장 18절이 어,요 부분의 말씀이 이제 예수님께서 드리신 그 제사에 있어서 어쩌면 이제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희생에 대한 말씀이에요. 희생 재물에 대한 그런 말씀입니다. 어, 왜냐하면 이제 제사 자체에 대해서 이제 말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어, 근데 이제 앞에서도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요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했었어요. 조금 앞에 넘겨 보시면 히브리서 8장 3, 4절에서 어 이미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요것이 대제사장의 역할인 거죠. 그러므로 그도 무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해서 세운 자니까 드릴 것이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것처럼 이제 예 4절 보시면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 아니하셨을 것이니이는 예물을 따라 아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해요. 어이

말씀에서 이제 저자는 예수님도 그러니까 여기 이제 그 암시된 의미는 뭐냐면은 예수님도 대제사장이시니까 무언가 드릴 것이 있어야 된다라는 거겠죠. 그죠? 대제사장마다 드릴 것이 있어야 되니까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라면은 무언가 드릴 것이 어 있어야 된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이제 대제사장이 일반적인이 인간 대제사장이 드리는 예물과 같은 것은 아니어야 됐습니다.어요 말씀만 읽어 보면 어 그게 뭐지? 이렇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사실은 이미 그 앞에서 스포를 했어요. 7장 27절에 보시면 이제 저자가 어 참지 못하고 이미 그렇게 얘기를 했었습니다.

보시면 제일 끝부분에이는 그가 단번에 무엇을 드렸다고요? 자기 그렇죠? 자기를 드여서 이루셨음이라고 말씀을 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물은 뭐였던 거예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재물은 자기 자신이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봤었던 9장 12절에서도 사실은 그 말씀이 있어요. 그죠? 염수와 송아지 송아지에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뭐로요? 자기의 피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 옛 언약 아래

짐승이 사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죽었었던 것처럼 새 언약 아래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죽으신 거고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지난 말씀의 결론이기도 했어요. 13절 14절 말씀을 한번 다시 보세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이제이 시점부터 히브리서의 저자가 더 본격적으로이 예수님의이 희생에 대해서이 희생 재물에 대해서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 오늘 살펴볼 9장 15절에서 28절까지는요. 왜 예수님의 그런 희생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다음에 살펴볼 10장 1절부터 18절에서는 그 예수님의 희생의 특징적인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희생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어, 우린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항상 이야기를 해요. 그렇죠? 예수님은 지금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죠. 예수님 살아 계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왜 그러냐면은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것이어서 그래요. 어

고린도전서 2장 2절을 보시면 바울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어,이 말씀을 주의깊게 잘 좀 생각을 해 보세요. 어, 지금이 상황에서 바울은요. 사실은 그냥 예수 그리스도만 언급해도 될 거 같은 상황이에요. 그렇죠?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그러한 상황인데 굳이 여기에 뭐를 포함시켰냐면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시켜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그 예수님의 사역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역이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어서 그래요. 어 사실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뭐냐면은 죽는 거였어요.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죽는 거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7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이 십자가를 위해서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려고 오셨다라는 거예요. 어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세요. 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가장 직접적인 이유도요. 사실은 죽기 위해서입니다. 죽기 위해서. 예수님의 낮추심이라는 것이 이제 우리가 그 예수님의 낮추심을 통해서 이것이 우리의 겸손의 본으로서 본으로서도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에요. 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는게 겸손한 거야라는 걸 보여 주려고 사람이 되신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사람이 어떻게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완벽한 본을 보여 주셨죠. 그렇죠? 근데 그것도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을 할 순 없어요. 예수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고요. 긍휼의 본을 보여 주셨고요. 어떻게 죄 죄의 유혹을 쌓아서 이기는지 그런 승리의 본도 보여 주셨고요. 그 예수님의 모든 삶이 우리가 따르고 본받아야 할 그러한 중요한 그런 삶이지만 그런데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가장 궁극적인 가장 주요한 목적은 아니었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 예수님의 삶을 생각할 때 우리가 계속해서 그런 부분만 집중해서 보게 되면요. 그러면 기독교도 사실은 다른 종교하고 똑같이 됩니다. 성경이라는 것도요. 그냥 또 다른 도덕책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주목할 필요가 있냐면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라는 사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요. 그래야지 사람으로서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바울도 단지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했고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하고 있는 거고요. 매주 떡과잔을 통해서 우리가 그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 그러면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됐을까? 네. 죽으러 오셨다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됐을까요?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 됐어요? >> 내 죄 때문에. 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네.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죠. 어, 맞는 말이에요. 맞는 말인데 여전히이 대답은요. 같은 질문을 똑같이 하게 만들어요. 무슨 얘기냐면은 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왜 죽어야 됐을까라는

질문인 거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건 맞는데 근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꼭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면은 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었냐라는 거죠. 뭐 여러 가지 것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그렇죠? 어, 착한 일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하면은 뭐 구원을 해 주신다거나 뭐 그렇게 할 순 없었을까? 아니면 한 10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만 보고 있으면은 구원을 해 주신다라거나 뭐 그런 식으로 할 순 없었을까? 어, 아니면 그냥 그런 거 아무것도 필요

없고 진짜로 그냥 말씀으로 너네 다 구원받았어. 이제 괜찮아. 그렇게 했으면 안 됐을까? 어, 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했을까라는 거죠. 그리고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실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히브리서의 답은 뭐냐면요. 22절 끝에 보시면 뭐라고 말합니까?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네. 힐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어, 구원의 문제를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하면요. 그것은 사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혹은 죄사함의 문제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 우리가 로마서 그 앞에 말씀을 생각해 보시면요. 어, 하나님은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진노를 하시죠. 그렇죠? 그것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죄도이 하나님의 공의가 그냥 그것을 용납하고 받아주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라는 거예요. 그냥 눈감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은 우리 모든 사람이 다 뭐예요?

죄인입니다. 그렇죠? 우리 모든 사람이 죄인이어서 다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고 얘기를 해요. 의로운 사람도 없고 의로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어, 그러니까이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어, 그러면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를 하시고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면 그러면 우리에게 남겨진 건 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인 거죠. 그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그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원한 죽음. 어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 될까? 자, 우리 입장에서 뭐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리 내가 지금부터 진짜로 일을 악물고 착한 일만 하고 한다고 해도 이미 범한 죄가 없어지지를 않습니다. 어, 무슨 술을 써도이 죄없는 완벽한 삶이라는 것을 우리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누가 이것을 해 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네.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셔야 된다라는 거죠. 어 이게 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멈추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려면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겁니다. 어떻게 하신 거냐면요. 우리를 대신해서 그 진노의

심판을 받는 일을 하신 겁니다. 죽어야 했다라는 얘기예요. 그것이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흘리심입니다. 우리를 사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셔야만 됐습니다. 어, 피흘림이 없으면 사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라는 거고요. 방금 제가 말씀드린이

문장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그런 진리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라는 겁니다. 어 말씀을 이제 두 나눠서 본문을 좀 살펴보면요. 15절에서 22절에서는이 옛 언약이 보여줬었던 것이 바로이

원리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23절에서 28절에서는요. 예수님께서이 원리에 대해서 더 좋은 재물로서 죽으셨다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 줍니다. 적기 어려우시죠? 그냥 15절, 22절, 23절, 28절 그렇게 그냥 나눠 놓으시면 됩니다. 15절에서 22절. 여기서는 원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요. 사을 위해서는 피흘림이 필요하다. 사을 위해서는 피흘림이 필요하다. 어,이 히브리서의

문학적인 특징이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 쭉 읽어 보시면은 그런 것들을 느껴 보실 수 있는데요. 어, 뭐냐면요. 어, 앞에 이야기의 결론이 뒤에 이야기의 서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뒤에서 다를 주제를 앞에서 살짝 언급을 하고서 그 뒤에 가서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제 그런 식으로 많이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기록을 한 걸 볼 수 있거든요. 여기 15절 말씀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14절까지 말씀의 결론이기도 하고요. 15절이 그리고 동시에 16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의 서론이 되기도 해요.

어 15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송냥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죠?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우리가 이미 다 살펴봤었어요. 옛 언약의 중보자로서는 할 수 없는 그러한 일들을 다 하셨습니다. 8장과 9장 14절까지에서 우리가 그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예수님은 내면으로부터의 변화 완전한 죄사함이 약속된 그 새

언약 더 좋은 언약이라 그랬죠. 그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새로운 성소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 들어가셨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어, 그리고 거기서 여기 다시 9장 어, 9장 12절에 보시면 거기서 예수님은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단번에 이루셨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영원히 이루셨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오직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한다라는 것이 14절의 결론이었어요. 어, 여기 15절에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셔서 어떤 것을 이루셨다라고 말을 하냐 하면요. 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다라고 말씀을 합니다.이 영원한 속죄하고 관련된 많은 영원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해 있는 것들이 거기에 많이 있어요. 에베소서 1장 3절에서는 그런 것들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표현을 했었고요. 여기 히브리서에서는 그것을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누가 받습니까?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받는다라고 말을 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이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그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됩니다. 어 부르심을 입은 자. 어 첫째로는이 새 언약의 직접적인 대상 누구죠?

이스라엘. 그렇죠? 이스라엘이 될 거고요. 그리고 그다음으로이 새 언약의 수혜자인 우리 모든 교회를 의미한다라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어, 근데 여기 15절에서 이제 중간에 있는 부분이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보면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냐면은이는 첫 언약 때 범죄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주사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 지금 히브리서의이 저자가 유대인들 독자들을 향해서 말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우리가 잘 어, 가지고 있어야 돼요. 지금 그들의 상황을 고려해서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유대인들은요. 그들이이 첫 언약 아래 그러니까 모세 언약 아래 드리는 그런 짐승의 제사가 그들을 죄에서 속량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어 그래서 이제 때에 따라서 제사를 계속해서 드렸고요. 그리고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 같은 경우는 어떤 목적이 있냐면은 그렇게 제사를 드리다가 자기가 혹시라도 빼먹은 거 이제 그런 것을 약간 소급하기 위해서 들여지는 그러한 제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모든 죄가 그렇게이 제사로서 어 커버가 된다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건 뭐냐면은 어 그렇지가 않다라는 겁니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는 것도 짐승의 피를 통해서가 아니라 누구의 피를 통해서 거예요?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어, 짐승의 죽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첫 언약 아래 있었던 사람들의 죄는 짐승이 속하고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의 죄는 예수님이 속하고 그런게 아니다라는 거예요. 모두가 다 예수님의 피로 속함을 받습니다. 어, 히브리서 10장 4절을 잠깐 건너가서 보시면 거기서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요.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어떻다고요? 능이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그렇죠?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니까이 짐승의 피가 예수님의 피만이이 죄를 없이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 전에 사람이든지 예수님 후의 사람이든지 다 똑같은 겁니다. 어 율법이 시대를

뛰어넘어서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이 시대를 뛰어넘어서 모든 사람을 정결하게 한다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제 어, 히브리서의 저자는요.이 이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라는이 원리가 그러면이 옛 언약의 어 안에서 그림자로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이제 설명을 할 겁니다. 어 뭐에 주목을 하냐면요. 언약의 시작에 그리고이 정결하게 하는 예식에서 다 피가 사용이 됐다라는

사실에 주목을 합니다. 먼저 16절 17절을 보세요. 유원은 유원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원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원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어이 말씀이요. 사실은 의미를 이해하는게 어렵지는 않은데 어 왜 그런 의미인지를 설명하기가 조금은 쉽지 않은 그러한 말씀입니다. 어 말씀의 의미는 이래요. 읽어 보시면 죽음이이 죽음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유효하게 만든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렇죠?이 이 죽음이 무언가를 발동하게 한다. 시작하게 한다. 이제 그러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 근데 뭐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냐? 여러분, 그 가지고 계신 성경을 보시면은 16절, 17절에 유원이라고 된 부분에 거의 다 각주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그

유원에다가 각주로 뭐라고 표 뭐라고 아래 각주가 돼 있어요? 헬라어로 언약이다라고 그렇게 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죠? 어,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게 사용된 헬라어 단어가요. 디에 디아데케라는 단어예요. 디아데라는 단어가 사용이 됐는데이 단어가 유원 혹은 언약을

의미를 합니다. 예. 유원도 의미할 수 있고요. 언약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16절, 17절에 유원이라고 나온 것하고 15절 그리고 20절에 나오는 언약하고 다 같은 단어가 사용이 됐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요 하나의 논리 안에서 똑같은 단어가네 번이 사용이 됐어요. 그리고 앞에 제일 앞에와 제일 끝에

의미가 명백하게 언약이에요. 그렇죠? 15절하고 20절은 보시면 여긴 유원이라고 우리가 전혀 생각을 할 수가 없는 단어예요. 여긴 무조건 언약이어야 돼요. 의미가. 그렇다면 중간에 있는 16, 17절도 뭐라고 보는게 자연스럽습니까? >> 언약이라고 보는게 자연스럽죠? 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네.요 요 하나의 논리 안에서 똑같은 단어가 사용이 됐는데 제일 앞고 제일 뒤가 언약이에요, 의미가. 근데 중간에 있는 거만 그럼 그 여기서 다른 의미가 사용됐을 거냐? 그렇게 보기가 쉽지가 않다라는 겁니다. 만약에 그러려면 뭔가 분명한 언지가 있어야겠죠. 그렇죠?요 요 단어가 똑같은 단어인데 다른 의미야라는 그런 언지가 있어야 되는데 이제 그러한 부분이 어 약합니다.

어 그래서 어 일반적으로는이 16절과 17절도 언약으로 번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근데 문제는 뭐냐하면은이 16절 17절을 그렇게 해 놓으면은 말씀 자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져요. 그렇죠? 언약으로 바꿔나 보세요. 언약은 언약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언약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언약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자, 언약은 언약한 자가 죽어야 유효하게 되나요? 아니죠. 오히려 반대잖아요. 언약은 언약은 언약한 자가 죽으면 사실은 끝나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전혀 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 우리 가지고 있는 개혁 계정도 그렇고 많은 성경들이요 단어를 어 일반적인 그러한 번역의 상식을

벗어나서 유원이라고 그렇게 어 번역을 한 겁니다. 어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요 부분도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유원이라고 보기보다는 언약이라고 보는 것이요 전체 맥락에서 더 맞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 뭐 사실은 설명을 길게 할 수 있는데 네. 너무 길어지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어, 결론만 말씀을 드리면 이것을 언약이라고 봤을 때 어려운 부분은 언약한 자가 죽는다라는 그

부분이에요. 그렇죠? 언약한 자가 죽는다라는 그 부분. 근데 그 부분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냐면은 언약한 자가 죽는게 아니라 그 언약의 재물이 죽는다라고 그렇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이제 사람이 죽는 것처럼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지만 원어상에 사람이 죽는다라고 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언약의 재물이 죽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은어요 말씀을 요렇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가 좀 풀어서 읽어 볼게요. 언약은 언약의

재물이 죽어야 되나니 언약은 죽음 위에서 유효한즉 언약의 재물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네. 요렇게 하면은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세요? 어떤 의미인지. 어, 아브라함의 언약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렇게 함께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장면을 생각해 보면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체결될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짐승을 가다 갖다 놓고 짐승을 잡아서 반을 쪼개서 양쪽에 놨죠. 그렇죠? 그러니까 언약이 체결될 때 짐승의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이 히브리서의 저자도 지금 하고 있는 얘기가 뭐냐면은 이것처럼이 언약의 시작에 죽음이 관여되어 있다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어 사실 유원이라고 봐도 이제 유원에 복잡한 그런 것들을 떠나서 그냥 아 죽음으로 효력이 나타난다. 이제 그것만 의도했다라고 보면은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의미가 됩니다. 어, 어느 쪽으로 보시든지 그렇게이 말씀을 보시면 돼요. 자, 이제 거기까지 얘기를 했고요. 자, 그러면 어 그렇게 일반적으로이 언약의 어, 시작이 죽음 피하고 관련 있다라는 것을 지금 이야기를 한 겁니다.

16절 17절에서 그리고 18절을 보시면은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그렇죠.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언약이라는 것이 시작될 때 거기에 피가 관여되어 있는 것처럼이 첫 언약이라는 것, 그러니까 옛 언약인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옛 언약도 피없이 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실제로 그 첫 언약이 체결됐었던 출애굽기 24장의

이야기를 이제 하고 있습니다. 19절하고 20절이 출애굽기 24장의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어,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아,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술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어, 여기 히브리서 저자의 말처럼요. 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의 말씀을 받았어요. 먼저 모세가 먼저 받았습니다. 어, 그리고 나서 그 내용들을 백성들에게 모두 다 들려 줍니다. 아, 긴 말씀이었겠죠. 그것을 다 이야기를 해요. 그러고 나니까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나서 뭐라 그랬냐면은 출애굽기 24장 3절을 보면은 그들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어 언약의 그런 뭐랄까요? 어 언약의 기초를 가지고 와서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한 거고 그리고이 백성들이 뭐를 한 거예요? 그것에 동의를 한 거예요. 그렇죠? 동의를 한 겁니다. 근데 말로만 하면 말로만 하면은 그게

효과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모세가 어떻게 하냐면요. 모세가 언약 서를 기록을 합니다. 그 모든 내용들을 기록을 해요. 그러니까 이것이 양측이 다 동의할 수 있는 그러한 어 뭐 서약서 혹은 계약서를 작성했다라고 우리가 쉽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이라는이 백성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에게 은혜 베푸실 것을 헤세들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을 하셨고요.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약속을 한 겁니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바꿔서 표현을 하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겠다라고 서약을 하신 거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서약을 한 겁니다. 어, 그리고 나서 이제 양쪽이 다 그게 합의가 됐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뭐를 해야 돼요? 네. >> 이행 >> 이행 아, 그러니까 이행하기 전에 우리가 다 합의를 했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야 되잖아요. 그거를 비준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비준한다. 비준한다라는 표현을 써요. 우리가 평소에 잘 안 쓰는 표현인데요 그러니까 국가 간의 어떤 조 조 조 조 조약 같은 거를 맺을 때 그렇게 하거든요. 실문자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막 이렇게 그것들을 다

만들어내요. 그러면 최종 서명을 누가 합니까? >> 대통령이 해요. 네. 대통령이와 그 나라의 그 대표장거죠. 대통령이 와서 합니다. 그것을 비준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게 언약의 비준식이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비준식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들어보세요.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게 언약서입니다.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밤새 썼겠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12 지파대로 12 기둥을 세우고 그다음에 이제 잘 들어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서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이는 여호와께서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네. 여기서이 피흘림이라는 것이 등장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피흘림이 등장을 해요.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 숫자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렇죠? 근데이 짐승들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뿌린 겁니다.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피를 가지고 와서 여러분들 이렇게 있는데 와 가지고 뿌린 거예요. 진짜로 실제로 그렇게 뿌린 겁니다. 어 그것을 통해서이

언약이라는 것이 맺어졌고요. 그리고 그 즉시 효력이 발행됐습니다. 16절 17절에서 얘기를 했었던 것처럼이 죽음을 통해서 언약이 유효해진 거죠. 예. 그래서 모세가 이것을 언약의 피다라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끝난게 아니고요. 히브리서 저자는요.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이 피가 뿌려졌다라는 사실에 주목을 해요.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단순히이 언약의 체결만 의도를 한 것이었으면은 굳이 그 피를 가지고 와서 지저분하게 사람들한테 막 뿌리고 막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거예요. 그냥 짐승이 죽었으면 그걸로 됐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던 아브라함 언약에서도 아 아브라함이 그 피를 갖고 와서 자기한테 뿌리고 뭐 그런 거는 없어요. 그러니까 죽음으로 그렇게 충분합니다. 근데 보면은 모세가 그 피를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근데 그리고 나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요. 무슨 말씀이 나오냐면은 그 모세를 비롯해서 70명의 장로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그들이 보았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그들이 거기서 먹고 마셨다라고 말을 합니다. 뭐를 말해 주는 거냐 하면요. 그들에게 뿌려진 그 피가 그 사람들을 정결하게 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러한 장면인 거예요. 다시 말하면이 피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 그 언약이 체결될 때 그 모습을 통해서 드러났다라는 겁니다. 피가 정결하게 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사람을. 그래서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이어서 말을 해요. 여기 21절 22절을 보시면 어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 아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어 실제로 성경에 이렇게 성막의 모든 그릇이나 기구에 피를 뿌렸다 이제 그런 말씀은 사실은 없어요. 그런데 보면은 재단에 그렇게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했고요. 대제사장의 옷에 뿌려서 정결하게 했고요. 회막 앞에다 뿌려서 정결하게 했고요. 속재소 위에다 뿌려서 정결하게 했고 성전의 문설주 위에다 뿌려서 정결하게 했고 재단 아래 내 모퉁이에다 피를 발라서 정결하게 했고 그런 말씀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어, 그러니까이 성막에서 사용되는 기구들도 그렇게 정결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충분 충분한 근거가 있고 여기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렇게 했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중요한 건 뭐냐면은 피가 정결하게 한다라는 겁니다. 피가 정결하게 한다. 어, 여기서 말하고 있는 피인가요, 가짜 피인가요? >> 진짜 피예요. 그렇죠? 그 진짜 피예요. 근데 그 피 자체에 어떤 마법 같은 능력이 있어 가지고 그 피에 닫기만 하면 그 사람이 정결해지거나 그런 의미로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건 예수님의 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보혈 어 뭐 그의 보혈 능력이 더다면 그런 말씀 그런 노래 찬양도 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는데 그 밑에 병사가 지나가고 있다가 피 한 방을 맞았어.

그럼 갑자기 여기가 정결해지고 깨끗해지고 막 그렇게 되는게 아니에요. 네. 그런 의미로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짜 피이지만 그런 어떤 그것의 마법 같은 효력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피가 의미하는 것은 생명이고요.

생명. 그리고 그것을 흘렸다라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죠. 그렇죠? 그래서 피가 정결하게 한다라는 그 말은 어떤 의미가 되냐면요.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사람이 가진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말이 됩니다. 피가 정결하게 한다라는 것은요.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의미예요. 레기 17장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해 있음이라. 내가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속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것이 대속의 원리입니다. 대속의 원리. 죽음으로 죽음을 대신해서 생명을 얻는 원리인 거예요. 내가 흘려야 할 그 피를 내가 죽어야 할 그 죽음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생명을 얻는 거예요. 어, 이것이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라는이 원리의 최종 독도착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은 내가 살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내가 살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 한다라고 해도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피흘리지 않으면 사함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됩니다. 그것이 지금 옛 언약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원리입니다. 그러면 이제 실체를 볼게요. 23절부터 28절입니다. 어 지금 방금 제가 말했던이 말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들었으면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겁니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네. 어 그지? 피를 흘려야 피를 흘려야 죄사함이 있는 거고 그래야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지.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그렇게 제사를 드린 거잖아라고 유대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그러면 그런데 그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바로 그 대답에 이제 찬물을 끼었는 거예요. 어 앞서서 옛 언약의 대제사장 한

개가 있다 그랬죠. 그리고 옛 언약의 성소도 한 개가 있다 그랬습니다. 그렇죠? 그리고이 옛 언약의 재물도 어떨까요? 한 개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 재물로는 안 되고 더 좋은 재물이 필요하다라고 말을 합니다. 23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 뭘까요?이 이 땅에 있는 그 성막에 속한 것들 그거입니다. 그것들은 그런 것들은 이런 것들로서이 짐승의 피로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은 하늘에 있는 그것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재물로 할지니라라고 말합니다.이 땅에 성소에 내가 들어가는 거면은 그럼 짐승의 재물로도 괜찮다라는 거예요.

근데 하늘의 성소 정말로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 가려면은 그것으로 할 수 없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정결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정결하게 돼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하십니다. 자, 24절부터 2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의 재물로 들여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은이 땅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계신 바로 그곳으로 여기 어 24절 말씀에 보면요. 우리를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가지 않으셨어요. 단번에 들여진 자기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희생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의 제사는 언제 끝났습니까? 2,년 전에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우리가 매주 주의 만찬을 나눠요. 그렇죠? 그것은 우리가 뭐를 하는 겁니까? 이미 지나간 그 일, 이미 끝난 일, 이미 완성된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거죠. 그렇죠? 그것을 하는 것이 이제 그 시간에 다시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우리가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표현이 여기 나옵니다. 26절에 보시면 그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예수님께서 뭐를 하셨습니까?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여기서 끝내셨다라는 겁니다. 죄와 우리들을 더 이상 상관없는 것으로 그렇게 만드셨다라는 거예요.

어, 이것이 14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에요. 14절에서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하게

합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짐승의 피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를 드리셨기 때문에 더 좋은 재물을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어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라는이 원리에 의해서요. 옛 언약 아래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을지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이이

언약 아래 사람들은 자기 집에 있는 짐승을 가지고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어, 우리가 성막이나 성전 같은 거 생각해 보면요. 우리 머릿속에 이렇게 그려지는 그림은 이제 하나님을 향한 그런 제사가 드려지고 제사장들이이 깨끗한 옷 있고 엄숙하고 조용한 그런

곳에서 이렇게 어, 제사 드리고 이제 그런 모습을 생각할 텐데 한번 성경에서 그리고 있는 그런 제사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도살장이잖아요. 그렇죠? 네. 짐승들을 가지고 와서 거기서 잡았어요. 그렇죠? 그러면은 그 짐승들이 죽기 죽기를 두려해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그들이 피를 흘린 그 피가 그곳에 가득했을 거예요. 그들을 태워서 드리는 그 번제 그 고기 냄새가 그곳에서 얼마나 그렇게 역하게 낫겠습니까? 간단히 말하면요. 성막에 들어가면 그 성막에

들어간 사람들이 보는 건 뭐냐면은 죽음이었어요. 죽음. 그곳에는 죽음이 가득한 곳이었다라는 겁니다. 어, 고대 랍비들의 문헌이 있는데요. 그 랍비들의 문헌에 따르면요.이 대속재일에 어, 대속재일 어쨌든이 전 국가적인 행사잖아요. 그렇죠? 너무 많은 피가 흘려져 가지고 그 성막에 성전에서 혹은 성막에서 너무 많은 피가 흘려져 가지고 그 피를 처리하기 위해서 도랑을 파서 이제 배수 시스템을 만들어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해요. 어 그렇게 흘러간 피가 기드론 골짜기에 몰려듭니다. 그래서 대속재일에 그 기드론 시내가를 가면요

붉은 물이 흘러 내려왔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3월에 불렀던 찬양 기억나세요? 거기서 보면 기드론 시내가가 나오죠. 그 작사가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기드론 시내는 사실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 붉은 피의 시내가 의미하는게 뭐예요?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매년 그렇게 반복된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전히 피가 계속해서 흘려지고 있다라는 것은이 온전한 죄사함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줬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그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셨죠. 그렇죠? 건너가셔서 마지막 피를 흘리셔서 온전한 죄사함을 이루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죄를 없이 하신 겁니다.

아담 이후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애물이 됐었던 그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인 심판까지도 제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이 땅의 성막은 죽음으로 가득했다면 하늘의 성막은 생명으로 가득하게 만드신 겁니다. 어 예수님께서 더 좋은 재물로 자신을

드리셔서 이루신이 놀라운 일에 대해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한 번 더 강조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27절 28절을 보세요. 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들이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어, 27절 말씀 잘 아시는 말씀이죠. 그렇죠? 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외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모든 사람한테 다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운명을 가지고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요. 그리고 그 누구도 이런 운명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뭐냐면요. 예수님도 사람으로 나셔서

사람에게 정해진이 운명을 똑같이 따르셨다라는 거예요. 28절 보세요. 처음에 뭐라고 시작합니까? >> 이와 같이잖아요. 이와 같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죽으신 겁니다. 그렇죠? 예수님도 죽으셨고요. 그리고 놀랍게도 심판도 받으셨습니다. 그렇죠? 근데 자기 죄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요. 28절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이사야 53장 4절 5절이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을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어,이 고난은 단 한 번이었습니다. 그리고이 죽음도 단 한 번이었습니다.이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기 때문에 내가 살려면 누군가 죽어야 된다라고 말씀드렸죠. 누가 죽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셔서 내가 살게 된 겁니다. 어, 그리고 어,이 28절 끝부분에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어, 예수님께서 다시이 땅에 오실 거예요. 그렇죠? 예수님께서 다시이 땅에 오실 건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어서 다시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죠?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 그 예수님께서 그 죄를 없이 하셔서 이제는 죄하고 상관이 없는 그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부르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진정한 그 하나님의 처소로 데려가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 가지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어,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요. 오늘날에 많은 교회들이 그리고 사실은 많은 성도들이 이런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예수님을 전하기는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말은 하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혹은요.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하기도 해요. 이 피흘리심의 진정한 의미 성경이 말하고 있는이 대속의 의미를 전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듣다 보면요.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 같고 십자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결국은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신 일이 그냥 우리가이 땅에서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드릴 때가 있습니다. 어 나쁘게 말하면 이렇게 들립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치어 리더가 되는 겁니다. 네. 우리가 학교 가기 힘들 때 예수님 생각하면 학교 갈 수 있고 우리가 직장 가기 싫을 때 예수님 생각하면 할 수 있고 우리가 힘들 때 예수님 생각하면 할 수 있고 그런 이야기들만 계속해서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피흘리심 때문에 우리가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예수님의 피흘리심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이 소망을 가지고 계시다면요. 여러분 예수님의 피흘리심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삶의 치열리도로 만들지 마시고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이

소망 가운데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 기도하고 말씀 마칠게요. 어 하나님도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음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어 되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음 음. 하나님, 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또 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어, 우리의 삶이 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더 나타내는 순종의 삶이 되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구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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