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우릴 위한 대제사장의 온전한 제사(2) (히 9:1-14)

최종혁 · 2026.03.28 · 히브리서 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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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장 1절부터 14절이고요. 어,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의 온전한 제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어, 히브리서 말씀을 제가요 청년부에서 계속 나누고 있는데요. 누가 와서 여러분들한테 아, 청년부에서 히브리서 배운다면 뭐 배워라고 물어보면요. 요렇게 얘기를 하시면 됩니다. 어, 예수님이 모든 것보다 더 낫대요. 네, 그냥 그렇게 얘기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보다 더 낫다라고

히브리서가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면 사실은 히브리서를 어 잘 알고 계신 겁니다. 어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실 그 얘기를 계속해서 하기 때문에 그래요. 다양한 방 어 방향에서 그렇게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핍박 가운데 있었고요. 주로 유대인들이었는데 핍박 가운데 있었고 그 핍박의 원인의 중심에 있는 것이 결국은 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버리면은 그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단순히 핍박 때문에 힘든 것도 힘든 건데 내가 이걸 버리면은 그리고 버리고 예전으로 돌아가면은 그럼 이런 핍박들이 사라지게 되니까 이제 거기서 느끼는 유혹 같은 것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어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특별히 대상이 유대인들이고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이 다시 구약이잖아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그들이 위대하다라고 가치를 두고 있는 것들보다 예수님이 얼마나 더 가치가 있으신지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천사보다 더 낮고 모세보다 더 낮고 모든 구약의 제사제사장 직분보다 낮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러한 것들 구약에 속한 것들이 사실은 나쁘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들이 뭔가 잘못됐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거는 아닙니다. 어 사실은요. 생각해 보면은 어 모두들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요. 좀 넓게 보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냐면은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사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고요. 그리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역할을 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뭐냐면은 그러한 역할에 그러한 기능에 제한이 있었다라는 거죠. 거기에 한계가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게 어쩌다 보니까 그런 한계가 생긴게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하셨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인 궁극적인 실체인 예수님을 가리켰습니다. 어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이루실 것이었어요. 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이

되셨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이 하나님의 집에서 신실하셨다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예수님이이 구약의 모든 제사장하고는 다른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그러한 다른 제사장이 되셨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뭐를 한 거냐 하면은 그 모든 것들이 하지 못했었던 궁극적으로 이루지 못했었던 그 목적을 이루어요. 뭐냐면은 하나님께로 온전히 나아가는 것. 그래서 7장 25절에 보시면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7장까지의 내용이에요. 그것을 지금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씀을 드린 거고요. 어 그리고 어 이제 8장부터

10장까지가 그런 대제사장이신 그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 희생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을 제가 요런 제목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의 온전한 제사. 어,요

부분이 히브리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분 말씀을 정말로 잘 들으셨으면은 좋겠어요. 어, 여기서 세 개의 주제가 좀 반복돼서 나타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희생이고요. 그다음에 성소, 그리고

또 하나는 언약입니다.이 세 개의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요. 근데 어,이 부분 부분을 좀 나눠서 보면은 그중에서 하나의 주제가 어, 강조되는 걸 볼 수 있어요. 8장. 지난번에 살펴봤었던 8장에서는 언약이라는 것이 강조가 됐었고요. 그리고 오늘 살펴볼 9장의 초반부 1절부터 14절이죠.

여기까지에서는 성소가 강조가 되고요. 그리고 그 나머지 9장 후반부부터 10장 초반부까지는 희생이 강조가 됩니다. 어,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반복해서 드러나면서 서로의 주제를 더 드러낸다라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오늘은이 성소에 대한 부분 9장 1절부터 14절을 살펴볼 겁니다.

어, 언약에 있어서는 우리가 살펴봤던 8장에서는 언약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다 그랬잖아요. 언약에 있어서는 8장 6절에 보시면 어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이 더 좋은 언약이라는 것은 새 언약이고요. 그리고 옛 언약과는

다른 중요한 특징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그 특징이 뭐냐면요. 내적인 변화에 대한 약속입니다. 내적인 변화에 대한 약속이이 새 언약 안에는 있었고요.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주실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이 새 언약

안에는요. 완전한 죄사함에 대한 약속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누리려면 바로 그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에 대해서 8장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자, 이제 9장으로 왔어요. 어, 9장에서 와서 보면요.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언약에서 성소로 이제 주제를 살짝 바꿉니다. 어, 언약에 대해서 말하면서 방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더 좋은 언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이 옛 언약에 비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이 새 언약이 얼마나 더 우월한지를 강조를 했었어요. 그리고 여기 성소도 마찬가지예요. 옛 성소에 비해서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성소를 어떻게 표현을 하고 있냐면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다라고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1절 뒷부분에 보면 나오죠.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죠. 그래서이 예수님이 얼마나 우월하신지를 위대하신지를 그렇게 강조를 합니다. 어, 전체 9장 1절부터 14절 말씀을 크게 두 개로 나눠 보면요. 1절부터 10절에서는 옛 성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11절부터 14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러한 새 성소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요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이 말씀을 살펴볼 건데요. 어, 옛 성소에 대한 말씀을 제가 조금 더 많이 할 거예요.이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하시면 뒤에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정말로 명확하게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1절부터 10절 말씀을 먼저 좀 살펴보겠습니다. 옛 성소에 대한 말씀이에요. 1절을 먼저 보시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어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라고 이야기를 해요. 바로 위에 13절 8장 13절을 보시면 어떻게 말했냐면은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라 그러면서 첫 언약에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렇죠? 그러니까 어 지금이 말씀을 받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성소 예법과 성소라는 것은 어디에 속해

있는 거예요? 옛 언약이에요? 새 언약이에요? >> 옛 언약에 속해 있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옛 언약에 대해서는 이미 13절에서 뭐라고 얘기했냐면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고 쇠하여 가는 거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제 지금부터 할 얘기는 뭐냐면은 그 첫 언약에 속해 있는이 성소라는 것도 옛 성소라는 것도 결국은 그 언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이제부터 이야기를 하게 될 거예요.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게 될 겁니다. 자, 어, 성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소. 그러니까 성소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요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성소입니다.

어 7장에서 우리가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살펴봤었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소인 거고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어 그래서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이 구약의 제사라는 것 그리고 제사장 제제도라는 것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이 구약의 제사제도, 제사장제도

이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그들이 알고 있었던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그게 자기들이 만들어 낸게 아니고요. 만들어 낸게 아니고 어떻게 그들에게 주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심으로 주어졌던 거잖아요. 그래서 여기 어 1절에도 보면은 표현이 그렇게 돼 있어요. 섬기는 예법 법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졌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이 제 구약의 제사와

제사장 제도라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이 드는 거냐면은 이거는 어떻게든 내가 지켜내야 되는 거예요. 이건 내가 지켜내야 되는 거지. 이거를 버린다라는 것은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일이었던 겁니다. 어,

특별히이 눈에 보이는 성막 혹은 성전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성막이나 성전은요. 그런 의미에서이 모든 것들이 제사제도, 제사장 제도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아주 상징적인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어,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죠. 그렇죠? 돌아와서 뭐를 제일 먼저 했어요,이 사람들이. >>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렇죠? 왔으면 일단 성 벽부터 세우고 그 안에 뭐를 만들고 그래야 될 거 같은데 그런 거 하나 없이 뭐부터 했냐면은 성전을 세우는 일부터 했어요. 심지어 그거를 다 지어 놓고서 젊은 사람들은 와 우리 성전 지었다면서 좋아했는데 노인들은 어땠습니까? 울었어요. 예. 왜냐하면은 예전의 성전만큼이 성전이 그렇게 웅장하거나 하게 하지 않았거든요. 그들이 보기에 부족해 보였었던 거죠. 그만큼 그만큼이

성전이라는 것이 혹은 성막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했었던 거고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중요했습니다. 근데 그들이 알지 못했었던 것은 뭐냐면은 그들 눈에 보였었던 그 성막 혹은 성전은 여기 표현에 따르면 무슨 성소라 그래요? 1절에서 세상에 속한

성소라고 이야기를 하죠. 세상에 속한 성소였을 뿐이고 그 이후에 더 크고 온전한 성소 하늘에 있는 것 참 장막이 있다라는 그 사실을 이들이 모르고 있었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 지금부터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 2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요.요 1절 말씀에 따라서 구분을 해 보면 요렇게 구분을 할 수 있어요. 2절부터 5절이이 성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요. 세상에 속한 성소라 그랬잖아요. 그 성소에 대해서 2절부터 5절이 이야기를 하고요. 그리고 6절과 7절이 섬기는 예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8절부터 10절에서 그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합니다. 그 의미하는 것을 두 글자로 이야기하면은 한계라고 했어요. 한계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자 따라하고 계시죠? 네. 늦게 끝날까봐 빨리 하고 있습니다. 자, 어, 성소 2절부터 5절이에요. 어, 먼저 여기 5절 말씀을 보시면 제일 끝에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요.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죠? 어 뭐냐면은 어이 저자가

지금이 성소에 대해서 혹은 성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이것에 대해서 낱낱이 자세하게 모두 말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또 그럴 필요도 없다라는 것을 지금 알고 있는 거예요. 어 왜 그러냐 하면은 첫째로는 뭐 왜 그럴까요? 첫째로는이 듣는 사람들이이 성소에 대해서 잘 알까요? 모를까요? 잘 알아요. 유대인들이잖아요. 그렇죠? 유대인들이니까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성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세하게 그렇게 할 이유가 얘기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은 애초에이 성막의 모든 의미 그 안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 목적이 아니에요. 네. 어 그게 좀 전 아쉽기는 해요. 그러니까이 구약의 성막에 대한 말씀이 사실 길게 있고

우리가 그 말씀에 대해서도 좀 궁금한 부분들 많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부분에 대해서 한번 좀 쫙 풀어 줬으면은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어네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그렇게 하지 않았고요. 저도 그래서 여기서이이 성막의 뭐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해서 다 말씀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여기서 뭐를 지금 핵심으로 잡고 있는지를 말씀을 드릴 겁니다. 뭐를 핵심으로 잡고서 지금 강조를 하냐면요. 성막이 분리되어 있다라는

걸 강조를 합니다. 성막이 분리되어 있다. 여러분 거기다 써 놓을 수 있으면 그렇게 써 놓으세요. 분리라고 성막이 분리되어 있다라는 것을 강조를 합니다. 어 세상에 속한 성소인이 성막 안에는요.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라는 것을 중요하게 지금 다뤄요. 자 2절 말씀을 보세요. 어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이는 성소라 일컫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뭐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는이라고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조금 더 정확하게 하면 요렇게 하는게 맞아요. 예비된 장막이 있고 그 첫째 칸에는 혹은 첫 번째

공간에는 이제 그렇게 이야기를 한게 맞습니다. 그러니까 첫 장막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은 첫 번째 공간이 나온다라는 거죠. 첫 번째 공간이 있다는 얘기는 무슨 의미에요? >> 두 번째 공간도 있다는 얘긴 거죠. 그렇죠? 첫 번째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뭐 새번역 성경이나 현대 성경이나 새한글 성경 보면은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더 정확합니다. 어, 무슨 말이냐면요. 밖에서 보면 하나의 큰 장막이에요. 그렇죠? 하나의 큰 장막으로서이 성막이 보이는데 그 장막

안에 들어가면은 그 장막 전체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첫 번째 공간에 지금 진입을 하게 된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간이 일반적으로 여기 보면은 성소라고 불린다고 이야기를 해요. 성소. 어, 주로 성소라고 불리고요. 근데 이제 성소라는 표현이 사실 그 부분뿐만 아니라요 전체 성막을 그렇게

지칭할 때도 있어서 그래서 이제 좀 그걸 구분해서 이야기할 때는 외소라는 표현도 사용을 해요. 외소. 바깥쪽에 있는 소 바깥쪽에 있는 공간. 외실이라는 표현도 사용을 합니다. 어, 어쨌든 그렇게 해서 성막 안에 들어가면요. 처음으로 보게 되는게 뭐냐면은 여기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등잔대 그리고 진설 병상 그리고

여기서 언급되지 않았는데 분양단이에요. 딱 들어가면은 왼쪽에 성막의 문을 문이 아니죠. 그죠? 피장을 열고서 들어가면은 왼쪽에 등잔대, 금등대가 있고요. 그리고 오른쪽에는 진설병 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분양단이에요. 어, 그렇게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근데 2절에는 이제 그 분양단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이 성막의

구조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지금 설명하려는 목적이 아니니까 다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어, 자, 지금 그렇게 해서 성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요. 다음에 3절을 보시면요. 어,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읽컫나니

그 성소 안에 있는 또 다른 휘장을 지나가면 다른 공간이 나옵니다. 두 번째 공간이 나오고요. 그것을 지성소, 지극히 거룩한 공간이라는 의미로 지성소라고 불러요. 지성소라고 읽컫습니다. 어,이 휘장이 휘장 휘장이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자는요. 그 지성소 안에 대해서는 요렇게 묘사를 해요. 4절, 5절 보시면 어,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아리와 아론의 쌍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재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어,이 지성소가 지성소가 하나님께서 임재를 주신 곳이고요. 그리고 특별히 언약계가 그랬습니다. 여기 속죄소라는게 나오죠. 속죄소는이 언약계 뚜껑이에요. 뚜껑인데 특별하게

뚜껑이라고 안 부르고 속재소라는 표현을 사용을 합니다. 그린 그런데 그 속재소 뚜껑에 보면은 그 위에 뭐가 있어요? 5절에 보면은 그룹들이 있죠. 그룹들.이 그룹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뭐냐면요. 이들은 천사들이에요. 그렇죠? 근데 요건 이제 그 형상인데 어 천사들인데

그룹은 천사인데 어떤 천사냐면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천사들이에요.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천사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해요? 그러면은 바로 그 언약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그러한 물건이었던 겁니다. 어, 출애굽기 25장 22절에 보시면 이렇게 얘기를 해요. 거기서요 언약계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너에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너에게 이르리라. 어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이제 이야기했던 것들 한번 머릿속에 그려 보세요. 하나님의 임재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성소 안에. 그렇죠? 언약계 위에 그 속죄소 위에 그룹들 사이에 거기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요. 거기까지 나아가려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처음에는이 성막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가 있죠. 그렇죠? 그 울타리에 있는 문을 통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되고요. 들어가면 거기 안쪽에 뜰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 뜰을 통과해서 성소로 들어가는 그 휘장을 지나서 들어가야 되고요. 그럼 들어가면 거기에 있습니까? 아니죠.

그렇죠? 그 성소 안에 들어가서 또 한 번의 휘장을 열고 들어가야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 성막의 구조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그 부분이에요. 자, 어, 다음으로 이제 넘어가기 전에 여기서 좀 우리가 한 가지만 좀 생각해 볼게 있는데 뭐냐하면은 4절에 보시면 어떻게 돼 있냐면은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계가 지성소에 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근데 여러분들이이 구약의 레이기 말씀을 졸면서 읽지 않고 자세하게 어 아 출애굽기죠. 출애굽기나 뭐 레이기나 하여튼 말씀을 자세하게 읽었으면 여기서 이상하다라고 느끼셔야 돼요. 뭐냐면은 어 지성소 안에는 뭐밖에

없습니까? 언약계밖에 없습니다. 네. 지성소 안에는 있는 물건은 언약계밖에 없어요. 근데 여기서 뭐라 그러고 있어요? 금이 향로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어 그럼 도대체 이게 뭐냐 우리가 좀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어 일단은요.이 표현만 놓고 보면은 어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금향론은 어 앞에서 제가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었던 그 분양 단닐 확률이 어 아주 높아요. 어

사실은요. 그 단어 자체가 향로로 번역이 될 수 있어서 여기 개정 개혁 번역에서는 향로로 그렇게 번역을 한 건데 어 일반적으로는 그 재단 분양 단을 의미를 합니다. 그래서 다른 한글 번역분들을 보면은 분양 재단으로 그렇게 많이 번역을 했습니다. 근데 이게 분양 재단이면 위치가 맞지 않는 거죠. 그렇죠?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게 지금 있는 거예요. 분양단은 지성소 안에 있는게 아니라 바로 그 바깥에요 휘장이 있는 바로 그 바깥쪽에 요것이 있어야 됩니다. 어

뭐가 잘못됐을까요? 히브리서의 저자가 착각. 그래서 그랬을까요? 어, 그럴 확률은 정말로 없다라고 생각을 해야 돼요. 왜 그러냐면은 지금 여기서 성소의 구조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실수를 했다라고 우리가 보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어, 분명한 의도가 있다라고 우리가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어, 사실은이 부분에 대한 이제 설명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이제 제가 가장 어, 좀 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뭐냐면은 뭐냐 하면요. 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기이 개혁 개정 성경에 번역을 한 것처럼이 해당 단어를 어, 향로로 보는 겁니다. 향로. 분양 재단으로 보는게 아니라 정말로 금향로 보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을 해요. 어, 왜 그러냐면은 바로이 뒤에서 보게 될 텐데 지금이 히브리서의 저자 저자는요. 그냥 성막을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보다는 대속죄일에

대속죄일에 그날의 속죄가 이루어지는 그날의 성막을 지금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그날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은 레이기 말씀을 한번 보세요. 레기 16장을 펴서 보시면 레이기 16장이 이제 대속죄일에 대한 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레이기 16장음 12절과 13절을 보세요. 거기서 뭐라고 말을 하고 있냐 하면요. 어,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단 위에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양하여 향연으로 증거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그니까 이것이 대제사대제사장이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갈 때 해야 될 일이었던 거예요. 향로를 가져와서요. 거기에다가 그 재단에 있는 그 불을 피우고 그리고 그 분양돼 있는 향을 거기다 채워 가지고이 향로를 가지고서

휘장 안으로 그러니까 지성소로 그렇게 들어가게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이 향로라는 것이 원래부터 지성소 안에 빛이 되어 있는 물건은 아닌 거예요. 그렇죠? 그건 아닌데 대속죄일에는이 대제사장이 그것 그 향로 안에다가

숯불과이 향을 채워 가지고 지송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게 그렇게 되어 있었다라는 겁니다. 어 그래서이 저자가 히브리서의 저자가이 금향로와 언약계가 그 지성소 안에 있다라고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어요. 어 저는이 묘사가 이제 굉장히 적합하다라고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 뭐냐하면은이 향로에 보면요. 그 향로를 가져다가 13절에 보시면 뭐를 하라고 하냐면은 여호와 앞에서 분양하라라고 얘기를 하죠. 그래서 그 향연이 증거개의 속죄소를 가리게 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을 해요. 그러니까 앞에서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그 속죄소 위에서 그 언약에서 하나님께서이 백성들을 만나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 지성소가 어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 곳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이

언약계가 있었다면은이 향로의 향연도 마찬가지예요. 그 16장 2절을 보세요. 2절에 보시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형 아론에게 이르라. 대제사장인 거죠. 그 당시에 성소의 휘장 안 법계 위제수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이는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 13절에서 그 향에서 피어오른 어 우리로 치면 이제 연기인 거죠. 그죠? 향연이라고 번역된 그 단어가요. 사실은 정확하게 풀면은 무슨 의미냐면은 향의 구름이에요. 구름. 예. 구름이고 2절에 구름하고 사실은 똑같은 단어가 사용이 됐습니다. 그래서이 대제사장이

가지고 들어가서이 속재소를 가리게 한 그 구름 혹은 그 연기가 상징하는 것이 뭐냐면은 하나님의 임재인 거예요. 네.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다라는 것을 그것이 보여 주었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성소 안에 지성소 안에 언약계가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라는 것을 보여 보여 주고요. 그리고이 대제사장이 가지고 들어간 그 향연이 그 구름이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라는 것을 보여줬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지금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면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지성소

안에 계시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려면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서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어 여기까지가 지금 성소에 옛 성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6절 7절을 보시면요. 그 성소에서 드려진 예배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를 해요. 어 히브리서입니다. 9장 6절 7절.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배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여기도이 구별되는게 보이시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1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준비된이 성소에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서 섬기는 예식을 했습니다. 어 성소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어쩔 수 없이 뭐 그렇게 된 거라던가 혹은 어떤 편의성 때문에 그렇게 된게 아니고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한 거예요.이 이 첫 번째 장막이 했던 일은요. 일반 백성과 제사장을 분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갔죠. 제사장들만 그곳에 들어간

겁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성막 뜰까진 들어올 수 있어요. 거기까지 자기 짐승을 가지고 들어올 순 있는데 첫 장막으로는 그러니까 성소 외소라고 말했던 그 첫 장막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제사장만 백성을 대표해서 들어갈 수 있었고요. 그 안에서 제사장들은 어떤 일을 했냐면요. 아까 있었던 그 세 개의 물건 있죠? 기구들. 그것을 돌보는 일을 한 겁니다. 등잔대에 등불을 들 돌보고요. 여기 진설병 상에 있는 떡을 돌보고요. 앞에 분양단에 있는 그 향을 돌보는 일들을 했었던 겁니다. 제사장들은 그런 일들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7절에는요.

둘째 장막이 나오죠.이 이 둘째 장막은 또 무슨 일을 했했었던 거냐 하면요. 일반 제사장과 대제사장을 분리하는 일을 한 겁니다. 오직 대제사장만 그곳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어

레이기 16장 아까 찾아봤었던 그 말씀에 보면요. 어 그 14절 15절에 보면은이 그것하고 관련된 규례가 요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재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재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이것이 자기를 위해서 피를 뿌리는 것에 대한 말씀이고요. 그리고 15절에 보면은 또 백성을 위한 속재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희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재소 앞에

뿌릴지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니까 요것이 이제 7절에서 말하고 있는 제일 뒤에 나오는 그 부분인 거죠. 자기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에 대한 부분이 방금 읽어 드렸던 그 부분이에요. 그리고요. 이것이 구약의 백성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간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가장 가까이 나간 모습이이 모습이에요. 일반 백성 같은 경우는요. 직접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요. 오직 대제사장이 그들을 대신해서 혹은 그들을 대표해서

1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인 거죠.이 이 제사장들은 백성들보다는 조금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는 있었는데 그들조차도 하나님께서 그 임재를 두신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만 그런 특권을

누렸어요. 근데 그것도 1년에 한 번 1년에 한 번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고요. 그리고 여러분이 대제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대속재일이 돼서 오늘 내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야. 기쁠 거 같아요. 무서울 거 같아요? >> 무섭죠. 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 나만 들어가야 되는 거죠. 네. 정말로 두려움 가운데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이었던 거예요. 이게 아, 내가 정말로 대제사에서 이런 특권을 누리다니. 물론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근데 그거보다 사실은 내가 오늘 살아서 저곳에서 나올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그들에게 더 있었을 거예요. 어,

무슨 말이냐면요.이 성막이라는 것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었던 이유가 사실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람들이 그렇게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여 주려고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라는 겁니다. 이게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뭐냐면은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었던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뭐예요? 그 성소, 그 성막을 통해선 거죠. 그렇죠? 그곳에 있는 제사장을 통해서 그 예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한편으로는 뭐냐면은이 성막이 보여주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는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라는 겁니다. 한계가 있었다라는 거죠.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8절부터 10절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말합니다. 먼저 8절을 보세요. 성령이 이로서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서 있을 동안에는 이것이 첫 장막 옛 장막인 거죠.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뭐라고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지금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소예요. 그죠? 하나님이 계신 그곳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첫 장막,이 첫 언약의 성막을 통해서는 실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라는 것을 성령님께서 보여 주신다라는 거예요.이 성막의 구조가 그렇고요. 제사장의 역할이 분명히 그렇다라는 겁니다. 첫 장막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온전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라는 것을 보여줬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라는 것을 첫 장막이 보여줬습니다. 근데요 9장 8절 말씀에서 굉장히 감사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부사예요. 뭔 거 같으세요? >> 아직. 네. 와, 아직이에요. 아직. 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거예요. 첫 장막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없었는데 그 장막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그 원리는 보여줬고요. 그렇죠?이 이 피를 통해서 죄씻음을 얻으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라는 그러한 원리를 보여줬고요. 그리고 더 큰 실체, 궁극적인 실체를 기대할 수

있게는 했습니다. 단지 외적으로가 아니라 정말로 온전하게 하나님께서 계신 그 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저자가요.이 9절에 보시면요.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말을 합니다.이 장막이 실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있게 눈에 보이게 주어진 비유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어,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이것이 비유니까 그 효과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게 맞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9절 10절 보세요.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린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라. 분명한 한계가 뭐라고 말을 하고 있냐면요.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 지금까지 얘기했었던 거죠. 그렇죠? 그 예법과 그 성소를 말합니다.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뭐하고 관련돼 있냐면요. 먹고 마시는 것하고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음식에 관한 규례고요. 여기 씻는 것, 정결 규례하고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육체의 예법이에요.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 외적인 것하고 관련된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이런 외적인 것을 다루는 이런 행위가

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여기 지금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 말이에요. 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이 내적인 변화가 사실은 실제적인 변화, 진짜 변화이고요.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실제로 구약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었던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어요. 제사는 드렸는데 제사는 드렸는데 그 마음에 내적인 변화는 없는 거죠. 그래서 양심의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제사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인이다라고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마치 뭐하고 비슷하냐면요. 비누하고 정말로 똑같이 생긴 모형이 하나 있는 거죠. 그걸 가지고 와서 계속해서 몸을 씻었던 겁니다. 그렇게 몸을 씻으면 몸이 깨끗해지지 않죠.

그렇죠? 아무리 그것이 비누하고 똑같이 생겼어도 몸을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은 그것은 모형이지 실체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여기 10절 끝에 말씀에 보시면 그 모든 것들이 개혁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바로 잡혀야 할 그런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나름의 역할을 했는데 근데 그것을 온전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을 실체로서 받아들이면은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은 비유이고 그림자입니다.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14절 11절에서 14절이 하는 얘기입니다. 어 지금까지의 말씀을 여러분들 잘 이해를 하셨으면은 여기 11절부터 14절 말씀은 사실은 제가 더 설명드릴게 없을 정도로 굉장히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그 성소로 들어가는 그 길을 여셨고요. 예수님이 겉이 아니라 양심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어 11절부터 14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번 분 말씀 시작. 그리스도께서는 장례 좋은 일에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의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죄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어, 앞서 말했었던 그 옛 성소와이 예수님의 새 성소를요.이 저자는 모든

면에서 대조하면서 말을 합니다. 먼저 성소를 보세요. 11절 다시 보시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례 좋은 일에 대해 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어 앞부분 그리스도께서 장례 좋은 일에 대해 제제사장으로 오신 것 우리가 앞선 말씀에서 다 살펴봤었습니다. 어, 그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그러한 장막을

만드셨다라는 거예요. 세우셨다라는 겁니다. 어, 옛 성소는 사람이 만든 거였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그러한 어, 설계 도면을 주셨지만 근데 결국 지은 것은 사람이 지은 것이었습니다. 근데이 좋은 일에 대해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소는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 앞에 8장 2절에서 요렇게 말했습니다.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이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 네. 온전한 장막을 세우셨습니다. 어, 이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장막은 아니에요. 그렇죠? 우리 눈에 보이는 장막을 말하고 있지 않고요. 뭐를 의미하냐면요. 하늘에 하나님께서 계신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요. 옛 성소하고는 다르게 옛 성소에서는 제가 뭐를 강조했습니까? 분리되어 있다 그랬죠. 공간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근데 여기는 분리된 공간이 없습니다. 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를 대표해서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그곳에 예수님께서 먼저 가셨고요. 그리고 우리를 그곳으로 들어가게 하세요. 어 히브리서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그러한 말씀들을 이미 많이 살펴봤었는데 제가 몇 개만 좀 읽어 드릴게요. 2장 10절에 보시면 뭐라고 말했냐면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만 영광에 들어가시는 거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 들어가시는게 아니고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서 그곳에 들어가게 하신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3장 14절에 보시면요.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경고에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만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요.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 우리도 있게 될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히브리서 4장 15절 16절에서는요. 이렇게 말합니다. 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 은혜의 보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에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 6장 19절 20절은요. 더 분명하게 말하는데요. 우리가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에 답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네. 우리가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서 20절 보시면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가셨느니라. 네. 그리로 앞서 가셨습니다. 혼자 가신게 아니고요. 앞서 가셔서 우리도 그 예수님을 따라서 들어가는 겁니다. 어, 히브리서 7장 24절 25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이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어 옛 성소와는 다입니다. 옛 성소에서는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 똑같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께서 세우신이 새로운 성소에는요.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다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그 임재 안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법에 대해선 뭐라고 얘기하냐면요. 12절을 보세요. 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의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의 대제사장 어떻게 했습니까? 염소와 송아지와 같은 그 짐승의 피를 가지고 1년에 한 번씩 한 번씩

성소에 들어갔죠. 그렇죠? 그리고 그것이 매년 그렇게 반복이 됐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뭐냐면요. 아무리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드리고 아무리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대단한 대제사장이 제사를 속죄를 한다라고 해도 그것이 온전하지 않다라는 거예요. 온전하지 않으니까 매년 그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의 속죄는 그렇지 않죠. 반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딱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더 이상 성소에 들어가실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짐승의 피가 아니라 흠없는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어 구약의 대제사장의 제사는 반복됐어야 됐는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제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어 한계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 13절과 14절인데요. 어, 결국은이 구약의

성소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이루신 거예요.이 한계를 지우신 겁니다. 한계를 지우신 겁니다.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 아직 나타나지 않았었던 그 길을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겁니다. 실제로 그 사람의 양심, 그 내면을 깨끗하게 하시고요.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정말로 제대로 섬길 수 있게 하신 거예요. 13절, 14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함 및 암송아지 죄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어 13절 말씀은이

구약에 있었던 그러한 것들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하지 않았냐라고 지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게 그 정도가 있 있었으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짐승의 피는 모형이었는데요. 예수님의 피는 실체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의 양심,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요. 그 사람을 안에서부터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냥 겉으로 볼 때만 괜찮아 보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요. 그 속에서부터 온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일을 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요. 구약의 사람들하고 달라요. 구약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도 여전히 그 양심이 나에 대해서 계속해서 정제하는 소리를 들었어야 됐고 그것 때문에 괴로웠어야 됐는데 이제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의 정제로 인해서 괴로워하지 않아요. 왜요? 나는 죄를 절대 짓지 않으니까. 아니죠. 그렇죠. 내가 어떤 일을 행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이 일 때문에 나의 모든 죄가 과거, 현재, 미래 전부 다 깨끗함을 받았다라는 그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단번에 영원히 들여진 속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이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이 믿는 자들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이제 뒤에 말씀들을 통해서요.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더 많이 말씀을 드릴 거예요. 어,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어,이 모든 사실들에도 불구하고요.이 이 히브리서 당시의 유대인들은 어 여전히 옛 성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러한 어

이유가 있었다면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면요. 저는 이거라고 생각해요. 뭐냐면은 그 성소가 그들 눈에 보였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성소는 하늘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근데 그들 눈앞에는 그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믿어 왔었던 나를 하나님께로 이끈다라고 믿어왔었던 그 성소가 그들 눈에 보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눈에 보이니까 안심이

되는 겁니다.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했으니까 어쨌든 어쨌든 이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그러한 막연한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라는 거예요. 어 근데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오늘날의 사람들도 비슷해요. 네. 눈에 뭔가가 보이고 있으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안심을 합니다. 내가 뭐를 하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안심을 해요. 내가 교회를 잘 나가고 있고요. 내가 성경 통독을 안 빠지고 자라고 있고 내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하고 있고 내가 헌금을 하고 있고 온갖 내가이 하고 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안심을 하려고 해요.

내가 이런 것들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괜찮은 거 같아라고 그렇게 위안을 삼으려고 해요. 그런데 진정한 평안,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이 그런데 있지가 않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데 있지 않아요.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에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도 더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지 못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고요.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이루신 그 하나님 그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양심의 자유함을 얻고 정말로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고요. 나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결과적으로 하는 일은 비슷해 보일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양심의 자유함을 얻지 못해서 열심히 교회에서 뭔가 하는 사람이나 양심의 자유함을 얻고서 교회 안에서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일 겁니다. 똑같이 교회 잘 나가고 똑같이 성경 잘 읽고 똑같이 기도 잘하고 똑같이 헌금 잘하고 모든 것들을 다 비슷하게 해요. 어 그런데 뭐가 달라진 겁니까? 마음이 달라진 거죠. 그렇죠? 그 속 사람이 달라진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하는 이유가 내가 이것을 통해서 위안을 얻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고요. 내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그 위안 때문에, 그 평안 때문에, 그 확신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러게 되는 그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변화된 마음으로 즐겁게 그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어,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해 주신이 일에 우리가 주목해야 되고요. 계속해서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고요. 우리 마음속에 계속해서 담아둬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그 예수님께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반응을 하는 겁니다.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또 얼마나 큰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기억하게 하어 하셔서 어 감사를 드립니다.음 하나님 이제는 어 우리가 정말로 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음이 음,이 놀라운 특권을 주심에 감사하고 우리가 어, 늘이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맡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아멘. M.

이어서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