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히브리서 강해

항상 있는 제사장(3) (히 7장)

최종혁 · 2025.06.07 · 히브리서 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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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까지 해서네 드디어 7장을 끝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 지난 시간에 우리는요.이 예수님이이 레위 제사장하고는 다른 제사장이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배웠어요. 그 어 사실을 중심으로 해서 11절부터 7장 히브리서 7장 1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봤었습니다.요 다른에 대해서 제가 헬라어 알려 드렸었는데 혹시 기억나시나요? 두 가지 다른 헬라어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아 예 알로스 맞습니다. 또 하나는 페테로스네 좋습니다. 예 점점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어두 개가 이제 동일하게 이제 다르다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데 어 그 다르다라는게 다르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죠? 알로스는요 같은 종류 안에서 다른 거. 그래서 또 다른 이제 그렇게 우리가 얘기할 수 있다면 이제 헤테로스는 그 종류 자체가 다른 거죠. 그래서 뭐 전혀 다른 이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예수님은 시편 110편 4절의 예언에 따라서 일어난 전혀 다른 그렇죠.

전혀 다른 알로스가 아니라 헤테로스 전혀 다른 제사장이셨습니다. 어, 레이사장하고 마찬가지로 100% 합법적인 합법적인 제사장이셨는데 전혀 다른 제사장이셨어요. 어, 시편 110편 4절 말씀을 먼저 한번 읽을게요.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대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이 시편 110편 4절에서 레위 지파가 아니라이 멜기 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그런 다른 제사장을 세우시겠다라고 맹세로서 말씀을 하셨고요. 이것이 예언의 말씀으로서 어 아주 분명한 논리적인 그런 결론 하나를 도출해 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이 레위 제사장은 할 수 없는 어떤 일을이 다른 제사장을 통해서 하실 것이다라는 거였어요. 어 그래서 만약에이 또

다른 제사장 그러니까 더 나은 제사장일 수도 있겠죠. 레위 제사장 안에서 또 다른 제사장 그런 제사장을 통해서 어떠한 일을 하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이러한 일을 하실 수 있다면 그러면 이러한 전혀 다른 제사장 여기 시편 110편 4절에서 말하고 있는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이러한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어 레위 제사장은 할 수 없었던 그 일을이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실 수 있었다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뭐라고 표현을 했냐 하면요. 온전함을 얻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전함을 얻는 것.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었습니다. 음.

사람을이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거. 그것이 이제 제사장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그런 임무였잖아요. 그렇죠? 그래서이 유대인들이 율법과 제사장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었던 것도 딱 그거였어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과 제사장이 실제로 자신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다라고 믿었고 그래서이 율법과 제사장을 버리기가 정말로 어려웠었던 겁니다. 그런데이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는 이제 그것을 버려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그 생각이 잘못됐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구약의 그 말씀 시편 110편 4절의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미이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다른 제사장을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그 다른 제사장이 이미 왔다면 이제는 더 이상이 율법과 제사장을 붙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율법과 제사장이 그들을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어,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었던 것은 맞아요. 근데 딱 어느 정도까지가 주어진 한계였었던 거죠. 어, 두 발 자전거

배우려고 옆에 이렇게 보조박퀴 달고 서혹시 자전거 타 보신 분 계신가요? 기억이 안 나시죠? 대부분 어렸을 때 그래서. 근데 저 근데 다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보조 바퀴가 있는게 좋아요, 나빠요? 나빠요. 나빠요. 그렇죠? 오히려 그게 불편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위험해요. 이렇게 딱 틀어야 되는데 바퀴가 걸려 갖고 틀어지지 않거나 그런 일들이 생겨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두 발 자전거를 이제 탈 탈 수 있게 되면은 보조 바퀴는 어떻게 해야 돼요? 떼어내야 됩니다. 떼어내야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게 그래도 안전하니까 더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할게 아닌 거예요. 율법과 제사장의 역할들이 사실 그랬다라는 겁니다. 그들은 정해진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가 있었었고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데 그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으면이 온전한 것을 얻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율법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을 했냐면 18절에서 연약하고 무익함으로 패해야 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율법이 어떤 면에서도 어 불필요한 거다, 나쁜 거다. 그런 얘기가 아니었어요. 그렇죠? 궁극적인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이 완전함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연약한 거고 무익하고 그래서 패해야 한다라고 말을 한 것뿐입니다.이 구약의 율법하고 제사장을 붙들고 있는 한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요. 그것이 더 좋은 소망이다라는 말씀으로 19절 말씀이 마무리가 됩니다. 어 여기까지가 이제이 시편 아 시편이래 히브리서 저작가 [웃음]

시편 설교를 너무 오래했어. 그래가지고 이게 입에 됐어 그냥. 하여튼 히브리서 저자가네 여기까지가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 시편 110편 4절에 대한 강해의 말씀을 지금 하고 있는 건데 그 중에서 너는 멜기세의 서열을 따라.요 요 부분에 대해서 지금 강해를 한 거예요.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이 그 나머지 말씀에 대한 강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는 부분하고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그 부분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강해를 할 겁니다. 어 앞에서는 멜기 세을 언급을 하면서 예수님이 다른 제사장이다. 예수님이 완전히 다른 제사장이다. 이제 그 사실을 강조를 했었다면요. 이제 오늘 본문에서 뭐를 할 거냐면은 그러면은 뭐가 다른 거냐? 다르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뭐가 다른 거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이후에는요.이 멜기세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이 멜기세을 통해서 예수님이 다른 제사장이다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멜기 세대을

얘기 얘기하지 않고요. 예수님이 어떻게 다르신지를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예수님 자체에 집중을 합니다. 예수님이 뭐가 달라서 다른 모든 제사장들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하셨는지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시작해서 10장까지의 내용이 이제 그 내용이 집중적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어, 오늘 본문을 보시면요. 두 가지

면에서 예수님이 다르다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는 뭐냐면은 레위 제사장과 다르게 예수님은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다라는 거고요. 그게 20절부터 22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뭐냐면은 레위 제사장하고 다르게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신다. 그것이 23절부터

25절의 내용입니다.이 두 대조를 통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예수님께서 하시는이 일이 유일무의하다라는 그 사실을 강조를 합니다. 자, 먼저 20절부터 22절을 보시면 이제 예수님이 레위 제사장들과는 다르게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다라는 사실을 인용 아, 말씀을 해요. 어, 다시 시편 110편 4절을 인용을 합니다.이 말씀에서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맹세하셨다라는 그

사실을 여기서는 좀 강조를 해요. 20절부터 22절 말씀을 먼저 한번 읽겠습니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여기 방금 읽은 말씀에 성경 보시면은 10 아 21절에 뭐가 있어요? 괄로가 있죠. 그죠? 괄로. 그러니까요 부분은 이제 사비구로 우리가 생각을 해야 돼요. 그래서 그 부분을 이제 빼고서도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은 연결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이제 그렇게 읽히는 거예요. 근데 이제 여기에 이제 원문의 뉘앙스를 조금 더 살펴서 번역을 하면은 요렇게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른데 잘 들어 보세요.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닌만큼 그

정도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도다. 이제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이 중요한만큼 그것이 중요한만큼 예수님은 더 나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이제 그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어,이 똑같은 얘기를요. 사실은 조금 더 간략하게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죠? 예수는 맹세로 제사장이 되셔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이제 그 의미거든요. 사실은. 근데 그것을 지금 이렇게 지금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굳이 여기서 일부러 지금 뭐를 강조를 하고 있는 거냐면은 그 정도를 강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닌 만큼이라고 하면서 그 정도를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어, 예수님께서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라고 물어보면은 이만큼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맹세로 하셔야 할만큼 중요하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왜 그러냐면요. 예수님이 이제 다른 어떤 제사장 아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제사장도 맹세로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이 맹세로 제사장이 된 사 맹세로 된 제사장은 예수님이 유일무의하십니다. 그래서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라고 그렇게 이중 부정이죠. 그러면서이 사실을 강조를 하는 거예요. 어, 예수님하고 다르게 여기 이제 그 21절에 그 삽입된 부분을 보시면 예수님하고 다르게 아론을 비롯했을

세워졌습니다. 어, 구약의 제사장들은 어떻게 세워졌죠? 어떻게 세워졌죠? 그냥 혈통대로. [웃음] 그렇죠. 최초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죠. 그렇죠? 아론을 세우시고 그 그 아론의 자손들을 세우시면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냐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졌다라고는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죠? 하나님께서 처음에 말씀으로 세우셨고 그 말씀에서 말씀하신 대로 혈통을 따라서 제사장들이 세워졌으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졌다라고는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근데 어떤 제사장도 어 심지어 아론에 대해서도 아론을 세우실 때 하나님께서 맹세하지는 않으셨다라는 사실에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지금 주목해서 보고 있는 겁니다. 어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성경을 정밀하게 보고 있어요.

여러분 히브리서 읽으시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도 이제 공부하면서 보니까 히브리서의 저자가 정말로 성경을 이렇게 자세하게 보고 있구나.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보고 있구나. 이제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여기서도 지금 그런 거예요. 뭐냐면은 아론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렇죠? 아론을 세우셨고 그런 것들 가볍게 세우진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출애굽기 28장, 29장 그리고 레이기 8장 9장을 보시면은 어떻게 그들이 그 제사장으로 세워졌는지 그 제사제 제제사장 위임식이라 위임식이라 그러죠. 그 위임식의 장면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엄숙하게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세워진 것은 맞습니다. 근데 그 어떤 장면에서도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는 장면은 없다라는 거예요. 아론을 세울 때도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면서이 아론을 내가 제사장으로 세우는데 맹세하면서 세우겠다 그렇게 하신 부분이 없다라는 겁니다. 어 단지 어떻게 하셨냐면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을 데려다가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시편 110편 4절에서 맹세하면서 말씀을 하셨고요.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것을 지금 다시 인용하면서 여기 21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하나님은요 그냥 예수님에 대해서 네가 영원한 제사장이야. 라고 말씀만 하셨다는 말씀만 하신게 아니고요. 여기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맹세하면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라는 거예요. 어, 사실 하나님께서 그냥 말씀만 하신 것하고 맹세하신 것하고 뭐가 다르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바꾸거나 그러지 않으시는 분이시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확실한 거고 확실히 이루어질 거고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도 당연히 확실하게 이루어질 거고 그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 입장에서선 사실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맹세하신 것은 사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라고 이미 여기 6 어 히브리서 6장 17절에서 말씀을 했었습니다. 6장 17절을 앞부분까 보시면은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충분히

그들이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라고 말씀을 해요. 하나님께서 맹세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에게 있는 거죠. 사람에게 확신을 더 심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라는 겁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요.이

예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된만큼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확실한 것이 되셨다라고 지금 22절에 보면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어 앞에 19절에 보시면은이 더 좋은 언약하고 비슷한 표현이 있어요. 19절 중간 부분에 보시면은 더 좋은 소망이라고 표현을 했었죠. 그 소망을 이제 여기서는 조금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단순히 우리가 그냥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그냥 품고 있는 그런 희망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겠다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신 언약이라는 거고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한 언약을 주셨었고 이제 더 좋은 언약을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바로 그 언약의 보증이시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맹세로서 보증으로 예수님을 세우신 겁니다. 영원하다라고 선포하신 그 보증인

거예요. 어, 제사장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까 사실 여기서 우리한테 조금 더 어, 기대할 수 있는 표현은 뭐냐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일 겁니다. 중보자. 그렇죠? 제사장보다이 예수님이 더 나은 중보자야라고 그렇게 말을 하면은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그 표현이 아니라 보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혹은 보증인이라는 표현을 사용을 했습니다.

뭐를 강조하려 그러냐면은 지금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이 약속의 확실함을 지금 강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뭐를 확신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왜냐하면은 예수님이

그 보증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용서하시고 반드시 그를 받아 주실 것에 대한 보증 확신인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믿는 구원의 확신이 되시는 겁니다. 어,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생각해 봐야 될게 있어요. 우리가 이제 믿는 자로서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도 배우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잖아요. 그죠? 우리가 최선을 다 합니다. 그것이 어 믿는 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고요.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믿음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믿음을 점검하기도 합니다. 어 그런데이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질문은 뭐냐면은 나는 믿는 자처럼 잘 살고 있느냐가 아닌 거예요. 나는 믿는 자처럼 내가 믿는 자처럼 잘 살고 있으면 나는 구원받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구원받지 않은

거야. 그렇게 생각할게 아니라는 거예요.이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던져야 질문은 뭐냐면은 나는이 구원의 확실한 보증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입니다. 의지하고 있는가? 제가 학생들 학생들하고도 구원 상담하다 보면요. 항상 학생들이 하는 얘기가 이거예요. 저 믿기는 하는 거 같은데 제가 사는게이 모양입니다. 저는 뭐 이런 제가 사는 거 보면은 저 믿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없어요. 그런 얘기를 항상 해요. 그러면 제가 던지는 질문은 이거예요. 그러면은 네가 그렇게 죄가 많은데 죄가 있는데 그 죄에 대해서 그럼 어떻게 할 거냐?

네가 그럼 깨끗하게 살면 그게 없어지는 거냐? 그렇게 믿고 있는 거냐? 그렇다라고 얘기하면은 그렇다고 얘기하면은 그것은 잘못된 믿음인 거죠. 그렇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해야 돼요? 내가 비록 이렇게 살고 있어도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라고 얘기를 한다면 바르게

믿고 있는 거고 그게 올바른 믿음인 거예요. 거기에 우리 믿음의이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우리의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하는 것들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인데 그런데이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우리가 확신을

얻는 것이 나의 행함에 있으면 안 된다라는 거죠. 나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이 보증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내가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보증은 예수님이세요. 예수님.

어, 비유를 들자면 요렇게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한테 절대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들인 거예요. 그 성경에 보면 1만 달란트 빚진자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렇죠? 사실은 거기서 말하는 1만 달란트가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돈이에요. 일반적인 사람은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런 빚진

사람들인 거예요. 심지어 지금도 계속지고 있어요. 지금 구원받았다라고 하시는 여러분들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계속해서 빚을지고 있어요. 근데 예수님이 우리들의 보증인이 되어 주신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갚을 수 없는 그 빛을 빚을 예수님께서 갚으셨다라는 얘기가 되고요. 그리고 여전히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모든 것들 예수님께서 갖고 계신다라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잘하는지 보고서 나를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하시는게 아니고이 보증이신 예수님 때문에 나를 용서하신다라는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라는 거예요. 나의 행위가 아니라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구원의 확신은 거기에 있는 겁니다. 어, 여기 20절에서 22절이요. 사실 하나의 긴 문장입니다. 하나의 긴 문장인데 저자는요. 바로 그 22절

끝에 예수라는 이름을 그 끝에 가서야 언급을 해요. 우리 번역된 성경을 보시면은 20절 처음에도 예수 나오고 21절에도 예수 나오고 22절에도 예수 나오죠. 그렇죠? 그래서 계속 나오는 거 같이 보이는데 그렇지 않아요.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 그이 뭐라 그럴까요?이 이 모든 말씀의 무게가 마지막에 그 예수라는 것에 마침표가 딱 찍혀지게 그렇게 문장을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한 이름은 예수를 여기서 강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이런 예수님을 버리고 자신도 연약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그러한 구약의 제사장을 선택한다는 거 너무나 어리석은 선택이다라는 얘기를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하고 있는 거고요. 우리도 그 말을 들어야 됩니다. 자, 다음으로 23절에서 25절인데요. 여기서는요. 예수님이 항상 살아 계시다라는 면에서 레이사장과 다르다라는 그 사실을 강조를 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시편 110편 4절에 대한 강해고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냥 제사장이라고만 선포를 하신게 아니고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그렇게 선포를 하셨습니다. 어, 그리고 여기 우리 히브리서 7장 3절에서도요.이 멜기세과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연관성으로서 강조한 것이 뭐냐면은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것이었어요. 그렇죠?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것, 영원한 제사장인 것. 이제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어, 여기서 이제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는 얘기는 이런 면에서이 레위 제사장과 예수님이

극명하게 대조된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제 설명을 할 거예요. 레위 제사장은 항상 잊지 못하고 예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그들이 해야 하는 그 중요한 역할에 있어서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자, 먼저이 레이사장의 특징을 보면요. 23절을 보세요. 어, 제사장된 그들의 수유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잊지

못함이로되 어이 말이 굉장히 저는 흥미롭게 들렸어요.이 제사장의 숫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 지금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면은 죽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거죠. 숫자가 많은 이유는 걔네가 죽어서 그런 거 아니냐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생각해 보시면 그거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왜 우리 제사장들은 자꾸 죽는 거야? 죽지 말아야 되는데 왜 죽을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 있었을까요? 없었을 거예요. 그렇죠?이 제사장의 숫자가 많은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제사장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죽을 거고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해서 계속해서이 제사장직이라는 것이 이어지는게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어, 제사장이 죽는 거 이거 문젠데 우리 안 죽는 제사장 필요한데 그런 생각할 사람 없었다라는 거죠. 근데 여기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지금 그게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죽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잊지 못하고

그래서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그 중요한 일,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뛰어나고 좋은 제사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죽고 누군가로 대체가 됩니다. 그리고 그 새롭게 일어난 제사장은요. 원래 있었던 제사장보다 훨씬 못한 제사장일 수도 있는 거죠. 그렇죠? 뭐 엘리의 아들 같은 그러한 제사장 같지 않은 제사장이 일어나서 내가 그 사람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는 그런 상황들도 벌어질 수 있는 거예요. 뭐 설령 훨씬 더 좋은 제사장이 일어났다라고 해도 결국은 그 사람도 언젠가는 죽게 되고 또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다라는 면에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에 대해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이 이 제사장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들의 사역이

온전하지 못하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라는 거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숫자가 많다라는 것이 그것을 아 그것의 증거가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 재밌는 것은요. 제사장직이 이렇게 전수야만 한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이 아론의 죽음을 통해서 보여 주셨어요.이 아론의 죽음을 하나님은 아주 공식적인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시면은 거기에 아론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이 돼 있는데 하나님께서이 아론이 호르 호르라는 그 산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모세한테 아론하고 그의 아들 엘르아사를 그 산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아론의 옷을 벗겨서 엘르아살에게 입히라라고 말씀을 하세요. 공식적으로 제사장의 직분이 여기로 넘어간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거죠. 모세가 이제 그 말씀에 따랐는데요. 성경에 보면 요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민수기 20장 28절에서 29절인데요.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산 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30일 동안

애곡하였더라. 공식적으로 제사장직이이 한 사람에게서이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알 수 있게 하신 거예요. 그 자리에서 아론이 아론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되게 좀 무서웠을 것 같지 않아요?이 이 옷을 벗기면 내가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웃음] 했어야 됐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이 제사장직이 영원하지 않다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보여 주셨다라는 겁니다. 실제적으로 아론이 죽었었던 것처럼 그 이후의 제사장들도 죽어야만 됐습니다. 엘르아살도 죽었어요. 그의 아들 비느아스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제사장들도 죽었습니다.

어이 제사장들이 영적인 아버지 같았을 거예요. 그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래서 정말로 좋은 제사장이 있으면 그 제사장이 죽었을 때 굉장히 아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됐다라는 생각은 분명히 안 했을 거예요. 근데 여기 히브리서의 저자는 거기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죽으니까 제사장이 항상 잊지

못하지 않느냐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항상 잊지 못하다라는 것은요. 결국은 그들이 하던 그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라는 것을 의미를 하는 거예요. 아무리 제사장이 뛰어나도 아무리 뭐 인품이 좋고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해도이 죽음을 피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 사람들은 자기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사람들을 끝까지 도와줄 수가 없었다라는 겁니다. 제사장에 한계가 있었다라는 거죠. 근데 예수님은 다르다라고 지금 말씀을 합니다. 24절 보시면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거예요. 항상 제사장으로 있으십니다. 죽 죽음으로

더 이상은이 하던 일을 못 하게 되지 않으신다라는 거예요. 근데 여기 히브리서 저자의 표현을 보면요. 약간 흥미롭게 돼 있어요. 뭐라고 얘기했냐면은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라고 말씀을 하고 있어요. 그렇죠?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심으로라고 하고 있지 않고 예수님이 영원히 계심으로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레위 제사장은 필멸의 존재예요. 그렇죠? 사람이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여기서 뭐라고 얘기했어요? 영원히 계신 분. 불멸의 존재인 거죠. 그죠? 불멸의 존재로서 예수님은 영원하실 수밖에 없는 그러한 분이신 거예요. 그런 분이 제사장이 되신 겁니다.이 영원하신 분이 제사장이 되신 겁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고 나서 영원해진게 아니고요. 영원하신 분이 제사장이

되셨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사장직은 레위 제사장직은 대를이어서 지속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럴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분이 영원하신 분이시니까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라는 것은 더 이상의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을이어서 또 다른 제사장 일을 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라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장이 최종적인 제사장이고 궁극적인 제사장이고 절대적인 제사장이다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제사장과는 다르게이 영원하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어떤 제사장도 하지 못했던 그 일을 하십니다. 그 일이 뭐냐 하면 25절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어떤 제사장도 하지 못했었던 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는 그 일을 예수님은 하신다라는 겁니다. 어떤 제사장도 항상 잊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항상 살아 계시는 예수님은 하시는 겁니다. 구원하는 일을 하세요. 근데 그 구원에 대해서 온전한 구원이라는 표현을 썼죠. 온전한 구원. 앞에서 율법은요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그것을 하시는 겁니다. 온전하게 하십니다. 어이 구원은요. 정말로 말 그대로 온전한 구원입니다. 그 정도에 있어서 그것이 온전해요.이 구약의 제사장들도 백성들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돕기는 했었습니다. 근데 온전히 그렇게 못 했다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백성들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도 없었어요. 그렇죠? 청소에 들어가는 것도 안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구약에서이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간다라고 표현할 때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간다라고 표현할 때하고 약간 표현이 다른 거 볼 수 있어요.이 제사장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거든요. 근데 백성들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라는 표현을 사용을 해요.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이 계신 그곳까지 직접적으로 갈 수가 없는 거였어. 없는 거였던 겁니다. 어

그렇게 그 정도가이 구약의 제사장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온전하지 않았었던 거죠. 근데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근처로 나아가는게 아닌 거예요. 하나님이 계신 그곳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어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6절에서도 보시면 이미 이런 얘기를 했어요. 히브리서 저자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냐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에 나아갈 것에 대해서 이미 얘기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구원을이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 구원을 더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도 없고요. 예수님이 하실 일도 없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이 구원은 온전합니다. 온전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이 구원은요. 그 기간에 있어서도 온전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된게 아닌 거예요. 그것은 영원히 가능한 일이 됐습니다. 예수님께서이 일을 멈추지 않으시고요. 다른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 멈추게 되지도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히브리서의 저자가 여기서 표현한 것을 보시면요.

예수님께서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니라고 표현을 해요. 그렇죠? 그냥 구원하셨다. 구원하신다. 그렇게 얘기해도 되는데 하실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해요. 뭐에 대한 편인 거예요? 능력에 대한 편인 거죠. 그렇게 하실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 원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메위 제사장은요. 할 수 없었던 일을 예수님은 하실 수가 있는 겁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사람이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고요. 자기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그렇게 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어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 1절부터 3절에 보면요. 자기 민족이 유대인들에 대한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면서 어떤 얘기까지 했냐면은이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을 위해서 자기가 큰 근심과 마음에 그런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데 그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내가 그것을 원하는 바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걸 정말로 원해요. 근데 바울이 그거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아무리 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들 품을 수 있어요. 막 부모들 같은 경우에 자녀들이 막 예수님 안 믿고 교회를 떠나고 그런 마음이 찢어지죠. 그러면서 할 수만 있으면은 어떻게든이 자녀를 내가 정말로 구원시킬 수만 있다면 내가

어떻게든 하 뭐가 됐든지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할 수 있는 분이 계시고요. 여기서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은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할 수 없는 그 일을 예수님은 하시는 겁니다.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 그러면 그럼 여기서 이제 중요한 건 이겁니다. 누가 누가 누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라는 겁니다. 누가 어 히브리서의 저자는 여기서 뭐라고 표현을 했냐면요. 25절에서 자기를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다른 조건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죠? 오직 예수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민족이 어떤 민족이든지 상관없고요. 성별이 어떻든 상관없고요. 출신도 상관이 없어요. 남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는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동안에 어떠한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도둑이 됐든지 강도가 됐든지 심지어 무슨 살인자가 됐든지 뭐가 됐든지 상관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악한 삶을 살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

가끔씩 여러분 그럴 때 있는지 모르겠어요. 막 그 유명인들이 가끔 보면 이렇게 신앙 고백 같은 거 할할 때 있어요. 근데 가끔은요. 저는 그런 생각 들 때 있습니다. 저 사람은 좀 교회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얘기 저 입으로 안 했으면 좋겠다. 이제 그런 마음이 드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 사람의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고 뭔가 나쁜 일 많이 하고 이제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이 좀 그런 마음들이 들거든요. 그 가끔은 보면은 아 저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 믿는게 아니고 그냥이 교회라는 것을 이용해서 그니까 사람이 많으니까 그 교회를 이용해서 뭔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거 같아. 이제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어 그런데 어 실제로 뭐

그런 것들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요. 어떤 이미지가 안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정말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이 말씀에 따르면은 그 사람은 온전한 구원을 얻은 사람인 거예요. 그렇죠? 예수님이 그 사람의 영원한 제사장이 되시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서 계속해서 간구하시고 중보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죄악된 우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러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받아들이신다라는 거예요. 아무런 상관없이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신다라는 겁니다. 어 만약에 어떤 사람의 구원이 단지 그 사람의 어떤 이미지나 그동안의 어떤 행실 때문에 나한테 좀 불쾌하게 여겨진다. 저 사람 진짜 구원받은 거 맞아? 아닌 거 같아. 저런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거야. 그런 생각 여러분 드신다면요. 문제는 나한테 있다라는 걸 아셔야 돼요. 한편으로는이 예수님이 어떤 제사장이신지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고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래도 저 사람보다

낫다라는 율법주의적인 생각이 내 안에 아직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요. 그리고 반대로 누구든지이 온전한 구원을 얻은 자라면 온전한 구원을 얻은 자라면 예수님을 통해서 얻은 겁니다. 자신의 어떠함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나라고 해서 구원 받을 만 해서 받은게 아닌 거예요. 나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 구원을 받은게 아닌 겁니다. 단지 내가이

예수님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하신 제사장이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그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에게 나타난 것뿐입니다. 어이 25절의 말씀은요. 히브리서 독자들에게도이 경고의 성격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어 무슨 말이냐면요. 예수님을 힘입지 않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그 모든 노력은 실패한다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 독자들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됐어요. 그들이 유대인이 됐든지 어 아 그들이 뭐 유대인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거죠. 그들이 어떤 구약의 언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고 그런 것도 아닌 겁니다. 그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이 구약의 율법과 제사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 무엇도 그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항상 살아 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간구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요한일서 2장 1절 2절 보시면 이렇게 말해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한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재물이니 우리만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니라. 예수님께서

간구하십니다. 25절 끝에 보시면은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래요. 그들이 누구예요? 바로 위에 나오는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세요. 그것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만 그렇게 하시는게 아니고요.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어 요한복음 17장 11절을 보시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하셨어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을 보호하여 주실 것을 예수님께서 기도하십니다. 어,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그렇게 기도하셨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 기도를 우리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신다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셨고요. 그리고 지금 구원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앞으로 구원하실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온전한 구원인 겁니다. 오직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이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다른 어떤 것을 함께 의지하지 않는 거예요.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얻습니다.

2,년 전에도 그랬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 오늘 말씀을 여러분 들으시고 제대로 이해를 하셨으면요. 이제 스스로에게 던지셔야 될 질문은 이거예요. 나는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지를 여러분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나의 어떠함이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어요. 오직 예수님이 구원의 보증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요. 나의 어떠함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할 일 없어요. 그리고 내가 받은 구원을 그것 때문에 잃게 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내가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 이게 다른 모든 종교하고 비교되는 대조되는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구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예요.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지 않고요. 그리고 의지하지 말아야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기억하시고요.이 사실이 매일의 삶에 의지가 되게 하시고요. 그리고 감사가 되게 하시고 소망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어 하나님 또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 죄악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또 다시 어 생각할 수 있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하나님 우리가이 귀한 진리를 늘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 더 감사할 수 있게 하시고 늘 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고이 확실한 소망을 언제나 붙들고이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의 발자치를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예수님의 어 제자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들은 말씀을 주님께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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