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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 히브리서 7장이고요. 7장 11절부터 어 19절 말씀을 같이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 지난번에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봤었고요. 오늘이어서 어 11절부터 19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어 말씀 제목은 항상 있는 제사장입니다. 두 번째 시간이에요. 어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우리가 지금이 히브리서에 아주 중심에 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그런 논지에 와 있습니다. 뭐 모르시 모르겠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어 읽어 보면서 아주 흥미롭게이 말씀을 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 히브리서는요. 제가 할 때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이렇게 리마인드를 계속 다시 하고 복습을 하면서 좀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어 어떤 식으로든지이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이 편지가
쓰여졌습니다. 어 드러나는 모습은 분명히 달라요. 그렇죠. 분명히 그 모습들은 다르는데 다른데 그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은 똑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냐 하면은 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같지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여러분 생각을 해 보시면은 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어떻게 했죠? 그 보활을 발견하고서네 그렇죠.네 전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그렇죠? 사고 나서 굉장히 슬퍼하면서 살았나요? 아, 나 옛날에 그거 되게 좋았었는데 그거 다 없어졌어. 그랬나요? 아니죠. 그죠? 기뻐했죠. 그렇죠. 기뻐했습니다. 어, 그런데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었던 거예요.이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그렇지 않았었던 겁니다. 뭐 조금 비유를 연장해서 생각을 해 보면 똑같은 비유 안에서 생각을 해 보면은 어떤 사람들은이 보화를 발견하기는 했는데 그 가치를 모른 거예요.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를 모른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은 그 밭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냥 묻어두고 딴데 가서 계속 소장농하면서 이제 그렇게 산 거죠. 어떤 사람은 그렇게
했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밭을 사기는 했는데 아, 내가 이렇게 하는게 맞나? 제대로 한 건가? 그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아,이 밭을 다시 또 누구한테 팔아야 되나 이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는요. 그래서이 밭을 팔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었던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유로 말을 하는 거예요. 어 그런데요.이 모든 상황들은요. 사실은 뭐 드러난 모습들은 달라요. 그렇죠. 어떤 사람은 밭을 아예 안 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고 나서 좀 제대로 샀나 의심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고 나서 다시 팔아버리기도 하고 그렇게 모습들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이유는 똑같습니다. 그 근원에 있는 이유는 같습니다. 뭐냐면은 결국은 그 밭에 있는 그 보화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에요.이 이 보화가 자기들이 발견한이 보화가 그들의 전 재산과
비교해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다면요. 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이 밭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그렇죠? 이걸 사는게 훨씬 더 이득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밭을 사고 나서도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훨씬 더 이득이 되는 일이 지금 벌어진 거니까요. 그리고 사고 나서도 다시 밭을 팔려고 생각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보화가 얼마나 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지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어 믿음의 위기를 겪는 것도요. 이제 다시 우리가 비유를 끝내고 다시 이야기로 와서 돌아 생각을 해 보면요. 믿음의 위기를 겪는 것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냐면요. 결국은 그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인 겁니다. 어 예수님의 가치 어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전부보다 큰 것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러 이러한 것들을 미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뭐를 언급하셨죠? 미워해야 된다라고.
부모 그리고 자기 처자 예 그리고 자기 형제 자매 심지어 뭐까지 자기 목숨까지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정말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얻어야 할 그러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라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이 이 예수님의 가치, 예수님의 위대하심, 그리고 우리가 뭐 처음에 함께 불렀었던 그 찬양에서처럼 예수님의 아름다우심, 뭐라고 표현을 하든지 그 예수님의 가치를 깨달아서 아는 것이 사실은이 믿음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그 믿음의 핵심에 있는 겁니다. 어 그래서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계속해서이 편지를 통해서 하는 일들은 뭐냐면은이 저자들의 상황을 지금 고려를 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지금 가치 있게 여기는 그런 것들하고 예수님을 비교를 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논을 논 논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논한 것들 중 이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잘 들어오셨으면 머릿속에 기억나시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 논난 것들 중에 가장 핵심에 있는게 사실은이 예수님과 구약의 제사 제도를 비교하는 바로이 부분입니다. 왜 그러냐면은 그것이이 구약의 제사제도, 제사장, 율법 그것이이 독자들에게 있어서요. 현재에
가장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왜 그랬을까요? 왜 유대인들이 그들의이 제사 제도 그리고 제사장 그런 것들을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웠을까요? 왜 그랬냐면요.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그 율법을 통해서 제사 제도를 통해서 제사장을 통해서 가야만 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하나님께서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나서요. 그리고 이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죠. 그러면서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이 제사 제도를 주신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서 성막 성 나중에 이제 성전이 됐지만 성막을 짓게 하셨고요.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셨냐면요. 출애굽기 말씀 잠깐 찾아볼까요? 출애굽기 어 29장에
보시면네 구약 성경입니다. 출애굽기 29장 42절에서 어 46절을 보시면요. 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제이 성전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한번 잘 들어 보세요. 출애굽기 29장 42절에서 46절입니다.이는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회막 성막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회막문에서 늘 들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뭐 한다고요? 너희와 만나고네
너희와 만나고 너에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그다음에 뭐라고요?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 누구죠? 제사장이죠. 그렇죠?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뭐 한다고요?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그 성막에서 뭐를 하겠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세요? 내가 거기서 너희를 만나겠다라고. 만나겠다. 그러니까 이곳에 중요한 것은 뭐냐면이 회 성막에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곳에 자신의 임재를 두셨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 누가 있었어요?
제사장들이 있었어요. 제사장들이 그곳에 있으면서이 하나님과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중보하는 역할들을 했었던 겁니다. 그게 구약의이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대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방식이었어요. 그들이 만들어낸 방식인가요?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제 히브리서로 다시 와서 보세요. 히브리서 6장 19절 20절을 보면은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렇게 그 유대인들에게이 하나이 제사제도 제사장을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지금 뭐라고 말을 하고 있냐면은 어 6장 19절 20절 보시면 우리가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가니 가나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의 반찰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다라고 얘기를 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휘장 안에 들어간다라고 얘기를 해요. 어떻게 그렇게 들어가냐면은 예수님께서 앞서서
들어가셨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혼자만 제사장이 혼자 그 휘장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거기에 들어가셨는데 거기로 앞서 가신 거예요. 앞서 가시니까 당연히 뒤따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죠. 그렇죠? 뒤따라오게 그렇게 먼저 하셨다라는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에요. 율법에 따르면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거는요. 제사장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고요. 왕이라도 그렇게 하면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약에이 말을 처음들은 유대인들이 있었다면요.이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거고요. 정말로 깜짝 놀랐을 겁니다.이 이 예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우리를 그 성막 안으로 희장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라고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이
말 자체가 신성 무독하는 것으로 들렸을 겁니다. 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설명이 필요했었습니다. 어떻게이 구약의 그 모든 대제사장들, 모든 제사장들이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해서는 안 되는 그러한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다라고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었던 겁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사람들을 그 하나님이 계신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었던 거예요. 그것에 대한 설명이 지금 7장부터 10장에 이어지는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이 부분을 히브리서의 핵심이라고 말씀을 계속해서 드리는 거예요. 이것이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 먼저는요. 7장에서 예수님께서이 멜기
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라는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고요. 우리가 지금 그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 레위 지파가 예수님이 아니신데 어떻게 제사장이 돼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어, 그 논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뭐냐면요. 시편 110편 4절의 예언입니다. 시편 110편 4절.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기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대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이 말씀이이
예언의 말씀이이 논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이 말씀을 어 또 살펴보게 될 겁니다. 어 시편 110편 전체가요.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고요. 그리고 그중에서이 4절은요. 그 메시아가 하나님께서 멜기세의 서유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포하시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예언의 말씀에 따라서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이 되신 겁니다. 그 얘기를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고 있는 겁니다. 음. 7장 앞에 1절부터
3절은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을 했어요.이 레위 제사장이 아론의 반찰을 따랐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건 뭐였어요?이 레 레위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이다라는 의미였죠. 그렇죠? 아론의 후손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멜기세의 반찰을 따랐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멜기세대의 후손이다라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그렇죠? 족보상에 나중에 온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3절에서 그 의미를 그 가장 중요한 의미를 얘기를 하는데요. 뭐냐면은 가장 끝부분에 나오죠. 그렇죠?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네. 어 멜기세처럼 예수님이 혹은 예수님처럼 멜기세이라고 여기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어쨌든 둘 다 항상 있는 제사장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라는
면에서 둘이 닮아 있다라는 사실을 강조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예수님이 메기세대의 반찰을 따랐다라고 성경이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 그래서 시편 110편 4절도 앞에서 읽어 드렸던 그 말씀에서도 보면은 메시아를 그냥 멜기세대의 서유를 따른 제사장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뭐라고 얘기했냐면요.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대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요 어 7장 설교의 제목이 항상 있는 제사장인 거예요.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해서 그렇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항상 있는 제사장인 겁니다.
어 4절부터 10절에서는요. 저자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요. 멜기세이 레위 제사장보다 높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해서이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예수님도이 레위 제사장들보다 높으시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근데 이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요. 이제 오늘 말씀에서 강조할 것인데 뭐냐면은 예수님은 단지 더 높은
제사장이 아니라 다른 제사장이다라는 겁니다. 다른 제사장. 모든 레위 제사장과는 다른 제사장이다라는 사실이 여기서 강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이 하지 못했었던 그 일을 예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던 겁니다. 왜냐하면은 예수님은 무슨 제사장이라고요? 다른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다른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이에요. 어, 뭐가 다른지는요.이 20절 이후에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보게 될 거고요. 오늘 말씀에서 강조하는 건 뭐냐면요. 그 다르다라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어, 본문을 조금 이렇게 나눠 보면요. 11절 12절에서는요.
먼저이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해요.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먼저 하고요. 그리고 13절 17절에서 17절에서는요. 예수님이 바로 그 다른 제사장이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19절은요. 다른 제사장이 가져온 다른 결과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자, 다 못 적으셨으면은 그냥 제가 한 번씩 더 읽어 드릴테니까 따라오시면서 네, 적어 가시면 됩니다. 자, 첫 번째 뭐냐면요. 11절 12절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 다른 제사장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 말씀드렸었던 것처럼이 지금이 말 자체가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요. 정말로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입니다.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신성 모독으로 드릴 만 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이단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그러한 말이기도 합니다.
7장 11절에 보시면 이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 레위 계통에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안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찰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의 반찰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어 여기 보시면요. 온전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온전함. 레이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서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그럼이 온전함이 뭐냐? 어, 그 의미는요. 우리가 19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시면요. 어, 이렇게 말하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그래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이 온전함이라는 것은요. 결국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거예요. 그 유대인들이 아까 제가 처음에 유대인들이 왜이 어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이 제사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렇죠? 그것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들이 생각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근데 그것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는 그 온전함을 어 얻을
수가 없었던 거 아니냐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어, 말씀드렸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이 구약의 제사 제도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혹은 여기 표현에 따르면 온전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었던 이유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말씀인 그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 그렇게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그렇죠? 그러면은이 말은 사실은 어떻다라는 걸? 어떻다라는 거예요?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 없었다 없었다라는 사실을 지금 가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말도 그렇고요.이 헬라어 문법도요. 헬라 문법에서 이런 가정법을 사용할 때 사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하는 그런 문법이 있는데 그 문법이 여기서 사용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지금 두고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레이계통의 제사직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만약에 나아갈 수 있었으면 다른 제사장은 당연히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어, 유대인들이 믿어왔던
진리가 그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레위 제사장들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고 그렇게 믿어왔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오래된 질문에 그들이 감히 도전 도전하지 못했었던 그 질 그 진리에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정말로 우리가 믿는 것처럼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은 그럼 왜 시편 110편 4절이
있냐라고 질문을 하는 겁니다. 왜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은 메시아가 레위가 아닌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이 될 것이다라고 맹세를 하면서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말씀을 하셨느냐라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겁니다. 어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여기서이 강조를 하려고 아주 극단적인 대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어 한번 물어볼게요. 유대인들은 제사 제도를 통해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있었죠? 네. 있었습니다. 그렇죠?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거면 그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거짓말을 한게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라고 하셨던 겁니다. 그럼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걸 몰랐을까요? 아니면 그걸 지금 부인하고 있는 걸까요? 그런 거는 아니에요. 그렇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도 표현을 보면요. 하나님께 나아간다라는 표현 대신에 무슨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요? 온전함을 얻는다라는 표현을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어
하나님과의이 하나님과의 온전히 회복된 관계적인 측면에서 레위 제사장과이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지금 대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거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것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의도하셨던 그러한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 예수님과 레위 제사장들을 대조를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어,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예,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부분적이었다라는 겁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림자로서 주어졌을 뿐이지 그것이 실체는 아니었었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실체이시고는 온전한 관계의 회복으로 사람들을
이끄십니다. 저자는요. 지금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다라고 그렇게 지금 선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레이사장을 통해서는요. 온전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레이 제사장은 사람을 궁극적으로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요.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렇죠? 자기 자신도 아,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라고 한다고 해서 지성소에 맘대로 들어가고 그렇게 할 수 없었잖아요. 그렇죠? 1년에 한 번만 정해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그 방법을 따라서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함을 줄 수 있는 제사장, 하나님과의 관계에 온전한 회복을 줄 수 있는 제사장은 다른 제사장이어야 됐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제사장의 필요를 시편 110편 4절에서 이미 말씀을 하셨다라는 거고요. 그리고이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그 말씀을 기반으로 해서 지금이 구약의 제사제도 너희가 어떻게 보면 전부라고 지금 여기고 있는이 구약의 제사 제도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애초에이 율법 아래에서 레사장을 통해서 온전함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다라는 거죠. 그것은 그림자로서 주어졌었던
것뿐입니다. 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요. 이것이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예요. 그렇죠?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와서 지금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게 아니고요. 그들이 믿고 있는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근거해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단적인 사상도 아니었고요. 신성 보독도 아니에요. 올바르게 성경을 그들이 해석한다면 내릴 수 있는 타당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뭐였냐면은 온전함을 얻으려면 온전함을
얻으려면 아론이 아니라 레이사장이 아니라이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다른 제사장이 일어나야 한다라는 거였습니다. 어 제가 지금 계속해서 어쩌면 제일 많이 쓰고 있는 단어가 이거예요. 다르다. 다르다입니다. 다르다.이 다른이라는 단어가요. 오늘 본문을 이해하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거기서 다른이란 단어 찾아보세요. 세 번 나옵니다. 11절에 한번 나오고요. 13절에도 나오고요. 그리고 15절에도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단어로서 반복되면서 사용이 됩니다. 어, 뭐가 중요하냐면요. 어, 헬라어에는요.이 다르다는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가 있어요. 헬라어에 예전에 한 번쯤 얘기를 했었을 것도 같은데 다르다를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알로스라는게 있고요. 헤테로스라는게 있습니다. 알로스와 헤테로스가 있어요. 그 둘이 분명히 차이가 있는 다름을 이야기를 하는데 알로스는 뭐냐면요. 같은 종류 안에서 다른 것을 이야기를 해요. 같은 종류 안에서. 그리고 헤테로스는 종류가
다른 것을 의미를 합니다. 이해가 되세요? 네. 여기 사과가 잔뜩 있는데 제가 사과를 먹고 싶어요. 그래서 찬양형제가 목사님 이거 드실래요? 내가 이제 얘 이렇게 들었는데 제가 아니 다른 거 주세요라고 하면요. 그때 내가 알로스를 얘기하면은 그러면은 무슨 얘기예요?요 요 사과들 중에서 다른 사과를 집어서 찬양제가 저한테 주면은 된다라는 거예요. 근데 여기 사과가 있고 배가 있고 뭐 바나나가 있고 그래요. 그랬을 때 사과를 들고서 이거 드실래요라고 했는데 제가 아니요. 헤테로스라고 얘기를 하면은 그러면은 사과가 아니라 배를 들거나 아니면은 바나라를 들고서 이거 드실래요라고 얘기를 해야 된다라는 거죠. 이해되세요? 네. 알로스와 헤테로스는 그 차이입니다. 어 물론 이제 그 종류라는 것이 기준을 잡기 나름이긴 하겠죠. 근데 그 기준을
잡았을 때 그 안에서 다른 것은 알로스를 얘기를 하고요. 그것을 벗어나서 다른 것은 헤테로스를 의미를 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기 다르다라는 표현이 11절, 13절, 15절에 나오는데요. 모두 다 뭐가 사용됐을 것 같아요? 알로일 것 같아요? 헤테로일 것 같아요? 헤테로스입니다. 네. 모두가 다 헤테로스가 사용이 됐습니다. 다른 종류인 거죠. 그죠? 같은 종류 안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아예 그 종류가 다른 겁니다. 레위 제사장 안에서도 다른 제사장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이 제사장이 죽고 다른 제사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은 그 제사장은 알로스 제사장인 거죠.
그렇죠? 그 종류 아니니까. 근데 예수님은 알로스 제사장이 되면 안 되고 무슨 제사장이 돼야 된다라는 거예요? 헤테로스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지금 성경이 말을 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어, 메시아는 다른 종류의 제사장이
되어야만 됐습니다. 왜 그러냐면요. 레위 제사장은 누가 됐든지 온전함에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으로 나아가게 하려면요. 또 다른 레의 제사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시편 110편 4절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다라는 겁니다. 그리고요. 제가 지금 여기 말씀에서 살짝 이제 넘어간게 있는데요. 여기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제 이것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언급을 해요. 11절의 괄호 부분을 보면요. 거기 무슨 말이 있냐면요. 백성이 그 아래 율법을
받았으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죠? 백성이 그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인 거죠. 그 앞에 문맥을 보면요. 그 아래 레이 계통의 제사 직분 아래 율법을 받았다라고 얘기를 해요.이 얘기가 뭐 뭐를 지금 얘기하려 그러는 거냐 하면요.이 제사장직하고 율법이라는 것이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엮겨 있다라는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 이스라엘 백성 율법 아래 살면서 그래서 계속해서이 제사장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갔었던 거예요. 그런데이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다면 그럼 그 말이 의미하는 또 다른 함의 뭐냐 하면은 그들을 통해서 전해진 그 율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는 없다라는 결론이 나게
됩니다. 온전함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이 레위 제사장 제도에 마침표가 찍힌다면 율법에도 똑같이 마침표가 찍혀야 된다라는 거예요. 그게 12절 말씀이에요. 제사 직분이 바뀌었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제사직 직분이 직분이네 제사 직분이 바뀐다면
대체된다면 율법도 반드시 그렇게 돼야 된다라고 말씀을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사장은 바뀌었는데 율법은 그대로일 수 없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된 백성이라면 이제 다른 제사장 아래 율법을 받고 그에 따라서 살아가는
겁니다. 어,이 부분에 있어서이 초대 교회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우리가 사도행전 이후에 성경을 보면은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요이 제사장을 버리기 어려웠었던 것처럼 율법도 버리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었다라는 것은 제사장이 다른 제사장을 받아들인 거죠. 그렇죠? 근데 받아들였는데 거기에 자꾸 율법을 더하려고 했어.이 이 제사장과 함께 율법이 같이 버려졌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한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보면은 바울이 엄중하게 경고를 하죠. 갈라디아 4장 9절부터 11절 보시면 어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아신 바 됐어요. 그러니까
그 관계가 지금 회복됐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온전함 가운데 이른 겁니다. 근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말을 합니다. 그들이 다른 제사장을 찾았는데이 율법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안타까워하면서 경고의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도 믿고 율법도 지키면 좋은게 아닌 겁니다. 율법이 그림자로서 보여줬었던 그 모든 것들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율법에도 마침표를 찍으신 겁니다. 제사 직분이 바뀌면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말은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율법도 필요하다라는 의미도 되는 겁니다. 그 부분은요. 우리가 좀 뒤에 가서 히브리서 뒷부분에 가서 다시 좀 다루게 될 거예요. 여기에 말씀이 있어서 미리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 여기
이제 11절 12절에서 지금 히브리서의 저자가 강조한 건 뭐냐면은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렇죠? 제가 지금 계속 예수님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사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 이제서야 이제 하기 이제서야 그 다른 제사장이 누구인지를 이야기를 해 줍니다. 13절부터 17절인데요. 예수님이 바로 그 다른 제사장이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 자 먼저는요.이 저자가 얘기하는 거는 다른 제사장은 레이 지파가 아니라 다른 지파여야 된다라는 사실을 언급을 해요. 13절이 그 말씀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도 재단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르쳐 말한 것이라. 요게 좀 앞에 문장이 길어서 못 얘기야 싶으실 수 있는데 그러니까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서 말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지금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여기서 다른도 아까 말씀드렸던 헤테로스예요. 그죠? 헤테로스. 어 지파 중에서 다른 지파니까 알로스 아니야. 이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지금 기준이 뭐냐면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거 재단위를 받드느냐 받뜨지 않느냐 그게 기준인 거예요. 재단위를 받드는 사람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인 거죠. 그렇죠? 그러한 일 레위 지파가 있었고요. 다른 지파는 거기에 절대로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죠?
거기에 참여하려고 하면은 큰일 났었어요. 그래서 레위 지파인지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아까 말했던 그 다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거예요. 어 그래서 다른 제사장은 레위 지파 외의 지파에 속한 제사장이어야 했다라고 지금 여기 13절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이 말 자체가 유대인들한테 굉장히 지금 모순적으로 들렸을 거예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그러한 말로서 계속 들렸을 겁니다. 왜냐하면은 제사장은 당연히 뭐예요? 레위 제사장인 거죠. 그렇죠? 그래서 레위인 하면은 그 말이 거의 제사장하고 같은 말로서 사용이 될 정도인데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제사장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까 이게 말이 되는 거야.이 그런 제사장이 있을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그런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합법적인 제사장 계열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히브리서 앞에서 살펴봤었습니다. 바로 멜기세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레이 지파가 아닌 제사장이시니까이 멜기세답과 같이 다른 제사장이 되십니다. 그게 14절부터 15절이 하는 말 얘기예요. 말씀을 보시면 어 우리 주께서는 예수님이죠.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레이 지파 아니라는 겁니다.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자, 어, 예수님의 족보 복음서 어디어디 기록되 있죠? 마태복음하고 누가복음의 두 군데 기록되 있죠. 그렇죠? 그 두 개를 모두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거. 예수님은 어느 지파를 따라서 오셨습니까? 유다 지파를 따라서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다 지파는요. 특별히 더이 제사장하고는 관련이 없는 지파예요. 왜 그러냐면은 유다 지파는 다윗 이후에 계속해서 뭐를 배출해 냈어요? 왕을 배출해 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왕을 배출해 냈던 그러한 지파였지 제사장 지파는 아니었습니다. 유다 지파로 난 예수님은 분명히 다른 제사장이십니다. 어 예수님은요.
분명히 레이사장하고는 다른 제사장인데 합법적인 제사장이십니다. 멜기세과 같은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게 여기 15절의 말씀입니다.어요 부분에 대해서요. 우리가 5장에서 이미 살펴봤었어요. 5장 1절부터 10절이 사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 줬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으로이 땅에 오셨고 그리고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셔서 순종하는 그 모든 자들을 영원한 모든 자들의 영원한 구원이 되신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이 예수님을
멜기세의 반찰을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선언하셨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어 히브리서 5장 8절 10절인데 그 부분만 좀 읽어 드릴게요. 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으셨느니라. 네. 실제로 멜기세다과 같은 제사장이 일어난 겁니다. 그죠? 시편 110편 4절에 그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겁니다. 영원한 제사장 항상 있는 제사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런 제사장이 되셨느냐? 여기 16절 17절 말씀도 한번 보세요. 어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내가 영원히
멜기세대의 반찰을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자 예수님께서 뭐를 따르지 않으셨대요?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으셨대요. 그럼 누구는 이거를 따랐을까요? 레위 지파. 네. 레위 제사장들은 이것을 따랐습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레위인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네. 그들이 경건에서가 아니에요. 그들이 다른 지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지파여서가 아니었습니다. 뭐였어요? 하나님께서
잠시 벌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이 레위인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할 거다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인 거예요. 율법은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좀 어 이런 것들이 여러분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제사장이라고 하면은 당연히 뭐
그렇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뛰어난 사람이어야 된다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율법에서 그런 것을 요구한 부분이 있냐라는 거죠. 율법의 말씀들을 보면은 제사장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그들이 뭐 성내기를 더 뭐 쉽게 성지 않고
뭐 악한 일을 탐하지 않고 그런 말씀 없어요. 그렇죠? 네. 그러한 것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구하는 거는 뭐예요? 레위 제사장이 레위 지파면 되는 겁니다. 네. 그들이 그들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레위 지파가 제사장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그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 아론의 지파가 될 것만 요구를 했습니다. 외적인 것만 요구가 됐었다라는 거죠. 그런 제사장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그것을 따라서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다라고 지금 말씀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요. 다시 16절 보시면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서 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불멸의 생명. 영원한 생명인 거죠. 그죠? 그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요 죽음으로이 대제사장으로서의 그 구속 사역을 마치셨고요. 그리고 생명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영원한 제사장으로이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이 되신 겁니다. 다른 제사장이 되셔서 구약의 어떤 제사장도 할 수 없었던 그러한 일들을 하신 겁니다. 어, 지금까지 말씀드렸던이 모든 것들이요. 지금 이것을 통해서 더 분명해졌다라고 15절에서 어,
편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어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지금 추측하거나 예상하거나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거예요.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더 분명하게 됐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더 확실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다른 제사장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구약에 말씀을 했었는데 예수님이 그 다른 제사장으로서 일어나신 겁니다. 어 15절에서 다시 15절을 보시면요.이 저자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일어났다라는 표현을 쓰죠.이 이 일어난다라는 표현이요. 종종 다른 데서 어떤 상황에서 사용이 되냐면은 위대한 지도자가 일어났다라고 말할 때 사용이 되는 표현입니다. 지금 예수님께 그 표현을 사용을 하고 있는 거예요. 14절에는 보시면요. 유다로부터 나셨다라는 표현이 있죠. 그렇죠? 아신 것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요 사실은요 마찬가지로이 일어날 것을
일어날 것을 의미를 합니다. 그래서 종종 어떤 때 사용이 되냐면요. 태양이 뜬다, 별이 뜬다라고 말할 때 사용을 하는 그러한 표현입니다. 어 다른 제사장으로 예수님께서 오셨는데요. 그것이 구약의 예언이 되어 있었고요. 그리고 그 인류가
오랫동안 그 예언의 성취를 기다려 왔었는데 바로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셨다라는 것을이 단어들이 보여줍니다. 마침내이 인류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온전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참된 제사장이 오신 겁니다. 어 세례
요한에 붙인 사가랴가 그 아이를 낳고서 찬송을 했는데요. 거기에서 이런 이미지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7절에서 79절인데요. 어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참된 구원자, 참된 제사장이 온 겁니다. 그러니까 레위 제사장을 통해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라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진 겁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라는 그 사실도 더 분명해진 겁니다. 그러면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 다른 제사장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그 제사장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18절 19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함으로 패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자, 다시 한번 또 여기서요.이 저자가 대조하려고 아주 강력한 표현을 사용을 해요. 어. 전에 있던 계명 뭐죠? 율법이죠. 그렇죠?이 율법에 대해서 지금 뭐라고 표현을 하냐면요. 연약하고 무익함으로 패했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까요? 예수님 율법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율법을 패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렇죠?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오히려 완전하게 하려고 하셨 오셨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을까요?
어, 그 답은 어디에 있냐면요. 19절의 괄호에 있습니다. 19절의 괄호에 보시면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한다라는 그 면에서 연약하고 무익하다라는 겁니다. 이제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었던 것들처럼이 율법과 레의 제사장을 통해서는 통해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서 깨닫게 할 수는 있어요. 제사장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실제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면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라는 면에서 율법은 연약하고 무익한 것이고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의 율법은 패해져야 한다. 버려야 한다라고 지금 시편기 아 자꾸 시편 기자를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그 생각을 버려야 된다라는 거예요. 율법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레위 제사장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19절에서 그렇게 말하죠.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율법과 제사장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예수님은 가능하게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고 숨을 거두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그 성소의 휘장이 어떻게 됐죠?
찢어졌습니다. 어떻게요?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서 둘이 됐다라고 이야기하 둘이 됐다. 둘이 됐다라는 것은 무슨 얘기예요? 완전히 찢어졌다라는 얘기죠. 그죠? 끝에 조금 붙어 있으면 둘이 안 된 거잖아요. 그렇죠? 근데 완전히 찢어진 겁니다.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유대인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여기 히브리서의 저자는 더 좋은 소망이라고 말하고요. 사실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어 오늘 말씀은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유일한 참된 대제사장이 되신다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의 회복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어 적용으로 두 가지만 좀 같이 생각을 해 보고 싶은데요. 첫째는 뭐냐하면요. 여러분이 유대인들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이 이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은요이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굉장히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렇죠? 굉장히 이것이 어려웠어요. 왜냐면 그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것, 정말로 철석같이 믿어 믿어왔던 그것을 버려야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그런데 만약에 그것이 어렵다라고 해서 이들이 계속해서이 율법을 붙들고 있으면이
율법이 연약하고 무익해서 패해야 한다라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면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온전함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죠?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어렵다는 이유로 율법을 패하지 않으면요. 그 대신에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그 소망을 패해야 됐다라는 거예요. 둘 중에 하나를 그들이 선택을 해야 됐었던 겁니다. 둘 다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어 그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요. 우리도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요.이 이 유대인들이 정말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 율법과 제사장의 마침표가 되셨어요. 그렇죠? 마침표를 찍으시고 다른 제사장이 되셔서 그들에게 참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요. 우리가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것에 마침표가 되셔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지이 예수님의 참된 그런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여전히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그것들 그것을 내가 내려놓기 어렵다라고 해서 그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으면이 예수님을 얻을 수가 없는 겁니다. 어
구원받는 것만 관원받는 것에 대해서만 지금 말씀드리는게 아니에요. 구원받을 때 당연히 여러분 그렇게 하셔야 되는 건데 근데 그 이후의 삶에서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이 여전히 율법에 따라서 살 수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어요. 그렇죠? 그렇게 하면 안 됐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은 안 되는 겁니다. 아까 마침표를 찍었다 그랬잖아요. 그죠? 그동안 내가 믿고 의지왔던 거 마침표를 찍었는데 그 마침표에다 살짝 이렇게 선 하나 거 가지고 신표처럼 바꿔 놓으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야지 우리가이 온전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침표를 찍으셨으면 그 마침표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다음으로이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결과에 우리가 좀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결국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모든 일이 가져온 궁극적인 결과는 뭐냐면요.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거예요. 그렇죠?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바로 그거예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한 겁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은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그러한 지점입니다. 뭐가 제일 중요한 거냐 하면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이 구원의
결과로서 가장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어, 구원의 결과로서 우리가 여러 가지들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실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어요.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거.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가 바르게 살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풍성한 이런 관계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 우리 삶에서 우리가 많은 복을 누리게 되는 것 다들 좋은 것들이에요. 근데 우리가 무엇보다 제일 좋아하고 감사해야 될 것은 뭐냐면은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됐다라는 것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그 의도하셨던 관계를 회복을 하는 겁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사실은 부수적인 것들입니다.이 이 회복된 관계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이에요.이 회복된 관계에 감사하셔야 되고요. 그리고 그 특권을 누리셔야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어버리시면요.이 우리가이 다른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신이 궁극적인 결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친밀한 관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을 여러분 잊어버리시면요. 우리는요 어떻게 되냐면 다시 그 온전함을 얻게 하지 못했던 율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내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겠구나, 뭔가를 해야 될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혹은요. 완전히 반대
극단에서 아예 그냥 무법 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됐으니까 내가 편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이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에 여러분 집중하셔야 되고요.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가이 사랑의 법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님께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이 사랑의 법에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친밀한 교재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자 기도하고 말씀 마칠게요. 어, 하나님 우리에게 참된 제사장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우리를 결국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어, 그러한 제사장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의 성소로 인도하고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리게
하는 제사장을 우리들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삶에 어 여전히 하나님과의 그런 교재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면 우리로 그것을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또 버리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목적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더욱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이 될 수 있게 도우시기를 구합니다. 어 하나님 혹시라도이 자리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기쁨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음 세상에 세상의 것들이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 헛되다라는 것을 알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어들은 말씀을 주님께 이탁을 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