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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운전케 되신 구원의 창시자'라는 제목으로 히브리서 2장 5절부터죠 5절부터 18절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결국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얘기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말씀이에요 왜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했느냐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계속 나누고 있는 겁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나 어떤 신화나 그런 데서도 이런 부분들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잠깐 뭐 그렇게 조금 더 높은 존재가 이렇게 사람처럼 나타나거나 잠깐 그들 사이에 뭐 있었다거나 그런 것들은 있지만 이렇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온전히 인간으로 태어나셔서이 땅에서 사시고 그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러한 내용들을 우리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요 사실은 그래서 어떻게 보면이 성육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는게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이제 핵심 열쇠가 된다라고도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이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그래서이 성육신을 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에 대해서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그리고 그들이 받은 그 구원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지금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이 예수님의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성육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계속 다양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요 고난으로 온전케 되신 구원의 창시자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제목을 그렇게 잡은 건데요
고난을 온전케 대신 구원의 창시자이십니다 우리와 같이 되셔서 구원의 길을 여신 거죠 구원의 길을 여시고 영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요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요 또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라고 말씀을 해요 또 그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되셔서 그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을 멸하시고 또 우리를 죽음의 저주해서 해방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 죄를 속량하셨을뿐만 아니라 또 우리 우리가 시험을 절대 능히 도우신다는 것도 배우게 될 겁니다 예수님은이 성육신을 통해서 새로운 이름을 얻으셨다 그랬어요 그렇죠
구원의 창시자 또 거룩하게 하시는이 거룩하게 하시는이 또 해방자라는 그런 새로운 이름들을 얻으셨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대제사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셨다라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될 겁니다 본문을 읽어볼게 17절 18절입니다 짧으니까 다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대제사장이신이 예수님께서 그 하신 일들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이제 뒤에 나오는 말씀들에서 꽤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그래서 오늘은요 말씀 자체에서 말하고 있는요 두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 조금 집중해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지금의이 당시에이 당시에 구원받은 자들 환란과 유혹 가운데 있었던 그 구원받은 자들 그리고 같은 환경이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 함께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말씀이요 그러므로 시작을 하죠 그러므로 그러니까 지금까지이 성육신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다 했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얘기했던 그런 것들 때문에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범사의 형제들과 같이 대신 이것이 성육신을 풀어쓴 것이고요 그것을 마땅하다라고 표현을 해요 마땅하다 10절에서는요 비슷한 맥락에서 합당하다라는 표현을 썼었어요 10절 제일 끝에 보면은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하나님께 적합한 일이었다 적절한 일이었다
그렇게 표현을 했었는데요 여기서는 마땅하다라고 얘기를 해서 조금 더 그 당위성이 강조가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의미에요 빚을 진 사람은 빚을 어떻게 해야 돼요 갚아야 되는 거죠 빚을 갚으면 좋은 건가요 물론 빚을 갚으면 좋은데 좋은 건데 근데 빚을 갚으면 좋은 거고 안 갚아도 할 수 없는 거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빚을 줬으면 빚을 갚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 똑같은 단어가 여기 사용이 된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셔야만 했다라는
의미에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을 그 죄의 결과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을 하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들을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려면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범사에 그러니까 모든 면에서 모든 면에서 형제들 우리들인 거죠 그렇죠 구원받은 자들과 인간들과 같이 되셔야만 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라는 거예요이 말이 여러분 아무렇지 않게 들리면 안 돼요 굉장히 놀라운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는게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되는게 뭐 합리적이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렇게 하 셔야만 했다는 겁니다
누가요 누가 예수님이 예수님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하나님의 아들 이시잖아요 그렇죠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신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시고 자기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그런 분이세요 그런 하나님이 하셔야만 하는게 있을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하셔야만 하는 것이 있을까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강제적으로 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여러분 생각해 보면 돼요 그런 일들이 있을까요 그럼 어떤 상황이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쩔 수 없는 상황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그러한 하나님보다 더 강한 존재 그러한 존재들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만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냐 하면 바로 하나님 하나님
자신이세요 하나님 자신밖에 없는 겁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범하지 않으시죠 그렇죠 죄를 범할 수 없으세요 죄를 범할 수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질서의 하나님이 질서를 깨지 못하십니다 그게 그러니까 강제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셔야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 수 있느냐 뭐 이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이 자기가 들어올릴 수 없는 무거운 바위를 만들 수 있느냐 그거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은 전능한게 아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런 문제가 아닌 거죠 그렇죠 이것은 그러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의 문제 하나님의 속성의 문제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그 속성의 일관성의 문제입니다 그것에
어긋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할 수 없다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요 그럼 그런 맥락에서 지금이 말을 보면은 예수님이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 그렇게 되셔야만 했다라는이 말은요 하나님의 그러한 거룩하신 속성에 따라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만 했다는 말이 되는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만 됐다 하나님의 그 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뭐였다는 얘기예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시는 것 뿐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그런 질문들을 하실 수 있어요 굳이 예수님 왜 그렇게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셨을까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그 무궁한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 안에서 이것이 유일한 답이었다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신 것에 그 대신 그 측면에서 범사에라는요 단어를 지금 강조를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여기다가 이렇게 굵은 글씨로 하고서 밑줄을 권하지만요 당시에 이제 헬라어에서는 그렇게 할 순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요 단어를 어떻게 했냐면 제가 앞으로 끄집어 왔습니다 범사에 범사에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다라는 부분을 강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충 대충 그냥 우리와 같은 경험을 좀 해보시면 되는게 아니었던 거죠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셔야만 됐습니다 사람처럼 그냥 보였으면 됐던게 아니고 뭐 사람 같은 요소가 조금 있으면 됐던게 아니고 그렇다라는 겁니다
인간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인간인 구원자가 되셔야 했다라는 말이 돼요 여기까지 말씀을 이제 생각을 해보면요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셔야 했었던 그 근본적인 원인 그 원인이 있다면 그러니까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면 인간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죠 우리들이 타락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하신 거잖아요 우리가 죄의 문제가 바로이 모든 일들에 근원에 있다라고 우리가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물론 이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바들이 있겠지만 이제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생각을 해보면은 우리의 죄의 문제가 가장 근본에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졌기 때문에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통치하지 못하게 된 거고요 인간이 죄를 졌기 때문에 우리가 영광이 아니라 멸망을 향해서 가게 된 거고요 인간이 죄를 졌기 때문에 우리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원수가 된 거고요 인간이 죄를 졌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의 세력의 사로잡혀서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요 말씀을 살펴보면서이 죄에 대한 문제를 계속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의 죄의 문제가 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인간이 되셨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런 얘기들을 계속해서 했었습니다
그런데이 본문 자체를 보면요 죄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이 지금까지 없어요네 지금까지 죄에 대해서 언급된 것은 없고 그 죄의 결과로서 우리가 받아들인 그러한 문제들만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문제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이 됐고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라는 그런 식의 논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니까 정작이 죄 자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이제 그런 부분이 빠져 있는 거죠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이 죄를 어떻게 하셨느냐 이제 그 부분에 대한 답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답이 이제 오늘 본문에서 간략하게 나오는 거고 이어지는 히브리서 말씀에서 자세하게 나올 겁니다
특별히 7장부터 10장에서 거의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는데요 그래서 오늘이 말씀은요 그것에 대한 아주 간략한 소개라고 할 수 있어 예수님께서 죄를 어떻게 하셨냐에 대한 아주 간략한 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요 예수님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대신 그 죄하고 관련된 아주 중요한 목적에 대해서 이제 말을 할 겁니다 그 목적이 뭐냐면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결과로서 예수님께서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고 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십니다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셨어요 제사장에 대해서 먼저 좀 생각을 해보면요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뭐 중재자라고도 표현을 하는데 중보자 하여튼 중재자가 됩니다 그러한 비슷한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선지자라고 불렀어요 선지자 선지자하고이 제사장 둘 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는 것은 똑같아요 근데 약간의 그들이 어느 쪽에 조금 더 이렇게 뭐랄까 편을 든다라고 얘기를 해야 될까요 어느 편에 조금서 있느냐가 차이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어느 쪽에서 있는 거 같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봤을 때 어느 쪽에서 있는 것 같아요 사람 하나님 사랑 선지자는 생각해 보시면 어떤 일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랑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선지자들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선지자는 하나님의 편에서 있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해주는 선포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책망하기도 하고 경고하기도 하고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대변하는 역할들을 했었던 사람들이 선지자입니다 제사장은 근데 생각해보면 반대죠 그렇죠 제사장은 사람의 편에서 있어요 그래서이 사람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께 말하는 그러한 역할을 했었던 사람들이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을 대변하는 대표하는 역할을 제사장이 했다라는 거예요 그런 면이 이제 선지자고 제사장하고의 그 역할에서 약간의 차이인데 물론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지자가 선지자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 경우들도 있죠 중부에서
기도하는 경우들도 있고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말씀하셔서이 제사장이 말을 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근데 원론적인 측면에서 이제 고러한 차 있다라는 거죠 이제 선지자 같으면 이제 하나님 편에 서서 이렇게 백성들을 향해서 얘기를 했다면 제사장은 인간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을 하는 그런 역할을 했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어쨌든 그렇게 때문에이 제사장은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인 거예요이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8장을 보시면은 이제 의복 제사장이 있는 옷에 대한 그런 말씀이 있는데이 대제사장 같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특별한 옷이 있었고요 그 옷을 입어야 됐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뭔가 거룩한 옷을 입어서 나는 너희들하고 다른 사람이야 그런 것들을 나타내기 위한 그러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이 사람들이 그런 특별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역할을 한 거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이제 그 의복에 중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이 겉옷 위에 이제 우리가 볼 때 약간 앞치마처럼 보이는 옷을 하나 그 위에 이렇게 덧입게 돼 있어요 혹시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그것을
근데 그 천을 앞뒤를 만들고 그것을 이렇게 어깨에 견대라고 하죠 그렇죠 견대를 통해서 이렇게 연결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그 견대에 보면은 견대에다가 호마노라는 보석을 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석에는 어떻게 하라 그랬냐면 하나님께서 그 각각의 보석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여섯 개씩 적어서 그 견대 위에 달게 했습니다 그리고요이 가슴에서 이제 판결 흉패라는 것을 달게 되어 있는데 거기에도 보석이 12개가 달립니다 그리고 그 12개에 뭐가 써 있을까요 동일하게 12지파의 이름이 거기에 써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이 제사장이 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죠
백성들의 이름을 그들의 어깨에 메고 그들 가슴에 붙여서이 백성들을 내가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이이 이스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이 대제사장이라는 사람 제사장들은요 단순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 뭐 제사 지내는 사람 그런 역할을 했었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역할을 했었다라는 겁니다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렇게 나갔다라는 거죠 1년에 한 번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대제사장이에요 대제사장 대속제일의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가는 것도이 사람이 뭔가 특별해서 나만 나만 나갈 수 있어 그런게 아니에요 그쵸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겁니다
근데이 사람이 대표해서 나가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사람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어서 예수님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사랑이셨기 때문에이 사람의 대표로서의 자격을 가지십니다 사람의 대표로서의 자격을 가지십니다 뒤에 보면요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을 하는데 제사장들도 자기 죄 문제가 있다 그래요 자기 연약함이 있다라고 얘기해요 그래서 온전한 대표가 되지를 못해요 근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시죠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그분은 죄가 없으신 죄가 없으신 그리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대제사장으로서 일을 하는데 근데 그 대제사장을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네 발음하기가 쉽지 않죠 대제사장 무슨 의미냐 하면요 예수님께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기 싫은지 억지로 하고 있는게 아니고 혹은 잘 하고 싶은데 잘 안 되고 그런 것도 아니다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이 땅에서의 삶 그리고 그 예수님의 죽음이요 예수님이 이렇게 자비하고 신실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증명을 합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오셔 가지고 대충 그냥 할 일만 하고 가자 그러면서이 땅에 계시지 않았었어요
하기 싫은 일을 부모가 시켜 가지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자녀들처럼 그렇게이 땅에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요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셨습니다 그래서 죄로 고생하는 우리들을 찾아오신 거예요 스스로 찾아오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를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낮춰서 우리 와 같이 되셨고요 우리가 같은 그런 삶을 예수님은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표자로서 우리의 대표자로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께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사를 드리신 겁니다 자기가 스스로 재물이 되셨죠 그리고 여기서 또 끝이 아니에요 예수님은요 이미 내가 할 일은 다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너네가 알아서 살아라 그렇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렇죠 예수님을 계속해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니까 자비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자비한 분이 아니시라면 이러한 일을 하실 이유가 없는 거죠 근데 그렇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신실한 분이 아니시라면 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누구 편에 서시는 거예요 우리 편에 서시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을 때 선지자 제사장의 차이 예수님은 우리 편에 서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자비와 신실함으로 일을 하셨고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이제 두 가지로 얘기를 해요 하나는 뭐냐면 죄를 속량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시험 중에 돕는 일입니다 죄를 속량한다라고 여기서 말씀을 하는데이 속량이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생각할 때 속죄 혹은 뭐 대소 이제 그런 속자 들어가는 표현들 있잖아요 그거와 이제 같은 것으로 유희열 정도로 생각을 하실 텐데 사실 여기 이제 사용된 표는 그거 이제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이 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때 그리고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생각하는데 그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어떤 의미냐 하면은 들어보세요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문제를 만들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문제를 죄가 만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기도 하는데 그것과 동시에 죄를 또 미워하기도 하세요 죄라는 거 자체를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거예요 죄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공이라고 불러요 하나님의 공이 계시록에 대해서 이제 우리가 계속 말씀을 계시록 말씀을 배우고 있는데 거기에 뭐 심판에 대한 말씀이 끝없이 나오잖아요 그렇죠 그 심판에 대한 말씀이 사실 모를 보여주고 있냐면은 하나님의이 죄와 죄인 태도를 보여준다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 자비하심을
거두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인내를 끝내셨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이 죄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지 그런 것을 우리가 계시록을 통해서 볼 수 있다라는 거죠 구원받은 우리들은요 그것을요 좀 남 얘기처럼 그렇게 계속들을 수도 있어요 이건 나하고 상관없는 얘긴데 그렇게 여러분들을 수도 있는데 사실 여러분 생각하셔야 될게 뭐냐면은 그것이 우리가 직면할 미래였다는 거예요 누가 아니었으면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으면 그것이 우리가 직면할 미래였다라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자리에 서셨다라고 얘기를 하죠 그리고 그 예수님께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졌다라고 얘기를 하죠 그러면 그 예수님께서 마주하셨던 그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은 모였겠어요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 계시록 말씀에서 보고 있는 그러한 말씀들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한테 그때만 우박이 쏟아졌고 그런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그러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우리가 읽기조차 버거운 그러한 무서운 진노가 예수님에게 쏟아졌었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마주할 진노가 그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 진노를 대신하셨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측면에서만 생각해보면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굳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 여러분 드실 거예요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이라면 인간이 그냥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 그 죄가 문제가 된 해도 하나님이 사랑이면 그냥 그 용납하고 받아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여러분 드실 수도 있어요 왜 그러냐면 우리도 종종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린 다른 사람들의 어떤 죄나 잘못에 대해서 그냥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내가 입원은 그냥 봐줄게 이번 그냥 내가 눈감아 줄게 내가 덮어줄게라고
하면서 우리가 그걸 받아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도 그렇게도 하실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이시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할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우리는 드는 거죠
이것을 우리가이 속량을요 죄의 씻음 혹은 죄 사함이 비제 빚을 탕감 받는 거 죄의 빚을 탕감 받는 것 그런 측면으로만 이야기를 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가 사실은 바로 방금 했었던 그 얘기예요 그러니까 단순히 죄의 실습만 필요하고 제 사항만 필요하다면 굳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어도 됐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눈감아 줄게 죄 없는 걸로 해줄게라고 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요 실제로 20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강력하게 주장했었던 부분이에요 속량이라는 단어는 이거는 죄 시스입니다 죄 사하입니다 라고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리고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우리 전에 이제 말씀 시간에 정의 목사님 얘기하셨던 거 라벨 목사님 같은 경우에 사랑이 승리한다 러브 윈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결국은 사랑이 이기니까 죄 같은 거 하나님께서 그냥 눈감아 주실 수 있다라는 얘기까지 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이 백성의 죄를 말씀하셨다고 말을 하는데 그 안에 당연히 죄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맞아요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씻어 주셔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닌 거예요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 말에는요 뭐가 또 들어 있어야 되냐면은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이 들어 있어야 되는 하나님의 공의에 완성 하나님의 진노의 문제가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심판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드려졌을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 제물로서 예수님이 드려졌다라는 것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적으로요이 죄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멸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우리가 멸망에 이르는 겁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죽어야 되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이유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에서 우리가 설명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롭지 않은 분이셨다면 애초에이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도 없을 거고요 멸망이라는 것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면은 구원이라는 것도 필요하지 않고요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할 이유도 없는 겁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어야 될 이유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셔서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요 심판을 하셔야 되는 그런 분이신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인 겁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될 그 궁극적인 문제가 사실은 거기에 있고요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을 들으신 것으로 해결을 해 주셨다라는 겁니다 로마서 3장 23절부터 26절 말씀에 보면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릴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같은 단 어가 나오죠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그러죠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해지는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여기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공의로우심이 관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도 의로우신 분으로서 계속해서 남아 계시고요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화목 제물을 드리셔야 했다라는 얘기예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범사에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셔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시고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요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죄에 대해서 진노하지 않으세요 우리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저장하여 뒤에 가면 믿는 자들이 당하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말을 해요 징계에 대해서 분명히 말을 하는데 근데 그것은요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행하는 일이지 재판관으로서 죄인에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거 타고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세요 하나님이 의로우십니다
그래서이 죄에 대해서 한번 죄에 대해서 그 문제가 해결됐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시 묻지 않으십니다 다시 그것 때문에 진노하지 않으시고요 그것 때문에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8절 보시면 여러분 잘 아시는 말씀인데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뭐 하사
의로 의사예요 의로 의사 미쁘시고 사랑하사가 아니라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는 그 궁극적인 그 바탕이 있는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라는 거죠 왜 그러냐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미 당하신 진노가 있는 거죠 예수님께서 이미 당하신 진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노하지 않으시고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심판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할 수 있는 거고요 하나님과 영원한 화평을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셔야 돼요 잘 여러분이 이해를 하셔야 돼요
고난 중에 있었던이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이것이 어떠한 의미였을까 그들에게는 이것이 정말로 확고한 믿음을 줬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돼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을 받았다면 그러면 우리 죄는 속량된 겁니다 그렇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 죄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를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 내가 어떤 환란을 만나고 있다 그럴 때 여러분이 최소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뭐냐면은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가 아니다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지금 진노하고 계셔서 나를 심판하고 계신 것이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이제 구약의 그 욥기 성경 공부할 때 이런 말씀을 좀 드렸었는데 욥의 탄식을 가만히 읽어보면요 욥은요이 현실이 너무나
고생스럽고 힘드니까 마치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자기 적이 돼서 자기를 지금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꼈다라는 것을 우리가 욥의 탄식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진노가이 욥에게는요 아버지의 징계로서 여겨졌던 것이 아니라 마치 적군이 원수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었고 재판관의 형벌처럼 그렇게 느껴졌었습니다 욥은요 분명히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근데 그에게 드러났던 계시 그리고 약속이 우리하고는 달랐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욥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진노하고 계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 십자가 이후를 살고 있는 겁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해야 된 자들이 된 겁니다 우리는요 우리는 그래서 그러한 고민을 그러한 유혹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이 히브리서의 독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고난을 당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들게 사셔도요 여러분의 종착지 여러분 인생의 종착지가 멸망으로 갈 것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으셨다면 그렇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진노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여러분 드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지금이 제일 힘든거다 지금 여러분이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 때요 지금이 제일 힘든 내 인생에서 내 영원한 삶에서 지금이 제일 힘든 때다라는 생각을 여러분 하시기 바랍니다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들에게 제일 힘든 날이 될 겁니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래는 정확히 그 반대였어요 우리의 운명이 그 반대였습니다 지금이 우리들에게 제일 좋은 날이고요 우리 그는 죽고 나면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멸망 영원한 심판 하나님의 진노였었잖아요 근데 그것을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바꿔 주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힘든 것은요 지금 그것이 여러분들의 영원한 삶이 있으면 제일 힘든 때가 그때이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범사에 범사에 우리와 같이 되신 겁니다 여러분 그 사실을 기억하시고요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지금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정말로 믿는 분들이라면 그럴 수 있는데 근데 예수님은 자비하고 신실하신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현재로 지금도 우리들에게 그렇게 동일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현재의 삶을 더 도와주고 계십니다
우리 연약함을 아셔서 그런데요 시험 중에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았고 18절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저는이 말씀을 읽으면서이 히브리서 저자가이 얘기 정말 하고 싶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은이 독자들이 지금 시험을 당하고 있고 지금 유혹 가운데 흔들리고 있고 얼마나 고통 가운데 있는지 아니까 그이 말을 정말로 하고 싶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 받는 자들 너희들을 예수님께서 도우실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예수님의 범사에 너희들과 같이 됐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범사에 모든 면에서 그것을 강조를 했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가능하셨으니까 모든 면에서 시험 받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여기 말을 이제 가만히 보시면 먼저 예수님이요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어요 그렇죠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다 여러분이 말이 되게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데 우리하고 굉장히 다른 말이다라는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되는데 우리는 시험을 받으면 고난을 당하는게 아니라 그냥 죄를 짓습니다 그럴 때가 굉장히 많은 시험을 당하면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했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그 시험 그 시험을 계속해서 견뎌냈다는 의미인 거죠 그렇죠 그 시험에 무너지지 않고 그 시험을 계속해서 견뎌냈다는 겁니다 그 시험을 내가 대적하고 견디지 않으면 사실
고난이라는 것은 없어요 여러분 욥을 생각해 보세요 욥이 시험을 견디지 않았으면 고난이 있었을까요 없었을 거예요 근데 처음에 사탄이 찾아와서 욥의 시험했을 때 그때 그냥 거기서 아 저 하나님 안 믿을게요라고 해버렸으면 그 뒤로 욥이 더 추가적인 고난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했다는 얘기는요 계속해서 그것을 견뎌냈다라는 얘기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40일에 40일간의 그런 금식의 기간을 마치시고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때도 사실은 똑같아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사탄이 얘기를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그냥 돌로 떡 만들어서 드셨으면
고난은 없었을 겁니다네 근데 그것을 거절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배고픔을 예수님은 더 견디셔야만 했었던 거죠 계속되는 시험에서도요이 사탄은 예수님께 십자가보다 더 쉬운 길을 계속해서 제시를 했어요 성전에서 뛰어내려 봐라 그래서 네가 메시아인과 사람들에게 증명해 봐라 굳이 십자가에서 죽고 해서 그럴 필요가 있냐 그냥 여기서 한번 뛰어내리면 사람들이 너 메시아를 인정할거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사탄에게 절하라고 얘기를 했죠 절하면 내가이 나에게 넘겨준 거 이거 다 여기다 다 너에게 줄게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쉬운 길인 거죠 쉬운 길입니다 그런 것을 사탄이 제시를 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견디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신 겁니다 그 남은 기간 동안이 땅에 살면서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셨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께서 그 겟세마리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어요 그 기도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자세에게 묘사가 되어 있는데 정말로 예수님의 그 모든 그 삶의 모든 순간에서 그만큼 예수님이 간절하게 이렇게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기도하신 적이 있었을까 없었어요 그렇죠 근데 그 십자가를 앞두시고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발 좀이 잔을 내게서 옮겨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면요 그 고난이 너무나 크다라는 것을 예수님이 알고 계셨기 때문인 거죠 그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하는 건 예수님 입장에선 정말로 단 한 순간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고난이었습니다 분명히 고난이 있었어요 시험이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그 시험에 넘어지지 않았을 때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고난이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고요 고난을 선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평생이 그러셨어요 예수님은 범사에 우리와 같은 몸으로 그렇게 시험을 받으시구요 견디시면서 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으로써 그런 분으로서 지금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다라고 지금이 히브리서 저자가 말을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 그런 생각해요 여러분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는데 예습은 죄를 범하지 않으셨는데 예수님 죄를 범하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냐라고 그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 말은요 이런 말하고 똑같아요
시험 100점 맞은 사람이 어떻게 50점 받는 사람이 도울 수 있냐라고 묻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문제를 치려고 본 적이 없으면 문제를 맞출 수 있게 도울 수 없나요 그렇지 않죠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 받는 자를 도우신 다라는 말은요 기본적으로이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도우신다라는 의미고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입장에서이 모든 시험을 이기신
분으로써 능히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제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라는 말을 여러분은 예수님은 우리처럼 시험 받지 않은 것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예수님 우리처럼 유혹 받지 않은 것으로 그렇게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신 거지 시험을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오히려 그 시험을 계속해서 견디셨기 때문에 더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100kg의 무게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00kg을 들어본 사람일 거 아니에요 그쵸 50키로만 밖에 못 드는 사람은요 100kg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합니다 그 전에 포기한 사람은요
100kg의 무게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라는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요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당신 그 시험은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그 시험에 가장 높은 강도를 예수님께서 경험하셨다라는 의미지 예수님이 그 시험이 얼마나 큰지 모르신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신다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래서 웨스트 코시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분이 당한 시험을 통해 죄를 동정하심은 우리의 죄를 우리의 죄를 동정하심은 범죄의 경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유혹의 강도를 경험하는데 좌우되는데 그 완전한 강도는 무제한
자만이 알 수 있다네 아까 제가 그 무게를들은 것을 얘기했는데 예수님 100키로 1000km 만 키로 계속해서 들어 올리신 거고요 그래서 그 무게를 알고 계신다라는 겁니다 유혹에 넘어지는 자는 최상의 압력을 겪기 전에 굴복한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분 착각하지 마셔야 돼요 죄가 없으시다고 말할 때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시험을 당하셨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요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거예요 그리고 그 시험을 견디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도우신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시험 당할 때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우리도 욕처럼 괴로워하면서 때로는 원망할 때가 있어요 불평이 우리 입에서 그렇게 나올 때가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이 맞는지 혹은 여기 말씀처럼 정말로 예수님께서 나를 돕고 계신 것이 맞는지 그런 생각 여러분 드실 때가 있어요 뭐 의심하는 것까지는 아닌데 진짜 모르겠다 나 진짜 모르겠다 그런 생각 여러분 들 때도 있습니다 리처드 필립스라는 저자가이 단락에 대한 주석 끝에 요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조금 긴데 제가 좀 읽어 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정리를 했냐면요 하나님의 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온갖 피로를 충족하는 완전한 구주가 되기 위해 우리와 같아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불평은 참으로 공허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이 고뇌의 세상 가운데서 탄식하면서 늘상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어째서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제껏 요청하거나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이 땅에 흙먼지 속을 걸으셨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이 무덤 앞에서 우셨으며 생명의 떡이신 하나님이 배고픔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이 약한 자와 지친 자 죄인 및 세리와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보다
성경에서 더 아름다운 장면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죄로 상처 입은이 세상을 괴롭히는 가시를 취하셔서 자기 머리에 쓰실 면류관을 만드셨습니다 사랑으로 팔을 벌리시므로 창조물을 빗던 손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정복하려는 모든 것을 정복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해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다라는 겁니다 우리 죄를 속량하셨고요 지금도이 죄와 싸우고 있는 우리들을 계속해서 돕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고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이 되어서이 시험을 견디면서 고난을 받으라라고 그렇게 성경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게 예수님께서 도우십니다 죄로 인해서 여전히 넘어지고 고통받는 우리를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도우시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뭐냐면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것을 우리가 진리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3장 1절을 보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얘기를 해요 히브리서 저자가 그러므로 함께 하늘에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신이 예수님 그 고난을 통해서 온전하게 되신 구원의 창시자 그 예수님을 여러분 깊이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지금의 그 고난의 삶에 대한 해답이 될 겁니다 기도하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셨고 왜 그렇게 되셨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셔서 참 감사드립니다 참 생각할수록 우리가 우리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이 희생이 참 우리가 매번 기억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어쩌면 우리들
입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전달이 되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인지 우리가 이런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에게서 거두게 하셨고 또 지금도 우리 함께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잊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에게 고난의 삶 가운데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며 살 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길 원합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들은 말씀을 주님께 의지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