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의 부족함을 비추는 말씀의 거울

최종혁 · 2026.08.28 · 누가복음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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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율법교사는 불순한 의도(“시험하여”)로 최고의 질문(“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25절). 이에 예수님은 그의 전문성(“율법”)을 고려하여 답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가 ‘관찰’한 것과 그에 대한 그의 ‘해석’을 물으신 것입니다. 율법 교사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27절).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셔서 그가 정확히 답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도 이어서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29절).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건데, 기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한 분이시니까 어려울 것이 없지만, 이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니 어디까지 사랑해야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보면(29절), 아마도 그는 이웃의 범주를 가장 넓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사랑해야할 이웃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누구든”이라고 답하신 것입니다. 사랑해야할 이웃과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웃이 나누어져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사랑해야하고, 누구에게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원수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이 말하는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율법교사에게 명하시며 이 대화를 마치셨습니다(37절).

이 대화는 예수님을 찾아 왔었던 부자 청년과의 대화의 양상과 동일합니다. 율법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부했던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교사는 자신이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말씀해주셔서 그가 율법 앞에서 죄인임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실제로 율법을 행해서 살 수 없는 자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율법교사는 “저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자입니다.”라고 정직하게 반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과 온전함을 말해주어 우리 자신의 실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스스로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은 온전한 착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을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거룩할 수 없으니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옷 입으라고 하십니다(칭의). 그리고 나서 그 거룩하심을 닮아가라고 하십니다(성화). 나의 온전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온전하심을 바라보며 닮아가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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