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하나님의 말씀”이 주제이지만, 그 배경에는 시편 기자의 “고난”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그 두 주제가 잘 드러납니다. 시편 기자는 세상에서 거짓으로 비방을 당하고 공격을 당했습니다(69절). 아마도 다니엘의 경우가 여기서 묘사하는 상황에 잘 부합할 것입니다. 지혜가 뛰어났던 다니엘은 총리와 고관들 위에서 전국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다니엘을 총리와 고관들은 시기했습니다(단 6:3-4).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행한다는 것을 이용하여 그를 고발하여 사자굴에 던져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니엘은 말씀에 따라 행한 것 밖에 없는데, 그것이 그에게 큰 고난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는 ‘왜’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의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 시편 기자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그는 오히려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며 고난 때문에(덕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71절).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더 좋다고까지 말합니다(72절). 말씀 때문에 고난을 당했지만, 말씀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눈으로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글자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말씀임을 고난을 통해 배우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더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편 기자를 붙들었던 것은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신다”는 진리였습니다(68절). 주는 선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묘사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도 고난 중에 여기서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 선을 행하고 계신지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선대하신 것이 맞지만(65절), ‘지금’도 그러신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고난을 당하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선하시고 선을 행하고 계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고난을 유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했고, 말씀으로 이끌었고, 말씀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고난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말씀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선을 행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고난은 오히려 말씀을 증명하며 우리로 말씀에 더 가까워지게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선을 행하심을 믿고, 말씀의 능력을 더욱 경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시 1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