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대한 그의 감사를 기록한 후에 바로 그의 기도의 내용도 기록했습니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을 성도들에게 알릴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감사와 기도를 바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의 성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성도들이 해야한다는 점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을 감동시키셔서 이 내용들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감사와 기도의 내용 자체가 골로새 교회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또한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에베소서에 기록된 기도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 곧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단순히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다른 거짓 신을 섬기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짓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과의 거래를 생각할 뿐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신을 만족시키면,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신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거래가 아니라 교제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만약 사업 상 어떤 거래를 한다면 마음으로는 상대방을 미워하든 말든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나쁜 일입니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 교제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비싼 선물을 준다고 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마음을 전혀 알 수 없는 선물은 오히려 더 기분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어떤 강력한 기운이나 힘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요일 1:3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런 교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앎’입니다. 알지 못하면 교제할 수 없습니다. 교제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을 더 알아가는 것이고 그 지식에 따라 상대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알고 그 앎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계속되는 기도의 내용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어떻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 위에서 합당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항상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