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여 세운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7절에 따르면 아마도 에바브라가 이 교회를 개척했던 것 같습니다. 2:1에 따르면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을 직접 본 적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했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3절).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성도를 사랑하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4-5절). 이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이들이 들은 결과였습니다(5절). 복음이 이들에게 이르렀을 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열매를 맺으며 자라갔던 것입니다(5-6절). 이것이 바울에게 어떤 직접적인 이득을 가져왔던 것이 아닙니다. 혹은 골로새 교회와 바울이 직접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참된 복음이 이들에게 전파되고 그 가운데서 열매 맺었다는 사실에 바울은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고 자라는 것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6절). 처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던 오순절 직후나,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때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전파되던 복음이 사마리아인에게도 전파되었고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지만 결과는 항상 동일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고 자랐습니다.
언제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었느냐 입니다. 사람들을 얽어매거나 혹은 반대로 사람들을 방종하게 하는 거짓 복음이 아니라, 사람을 율법에서 자유케 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하는 참된 복음이 전파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참된 진리의 복음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하지 않고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를 돕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참된 진리의 복음은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자는 생각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은혜 베푸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게 만듭니다. 언제 어디에 사는 누구든, 참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자라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2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구원 받은 자라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열매 맺으며 자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거짓 복음을 들었거나 혹은 진리의 복음을 들었지만 제대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구원 받았다는 착각일 뿐, 참된 구원이 아닙니다. 참된 구원의 결과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참된 복음이 전파되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여 열매 맺고 자라게 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계속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고, 그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