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세상 대신 하나님을 선택하는 사랑

최종혁 · 2024.12.05 · 요한일서 2:7-17

본문 글자 크기 100%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한마디로 ‘선택’입니다. 물론 사랑의 다른 요소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가장 강조되는 것은 ’선택’입니다.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을 사랑하기를 계속해서 선택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특별한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사랑하셔서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끝내시고 교회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태초 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이 가시화된 시점이 달랐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으로 선택하셨고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할 때는 이런 사랑의 선택이 항상 강조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 안의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경우 사랑하기는 더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조건은 아닙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 빛 가운데 거하는 자입니다(10-11절).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해야 합니다(15절).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체계를 말합니다. 그런 가치관, 생각, 삶의 방식이 다 여기에 포함됩니다. 어떤 것들은 명확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봤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것처럼, 그래서 하와의 정욕에 불을 붙였던 것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합니다. 내가 좋아할만한 것들,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해줄만한 것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들입니다. 모두 지나가서 사라질 것들이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17절).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런 것들을 사랑하지 않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못해서 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하나님만 사랑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도 조금씩 나의 만족을 채우려는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으로 나를 채워야 합니다.

가끔 이런 말이 너무 과하다거나 율법적이라고 느끼는 성도들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아내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과하거나 지나친 요구가 아닙니다. 사랑은 배타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계속해서 선택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서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