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말에 대한 말씀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할 때도 말과 행동으로 구분할 정도입니다. 교회 안의 은사에 대한 구분도 언어적 은사와 비언어적 은사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이 우리 삶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로 큽니다.
오늘 잠언의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까지 말합니다. 혀, 즉 말에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힘이야, 혀보다는 팔이나 다리가 훨씬 세지만, 혀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세상이 밝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 어떤 말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쉬운게 잘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있고, 순간 순간 떠오릅니다. 실제로 어디에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 쓰리고 아픕니다. 반대로 말 한마디가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기도 합니다. 말에는 정말로 큰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을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과 큰 배를 제어하는 작은 키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약 3:3-4).
이런 면에서 보면 말은 날카로운 칼과도 같습니다. 칼은 잘못 쓰면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까지 하는 범죄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잘 쓰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사랑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의사의 손에 들려진다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칼과 다르게 말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말을 쉽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쉽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잘하려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에는, 특히 잠언에는 이런 우리의 ‘혀’를 훈련할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8절은 ‘남의 말하기’는 별식과 같다고 합니다.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우리는 다 좋아하지만, 결코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13절은 사연을 다 듣기 전에 대답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17절도 비슷하게,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은 양쪽의 말을 다 듣고 해야할 것을 강조합니다. 한쪽의 말만 들으면 항상 그쪽이 맞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20절은, 말은 그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도 강조합니다. 내가 한 말은 열매를 맺고, 따라서 그 열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라고도 말했습니다(약 3:8).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능히 모든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시편의 기도가 항상 필요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나의 말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