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7절)
언제나 중간 쯤 타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명령입니다. 말씀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어쨌든 더 인내하고 참으라는 겁니다. 누가 됐든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합니까?!”라는 항의 같은 질문이 마음 속에서 솟아 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답변도 바로 떠오릅니다. “주님은 언제까지 그렇게 하셨지?” “죽기까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8절)
그럼 또 묻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고 했으니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이 말씀을 읽고 싶지만 이 말씀이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을 압니다. 이 말씀은 관계의 화목에 관한 말씀입니다. 내 편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상대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거든”입니다. 내가 아무리 해도 화목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내 쪽에서는 계속해서 해야합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19절)
“그럼 그렇게 할테니 하나님도 빨리 그 진노하심을 나타내 주십시오”라고 최종 절충안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이신 사실이 떠오릅니다. 나에게만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너무 좋은 분이셔도 모든 죄인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결국 내가 싸워야할 악은 다른 사람의 악이 아니라 나의 악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싶은 나의 악함입니다. 내가 너무 손해보지 않을만큼만 순종하고 싶은 나의 악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나의 악함입니다. 먼저는 그 악을 이겨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세상 속에서 나 혼자 선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절대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내가 먼저 싸워야할 것은 그런 나의 악함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은혜와 용서를 기억하여 나도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악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