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핑계 없이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기

최종혁 · 2024.11.26 · 히브리서 11: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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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항상 부러운 면이 있습니다. ‘저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경험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만 봐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는 바로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그 홍해에 그들을 추격해왔던 바로의 군대가 빠져 멸망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한편으로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믿음과 그에 따른 순종을 더 쉽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모든 경험이 믿음과 상관 없는 것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한 증거들이 보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믿는 사람들도 그래서 그런 특별한 경험을 구하기도 합니다. 믿음에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음 모세가 “믿음으로” 했던 일은 그러한 특별한 경험을 하기 전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히브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세는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죽을 운명이었지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그 운명이 뒤바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 그는 많은 것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을 버린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득이 되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더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선택했던 것은 오히려 고난이었습니다. 수모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였습니다.

모세가 어떤 특별한 기적을 경험했던 것은 아닙니다. 기적이 있었다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모세는 오히려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기적들 전에 이미 모세는 믿음의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을 선택하기 더 쉬웠던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오히려 히브리서의 저자는 신약의 우리가 그런 면에서 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만 바랐지만 신약의 우리는 이미 오신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저자가 논의한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를 보고 있습니다. 약속의 시대가 아닌 성취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핑계될 것은 없습니다. 이것만 있었으면 내가 더 믿음에 따라 살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그만큼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천사보다, 모세보다, 여호수아보다, 모든 구약의 제사장보다, 제사보다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로 충분합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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