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기쁨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 기뻐했습니다(1:4; 4:10).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그 믿음에 따라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 실제로 동참한 성도들도 있었고 물질로 후원했던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전도 사역이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바울은 단지 그것 때문에 기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신실하게 복음 사역에 참여한 것이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 바울은 그가 옥중에 있을 때 그리스도가 전파된 것을 인해서 기뻐했습니다(1:18). 어떤 사람은 바울에 대한 시기와 경쟁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바울로 하여금 시기하게 하거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르게 바울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한 일도 바울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 바울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그로 인한 열매 맺는 삶에 기뻐했습니다(2:17). 성도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곧 예배입니다. 바울은 그 제사에서 자신이 메인이 아니라 단지 부어져서 사라지는 전제와 같을지라도 그들과 함께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기 삶을 쏟아 부어서 교회를 세웠고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되든, 그는 성도들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 바울은 성도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할 것을 강조했습니다(3:1; 4:4). 다른 것으로 기뻐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 있다면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성도의 삶에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상황이나 일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기쁨의 근원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쁨의 근원은 그리스도와 복음, 그리고 교회(성도들)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JOY(Jesus first, Others second, Yourself last)에 따라 기뻐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가 말하는 기쁨은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직접적인 유익이 없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이런 원리에 따라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나에게 직접적인 유익이 없어도 자녀로 인해서 기뻐합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정말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이, 교회가 나의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4:13). 그러니, 못한다고, 불가능하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서 내가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사랑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절대 기뻐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기뻐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확신과 기쁨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