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수건을 벗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기

최종혁 · 2024.06.28 · 고린도후서 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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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에 왔던 거짓 교사들은 아마도 믿을만한 ‘추천서’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 어떤 추천서도 없으니 합당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니라는 식으로 바울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마치 자격증도 없이 병원을 열고 사람들에게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돌팔이 의사처럼 바울을 취급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런 거짓 교사들의 말에 혹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1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추천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겠지만, 고린도 교회에게 있어 바울은 그런 경우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바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변화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안다는 분명한 증거였고, 바울은 그 과정에서 분명한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2절)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바울의 추천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추천서에 서명을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십니다(3절). 그리스도께서 서명하신 누구보다 신뢰할 만한 추천서를 바울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신뢰할 만한 추천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 성령님께서 계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는 역사를 이루고 계셨기 때문입니다(18절).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 안에 성령께서 계시고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신뢰할 만한 추천서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모범이 되어서라기 보다는 ‘변화’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90점 혹은 100점짜리 교회여서가 아니라 10점에서 20점, 30점으로 변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고 있었고, 이는 오직 성령님이 그들 안에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추천서(고린도 교회)를 뭇 사람이 알고 읽는다고 말합니다(2절). 참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다름 아닌 고린도 교회가 바울이 믿을만한 사람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있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또한 믿을만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고린도 교회도 새언약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새언약의 능력을 세상 가운데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변화된 삶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새언약의 일꾼은 말과 삶으로 새언약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선포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도 중요할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계속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굴에서 수건은 벗겨졌는데, 여전히 눈을 감고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밝아진 눈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조금씩 더 닮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생각할 수 없는 변화가 우리 삶에 있을 때, 복음의 능력이, 그리스도가 세상 가운데 선포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대로 된 편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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