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입력에 대해서
항상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동일한 상황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심지어 같은 사람도
같은 일에 항상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한 번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한 번 했다고
그 사람을 ‘진실의 수호자’로 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자주하고
거짓말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 중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거의 거짓말을 하지 않고
혹 거짓말을 하게 되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계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은 좋은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와 같은 말을 합니다.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삶은 왜 저런지 모르겠어라고 말합니다.
나무와 열매의 불일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더 자주 보여주는 ‘보통’의 모습이라면,
‘사람은 좋은데’라는 전제를 버려야 합니다.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라는 전제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열매를 맺고 싶은지가 중요합니다.
좋은 열매를 원한다면 좋은 것을 마음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어서 바로 결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 읽었다고 한 뼘 성장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기도 한 번 했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좋은 것을 내 마음에 두면
그것이 내 말과 행동을 바꾸고
결국 삶을 바꿀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무의 원리입니다.
악한 것을 쌓고 있었다면 먼저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에 선한 것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