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1–11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 세상에서의 상식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큰 자’에 대한 상식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2-44). 세상의 상식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입니다.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지만 결국은 그런 사람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깁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결국 만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나약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이고 으뜸인 자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보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다툼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이 다투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세상의 법정에서 서로를 고발했던 것입니다. 어떤 문제로 그렇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본문의 내용을 보면 시시비비를 따져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을 내리게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었든지, 아니면 상대에게 더 큰 형벌을 내릴 수 있었든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들은 불의한 일까지 행했었습니다(고전 6:8).
어떤 범죄가 포함된 형사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형제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그렇게 하지 않고 세상의 법정으로 가지고 가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보려고 서로 고발하며 다퉜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 6:7) 세상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충고입니다.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냐고 따질 일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한 이유도 제시합니다. “그는 너희 형제로다.”(고전 6:8) 이 사실이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데 있어 다른 상식을 적용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도 친 형제지간이라면 남에게 하듯 하지 않습니다. 좀 손해를 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형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불의를 당해야 한다면 불의를 당하길 선택해야 하고, 속아야 한다면 속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식이 오늘 이 땅을 사는 나의 상식이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