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꼭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21, 23). 장소와 시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여서 예배하는 것(공예배)’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듯이 신약의 교회도 그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명령이 필요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고 그 가치를 찬양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타들의 팬클럽이 생기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콘서트 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넓은 의미에서의 예배라고 할 수 있는데, 예배는 자연스럽게 ‘같이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가수의 팬클럽이 모였습니다. 물론 해당 가수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주인공은 누구여야할까요? 그 가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이는 장소가 그 가수가 사는 곳에서 4시간은 운전을 해야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중요한 콘서트를 바로 앞둔 시간입니다. 그 가수는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데, 해산물 뷔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먹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할 건 해야지”라면서 음향 시스템도 없는데 히트곡을 불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는 듣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또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하나 둘 자리를 떠납니다. 그 날은 그 가수의 생일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이런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드려지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예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배 시간은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지식, 웅변술, 능력을 자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을 무질서하게 다투며 예배했던 것입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싶으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를 받기 원하시느냐입니다. 성경은 우리 예배의 순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드려져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음악이 사용되어야 하고 설교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형식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결정에 있어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주인공이시기에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생각들은 다들 다릅니다. 그래서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이게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신다면 모든 갈등이 사라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생각이고 우리도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내 생각을 하나님 생각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않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고 닮아간다면 우리는 좀 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더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