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아무 문제도 없는 완벽한 교회는 없다는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 드러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개인의 죄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문제는 정말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룹이 나눠지면서 원망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교회의 ‘하나됨’이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아름답게 드러났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한편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땅의 교회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임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였던 사도들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고 바로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런 일들을 자신들이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일들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역할 분담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 일을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3절).
성령이 충만한 것은 영적인 자질을 의미하고 지혜가 충만한 것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은사와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일은 일만 잘 하는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라면 성품이 좋지 못해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되겠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 일정 기간은 괜찮을 수 있지만 결국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인정받는 사람들을 세워 구제의 일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들이 했던 말도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고 말했습니다(4절). 이 말은 구제 같은 하찮은 일은 아무나 하고 우리는 특별한 ‘사도’들이니 기도와 말씀 같은 더 고귀한 일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기도와 말씀 사역이 그들이 전념해야 해야하는 일임을 분명히 한 것 뿐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일차적인 임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든, 일의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할의 차이가 있는 것 뿐입니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고 사람들 모여있는 교회도 마찬가지다’는 말을 개인적으로 참 싫어 합니다. 현실적인 진단일 수는 있지만,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도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인간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우리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가 있음을 세상이 분명히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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