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대로 성령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더하셨고 그들이 예수님께 배웠던 것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특히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들로서 예수님이 바로 성경이 예언한 그리스도임을 확신 가운데 선포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교회가 되어 교회로서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삶을 묘사한 표현들에서 이들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 함께” 있었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백성에게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 날마다 구원 받는 자를 더하셨습니다.
교회에 관한 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교회의 부흥으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많이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그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크게 노력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하기 힘든 일을 겨우하는 것 같은 인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좀 해야하지 않느냐며 다그치는 모습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기쁘게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인 것 같습니다. 일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교회로서 하는 일들에 열정을 가지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 불편하고 힘든 일이라면, 그들과 무엇을 하든 그 일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함께 떡을 떼는 등의 모든 예배가 그저 해야하는 일이어서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섬기고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하고 그러면서 불평이 가득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헌금을 하면서 아까워하거나 혹은 내심 자신의 헌신이 뿌듯하다면, 그 역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태도를 바로할 수 있을까요? 무슨 대단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게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떤 대단한 비법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아마 그들도 어리둥절하며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은 복음이었고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전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이 답인 것은 분명합니다. 복음을 통해 나타난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 그런 복음에 합당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순종할 때, 우리가 함께 이런 삶을 추구할 때, 우리는 다시 교회로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자연스러운 것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시작해야 어느 순간 그것이 다시 자연스러워집니다. 내 삶이, 우리 교회의 삶이, 다시 복음에 합당한 자연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모든 과정에 힘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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