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 나라의 비유
본문: 마가복음 4:21-34
설교자: 조정의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은 모여든 큰 무리에게 ‘씨가 뿌려진 여러 가지 땅의 비유’와 함께 많은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33절), 그중 몇 가지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비유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있다(“하나님 나라의 비밀”, 11절):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26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30절). 각각의 비유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배우고, 그 나라 백성인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대하며 간절히 구하자.
1. 하나님 나라는 모두를 밝게 비춘다(21-5, 33-4)
비유는 진리를 감추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드러내기 위한 도구다. 문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지만, 들을 귀 없는 자는 들어도 완고한 마음으로 불신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지만(34절), 못 알아듣도록 그렇게 하신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33절). 우리말 성경은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로 번역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비유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셨다(34절). 제자들이 누구인가?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으며 따르고자 하는 마음 밭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에겐 하나님 나라에 관한 더 많은 깨달음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무리 예수님에 관하여 좋은 인상, 호감 또는 기대를 가지고 모여들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난 후, 그들의 믿음이나 기대를 걸 만한 분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마음조차 잃어버리고 불신과 반항심 심지어 미움과 분노까지 품고 떠났다(요 6:66).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등불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21-25절).
먼저, 주님은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라고 물으셨다(21절). ‘당연히 등경 위에 두려 함이죠’라는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등불” 앞에 정관사를 써서 일반적인 등불이 아닌 “그 등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가져오다’라는 동사(ἔρχομαι)도 물건이 아니라 주로 사람에게 사용된 단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당신을 등불로 비유하셨다(요 1:9). 그리고 사람이 등불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추지 않고 밝히 드러내셨다고 말씀하셨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22절). 우리말 성경은 “무엇이든 숨긴 것은 드러나고 무엇이든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라고 번역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지금껏 감추어졌지만, 반드시 나타내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하여 복음의 빛을 어둠 가운데 있던 모든 사람에게 비추신 것이다(히 1:1-2):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3:35).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께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2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23-5절). 들을 귀 있는 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으로 그분을 따른다(좋은 땅). 그러나 들을 귀 없는 자는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과 다른 것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좇는다(길가, 돌밭, 가시떨기).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라고 말씀하셨는데(“듣는 말을 새겨들으라”, 우리말 성경), 그것을 한 단어로 “헤아림”(‘측량’, ‘저울질’)이라고 하셨다. 말씀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은 저울질한다. 말씀을 진리로 받을 것인지 거짓으로 배척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계속해서 예수님 말씀을 진리로 믿고 새겨듣지만, 들을 귀 없는 자는 저울질 끝에 그 말씀을 믿지 못할 허황된 이야기로 여겨 거부하고 배척한다.
중요한 건, 말씀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최종 판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듣고 믿음으로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헤아림을 받고 더 받을 것이다. 믿음의 결국인 영혼 구원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얻게 된다(벧전 1:9; 엡 1:3). 그러나 듣고 거부한 이들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나마 누리고 있던 은혜까지도 모두 빼앗기게 될 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감춰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듣고도 거부한 것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밀어낸 것이다. 계속해서 그 마음을 고집하면, 당신은 결국 그 나라 밖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빼앗긴 채.
2.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열매 맺는다(26-29)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듣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고 비유를 시작하셨다(26절). 다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것인데, 이번엔 여러 가지 종류의 밭이 아니라 하나의 밭에서 어떻게 씨가 싹을 틔우고 이삭을 맺고 충실한 곡식을 내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신다. ‘여러 가지 땅의 비유’에서는 열매 맺는 밭과 그렇지 않은 밭을 대조했다면(1-20절), 26-9절의 ‘자라나는 씨 비유’에서는 좋은 마음 밭에서 어떻게 말씀이 열매 맺는지를 가르치신다. 이 비유에서 핵심은 농부와 땅이다. 씨를 땅에 뿌린 농부는 열매를 맺는 비결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27절). 그러면 열매는 누가 맺는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28절).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의 의도는 농부가 아니라 땅이 알아서 식물의 성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듯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의 성장 및 결실을 내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말씀으로 심고 물을 주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신다고 분명히 밝힌다(고전 3:6). 그러므로 첫째,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하여 부담을 갖지 말아야 한다. 영적 출생과 성장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 백성을 부르시고 세우신다. 그런데, 중간 과정을 건너뛰는 희한한 방식으로가 아니라 씨에서 싹, 싹에서 이삭, 이삭에서 곡식으로, 차례대로 자라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자신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타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람도 거듭나게 할 수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조금도 만들어낼 수 없다. 둘 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둘째,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부지런히 말씀을 자신과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농부는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풀을 제거하는 등 충실한 곡식을 맺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성경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복 있는 사람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다(시 1:2-3). 또한 주님의 양들을 말씀으로 먹여야 할 책임이 있는 일꾼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엄히 명령했다(딤후 4:2).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상에 맞서야 할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다(신 6:6-7). 모든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요구했다(골 3:16). 어떤 사람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설교 듣기를 사모하며 성경 공부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묻는다. 실제로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부 맞는 말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2:2).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인격과 삶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절대로 성숙해질 수 없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영적으로 자랄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말씀으로 백성을 양육하시기 때문이다. 착하고 충성된 일꾼처럼 맡겨진 말씀으로 자신과 듣는 이를 구원하라(딤전 4:16). 양질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급하라.
3. 하나님 나라는 작지만 크게 자란다(30-32)
‘자라나는 씨 비유’에서 열매는 개인의 영적 성숙을 가리킬 수도 있고, 복음의 씨로 거두게 될 모든 구원받은 영혼들, 하나님 나라의 모든 백성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래서 29절에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라고 추수의 때를 말씀하시는데, 1)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성도들이(엡 4:13) 결산의 때를 만나 각각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것을 의미하거나(마 25장), 2)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고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끝이” 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마 24:14), 처음엔 예수님을 통하여 복음의 씨가 심겼고 그 복음이 제자들을 통하여 점점 널리 전파되면서 각처에서 복음의 결실을 충분히 맺은 후에 주님이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기 위하여 오신다는 의미일 수 있다(마 3:12). 더 적절한 해석은 무엇일까?
두 번째 비유는 개인의 영적 성숙에 더 강조점이 있다.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 비유는 ‘겨자씨 비유’로도 불리는데(30-32절),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전체의 처음과 나중이다. 그 나라가 처음엔 지극히 작고 약해 보여도 나중엔 엄청나게 크고 강해질 것이란 말이다: 30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30-32절).
어떤 사람은 이 말씀 때문에 성경을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겨자씨”가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작은 씨는 겨자씨가 맞았다. 또한 예수님은 전 세계에 있는 식물의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강조하기를 원하신 것은 그만큼 지극히 작다는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가. 애굽, 앗수르, 바벨론, 그리스, 로마 등 유대인들이 경험한 강대국들은 모두 미약하지 않았다. 땅 위의 모든 나라보다 크고 강력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모든 나라를 쉽게 점령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하나님 나라는 적은 무리로 시작했고 지금도 세상에서 환난과 비방을 당하는 적은 무리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나라는 반드시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으신 예수님 통치하실 것이고, 그분의 발 아래 모든 나라가 굴복할 것이다: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 2:7-9). 계시록도 분명히 말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마르틴 루터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할 일을 충성스럽게 하겠다는 결단이 담긴 격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분명히 멸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희망적인 상황이다. 하나님 나라가 마침내 온전히 실현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날까지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매일 말씀을 심는 일에 충성을 다한다. 가깝게는 내 마음 밭에,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 밭에 말씀을 부지런히 심는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선언하셨다(행 1:8). 모든 제자에게 예외 없이 땅끝까지 갈 것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영역에서 충성스럽게 말씀을 전할 때,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언된다는 말이다(마 24:14).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잠자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게 될 곳으로 여기고, 이 땅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말씀을 부지런히 전하지도 않고 그 열매도 거두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마음을 먹자: “내일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처럼 오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심겠다.” 주가 주신 동산에서 땀 흘리며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다시 오실 주님께 바칠 열매를 가득 안고 기다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