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

본문: 마가복음 3:7-19

설교자: 조정의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회당, 가정집, 산, 바닷가 가릴 것 없이 주께 나온 수많은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셨다(1:38-9; 2:2, 13; 3:7-8). 그런데 주님은 이 일을 혼자 하지 않으시고 함께할 일꾼을 세우셨다. 그래서 어부들과 세리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신 것이다(1:17). 한마디로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①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② 복음의 일꾼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셨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치고 떠나실 때, 이제껏 훈련한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18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예수님이 시작하신 복음 사역—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따르게 하는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주는 잠시 떠나시지만, 아버지께 받은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들이 제자 삼는 일을 할 때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굳게 약속하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복음의 일꾼이다. 첫 제자들에게 위임된 복음 사역은 대를 거쳐 지금 우리에게 맡겨졌다. 예수께서 첫 제자들을 왜, 어떻게 세우셨는지 본문의 사건을 통하여 살펴보고, 우리가 받은 사명을 깊이 되새겨보자.

1. 주님이 필요한 사람들(7-12절)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오다’, 8, 13절). 주님이 필요한 자들과 주님이 부르신 자들이다. 첫 번째 부류는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큰 무리, 많은 무리, 7, 8절). 그들은 가까운 갈릴리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원근 각지에서 몰려들었다(8절). 북쪽에서는 두로시돈 근처, 남쪽에서는 192km나 떨어진 이두매, 동쪽에서는 요단강 건너편, 서쪽에서는 수도인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까지. 주로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다(사마리아, 데가볼리 언급 안 됨).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두매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직접 찾아가서 전도하신다.

수많은 무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은 이유는 명백했다. 그들 모두 나사렛 예수가 행한 “큰 일”, 즉 많은 사람을 고치셨다는 소문을 듣고(8절),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께 몰려왔다(10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받으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군중들을 뚫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던 것처럼(막 5:25), 몰려든 많은 무리,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지려고 그분을 에워싸고 서로를 밀어냈다(9절). 그 무리 안에는 더러운 귀신 들린 자도 많이 있어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셨다(11-12절). 예수님은 자기를 간절히 필요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셨을까? 마태는 이렇게 답한다.

35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5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5-6).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단지 그들이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해서가 아니다.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죄에 시달리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주님이 절실히 필요했다. 오직 주님만이 그들을 육신의 병과 악한 영에서 건져주실 수 있고, 오직 주님만이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실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여 노 젓는 작은 배를 바다에 띄우게 하시고 거기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복음을 전하셨다(9절). 

하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향해있다. 예수님은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한 마리를 잃었을 때,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양을 찾는다고 하셨다. 그 잃은 양을 되찾은 기쁨이 아흔아홉 마리의 기쁨보다 더 크다고 하셨다(마 18:12-13). 그러면서 이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마음)”이라고 하셨다(마 18:14).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함께 찾으라는 것이다. 앞서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은 곧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 9:37-8절). 그리스도의 제자는 곧 “추수할 일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자들이다. 

종종 이렇게 묻는 성도가 있다. ‘왜 구원받은 즉시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여기 남겨두신 건가요?’ 제자의 삶이 쉽지 않고 이 땅에서 겪는 수고와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명백하다. 우리는 추수하라고 이 땅에 남겨졌다. 예수님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 그들을 낚는 어부로 살기 위해 여기 있다. 성경에 복음에 합당한 삶에 관한 명령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그렇게 복음을 살아내서 어둠 가운데 죽은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추라는 것이다(마 5:14-6).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서 한 영혼이라도 생명에 이르는 그 냄새를 맡게 하라는 것이다(고후 2:16).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의 제자 중 많은 이들이 잠자고 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동정의 마음을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빛도 냄새도 잃어버린 채,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추구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은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영혼을 얻는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쏟아붓는 모든 돈과 시간과 노력과 열정이 영혼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찰스 루터가 1877년 쓴 찬송가 가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한다: 

1절 내가 빈손으로 가야합니까?
이렇게 사랑하는 구주를 만나야 합니까?
그분께 드릴 섬김의 날도 없이
그 발 앞에 놓을 열매도 없이 말입니까?

[후렴] 내가 빈손으로 가야합니까?
이렇게 주님을 만나야 합니까?
주님께 드릴 한 영혼도 없이
내가 빈손으로 가야합니까?

4오 주님, 저를 깨워 주소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제가 부지런히 일하게 하시고
주님께 드릴 영혼을 얻게 하소서

2. 주님이 부르신 사람들(13-19절)

주님은 영혼을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아버지께 구하기 위하여 산에 오르셨다(13절).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산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눅 6:12-3). 그리고 열두 명의 일꾼(제자들)을 부르셨다(14절). 그들이 누구인지 간략하게 16-19절에 기록되어 있다: 시몬 베드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나다나엘), 마태(레위), 도마(디두모),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나인(셀롯, 열심당원) 시몬, 가룟 유다(마 10:2-4; 눅 6:14-6; 행 1:13). 이들이 바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하여 예수님이 친히 택하신 열두 명의 최고 정예 일꾼이다(사도, 눅 6:13). 그러나 육신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대단한 일꾼 후보감이 아니었다. 넷은 갈릴리 어부, 하나는 세리, 나머지는 출신도 배경도 알 수 없는 무명인들에, 열심당원이라는 위험한 과거를 가진 제자도 있었다. 게다가 배신자까지…

율법을 밝히 알고 있는 율법 교사나 서기관은 한 사람도 없었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은 바리새인도 없었다. 사두개인처럼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많은 돈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든든하게 지원해 줄 부자도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보통 랍비를 찾아와 ‘나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수님은 반대로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13절).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셔서 그들을 특별히 택하셨다는 말이다. 왜? 제자로 삼을 자격이 충분한 자를 골라서 택하신 게 아니라 택하신 그들을 제자로 직접 만들려고 하신 것이다. 마가는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세우셨”다고 기록하면서 ‘창조하다’, ‘만들다’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를 썼다(포이에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17). 누가 하시겠다는 말인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을 제자로 만드셨는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2)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14-5절). 1)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의 지식만 전수해 주신 것이 아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셔서 육화된 복음, 즉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주님을 알고 배우고 증언하게 하셨다. 2) 주님은 또한 그들을 파송하여 전도하는 훈련을 하셨다(막 6:7-13). 전도 훈련을 통하여 제자들은 복음을 전달하는 기술만 배운 게 아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주님께서 채우시는 것을 체득하게 하셨다. 3) 귀신내쫓고 병을 고치는 주님의 권능이 그들과 항상 함께하는 것을 경험하여 복음의 큰 능력이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범사에 인정하게 하셨다.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에 감사하고 경배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거절하는 이들 앞에서 발밑의 먼지를 떨어내며 영원한 심판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선포했다.

주님은 항상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부르신 제자들은 대부분 육신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9). 우리를 보라. 마찬가지로 지혜나 문벌이 뛰어나지 못하고, 부나 권력이 대단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주님은 복음의 일꾼으로 택하셨다. 가장 보배로운 복음을 질그릇 같은 우리를 통해 전달하기를 기뻐하셨다. 때로 내가 너무 실망스럽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실까?

시몬을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그러나 그는 반석처럼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답은 빨리 묵직하게 해도, 육신의 연약함을 얼마나 많이 보였는가?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다’라고 장담해 놓고, 주가 보시는 앞에서 세 번이나,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을 때 그 연약함의 끝을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2).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붙드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배와 그물로 돌아간 베드로를 찾아와 그를 회복하신다. 그리고 거듭 그에게 복음 사역을 맡기신다: “내 양을 먹이라”(요 21:15; 눅 5:10). 베드로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급하고 충동적인 야고보요한에게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우직하고 충성된 복음 선포자로 만드셨다. 또한 의심많은 도마를 믿음의 사도로 만드셨으며, 자기 유익을 위해 나라를 배반한 마태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로 만드셨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반역을 시도했던 열심당원 시몬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내는 일꾼으로 만드셨다. 승천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아버지께 받으신 권세를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항상 함께하시면서 복음을 전달하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도록 친히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께 나온 자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당신이 응답했다. 그러나 먼저는 주님이 당신을 원하셨다. 당신을 원하셔서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다. 주님은 반드시 당신도 제자로 만드실 것이다. 보배로운 복음을 담기에 합당한 질그릇으로, 복음의 능력과 지혜와 영광을 담아내기엔 한없이 천하고 연약하며 부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당신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아버지께 받은 권세로 주님께서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실 것이다.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지극히 작은 영혼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래서 우리를 영혼을 추수하는 일꾼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권세를 우리에게 날마다 공급하시는 이유가 영혼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위임하신 사명을 기억하라.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영혼을 낚는 일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