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
본문: 마가복음 1:14-20
설교자: 조정의
세례 요한의 증언, 친히 받으신 세례와 시험을 통하여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복음을(14절) 이루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셨다. 마가는 요한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일과(14-15절) 그 복음의 부르심에 반응한 제자들에 관한 사건을(16-20절) 각각 다룬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 있고,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을 통하여 그분께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결단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따르라’라고 복음으로 부르셨다. 당신이 거절한 혹은 순종한 복음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다시 새롭게’ 그 부르심에 반응하라.
1. 예수님은 누구신가?
급진적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가는, 먼저, 세례 요한을 복음의 무대 밖으로 퇴장시키고,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등장시킨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14절). 복음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대는 갈릴리다. 갈릴리는 제주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행정 구역으로, 나사렛, 가버나움, 가나, 디베랴, 고라신와 같은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고, 갈릴리 바다(16절, 충주호와 소양호 중간 크기, 166km2) 또는 게네사렛 호수(6:53), 디베랴라고 불린 호수(요 21:1) 덕분에 어업뿐만 아니라 농업까지 골고루 발전된 지역이었다. 여러 나라 백성이 통행하는 도로가 교차해 군대, 무역상, 외교관들이 다수 활동하였고, 여러 민족이 함께 거주하고,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정치적, 상업적 생활의 중심지였다. 예수님은 민족과 언어와 문화와 사상이 혼합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들 모두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소식,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14절). 하나님의 복음은 특정 민족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지위나 재력, 문화와 사상적 배경도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5절). 두 개의 사실을 공포하고, 이어서 두 개의 반응을 요구하셨다. 먼저, ①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의 복음이 매우 중요한 시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때’라는 것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특정 시점을 가리킨다(카이로스). 하나님의 복음은 창세전에 비밀리에 계획됐고(엡 1:4), 구약 시대 내내 계시되었다(롬 1:2).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에게 그 복음을 나타내신 때가 온 것이다(완료): “25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롬 16:25-6).
②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다(15절). ‘때가 찼다’라는 선언과 함께 예수님이 성취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단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고 대비할 것을 요구하는 전령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친히 다스리실 왕이셨다. 그래서 왕으로서 권위있는 가르침과 권능의 역사를 직접 보이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실제로 가까이 왔다(완료형). 하나님 나라 임금이 친히 그들에게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히 보여주실만큼.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셨고(요 10:25),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0:37-8).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실 왕이시라는 사실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참고. 삼상 2:6).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또한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결국 예수님이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실 왕이신 그분의 백성이 되라는 초청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당신을 따르는 백성이 되라는 급진적 반응을 요구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7-8).
2.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리는 아직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의 후반부를 다루지 않았다. 두 개의 사실은 앞서 다루었고, 두 개의 반응, 즉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가 남았다(15절). 이 부분은 옳게 반응한 제자들의 사례를 통하여(16-20절)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밝히고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반응이 무엇인지 평가해 보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복음으로 모든 사람을 드러내어 초청하셨지만, 동시에 그분의 부르심은 매우 개인적이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보셨다(16절).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셨다(19절). 그들은 모두 어부였고, 동업자로서(눅 5:10) 물고기를 잡는 일에 함께 종사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셨을 때도 그들은 “바다에 그물 던지는” 일과 “그물을 깁는” 일에 한창이었다. 섣불리 이들을 가난한 어부들로 취급하면 안 된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품꾼들을 부리며 제법 규모 있는 어촌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셨다(20절).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초대하신 것이다: “나를 따라오라”(17절). 스승을 찾아가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던 당시 일반적인 방식과 반대로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먼저 제자를 찾아가 그들을 부르셨다.
③ 회개하라: 여기서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에 관한 첫 번째 올바른 반응을 발견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먼저는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좁은 의미에서 ‘돌이킨다’라는 것은 자기 죄를 자백한다는 것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선 전반적이고 급진적인 삶의 방향 전환을 묘사한다. 자기를 위한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회개의 의미를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18절). 심지어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20절).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았다는 말이 아니다(마 20:20).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시 배에 올라 바다에 그물을 던지기도 했다(요 21장). 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즉시(곧) 그리고 완전히(버려두고) 바뀌었다는 말이다.
사도라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걸까? 특히 이들 중 셋은 사도 중에서도 그 유명한 ‘셋’이 아닌가? 변화산과 겟세마네에 특별히 동행한(막 9:2; 14:33).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부르심으로 예외가 없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한다. 자기 재물, 권력, 지위, 업적, 명예, 꿈, 비전, 소원, 욕구는 물론이고, 세베대의 아들들처럼 부모나 형제,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눅 14:26). 물론,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실제로 포기하는 것이 각자 다를 수는 있지만, 만일 주께서 원하신다면 모두 드리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회개는 복음을 받아들인 순간, 한 번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계속되어야 할까?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 박았을 때, 우리는 그가 구원이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가장 먼저 이 말을 했다: “우리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신자들의 전 생애가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뜻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회개해야 한다. 나를 위한 삶에서 돌이켜 주를 위한 삶으로 끊임없이 전환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당신은 오늘 하루가 주를 위한 삶이 되기를 기도하는가? 자녀를 양육할 때, 어떻게든 그들이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가? 이사하거나 이직 또는 승진을 원할 때,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주를 더욱 따르기 위해서인 것이 분명한가? 우리 전 생애는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날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나를 위한 삶을 얻고 누리려는 삶에서 돌이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주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부르심이다.
④ 복음을 믿으라. 마지막 요청은 첫 번째 올바른 반응 곧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의 비결이다. 예수께 돌이켜 전 생애를 바치는 삶이 어려운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 정말 가치 있고 남는 삶이 될 것인지 의심이 들고 불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귀와 세상은 쉬지 않고 우리를 미혹하고 또 시험에 빠뜨려 우리의 방향을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엔 믿음이 요구된다. ‘복음을 믿으라’라는 것은 곧 복음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당신을 따를 것을 요청하시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7절). 물속에 사는 고기를 낚던 어부들에게 이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건지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를 사도 또는 목사로 부르지는 않으셨지만,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마 5:16). 어떤 모양으로 주를 따르는가는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는 모두 각자 주어진 곳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다.
먹고 살기 위한 일도 물론 가치 있지만,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를 복음으로 부르셨다.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 온 천하보다 크다(막 8:36).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얼마나 보배로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만큼 고귀하고 보배롭다. 그러므로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이 된 우리 인생은 전 생애에 걸쳐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후 3:8).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을 자세히 살펴보라: “내가 너희로…되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누가 하신다고 했나?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빚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치 있는 인생이 되도록 만드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복음의 일꾼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모든 지혜와 은사와 능력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등 모든 물질적 필요까지 부족함 없이 주실 것이다(마 6:3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은 오늘날 크게 변질되어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예수께서 일회용 회심을 요구하셨나? 아니다. 지속적인 회심을 요구하셨다. 그런데도 한번 회심하기만 하면 영원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보장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후로는 마음껏 자기를 위해 살아도 된다는 거짓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고 있는가? 주를 위해 살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불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은 예수께로 날마다 돌이킬 것을 요구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복음은 당신이 원하는 삶, 당신이 되고 싶은 것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는 삶, 주님이 당신에게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룬다.
그러므로 날마다 이렇게 고백하라: “주님 내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저의 길을 아시고 저를 빚어주실 것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