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을 모독하는 자

본문: 마가복음 3:20-35

설교자: 조정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복음을 말씀과 권능으로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인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인의 지도자,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요 3:2), 예수님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놀라운 신적 표적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죄 사함의 권세가 ‘나에게 있다’라고 주장하시고(2:10),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안식일의 주인이 나다’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셨으며(2:28), 심지어 “나와 아버지(하나님)는 하나이니라”라고까지 말씀하셨다(요 10:30). 

결국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분명히 결정하도록 계속해서 압박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유대인이 그분을 에워싸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요 10:24). 그러나 예수님은 시작부터 밝히 말씀하셨다. 믿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전달이 불분명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들을 귀 없는 자임을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답하신 거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10:25-6).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그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무섭게 경고하신다(28-9절).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인물이고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 성경의 기록대로 사실이라면, 우리는 ① 예수가 미친 사람이거나 ② 악한 사기꾼이거나 ③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셋 중 하나의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보여주셨는데도, 잘못된 결론을 내린 자들은 분명히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결국 영원한 심판에 이른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침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요 3:18).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는가? 그 믿음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낼 것이다.

1.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는 자(20-2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가 미쳤다”라고 결론 내린 사람들이 있었다(21절). 예수의 친족들,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32절)도 그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선한 동기를 찾자면, 그들은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예수님을 그런 잘못된 오해와 핍박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불신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동기를 헤아린다면, 다른 가족들에게까지 손해를 끼치는 비정상적인 설교를 어떻게든 막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모여든 무리가 있던 집으로 찾아왔고(21절), 집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조용히 불러내서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31절).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30년 이상 한 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동거한 아들, 형, 오빠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어떨까? 그들에게 예수님은 착하고 성실한 가족 구성원이었고 지혜롭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좋은 사람, 선한 선생으로 인정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며 친밀하게 대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은 그들의 상식과 경험을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었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이 가족들에게도 무척 어려움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초기 예수님의 사역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때, 가족들은 유대 지역에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위협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라고 말한다(요 7:3). 선지자로서 고향 지역만 다니지 말고,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요 7:5).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들처럼 예수님을 대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성인으로 여기고, 사랑과 용서의 본을 보인 선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원수까지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분의 탁월한 가르침을 인정하고 교훈을 얻기도 하며,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배우고 싶어하기도 한다. 세상엔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는 리더십, 웅변, 인간 관계, 자기 계발 및 영성 훈련에 관한 강의와 책이 셀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스스로 주장하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관하여 세상은 믿지 않는다. 그러면 명백히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도대체 누구라고 봐야 하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좋은 면을 다 인정하면서도 이 부분만큼은 그분의 망상 또는 실언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모든 훌륭한 사람에게 공과 과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과실은 바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가르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걸고 끝까지 이렇게 당신의 주장이 진리라는 것을 담대하게 선포하셨다. 사형 선고를 내리기 전 예수님에게 종교 지도자들이 물은 것은 바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였고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답변하셨다(마 26:63-4). 예수님은 한결같았다.

만일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주장한 거라면, 아무리 망상이거나 실언일지라도 이는 신성모독의 죄가 맞다. 율법에 따라 사형을 받아 마땅한 범죄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오히려 그분을 미쳤다고 판단한 이들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고 그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을 도저히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여 미쳤다고 판단한 가족 중 야고보와 유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고전 15:7) 결국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며 믿음을 고백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약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유 1:1).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누구인지 믿고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에서 돌이킨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좋게 평가하고 호의적인 마음을 가졌어도, 당신은 그분을 모독할 수 있다.

2.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하는 자(22-30)

두 번째로 예수님을 평가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구경꾼들이 아니었고 철저히 조사하러 나온 분석가였다. 그들의 분석 결과는 이랬다: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거나 또는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22절). 바알세불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번역이 가능한, 귀신의 왕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래서 같은 대상을 “사탄”이라고 바꿔서 언급하셨다(23절). 율법을 연구한 영적 지도자들의 결론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실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분이 행사하는 권능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결국 악한 귀신들 혹은 귀신들의 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많은 인기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거짓으로 많은 이를 속이는 사기꾼이었고, 거짓의 아비 사탄이 그 배후에서 자기 힘을 싣고 있다고 본 것이다(요 8:44).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분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논리적으로 부적절한지 비유를 들어 따지셨다(23-27절). 구약 성경에 능통했던 서기관들은 귀신의 왕인 사탄이 모든 귀신과 힘을 합쳐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런데 사탄이 자기 편인 귀신을 대적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예수님은 물으셨다(23절).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설 수 없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24-26절). 그리고 이어서 어떤 강한 자가 차지한 집에서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오려면, 먼저는 그 강한 자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꼼짝 못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귀신에게서 그가 차지한 영혼을 되찾아오려면, 먼저는 그 강력한 귀신을 결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예수님이 그 귀신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분이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27절). 귀신이 귀신을 대적할 이유가 전혀 없고, 귀신보다 더 큰 권세가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므로, 예수님이 귀신을 압제하고 불쌍한 영혼을 구해주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28-9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진심으로 하신 이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는 특별한 죄, 즉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있다고 해석하며 거기에 속한 죄가 무엇인지 추측한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예수님의 의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이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하신 악한 강도는 물건을 강탈하려고 사람을 죽였지만 용서받았다. 사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옥에 가두며 죽이는 일에 헌신했지만 그 죄를 사함받았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한 베드로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모독하는 일을 한 예수님의 형제들도 회개하고 은혜를 누렸다. 그러면 누가 성령을 모독하는 자인가? 어떤 죄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가 되는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밝히 드러내신 예수님을 끝까지 거절하고 믿지 않는 죄다. 계속해서 불신의 죄를 고집하는 자를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일을 모독하는 자라고 부를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경고했다(히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경고의 말씀은 배교자를 위한 것이지만, 여러 면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신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와 유사하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가르치신 진리와 행하신 능력을 계속해서 접하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거절하는 자는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하여 못 박히신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하는 죄를 고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끝엔 영원한 심판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으며, 불신의 죄를 고집하는 한, 언젠가 돌이킬 수 있을 것이란 소망도 전혀 가질 수 없다.

3.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31-35)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우리를 죄에서 구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1)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한 미친 사람이거나 2)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남을 속인 악한 사기꾼으로 믿는 것이다. 둘 다 성령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성령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남은 선택이 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이 선택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성령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뜻을 밝히셨고, 성령님은 그 뜻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셨다(막 1:9-11).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 6:40).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누가 참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물으시면서 이렇게 밝히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5절). 

이 말씀은 행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믿음을 가진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자연스럽게 4장에서 이어지는 네 가지 땅의 비유와 연결되는데, 각각의 땅에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린 행위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 결과가 달랐던 것은 땅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땅이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를 열매 맺는 좋은 땅인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믿음을 가진 마음 밭이다. 그렇지 않은 마음 밭에선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다. 

당신은 어떤 마음 밭을 가졌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곧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계속해서 범할 수 있고, 반대로 성령이 확증하시는 진리를 믿고 돌이킬 수도 있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고집하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도 있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끊임없이 되새기라.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라. 그것이 믿지 않는 자에겐 믿음으로 돌이키는 길을 발견하게 하고, 믿는 자에겐 믿음의 토양에서 많은 결실을 맺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