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쓴 시편 62편은, 회중이 함께 부르기 위한 노래로 지어졌지만, 내용은 자신에게 하는 격려, 위로, 권면, 설교에 가깝습니다. 다윗은 “나의 영혼”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해줌으로 스스로 하나님 안에서 굳은 확신과 소망을 갖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2절).
때로 다윗은 자기 영혼이 듣도록 외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5절).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12절). 그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타인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어렵고 낙심이 되는 상황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나 의지할만한 무언가를 찾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누구신지 기억하고 자기 영혼에 그 사실을 바라볼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가르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할 것을 결단합니다. 백성들도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볼 것을 힘껏 권면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하고 노래한 단 하나의 목적입니다.
이 시편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잠잠히”와 “하나님만”입니다. “잠잠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דּוּמִיָּה(두미야)입니다. ‘조용한 상태’, ‘계속 기다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만”이란 표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란 뜻을 내포합니다. 히브리어 אַךְ(아크)가 사용되었습니다. ‘분명히’, ‘참으로’, ‘오직’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2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6절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에 반복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 즉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3-4절)라고 표현한 그 상황에서 직접 그 대적을 상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그분이 일하시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다리면서 자기 영혼과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볼 것을 끊임없이 권면한 것입니다.
도저히 잠잠하기 어려운 상황
다윗이 비유로 묘사한 상황을 잠시 들여다봅시다.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는 그 앞에 있는 사람을 위태롭게 하고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큰 피해를 끼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윗의 대적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고 똘똘 뭉쳐서 한 가지 일에 몰두했습니다. 바로 다윗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거짓을 즐겨 사용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축복의 말을 했지만, 그 속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그는 낙심하며 인생이 참 무상하다고 토로합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9절)
원수의 말을 듣고 쉽게 속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허무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배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자신들을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끌고 가르치고 돌본 지도자를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듣고 돌아서는 이들을 지켜보는 고통은 다윗을 도저히 잠잠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영혼에 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1, 5절).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기 위한 내적 전쟁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꾹 참고만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기다림은 내적 전쟁과 같았습니다. 다윗은 먼저, “포악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선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힘으로 삼지 말”라고 번역했습니다. 왕으로서 그는 막강한 지위와 권력으로 복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 모두 맡겼습니다(12절). 사도 바울도 다윗처럼 할 것을 성도들에게 권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내 손으로 앙갚음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려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야 합니다. 다윗은 그를 따르는 백성에게 같은 내적 전쟁을 치를 것을 권했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8절). 매 순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께만 마음을 토해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처소가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갚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윗은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것을 명령합니다(10절). “탈취한 것”, ‘늘어난 재물’은 일차적으로 싸움에서 이겨 얻게 된 물질적 자산을 뜻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다윗은 자신이 대적과 싸워서 더 많이 얻은 것, 지킨 것, 가진 모든 것을 의지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11절). 그가 가진 것이 그의 권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시거나 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합니다. 반대로 내가 잃을 때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낙심합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결단하며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의 사람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권능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걸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부자는 소출이 풍성할 때 그것을 자랑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눅 12:20).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는 걸 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셋째, 다윗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계속해서 기억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막연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구원과 소망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1, 5절).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반석, 구원, 요새, 영광, 피난처가 되신다고 믿었습니다(2, 6, 7절). 또한 다윗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단순히 기억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백성과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나아가며 의지하는 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묵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계속해서 “나의”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나의 구원”(1절),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2절), “나의 소망”(5절),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6절), “나의 구원과 영광”(7절),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7절), “우리의 피난처”(8절). 참으로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자신과 백성의 구원, 소망, 반석, 요새, 피난처, 영광, 힘으로 여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은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백성의 마음을 계속해서 하나님께만 향하도록 애썼던 지도자였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자기 영혼이 듣도록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끊임없이 외쳤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예수님 마음
마지막으로, 시편 62편에서 발견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다윗의 마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수님의 두드러진 반응은 ‘잠잠함’과 ‘하나님만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사 53:7). 그 잠잠함은 단순한 침묵이나 고집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은 조용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이 가진 권능과 권세가 얼마나 컸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습니다(벧전 2:23). 하늘 위와 아래, 땅 위와 아래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셨지만, 겉옷과 속옷까지 원수에게 내어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권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시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 하나님은 끝까지 “나의 아버지”셨고, “나의 구원, 반석, 요새, 피난처,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시편 62편에 있는 내용과 같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며 기도하고 노래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빌 2장). 그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낮아지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용수철처럼 퉁겨지기가 얼마나 쉽나요?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힘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데 있습니다. “나의 영혼”에게 쉬지 말고 말합시다.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이렇게 세워줍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인자하신 주님께서 우리 대신 갚아주실 것입니다. 권능이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소망이시고 힘의 반석이시며 요새와 피난처, 영광이십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