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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
본 문: 요한복음 4장 13-14절
설교자: 조 성 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믿고 난 후, 한 번도 목마름을 느낀 적이 없으신 분 있습니까? 주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 살면서도 목말라 하고 있을까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
사 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 쉼 없는 삶,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계획하신 삶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아마 목마름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인간은 목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목마름은 영적인 목마름입니까, 육적인 목마름입니까? 이 갈증은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환경을 통해 해소할 수 없는 목마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이 죄인됨을 깨닫기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했고 열심히 그것을 지키려 하다보니 그 결과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했더니 의인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율법을 좇아 의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평생을 율법을 지키며 살아도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구 원받았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는 굉장히 만족한 듯 살아갑니다. 환경이 좋지 않아도 구원의 기쁨 때문에 한동안은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언제부터인가 다시 목마름이 시작됩니다. 잘못된 데서 그 목마름을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의 모든 죄의 용서함을 받았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수를 마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다시는 목마름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목마르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눈이 주님에게서 환경으로 돌려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바라보고 있는 환경이 나를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 람들은 돈이 10억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런 돈이 주어진다면 얼마동안이나 만족할까요? 잠시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곧 다시 목마름이 시작될 것입니다. 내 목마름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진단해야 합니다. 이 목마름은 영혼에서 오는 것이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통계상 일 년에 만 오천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한 달에 1000명이 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자살을 할까요? 돈 많고 인기 있는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 없어 이것저것 시도해보지만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우 리의 갈증은 육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식의 성공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 또는 돈을 소비하는 것 등에서는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갈증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사 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 정도의 환경이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이 있으면 만족하리라 생각하고,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자녀가 있으면 만족하리라 생각합니다. 결혼하지 않는 남자는 예쁜 여자를 만나면 늘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갈증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고 환경이나 육신적인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이 갈증을 해소하는 길이고 참다운 만족을 누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혼은 생수를 얻게 되지만, 날마다의 삶의 갈증은 주님으로부터 채워져야 합니다. 아침에 주님과 함께 삶을 시작하고 하루의 삶 가운데 나의 영혼이 주님과 교제하며 이 갈증이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메마른 삶을 살아갑니다. 외로워하고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는 일시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풍족함을 얻는 것입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영혼은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풍성한 꼴을 얻는 삶
“도 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한 삶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문 되신 주님을 통해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됩니다. 목자를 만나 가만히 있으면 늘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꼴을 얻어야 합니다. 환 경적으로 아무리 편하다 해도 그 삶을 풍성한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영적인 데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는데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야 고생도 없고 목마름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날 마다 누리는 만족은 주님을 믿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면 우리는 환경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수천 억의 재산이 있어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얼굴이 빛나고 참 만족 가운데 있을 때는 주님과 더불어 날마다 꼴을 얻을 때입니다.
참다운 쉼이 있는 삶
“수 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혼의 쉼입니다. 주님께서 의도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짐을 내려놓고 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죄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늘 쉼을 얻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육체는 더 힘들어 질 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그 영혼은 주님 안에서 쉼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걱정과 근심들로 이와 같은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목마르지 않는 삶입니다. 주님은 값없이 생수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물과 명예를 가졌고 천 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거느리면서도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목마르다”는 외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술을 마시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영혼의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삶은 환경적으로 최악이었습니다. 헐벗고 정처 없이 떠돌던 그가 서신서를 통해 전한 말씀은 “기뻐하라” “감사하라”였습니다. 그것은 갈증이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날마다 주님의 문을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 삶이었고, 쉼과 만족을 얻는 삶이었습니다.
결론
주 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삶은 참 놀랍습니다. 목마르지 않는 삶, 주님과 풍성하게 교제할 수 있는 삶, 참으로 쉴 수 있는 삶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삶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말입니다.
그 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환경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오직 주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마시고 주님과 가까이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영혼의 목마름이 사라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될 것이며 진정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리스도 안의 삶이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워도 영적으로는 풍족한 삶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난 한 자 같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이 보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삶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삶, 쉼이 있는 삶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교제하고 그 안에 젖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