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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와 함께하는 자
본문 : 누가복음 11장 27~32절
설교자 : 최종혁
누가복음에서 본문의 위치는 분량상 중간, 예수님의 생애 기준으로는 사역의 끝자락으로 십자가를 몇 달 남겨두지 않는 시점입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는 중이며(9장) 얼마 후면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소리칠 것입니다(19장), 또 잠시 후면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23장).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 봤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서는 최종적으로 거절했습니다.
이런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바리새인, 서기관, 율법교사,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하나의 종교로 강등시켰습니다. 이들을 대변하는 단어는 외식과 위선, 그리고 자기 의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기준을 낮췄습니다. 그들이 결국 추구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의롭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부터 이들은 예수님을 거절했고, 예수님도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왜 온유하고 겸손하고 너그러우신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들만 죄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사실상 도둑질하던 세리도 죄인이었고, 자신의 몸을 팔아 살아가던 창기들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어떤 면에서는 가혹하다고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이들이 민족의 지도자로서 가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나 중요했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그들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그래서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셨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죄인이 아니라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한데, 스스로 병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의사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많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난 시간에 비유로 하신 말씀이 바로 이들의 문제에 대한 지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청소하고 수리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했던 것은 더 깨끗해진 것이 아니라 귀신이 더 들어오기 좋은 환경을 만든 것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종교적, 도덕적 노력은 그들을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끈 것이 아니라 더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눈이 보지 못하고 귀가 듣지 못하여 자신들이 진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견고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완고함은 예수님에 대한 적극적인 거절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 종교적 혹은 도덕적 행실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방법으로 의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자들에게 주는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이자 경고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먼저 누가 복이 있는 자인지 말씀하시고 다음으로 이 복을 거절하는 자들의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 함께 하는 자의 복(27~28절)
- 함께 하지 않는 자의 결과(29~32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