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연결된 영상·음성 파일이 없습니다. 아래 본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제목: 예수님의 판결
본문: 누가복음 20장 41~21장4절
설교자: 조정의
화요일, 예수님은 성전에서 여러 차례 종교지도자들의 논쟁에 맞서셨고, 마침내 그들은 더 이상 그분께 대항할 말이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말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나름대로 판결을 내리기 원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 구약성경을 통해 밝히시고(유일무이한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 하나님), 이제 그들을 판단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종교지도자들의 삶을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45절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오늘의 가르침은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하셨습니다. 그들도 듣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3:1 참고,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먼저 예수님은 20장 45~47절에서 사람들이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서기관들이었습니다. 1. 예수님의 판결1: 서기관들(20:45~47)
46절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여기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콕 찝어서 말씀하셨지만, 마태의 기록에서는 “서기관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이 언급됩니다(마 23:2). 종교지도자들, 백성의 영적, 사회적 인도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특히 서기관들은 말씀을 맡은 자들로, 구약성경 두루마리를 필사하여 보존하고 가르치는 학자, 교사, 율법스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선생님” 혹은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높고 존경스러운 서기관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판결을 내리십니다. 47절에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왜 이런 판결을 내리셨을까요? 사람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에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정확하게 보고 계셨던 그들의 문제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두 글자로 외식입니다. 외식은 현대어로 “바깥쪽을 장식함”이란 뜻을 가졌는데, 사람은 겉을 보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결국 바깥쪽을 장식하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의 평가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외식을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 후포크리테스 역시 “위선자”, “기만자”, “믿음이 강한 체 하는 사람”으로 성경 외 헬라어 문학에서는 대부분 연극배우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연극배우는 진짜 자신을 감추고 다른 사람인 척 관객을 잘 속일수록 칭찬을 받기 때문에 이 단어가 성경에서 “위선자”, “기만자”로 쓰인 이유를 쉽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기관들은 외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위선자였습니다. 외식이 그들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 예수님의 설명을 더 들어봅시다.
- 먼저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합니다.”
- 그들은 또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또 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했습니다.
47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1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예수님은 가르치시던 장소 근처 아마도 성전 여인의 뜰 부근에서 헌금함을 보고 계셨습니다. 동전을 넣는 윗부분은 좁고 아래는 넓은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13개 그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각각 다른 목적의 헌금함이었는데 각각 그 용도가 적혀있었습니다. 오늘날 감사헌금, 구제헌금, 선교헌금 봉투가 있듯, 그때도 그렇게 용도에 따른 헌금함이 따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여러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자이기 때문에 “많이” 넣었습니다(막 12:41). 헌금 눈금이 있고,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기 때문에 많이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께 많이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드리는 와중에 2절에 보면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2절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이 사람은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생계가 궁핍하고 빈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두 렙돈은 하루치 평균 일당의 64분의 1입니다. 하루 5만원을 번다면 780원 정도입니다.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동전이 한 앗사리온인데(마 10:29), 렙돈 여덟개를 모아야 한 앗사리온이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돈을 이 여인이 헌금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전 옆에서 헌금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제사장이었다면, 부자와 과부 중 누가 더 많이 넣었다고 말하겠습니까?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는 무리가 판단할 때, 누가 더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판단하겠습니까? 소리를 들었다면, 당연히 부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3절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강조)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예수님의 판결은 사람의 판결과 정반대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4절 저들은(부자들)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객관적으로 사람들이 볼 때 분명히 부자가 많이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십니다. 부자는 자신이 가진 풍족한 재물 가운데 일부를 헌금하였고, 가난한 과부는 그녀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헌금했습니다. 부자는 헌금함으로써 희생할 것이 별로 없었지만, 과부는 또다시 돈을 벌 때까지 먹을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께 모두 드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헌금하는 사람이 얼마나 헌신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고바르게 평가하겠습니까?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가지고 부자가 많은 헌금을 했다고 판결하겠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십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판결하십니다. 여러분, 외식은 사람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기 위한 노력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높여줄 때, 나를 거룩하다고 말해줄 때, 정말로 내가 의로워진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고 중심을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내 삶의 온갖 더러운 것, 악한 생각, 이중적인 삶, 있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이 보고 있고 그것에 따라 심판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에 숨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창 3:8).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자기 어둠의 면모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기가막히게 남을 잘속이는 외식쟁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포장된 의로움의 속내를 다 들여다보십니다. 하지만 여기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어떻게 참 빛으로 우리를 속속들이 비추실 하나님께 나아갈뿐만 아니라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며칠 후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을 위해 피를 흘리실 것입니다. 외식적이고 더러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음으로 죗값을 갚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히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우리는 더 이상 외식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악한 양심으로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의를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인정하고 사람에게 높임받는 삶을 삼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휘장 가운데로 지나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더럽고 외식적인 마음과 몸을 깨끗이 씻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 앞에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식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된 놀라운 은혜를 역행하는 일입니다. 또 다시 사람의 인기와 사람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더 나은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그 기준에 따라 살 수 밖에 없겠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자, 그 피를 힘 입어 담대히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자들은 이제 그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판결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조금이라도 사람에게 높임받고 싶어하는 외식의 누룩이 발견되거든, 이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기억하십시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 그 어떤 사람의 판결, 평가, 칭찬, 비판도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맺어진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영광스러운 연합 속에 그 어떤 불순물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날마다 빈틈없이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빈틈이 발견될 때마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딤전 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