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1. 그들의 믿음의 역사는 분명했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9절) 그들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8절). 그들의 변화가 희미하거나 모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이 열심히 찾아야 겨우 뭔가 다른 것이 보이는 그런 변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구원하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 진짜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2. 그들의 사랑의 수고는 희생적이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교회에게 희생하는 사랑의 수고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었습니다(살전 2:9; 살후 3:8-9). 특히 그는 자신이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특히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면서 일만 만드는 자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살후 3:10-11).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수고였고 교회는 그것을 말씀을 통해 배웠을 뿐 아니라(살전 4:9) 본을 통해서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배운 것을 실천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이런 교회의 사랑의 수고가 어떠했는지가 단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환난과 시련 가운데 있었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함께했습니다.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진심으로 그 일에 함께했습니다. 사랑이 희생적으로 수고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3. 그들의 소망의 인내는 능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환난 중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지닌 확실한 소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견디고 버티기’만 하는 소망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지탱하고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그냥 어떻게 버티다 보면 끝이 오겠지하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소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확실한 미래가 있기에 오늘을 투자하고 최선을 다해 살게하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소망이었습니다.
이 모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는 말씀의 열매였습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
고린도전서 2:1-5에서 바울이 강조해서 말한 것처럼 그는 복음을 말로 전했지만 자신의 말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혹은 표면적으로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습니다. 좋은 글귀, 책, 어떤 경험, 어떤 사람이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고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야 하고,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살전 2:13). 이것이 분명한 믿음의 역사, 희생하는 사랑의 수고, 능동적인 소망의 인내를 만들어 우리를 정말 ’좋은 교회’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로 이런 말씀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