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일만 스승보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기

최종혁 · 2024.05.29 · 고린도전서 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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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교회에 여러 은사들을 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말’과 관련된 은사들은 특별한 면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급된 은사들을 말과 관련된 은사와 그렇지 않은 은사로 분류를 해도 어느 정도 균형이 맞을 정도입니다. 사실 은사 뿐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 말할 때도 말과 관련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과 행동을 분리하지는 않습니다. 말과 관련된 은사를 가진 성도는 지식과 언변만 뛰어나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합니다(20절).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으로 일하는 은사를 가진 성도라고 해서 성경에 무지해도 상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라고 말합니다(6절). 성도는 자신의 은사가 무엇이든,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도 기본적으로는 ‘말’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주요 사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성도들에게 바른 본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화려한 언변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따르는 삶의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을 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말을 잘 했어도 그것으로 할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따라 내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나에게서 먼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라고도 말합니다(15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가르치고 경고하고 격려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그들의 성도들에 대한 관심도 제한적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아버지’였습니다. 한 두 번, 혹은 일정 시간만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고린도 교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들의 성장에 가장 기뻐하고 그들의 연약함에 가장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포기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의 말을 자기 삶에 부합시켰습니다(16절). 이런 영적 아버지를 둔 고린도 교회는 정말로 복 받은 교회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정말로 “일만 스승”이 있습니다. 유튜브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많지 않습니다. 일만 스승 중 하나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기를 구합니다. 스승의 날이 또 다른 어버이 날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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