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 쓴 고린도전서 13장
구원 받은 여러분들에게 성령님은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뜻대로 주시는 이 은사를 통해 각 성도가 주님을 섬기고 또한 서로를 섬기고 세워줄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은사는 더 눈에 띄고 어떤 은사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 몸의 각 지체가 그러한 것처럼 어떤 은사도 다른 은사보다 더 특별하거나 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은사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되어 일할 뿐입니다. 역할이 다를 뿐, 그 자체로서 더 존귀하거나 특별한 은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치 어떤 은사들을 더 특별하고 위대한 은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은사들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 사도가 되고 싶어하고 선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교사가 되려고 하고 능력 행하는 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병 고치고, 방언하고, 방언을 통역하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은사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지 않습니다. 아니,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는 온 몸을 파괴하는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몸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그 일,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그 일들이 오히려 주님의 몸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무너져도 나는 아무 상관 없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은 자라면 여러분이 곧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큰 은사를 원한다면 이제 제가 무엇이 큰 은사를 만드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큰 은사와 작은 은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은사든 큰 은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길이며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사람의 방언을 다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사람의 방언이 아니라 천사의 말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교회를 튼튼히 세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악기일 뿐입니다. 누구도 내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소리 나지 않고 울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말입니다.
방언은 못알아듣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예언은 어떨까요? 제가 예언을 잘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심지어 그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던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예언한다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세워지지 않을까요?
아, 지식 만으로는 안될 것 같습니까? 그럼, 저에게 모든 믿음이 있다고도 가정해 봅시다. 그 믿음으로 산도 옮길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것을 능력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 영향력은 그야 말로 엄청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랑 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 없이 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은 괜찮고, 어느 정도는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없이도 우리는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가진 모든 것, 나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을 사랑없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유익도 없는 그 일을 모든 것을 바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모든 은사를 위대한 은사로 만듭니다. 사랑이 그렇게 합니다. 그럼, 그 사랑이 뭘까요?
어쩌면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도 충분히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은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행하는지를 알고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참 사랑이신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하는 사랑’의 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로 주님을 닮아 사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주님처럼 오래 참고 온유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할 때, 우리는 그것을 참기 어렵습니다.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이 있고 나를 위해 싸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하지 않고, 되받아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님처럼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사랑과 정반대에 있는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능력과 성취를 시기하고, 나의 능력과 성취를 자랑하는 것, 둘 다 사랑이 아닙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시기 대신 그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랑 대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누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유익을 얻고 주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또한 사랑은 주님처럼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핵심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사랑은 이기심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무례하게 함부로 행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하거나 남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나의 결정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든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궁극적인 유익을 구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주님처럼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에 쉽게 반응해서 동요하고 분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악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하고 잊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주님처럼 불의 자체를 기뻐하지는 않고 오히려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죄를 그냥 괜찮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남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를 지적하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도 않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기 때문에 사랑은 진리와 함께 일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합니다.
이런 사랑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사랑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서로의 지붕이 되어 서로를 지키고 보호합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대신 희생합니다. 그 과정에서 믿고 바라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듯 그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 중에 끝까지 견디어 내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것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모든 은사는 그 역할을 다 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가 오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영원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보던 것을 우리 눈으로 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던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만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불완전하게 하던 그것들을 완전히 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불완전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은사를 가졌느냐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은사를 통해 얼마나 큰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했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사랑이 남고 사랑으로 한 것이 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우릴 사랑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또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