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할 것을 말하며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연단하는 것입니다(6-8절). 남을 가르치기 전에 중요한 것은 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특히 교회의 인도자로서 자기 생각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뜻을 가르쳐야하는 주된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기에 바울은 이런 면을 더욱 강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인도자 뿐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내가 그 말씀의 장애가 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의 어떠함이 말씀을 듣는 자의 귀와 마음을 닫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의 방향은 ‘나는 이러니까 말씀을 전하면 안되겠네’가 아니라 ’말씀을 더 잘 전하기 위해 나는 이런 노력을 해야겠다’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말했지 “경건에 이를 때까지는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우리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딤후 4:2). 말씀을 계속해서 배우고 그 말씀에 따라 나 자신을 연단하며 그렇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11-13절). 11절에서 바울은 가르치는 것과 명하는 것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권위를 가지고 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는 그래서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라는 추가적인 명령이 따라옵니다. 아마 이 당시 디모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였을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에서 “장로”라고 불릴만한 나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본이 되는 것입니다(12, 15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하는 사람이 어떻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위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의 상황, 성품, 나이, 나와의 관계 등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정도로 성숙해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이는 어릴지라도 전심 전력하여 영적인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권면합니다. 그렇게 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합니다.
꼭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믿는 자는 당연히 이렇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영적으로 성숙해가야 합니다. 하지만,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자라면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함을 알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확신 가운데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도 더욱 영적으로 자라고 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일을 계속하라”고 강조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증거이기도 하고 그렇게 다른 사람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